1화. 자살바위
1화. 자살바위
- 1980년대 어느 여름
여학생들 몇 명이 재잘거리며 고갯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 뒤를 30대로 보이는 청년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고 있었다.
한 손에 밧줄을 쥔 채로,
“어, 청일슈퍼 아저씨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헉! 헉!”
평소 살갑게 굴던 슈퍼 아저씨가 무슨 일인지 본체만체하고 그냥 지나치자 여학생들은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일이지?”
“그러게. 급한 일이라도 있나 봐?”
“손에 밧줄은 왜 들고 가는 거지?”
“서, 설마?”
여학생들은 숨을 헐떡이며 고갯길을 내려가는 청일슈퍼 아저씨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무서운 생각에 목을 잔뜩 움츠린 채 길바닥만 쳐다보며 걷던 여학생들은 뭔가가 흔들리는 그림자에 그만 위를 바라보고 말았다.
“까아아아악!”
“꺅!”
여학생들은 눈앞에 매달린 슈퍼 아저씨의 모습에 놀라 바닥에 주저앉거나 기절초풍하여 쓰러졌다. 말없이 달려가던 슈퍼 아저씨가 물가의 소나무에 목을 맨 채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몇 년 전에 무당이 굿을 하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간직한 무당바위에서······.
“허, 이게 벌써 몇 번째야?”
“큰 고실 영길이하고 작은 고실 은규, 그리고 이번 광열이까지 도대체 몇 명째야?”
“아무래도 무당의 원혼이 해코지를 하는 거 같아.”
“무당이 왜?”
“자넨 이곳에서 무당 모녀가 목숨을 잃은 걸 몰라서 그래?”
“알지만 설마?”
“아니면 멀쩡하게 잘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유도 없이 왜 목숨을 끊는단 말인가?”
무당바위에서 자살자들이 연이어 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이장댁 사랑채에 모여 부랴부랴 대책을 논의하였다.
“아무래도 소나무를 베어야겠습니다.”
“그건 그려. 그 소나무만 없애면 더 이상 목을 매지 못할 걸세.”
“그래, 그게 좋겠네.”
이장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찬성하였다.
“그나저나 나무는 누가 벨 건가?”
“그, 그게······.”
“그야 뭐······.”
나무를 베자는 이장의 말에 동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입을 닫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지만 누가 감히 그 나무를 베겠는가.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나무를 베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누구 하나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귀신이 붙은 나무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결국 나무를 벨 사람을 제비뽑기로 뽑기로 하였고, 아랫마을에 사는 김봉준이 선택되었다.
“이봐, 봉준이. 너무 겁내지 말게.”
“그려, 뭐 별일이야 있겠는가? 나무만 베면 우리가 쌀섬이라도 걷어줄 테니 너무 염려 말고 베게. 자네가 결정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평소 술깨나 마시고 뚝심이 있던 봉준은 마을 사람들의 부추김과 쌀 한 섬에 현혹되어 결국 톱과 도끼를 챙겼고, 마을의 노인들은 막걸리 한 동이와 삶은 돼지머리로 봉준을 응원하였다.
“푸! 그깟 귀신이 어디 있어.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지.”
술이 얼근하게 오른 봉준은 호기롭게 도끼를 들어 자살나무로 불리는 소나무를 찍어댔다. 겁이 난 마을 사람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멀찍이서 구경을 하였다.
쾅! 쾅! 쾅!
도끼질이 반복될 때마다 소나무는 베여 나갔고, 급기야 ‘와지끈’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위 아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휴.”
봉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옷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멀리 떨어져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은 환호하며 무당바위 쪽으로 몰려갔다.
그때였다.
콰르릉! 콰앙!
갑자기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더니 무당바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놀라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거센 돌풍이 불면서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콰르르릉! 콰앙!
쏴아아아아아!
놀란 마을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빗속을 뚫고 집으로 도망갔고, 넋을 놓고 있던 봉준 역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정신없이 집으로 달렸다.
“봉준이가 정신줄을 놓았다더군.”
“벌써 며칠째 곡기를 끊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던데.”
“어디 그뿐인가. 뭐에 놀랐는지 수시로 헛소리를 하며 비명을 지른다더군.”
“어허, 이러다가 산송장 치우는 거 아니야?”
그 후로 한동안 밤이면 바깥출입을 꺼릴 정도로 마을은 뒤숭숭하였다.
몇 달 동안 정신을 놓고 있던 봉준은 차츰 기력을 찾았지만, 자살나무를 벤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을 사람은 물론 가족들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기억 속에서 멀어졌다.
*****
방 안에 웬 파리가 이렇게 많아?
어, 파리가 아닌가?
설마 비문증?
“비문증이 아닙니다.”
“네? 그럼 왜?”
“보시다시피 안구에 실핏줄이 터져 피가 찼습니다. 치료는 해보겠지만, 최악의 경우 실명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눈앞에 파리가 아른거렸다.
손으로 쫓아도 사라지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검색을 하고서야 그게 비문증인 것을 알았다.
비문증은 치료가 가능하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뭉그적거리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그나마 한쪽 눈만 그런 것이라 다행이긴 하지만, 글을 쓰거나 학원강사로 먹고사는 나로서는 충격이 너무 컸다.
“너무 낙심하지는 마십시오. 일단 약을 지어줄 테니 1주일간 드셔보고 다음 주에 치료 방법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잘 보이지 않는 오른쪽 눈에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망막에 낀 피 때문에 그런 줄 알았는데······.
왼쪽 눈으로 사람과 동물들처럼 살아있는 생물들이 보이는 것과 달리, 오른쪽 눈에는 뭔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보였다. 희뿌연 무언가가 걷거나 허공을 떠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그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으면 매일 같이 고향이 보였다.
환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하였다.
갓난아이를 안고 달려가는 낯익은 사내와 아이를 찾아 헤매는 젊은 여인의 모습······.
“뭐지? 이번 주말에 동창회를 고향에서 한다고 하더니, 고향의 터주신들이 벌써 내가 보고 싶은 건가?”
여느 때처럼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가 환영이 보이자 잠이 확 달아났다.
“고향이 보이는 건 그렇다 쳐도 갓난아이를 안은 사내는 뭐고, 또 무당바위는 왜 보이는 거지?
마침 동창회 장소가 무당바위 근처라 그런가?”
그날 오후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차를 몰았다.
한쪽 눈이 잘 안 보이긴 했어도 운전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갑자기 튀어나와 차에 부딪혀 흩어지는 희끗희끗한 존재들이 있긴 했어도······.
- 2024년 여름
“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술이나 마셔.”
“맞아. 다 옛날 어른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귀신은 무슨······.”
“자식! 너 겁먹었구나. 이놈 하얗게 질린 것 좀 봐. 하하하!”
“이게! 누가 겁을 먹었다고 그래?”
“야, 야! 그만들 해. 귀신이 있으면 여기다 펜션을 지었겠냐?”
여름 휴가철을 맞아 동창회를 하려고 펜션을 예약한 곳이 하필이면 무당바위 앞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야.”
구석에서 말없이 듣고 있던 지연이 불쑥 말을 내뱉었다.
“상혁이가 죽었대.”
“뭐?”
“보름 전에도 동창회에 온다고 해놓고 여태 안 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죽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언제? 그런데 왜 연락을 안 했대?”
“며칠 전에······ 자살이래. 노총각으로 살다가 죽은 게 창피하다고 상혁이 엄마가 비밀로 하자는 바람에 그냥 조용히 가족들끼리 화장하고 말았대.”
갑작스러운 비보에 모두 입을 닫았다. 그리고 긴 침묵이 흘렀다.
술을 많이 마신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고향에서 농사를 지어가며 나름 성실하게 살아가던 상혁이 갑자기 목숨을 끊다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이제 두 명 남았네.”
“뭐?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남자 동창들 여섯 명 중에 우리 동네 남자애들은 너하고 용균이 두 명만 남았잖아.”
성우는 별생각 없이 듣고 있다가 이어지는 지연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무심하게 넘기기에는 사실이었다.
귀신이 나온다는 집에서 살다가 결국 도망치듯이 이사를 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지연은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우리 동창들뿐이 아니잖아. 지금까지 그 작은 마을에서 자살자나 사고사가 너무 많았어. 지금 생각해봐도 고향에서 서둘러 이사를 나온 건 잘한 것 같아.”
“억측 아니야? 어느 마을이든 사고는 늘 있는 법이야. 우리 마을 일이니까 네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지.”
“물론 그럴 수도 있어. 다른 마을의 일은 잘 모르니까··· 그렇지만 마을 친구 여섯 명 중에 두 명이 자살하고, 한 명은 연탄가스, 또 다른 한 명은 돌연사,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이제 겨우 서른셋이라고, 나이 서른셋에 여섯 중 넷이 죽은 게 별일이 아니라고?”
나는 지연의 열변에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달리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이제 둘 남았어. 너도 조심해.”
찜찜한 기분이었지만, 과음을 한 탓에 깜빡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들 때문에 잠이 깨었다.
남자 동창들 몇 놈이 주변에서 코를 골며 곯아떨어져 있었다.
새벽안개가 자욱한 아침 공기는 너무나도 맑았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이라 주변을 둘러보며 숙소를 나와 걷다보니 어느새 발걸음은 무당바위 앞에 멈춰있었다.
자살바위!
자살바위 또는 무당바위란 이름이 왜 생겼는지,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는지는 잘 모른다.
과거 내가 태어났을 무렵 이곳에서 무당이 굿을 하다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었다는 것과 바위 옆에 무당들이 살던 동굴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무당이 죽은 후에 이곳에서 원인 모를 자살자들이 속출하였다는 것, 최근까지 귀신이 출몰하여 꺼린다는 것,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이곳의 일을 입 밖에 내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곳에 나는 홀로 서 있었다.
‘내 생각에는 무당이 저주를 내리는 것 같아.’
지난밤에 지연이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안개가 자욱한 무당바위에는 새들의 지저귐도, 계곡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에 홀리듯 바위 위로 올라갔다.
너럭바위인 무당바위는 새벽안개에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옆에는 그 옛날 이유도 없이 사람들이 달려와 목을 매달았다는 나무 그루터기가 썩은 채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바위 아래는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검푸른 물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나에게 고향은 별로 달갑지 않은 곳이다.
갓난아이 때라 기억은 안 나지만 아버지는 늘 술을 입에 달고 살았고, 따뜻하게 대하던 어머니도 어느 날부터 차가운 눈빛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내가 다섯 살이던 어느 날, 술을 사러 나간 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친구들의 연이은 죽음,
마을의 남자 친구들 여섯 중에 이제 남은 것은 오래전에 고향을 떠난 용균이와 나 두 명 밖에 남지 않았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겁도 나고 꺼림칙하였다.
그래, 이대로 당하기보다 먼저 알아보자.
정말로 마을 사람들의 연이은 자살과 사고사는 죽은 무당과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
투둑!
작은 돌멩이 하나가 발에 치여 소용돌이로 떨어졌다.
- 왔구나!
- 그만 돌아가!
- 안 그러면 너도 죽어!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