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의 저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술뫼도사
그림/삽화
월하독작
작품등록일 :
2024.08.19 15:07
최근연재일 :
2024.09.29 14:48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946
추천수 :
18
글자수 :
102,664

작성
24.08.30 13:51
조회
49
추천
1
글자
12쪽

10화. 빙의

DUMMY

10화. 빙의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새벽 찬 바람에 지연은 잠이 깨었다.

유리병 속의 촛불도 꺼져가고 있었다.


“으응? 내가 왜 창문을 열어놓았지?”


지연은 온몸을 감도는 한기에 창문을 닫았다.

여전히 켜져 있는 노트북, 식탁 위에 뒹굴고 있는 빈 캔맥주 세 개, 잠결에 벗어 던진 잠옷 상의, 환한 형광등······.


“아우, 머리야. 미쳤어. 맥주를 세 캔이나 마셨단 말이야?”


주량이 센 편이 아니라서 한두 개만 마셔도 취하는 지연은 식탁 위의 빈 캔들을 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지난밤에 성우가 왔다 간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왔다 갔나? 내가 성우를 또 불렀나?”


전에도 전화를 하지 않았는데, 성우가 새벽에 전화를 걸어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통화 기록을 보니 분명 자신이 성우에게 전화를 한 내역이 있었다.


“설마?”


지연은 통화 기록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지난 저녁에도 성우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왜 걸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 요즘 내가 왜 이래? 마치 내 속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


지연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자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럼 성우가 왔다 갔단 말인가?”


얼굴을 덮었던 이불을 내려 식탁 위를 뒹구는 맥주캔을 빼꼼히 바라보며 지연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부아아아아.

부아아아아아아앙.


용균의 스포츠카는 강변도로를 벗어나 양평을 지나 횡성을 향하고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 덕분인지 취기가 많이 사라지긴 헸어도 여전히 만취 상태였던 용균의 머릿속에는 오직 집안의 비밀을 풀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죽더라도 반드시 밝혀내고 말 거야. 도대체 이 집구석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귀신을 족쳐서라도 알아내야 해!”


용균은 취중에 무모하리만큼 객기를 부리고 있었다.

음주운전임에도 한밤중이라 도로에 다른 차량이 거의 없었기에 용균의 차는 횡성 외곽을 지나 시골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어느덧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시골 전경은 평화롭기만 하였다.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일어나 모내기한 논을 둘러보고 있었다.

낯선 스포츠카가 시골길을 달리자 신기한 듯 농부는 차가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나와! 어서 나와!”


무당바위에 도착한 하용균은 다짜고짜 바위에 올라 물속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와! 나와 보라고!”


그러나 소용돌이는 조용할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새벽부터 자신의 집 앞에 고급 외제차가 서자 이상하게 생각한 마을 이장은 누군가가 새벽안개 속에서 소리를 지르자 바위 가로 다가갔다.


“아니, 어떤 미친놈이 겁도 없이 식전 댓바람부터 난리람?”


마을 토박이라 무당바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잘 아는 김종수는 본능적으로 또 무슨 사달이 일어날 것 같아 잔뜩 긴장을 하였다.


“나와! 나와 보라고! 넌 도대체 누구야? 누구냐고?”


“뭐야? 진짜 미치지 않고서야 왜 새벽부터 날리람?”


젊은이의 행동이 기이하기도 하였지만, 마을 이장으로서 또 사고라도 나면 골치 아픈 일이라 김종수는 무당바위 위로 올라갔다.


“이봐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위험하니까 어서 나오세요.”


정신없이 소리를 질러대던 하용균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아니, 당신은 며칠 전에 하 회장님과 같이 왔던?”

“······.”

“여기서 이러시면 위험합니다.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 집으로 가시죠.”


마을 이장 김종수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하용균을 잡아끌다시피 자신의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어느새 아침햇살이 무당바위를 비치고 있었다.


잠을 설친 나는 지연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왠지 멋쩍어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였다. 사춘기 어린 소년도 아닌데, 그깟 키스 한 번이 뭐라고 잠까지 설친단 말인가?

지연과의 첫키스의 달콤함······.

그런데 지나고 나니 여운보다는 의문이 더 들었다.

달콤하고 황홀할 줄 알았는데, 지연의 행동은 뭔가 쫓기면서도 우악스럽기까지 하였다.

마치 누군가의 힘에 이끌려 강제로 입을 맞춘 듯한 느낌이었다.


“뭐지? 지난번에도 분명히 와달라고 전화를 해놓고도 기억을 못 하더니, 이번에 한 돌출행동은 뭐지? 설마?”


“아닐 거야. 그 작은 집안에 금줄에다가 부적, 십자가와 부처상까지 있는데, 어떻게 귀신이 들어 올 수가 있어? 분명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도 심하게 체한 것처럼 답답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하씨 집안은 어느 날 갑자기 큰 부자가 되었지요. 저희 할아버지도 권대감 댁에서 도련님 할아버님과 함께 머슴살이를 했었거든요.”


마을 이장의 말에 하용균은 두 눈을 반짝이며 다음 말을 기댜렸댜.


“어느 날 갑자기 권대감이 전 재산을 자신의 머슴에게 물려주고, 그 가족들은 야반도주하듯 떠나버렸으니,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한 왜경이 나와 수사를 할 정도였지요.”

“아, 네······.”

“그렇지만 재산을 양도한다는 권대감의 유서는 물론이고, 강제로 재산을 빼앗았다는 아무런 물증이 없자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지요.”


마을 이장 김종수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은 하씨 가문의 일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 하였다. 하용균은 뭔가 새로운 내용이 나올까 하여 마른침을 삼키며 경청하였다.


“그 후 하덕구 어르신은 많은 돈을 총독부에 기부하고 지역 경찰서장과 군수 등의 유력 인사들에게 뇌물을 바치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지요.”

“네, 그보다 저희 집안에서 모셨다는 일본인 부부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면······.”

“글쎄요. 별채에 낯선 사람들이 묵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워낙 철저하게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해서··· 어느 여종 하나가 몰래 담장을 엿보고는 그날 밤 급살을 맞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누가 관심을 두었겠어요.”


말없이 듣고 있던 하용균은 마을 이장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미천한 머슴 출신에 벼락부자, 일제에 충성한 친일파, 그게 들은 집안 내력의 전부였다.


“그럼 저 바위 앞 소용돌이 속에 사는 존재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소용돌이 속의 존재라니요?”


하용균의 말에 마을 이장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반문하였다.


“이장님께서도 그날 분명히 보셨잖습니까? 일본 무녀의 이상한 행동과 기이한 존재들이 다투는 소리를요.”

“글쎄요. 아시다시피 저는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알았지만, 자세히는 모릅니다.”


마을 이장은 하용균의 계속되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이장의 부인인 둣한 여인이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여보, 조반 준비가 되었으니, 어서 드세요.”

“같이 가시죠. 새벽같이 오시느라 시장할 텐데······.”

“저, 저는······.”

“사양하지 마시고 가세요. 저희가 1년에 도련님댁에서 후원받는 돈이 얼마인데, 그깟 식사 한끼 대접 못 하겠습니까. 하하하.”


김종수는 주뼛거리는 하용균을 식탁으로 잡아끌었다.


카톡!


“간밤에 별일들 없으셨죠?”


카톡 소리에 단톡방을 보니 이화보살의 글이었다.

며칠 간의 이상한 일을 함께 겪으며 나와 지연, 이화보살은 단톡방을 통해 수시로 안부를 묻곤 하였다.

지연과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네, 덕분에요. 누님도 별일 없으셨죠?”

“그럼. 별일 없었지.”


성우와 이화보살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지만, 웬일인지 지연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누군가 제멋대로 고쳐놓은 신문 기사를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야? 이게 도대체··· 성우가 내 노트북을 열었을 리도 없고, 그럼 내가 이랬단 말인가?”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카페에 관한 글이었고, 케이크에 대해 썼었는데, 커피는 쌍화탕으로, 케이크은 시루떡으로 수정되어 있었다.


“으아악! 말도 안 돼! 누가 이런 짓을!”


기사를 송고하고 전에 혹시나 싶어 한 번 더 열어본 것인데, 기사 내용이 엉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하여 눈앞이 캄캄하였는데, 다행히도 특정 단어만이 바뀌어 있었다.


“왜 카페가 주막으로 바뀌어 있는 거지? 사장은 주모로 바뀌고··· 이건 마치 기사 내용을 100년 전으로 돌려놓은 것 같잖아.”


이상한 생각이 든 지연은 바뀐 기사 내용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였다.

그리고 특정 단어만을 현실에 맞게 수정하였다.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지난밤의 일, 식탁 위에 나뒹구는 빈 캔맥주, 그리고 황당하게 바뀐 기사 내용······.


“이건 분명히 누군가 다녀간 게 틀림없어. 그게 사람이든, 귀신이든······.”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햇살은 너무도 밝았다.

새벽 치성을 올린 이화보살은 나와 지연이 일어날 시간이 되자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다.

분명히 악령이 해코지를 할 게 분명한데, 이상하리만큼 잠잠하였다.

오히려 조용한 게 더 불안하였다.


“나를 허공에 띄울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야. 그런 존재가 자신의 명을 거역하고 무구를 신림에 봉인한 우릴 그냥 둘 리가 없어. 어떤 식으로든 앙갚음을 할 게 분명한데 왜 이리 조용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함께 있는 영혼이 바로 물에 빠져 죽은 조선의 무녀일까? 그럼 나와 하성우를 찾아왔던 소녀들의 영혼은 뭐지?”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놈이 움직일 게 분명해. 직접 나서지 못하면 다른 누군가를 시켜서라도 무구를 찾으려 할 거야.”


마을 이장 집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하용균은 원주로 향하고 있었다.


“아버님을 살리고 집안을 다시 일으키시려면 도련님께서 무구를 찾으셔야 합니다.”

“네? 그게 무슨?”


얼마 전에 기이한 존재가 어머니 김명자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마을 이장이 하자 하용균은 영문을 몰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 그렇게 이상하게 보실 것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무당바위 곁에 살다 보니 종종 이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는 그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고요.”


하용균은 이장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밑져 봐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치악산 자락으로 차를 몰았다.


“무당바위에서 가깝고도 기운이 강해 악령이 함부로 접근을 할 수 없는 곳, 그곳에 나머지 무구들이 봉인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먼저 치악산 자락의 국형사 옆에 있는 동악단으로 가세요.”


“다짜고짜 동악단으로 가라니?”


하용균은 마을 이장의 이상한 행동과 말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집안에 얽힌 비밀을 풀겠다는 생각에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국형사를 향해 달려갔다.

원주 시내를 벗어나자 멀리 치악산이 보였다.

살구둑이라는 예쁜 지명처럼 행구동 길 가장자리 양쪽에는 살구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잠시 후 우회전 하세요!


우회전을 하여 오르막길을 오르자 채 5분이 안 돼 국형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내비게이션은 절 아래쪽에 있는 주차장으로 안내하였다.

차에서 내리자 동악단과 국형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였다.

하용균은 조심스럽게 언덕길을 올라 왼쪽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작은 산신각이 보였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커억!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용균은 갑자기 붉은 선혈을 토해냈다.


- 계속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녀의 저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 19화. 기억 24.09.29 13 0 12쪽
19 18화. 수호령의 정체 24.09.21 27 0 12쪽
18 17화. 봉복사 주지 24.09.18 20 0 13쪽
17 16화. 경고 24.09.14 20 0 12쪽
16 15화. 광기(狂氣) 24.09.10 18 0 12쪽
15 14화. 뒤바뀐 아이 24.09.07 18 0 11쪽
14 13화. 해코지 24.09.03 33 0 11쪽
13 12화. 제물 +2 24.09.01 48 1 12쪽
12 11화. 하씨 가문의 비밀 +2 24.09.01 48 1 12쪽
» 10화. 빙의 +2 24.08.30 50 1 12쪽
10 9화. 무당의 딸 +2 24.08.28 44 1 12쪽
9 8화. 이방인 술사 +2 24.08.28 47 1 12쪽
8 7화. 출생의 비밀 +2 24.08.27 54 1 12쪽
7 6화. 신이 머무는 숲, 신림(神林) 24.08.26 32 1 11쪽
6 5화. 정체불명의 영혼 +2 24.08.24 59 1 11쪽
5 4화. 사령(死靈)의 소원 +2 24.08.23 56 1 12쪽
4 3화. 사라진 무구(巫具) +2 24.08.20 65 2 12쪽
3 2화. 귀곡성(鬼哭聲) +2 24.08.19 149 3 12쪽
2 1화. 자살바위 +4 24.08.19 80 3 12쪽
1 프롤로그 24.08.19 66 1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