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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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뫼도사
그림/삽화
월하독작
작품등록일 :
2024.08.19 15:07
최근연재일 :
2024.09.2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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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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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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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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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사령(死靈)의 소원

DUMMY

4화. 사령(死靈)의 소원


새벽에 무당바위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홀로 외진 숲속에서 야영을 하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외진 이곳에 왜 홀로 있는 거지?”


작은 가로등 하나

타닥타닥 타고 있는 장작불

허공에 걸려 있는 초승달

스산한 밤공기와 기이하게 부는 바람


무언가가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처음 텐트를 칠 때부터 녀석들은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휴양림을 떠도는 정체불명의 존재들.


캐액!


작은 동물 하나가 무언가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숲속으로 꽁무니를 쳤다.

들고양이를 쫓아낸 녀석은 의기양양 나를 독차지하려는 듯 슬그머니 장작불 앞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나를 향해 다가갔다.

휴양림을 떠도는 유기견이었다.

외부에서 들어온 것인지, 방문객이 버리고 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낯선 방문자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녀석의 기대와는 달리 방문객은 캔맥주만 홀짝일 뿐, 다른 사람들처럼 고기를 굽거나 라면을 끓이거나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오늘도 또 굶게 생겼네.


텐트 주변에 아이가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 몇 개를 주워 먹은 게 녀석이 오늘 먹은 먹이의 전부였다. 선택지는 따로 없었다.

드넓은 휴양림 안에 손님이라고는 눈앞에 있는 내가 전부라 떠돌이 개는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아 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휘이이이이이잉.


한줄기 밤바람이 한여름 밤의 열기를 휘몰고 지나깄다.

오싹한 기운에 나는 몸을 움츠리며 장작 두 개를 불길 속으로 던져 넣었다.


“참나,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게 뭔 청승이람?”


기이한 일이었다.

새벽에 무당바위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을 겪고도 한적한 휴양림에 들어온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평소 같으면 무서워서 잔뜩 긴장 했을 텐데, 나는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어쩌면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일 정도로 침착하였다.

그때였다.

온몸을 휘감는 한기가 몰려오더니, 숲속 가득 서서히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아니, 안개가 아니었다.

희끗희끗하게 보이던 형체들은 서서히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헉!”


놀란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하얀 존재들, 영혼들을 수없이 보아왔기에 잠시 놀랐을 뿐, 두려움에 떨거나 공포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이내 이성을 되찾은 나는 허공에 떠 있는 영혼들을 조용히 응시하였다.

소녀들이었다.

지연의 주변을 떠돌고 있다던 소녀들의 영혼이었다.

허공에 떠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영혼들이 점점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소리가 작은 나방의 나래짓처럼 조용하여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입 모양을 보고 소녀들의 영혼이 하는 말을 해석하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무··· 구를······ 찾아줘.”

“무구를··· 무구를 찾아줘.”


“뭐, 무구를 찾아달라고?”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어린 소녀들은 분명 말하고 있었다.

무구(巫具)를 찾아달라고······.”


순간,

어둠 속에서 나를 지켜보던 떠돌이 개의 눈빛이 붉은 핏빛으로 변하였다.


컹컹컹!

컹컹컹컹컹컹!


갑자기 튀어나온 개는 허공에 떠 있는 영혼들을 향해 거칠게 짖기 시작하였다.

마치 물어뜯기라도 할 듯 허공을 뛰어오르며 영혼들을 위협하였다.


“그만, 그만해. 이 아이들은 가엾은 영혼들이야.”


나는 나지막한 소리로 흥분하여 날뛰는 떠돌이 개를 진정시켰다.

그러자 개는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조용히 내 곁으로 와 앉았다.

영혼들 역시 서서히 옅어지더니 잠시 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무구를 찾아달라고? 역시 그게 원인이었나?”


어린 소녀들의 영혼이 한 말을 되새기며 생각을 집중하였다.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무구를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더구나 무구의 행방을 아는 철물점 박씨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깊은 고민에 쌓여 잠도 잊은 사이 어느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를 지키려는지 떠돌이 개 역시 함께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뭐? 그 말이 사실이야?”

“그렇다니까, 분명히 무구를 찾아달라고 했어. 무구를······.”


나는 날이 밝기 무섭게 지연에게 전화를 하였고, 지연은 한달음에 휴양림으로 달려왔다.


“혹 청일슈퍼 아저씨의 가족에 대해 뭔가 아는 거 없어? 부인이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있으면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글쎄, 아마 박씨 아저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에 마을을 떠난 걸로 알고 있어. 그런 일을 겪고 이곳에 남아있기는 힘들었을 거야.”

“아무래도 그렇겠지. 먼 친척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뭔 친척이라?”


나와 지연은 야영장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보다 너 진짜 여기서 혼자 밤을 샜어?”

“그럼 혼자 샜지. 누구랑 있었겠어?”

“아, 혼자는 아니었네. 저 개도 있었고, 소녀들의 영혼도 있었잖아. 깔깔깔!”

“어휴, 야! 장난치지 말고 좀 진지해져 봐.”

“진지라··· 야함! 그래서 하는 말인데, 부르려면 지난밤에 부를 것이지, 왜 꼭두새벽에 사람을 깨우니? 나도 이화 선배를 만났던 일로 제대로 못 잤단 말이야.”

“뭐, 밤에 부르라고?”


지연의 말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얘 좀 봐. 무슨 생각을 하기에 얼굴을 붉히실까? 너 설마 엉큼한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풉! 내, 내가 뭘?”


지연의 말에 당황하여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내뿜었다.


“뭐야? 진짜 수상한데? 너 설마 아직도 날 여자로 보는 건 아니겠지?”

“그, 그게······.”


짜악!


“깔깔깔! 농담이야, 농담! 난 출근해야 하니까 뭐라도 챙겨 먹고 더 자.”


지연은 우물쭈물하는 내 등을 세차게 두드리고는 손을 저으며 숲을 나섰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지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쌉싸름한 커피가 입안 가득 퍼졌다.


“인마! 아침부터 웬일이야?”

“응, 그냥 지나가다가··· 그보다 밥 좀 있으면 좀 줘라. 문 연 식당이 없어서······.”

“알았어. 들어와!”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나를 보고 고향 친구 철희가 문을 열었다.

몇 년 전 이혼을 하고 고향으로 귀농한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야, 내가 특별히 달걀 두 개를 넣어 줄 테니 밥값은 해야 돼.”


철희는 갑자기 찾아온 성우를 위해 라면을 끓이며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하였다.


“짜식! 그깟 라면 하나 끓여주면서 생색은······.”

“농담이 아니야. 오늘 고구마 심으려고 외노자들을 불렀는데, 갑자기 펑크를 냈어. 지난밤에 과음을 해서 인력사무소에 나오지 않았나 봐.”

“외국인들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다고 하더니, 진짜인가 보네?”

“말해 뭐해. 시골에 노인들밖에 없는데, 외국 애들 없으면 아무 것도 못 해.”

“생각보다 심각하네.”

“알아들었으면 오늘 일 좀 도와줘.”

“난 고구마를 심어 본 적이 없는데······.”

“생각보다 안 어려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저녁에 소고기 사 줄 테니까 도망가지 말고 도와줘.”

“아, 알았어······.”


나는 얼결에 코가 꿰인 것 같아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다 먹었으면 나와! 더워지기 전에 후딱 끝내자고.”


마지막 남은 라면 국물을 마시는 나를 향해 친구는 작업용 장갑과 장화를 내어주며 채근하였다.

검은 비닐로 고랑을 씌워놓은 밭 위로 5월의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자, 잘 봐. 이렇게 고구마 수냉이를 꿰어서 30센티 간격으로 꽂으면 돼.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고.”

“수냉이? 고구마 순이 수냉이야?”

“응, 수냉이는 사투리인가 보네.”

“순을 수냉이라고 하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


나는 꼬챙이로 고구마 순을 심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명색이 국어 전공자인데, 처음 듣는 사투리가 정겨웠다.

밭고랑을 따라가며 고구마 모종을 심었고, 친구는 주전자로 물을 주며 수냉이 위에 모종삽으로 흙을 얹었다.

한낮의 햇살이 머리 꼭대기에서 내리쬘 즈음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허리를 숙였다 폈다를 반복하다 보니 현기증도 나고 온몸이 쑤셨다.


“아이고, 허리야. 좀 쉬었다 하자.”

“아직 반도 못 심었는데, 벌써 엄살을 떨면 어떡해?”,

“엄살이라니, 이거 순 악덕 업주네. 일을 시키려면 새참도 주고 중간중간 쉬게 하면서 일을 시켜야지, 죽으라고 일을 시키는 놈이 어디 있냐?”

“알았다, 알았어. 잠깐 쉬고 있어.”

친구 놈은 투정을 부리는 나를 보며 물 주전자를 내려놓고 집으로 향하였다.


“요즘 귀농 소재가 웹소설의 대세인데, 작가들은 밭일이나 해보고 쓰는 건가?”


목도 뻣뻣하고 몸을 비틀자 여기저기서 뚝뚝 소리가 났다.

겨우 반나절을 하고도 이렇게 힘든데, 독자들은 왜 그렇게 귀농 소설에 열을 올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귀농 소설이나 써 봐?”


주변을 둘러보며 낮엔 농사를 짓고 저녁에는 글을 쓰는 삶을 상상하였다.


“아서라. 소설을 쓰려면 농사에 대해 전문가가 돼야 하는데, 농사를 다 배우기도 전에 과로로 쓰러지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농사일은 자신이 없었다.


따르르르릉!


이화보살이었다.


“여보세요?”

“나야, 박이화. 어제는 미안했어. 바쁘지 않으면 오늘 좀 볼 수 있을까?”

“네, 네. 친구 놈한테 잡혀 농사일을 돕느라 좀 바쁘긴 해도 끝나는 대로 찾아뵐게요.”

“그래, 꼭 와! 어쩌면 사라진 무구의 행방에 대해 알 수도 있을 거 같아서······.”

“그래요? 그럼 지금 갈게요.”


나는 이화보살의 말에 들고 있던 고구마 순을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자동차로 달려갔다.


“야, 인마! 일하다 말고 어디 가?”


물과 냉커피를 들고나오던 친구 놈의 고함이 뒤통수를 때렸다.


“옛날에 청일슈퍼 아저씨와 가깝게 지내던 분이 생각나서 연락을 해봤더니, 아직 그 부인과 연락을 하고 지낸대.”

“그래요? 그 가족들은 어디에 살고 있대요?”

“응, 인천에 산대. 여기 전화번호.”

“아, 네.”


어린 시절 친구들이 동굴에서 가지고 나온 무당의 물건들을 아이스크림과 바꿔 간 고물장수 가족이 인천 계양구에 산다는 말을 들은 나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인천으로 차를 달렸다.

그 시간, 이화보살은 무당바위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의문의 자살 사건이 무녀의 원혼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같은 무녀로서 무녀의 영혼을 만나 봐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어느새 무당바위 주변은 저녁노을에 어둠이 짙게 깃들고 있었다.

근처 펜션 주차장에 차를 세운 이화보살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무당바위로 불리는 너럭바위 위로 향하였다.


- 왔구나!

- 생각보다 많이 늦었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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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화. 수호령의 정체 24.09.21 27 0 12쪽
18 17화. 봉복사 주지 24.09.18 19 0 13쪽
17 16화. 경고 24.09.14 19 0 12쪽
16 15화. 광기(狂氣) 24.09.10 17 0 12쪽
15 14화. 뒤바뀐 아이 24.09.07 18 0 11쪽
14 13화. 해코지 24.09.03 31 0 11쪽
13 12화. 제물 +2 24.09.01 47 1 12쪽
12 11화. 하씨 가문의 비밀 +2 24.09.01 45 1 12쪽
11 10화. 빙의 +2 24.08.30 48 1 12쪽
10 9화. 무당의 딸 +2 24.08.28 42 1 12쪽
9 8화. 이방인 술사 +2 24.08.28 46 1 12쪽
8 7화. 출생의 비밀 +2 24.08.27 53 1 12쪽
7 6화. 신이 머무는 숲, 신림(神林) 24.08.26 29 1 11쪽
6 5화. 정체불명의 영혼 +2 24.08.24 57 1 11쪽
» 4화. 사령(死靈)의 소원 +2 24.08.23 54 1 12쪽
4 3화. 사라진 무구(巫具) +2 24.08.20 64 2 12쪽
3 2화. 귀곡성(鬼哭聲) +2 24.08.19 146 3 12쪽
2 1화. 자살바위 +4 24.08.19 78 3 12쪽
1 프롤로그 24.08.19 65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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