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귀곡성(鬼哭聲)
2화. 귀곡성(鬼哭聲)
- 이리 와! 어서!
- 안 돼! 어서 돌아가!
- 이리 오라니까. 어서 이리 들어와!
- 오면 안 돼! 어서 돌아가!
하성우가 멍하니 너럭바위 위에 서 있자 짙은 안개 사이로 희끗희끗한 무언가 나타나 소리쳤다.
다른 하나는 어서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손짓을 하였고, 무당바위 끝자락에서는 한 여인의 형상이 물러서라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고함을 쳤다.
꿈인지, 생시인하서지 알 수 없는 몽롱한 상태에서 성우는 정체 모를 힘에 이끌려 점점 너럭바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소복을 입은 여인이 애처롭게 손을 휘저으며 앞을 가로막았다.
- 안 돼! 어서 돌아가!
여인의 가녀린 몸짓에도 성우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여인을 통과하여 바위 끝을 향하여 점점 다가갔다.
여인의 외침에 정신이 돌아온 하성우가 걸음을 멈추려 하자 강력한 힘이 몰려오더니 다리를 채찍으로 감듯이 잡아끌었다.
“아앗!”
- 흥! 누구 마음대로, 이미 늦었어!
기괴한 목소리와 함께 강력한 힘에 하성우는 점점 바위 끝으로 끌려갔다.
“으, 으아아아!”
성우가 바위에서 물가로 미끌어지듯이 끌려가자 소복을 입은 여인의 형상은 어쩔 줄 몰라 온몸을 떨어댔다.
- 흑흑흑!
- 흑흑흑! 흑흑흑흑!
여인의 울음소리가 물가에 울려 퍼졌다.
마치 새끼를 잃은 어미 개의 흐느낌처럼 여인의 곡성은 단장을 끊을 듯이 처절했다.
찰싹!
그때 누군가 반쯤 누운 채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하성우의 등짝을 후려쳤다.
새벽부터 뭔가에 홀리듯 무당바위를 향해 걸어가는 성우를 본 지연이 친구들을 이끌고 달려온 것이었다.
“야! 하성우! 정신 차려!”
“이 새벽에 여길 왜 온 거야?”
“얘가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새벽에 온 거야?”
친구들은 넋이 반쯤 나간 성우를 일으켜 펜션 안으로 잡아끌었다.
어느새 안개가 걷히고 햇살이 머리 위를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그, 그냥 나도 모르게······.”
“성우 이놈 진짜 무당 귀신한테 홀린 거 아냐?”
“그러게. 홀리지 않고서야 이 새벽에 거기 왜 가?”
“······.”
“야! 그만하고 아침들 먹어.”
창졸간에 변을 당할 뻔한 성우는 가슴이 두근거려 수저를 들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아침 식사를 하는 사이 식은땀으로 젖은 몸을 씻어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당바위로 왜 갔는지, 자신을 잡아끌던 기이한 존재는 무엇이고, 또 자신을 지키려고 한 영혼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간밤에 들은 상혁의 비보와 하성우가 겪은 일 때문에 동창회는 흐지부지 끝을 맺었고, 가까이 사는 친구들 몇 명을 빼고는 아침을 먹기 바쁘게 도망치듯 각자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지연아, 아무래도 상혁이네 집에 가봐야겠어.”
“소용없어. 상혁이 엄마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인지 치매 증상이 심해져서 형제들이 요양병원으로 모셨대.”
“그래도 한 동네 친구인데 이대로 보낼 수는 없잖아.”
“안타깝지만 별수 없어, 그냥 마음으로나 명복을 비는 수밖에.”
성우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은 조문도 못 하고 상혁을 보냈다는 마음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여기야!”
성우는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상진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십여 년 만에 만났는데도 어릴 때의 얼굴이 남아 있어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다.
앳되고 통통했던 상진은 나이를 먹어서라기보다 갑자기 죽은 형의 장례를 치르느라 잠을 못 잤는지 핏기가 하나도 없이 피곤해 보였다.
“왜 연락을 안 했니? 알았으면 가봤을 거 아니야.”
“······.”
“어머니는 좀 어떠시니? 지연이를 통해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걸 알았어. 네가 내려 왔다는 것도······.”
“그러셨군요. 원래 치매 끼가 좀 있었는데, 형이 갑자기 그렇게 되고 나서 더 심해지셔서 어쩔 수 없이······.”
“그랬구나. 네가 마음고생이 심하겠구나.”
“부고를 안 한 것은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어요. 결혼도 못 한 총각이 자살까지 했으니······.”
“하긴, 사촌인 지연이한테도 연락을 안 했으니.”
“그때는 정신이 멀쩡하셨는데, 형의 장례를 치르기가 무섭게 안 좋아지더라고요.”
성우는 상진의 말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아차! 내 정신 좀 봐. 뭐 마실래?”
“아메리카노요, 제가 살게요.”
“아니야. 그냥 앉아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상진을 만류하고 성우는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커피를 시키기보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드시고 갈 건가요?”
“네.”
성우는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음··· 이런 말 하기 미안한데······.”
“형은 귀신을 믿어요?”
말을 꺼내려는 성우에게 상진이 먼저 질문을 하였다.
성우는 의중을 몰라 물끄러미 상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말로는 형이 죽기 전에 악몽을 자주 꾸었대요. 잠꼬대도 심했고요.”
“뭐?”
“꿈에 무당이 나타나 물건을 내놓으라고 했대요. 훔쳐 간 자기 물건을 내놓으라고 밤마다 괴롭혔대요.”
“뭐, 무당이라고?”
하성우는 뜻밖의 말에 깜짝 놀라 상진을 바라보았다.
궁금하던 일이 상진의 입에서 나와 더 놀랐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무당의 물건이라고?”
“네. 분명히 그랬대요. 밤마다 꿈에 나타나 훔쳐 간 물건을 내놓으라고··· 형은 혹시 아는 게 있어요?”
“가만, 그러고 보니?”
“왜요? 뭔가 짚이는 게 있어요?”
상진의 말에 하성우는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마을에서 알아주던 말썽꾸러기였던 하성우와 친구들은 매일같이 크고 작은 사고를 쳤다.
“야,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왜 새말 무당바위 있잖아. 거기 옆에 동굴이 있대.”
“그게 진짜야?”
“그래, 거기 무당들이 살았었는데, 그 안에 지금도 무당들이 쓰던 물건들이 있대.”
“뭐, 진짜야?”
“그래 인마! 어른들이 하는 말을 내가 똑똑히 들었다고.”
성우와 친구들은 홍상철의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일 같이 흥미 거리를 찾던 말썽꾸러기들한테 상철이의 말은 오랜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가보자!”
“좋아 가자!”
“뭐, 거길 간다고?”
“이 새가슴 겁먹은 거 봐라. 성우 넌 무서우면 빠져도 돼.”
“싫어! 나도 갈 거야.”
“자식! 지긴 싫어서, 무서워서 오줌이나 지리지 마라. 킥킥킥!”
“흥! 누가 할 소리!”
말썽꾸러기들은 티격태격하며 동굴에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랜턴을 챙기고 상혁이와 상철이는 박쥐가 나올지 모른다며 천에 석유를 묻혀 횃불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동굴이 있다는 옆 마을 무당바위 근처로 향하였다.
한껏 신이 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동굴을 찾아 나섰다.
“야! 동굴이 있긴 한 거야?”
“너 뻥 친 거 아니야?”
“아니야! 진짜 있다고 그랬어! 잘 찾아봐!”
“마! 아무리 찾아도 없잖아?”
“야! 여기다, 여기야!”
무당바위 근처에서 동굴을 찾아 풀숲을 헤치던 아이들은 바위 앞에 놓여있는 커다란 돌을 발견하였다.
“아무래도 이 돌로 동굴 입구를 막아놓은 거 같은데?”
바닥에 엎드려 돌틈을 살피던 상혁이가 안쪽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그야 치워보면 알겠지.”
다섯 명의 개구쟁이들은 커다란 돌을 치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에는 집에 달려가 지렛대까지 가져왔다.
그리고는 결국 바위 앞을 막고 있던 돌을 굴려버렸다.
“와! 굴이다, 굴!”
“야, 후레쉬 좀 비춰봐!”
동굴은 어른이 허리를 숙이면 들어갈 정도로 입구가 제법 컸다.
조심스럽게 랜턴을 비추자 불빛에 놀란 박쥐 몇 마리가 푸드덕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으아악! 귀신이다!”
“으아악!”
누군가의 비명에 아이들은 놀라 동굴 밖으로 뛰쳐나왔다.
“야, 이건 박쥐잖아! 한심한 놈들 같으니.”
기겁을 하고 도망치는 아이들을 향해 상혁이 소리를 질렀다.
“에이, 바보 같은 놈들! 무서우면 너희들은 밖에 있어. 나 혼자 들어갈 테니.”
겁이 없고 덩치가 커서 평소 대장 노릇을 하던 상혁이 호기를 부리며 동굴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자 누군가의 비명에 같이 뛰쳐나왔던 친구들은 멋쩍은 표정으로 동굴 안으로 따라 들어 갔다. 허리를 숙이고 십여 미터를 들어가자 커다란 공간이 나왔고, 그 안에는 생전에 무당들이 사용하던 옷가지며 무구가 널려있었다.
“나는 장군이다! 모두 덤벼라!”
“이놈들 내 칼을 받아라!”
상혁이 동굴 벽에 세워 놓았던 무녀의 언월도를 들고 짐짓 장수 흉내를 냈고, 영식이는 무녀의 칼을 들고 상혁과 맞섰다.
딸랑! 딸랑!
상철이는 방울을 흔들어 대며 신나게 뛰어다녔고, 준모는 무녀의 모자를 쓰고 부채를 흔들어 댔다.
평소 겁이 많아 친구들로부터 새가슴이라고 놀림을 받던 나는 주춤거리며 친구들을 말렸다.
“야, 그만하고 나가자! 남의 물건 함부로 만지는 게 아니랬어!”
“짜식! 쫄기는, 무당들은 다 죽고 임자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야.”
친구들은 하성우의 말을 무시하고 제각각 무구를 하나둘씩 챙겨 의기양양하게 동굴 밖으로 나왔다.
“이거 정말 볼수록 신기한걸? 야, 우리 칼싸움하러 가자!”
“좋지. 그 칼이 센지 이 칼이 센지 한 번 붙어보자.”
“나도, 나도!”
언월도와 삼지창, 칼을 든 상혁과 영식이가 신나서 뛰어가자 부채를 든 준모가 맥이 빠진 듯 투덜거렸다.
“에이, 자기들만 좋은 거 다 챙기고 난 이게 뭐야?”
“야, 도로 넣어 두라니까!”
성우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신이 나 달려가는 친구들을 뒤따라가며 소리쳤다.
“그럼 형 친구들이 불행하게 된 게 그 무구 때문이라는 건가요?”
어린 시절에 있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던 상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글쎄, 무당이 꿈에 나타나 자신의 물건을 내놓으라고 한 게 사실이라면 그럴 수도··· 그렇지만 내 기억으로는 그 당시 그 물건들은 모두 도로 동굴에 넣은 걸로 아는데?”
성우는 희미하게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세상에! 이놈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아이들이 무구를 갖고 노는 걸 본 누군가 호통을 쳤다.
지나가던 고물 장수였다.
고물 장수가 트럭을 끌고 가다 말고 아이들을 발견하고는 뛰어오며 고함을 질렀다.
“이놈들! 이건 귀신이 붙은 거야. 갖고 놀면 큰일나!”
“네에, 귀신이요?”
“그래 인마! 당장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으면 오늘 밤 무당 귀신이 나타나 너희들을 잡아갈 거라고.”
고물 장수 아저씨의 말에 겁을 먹은 우리는 사색이 되어 갖고 있던 무구들을 모두 내려놓았다.
고물 장수는 순순히 물건을 내놓는 우리들이 기특하다며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나눠주었고, 아이들은 신이 나 헤헤거렸다.
“그때 분명히 동굴에 가져다 놓는다고 했는데······.”
“혹시 고물 장수가 그 물건들을 빼돌린 게 아닐까요?”
“흠··· 그럴지도, 돈 욕심에 쇠붙이는 팔고 다른 물건들은 그냥 버렸을지도······.”
“그럴 가능성이 커요. 그렇지 않고서야 무당이 형 꿈에 나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가, 가만?”
상진과 이야기를 나누던 성우는 뭔가를 떠올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렴풋이 떠오른 고물 장수의 얼굴이 과거에 죽은 누군가와 오버 랩 되었기 때문이었다.
“서, 설마?”
“왜 그러세요?”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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