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뒤바뀐 아이

14화. 뒤바뀐 아이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오랜 가뭄 끝에 오는 단비처럼, 때 이른 유월의 무더위를 가시게 해 준 고마운 비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사망으로 정신이 없었지만, 장례지도사의 도움과 도우미들 덕분에 어렵지않게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누나와 친인척 몇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산 아버님 묘소의 봉분을 파고 유골함을 묻는 것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지연과 강릉 바다로 향하던 중 비보를 전해 듣느라 미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나는 모든 것이 죄송스럽고 혼란스러웠다.
누나 역시 장례를 치르는 내내 표정이 굳어 있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모친상을 당해 충격이 커서 그런 것으로 보이겠지만,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성우··· 성우는······ 내 자식이······ 아니야.”
그저 치매 노인의 넋두리로만 생각하던 하숙희는 어머니가 임종 전에 또렷한 정신으로 들려준 이야기에 너무도 충격을 받았다.
*****
산후통증과 피곤함으로 깜빡 잠이 들었던 숙희 엄마는 덜컹거리는 문소리에 눈을 떴다.
문 앞에 남편 하지웅이 아이를 안고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실바람 때문에 등잔불이 일렁거렸다.
“여, 여보··· 아이는 왜?”
어두침침한 방안이라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풍겨오는 술 냄새로 보아 남편은 얼근하게 취해 있었다.
“여보, 술 먹고 아이를 안다가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
놀라 몸을 일으키는 부인의 물음에도 하지웅은 아이를 안은 채 그냥 서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강보!
아이를 감싼 강보가 낯설었다.
“헉!”
옆을 돌아보던 숙희 엄마는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분명 아이는 술에 취한 남편이 안고 서 있는데, 바로 옆에 또 다른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영문을 몰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어버린 마누라 앞에 하지웅이 앉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
숙희 엄마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그냥 놀란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 아이는 저 아래 무당 딸 설희 년의 아이야. 앞으로 우리가 이 아이를 키우고, 우리 아이는 하 대감 댁에 데려다줄 거야.”
“······.”
짜악!
“이 여편네야, 정신 차리고 똑바로 들어!”
하지웅은 영문을 모른 채 눈만 멀뚱멀뚱 뜨고 쳐다보는 마누라의 뺨을 올려붙였다.
“다시 말할 테니까 똑똑히 들어. 우리 자식은 우리가 키워봐야 고생만 하며 농투성이로 자랄 수밖에 없어. 하지만 하 대감 댁에 데려다주면 이 아이는 부잣집에서 도련님 소릴 들으며 잘 살 수 있다고!”
숙희 엄마는 뭐가 뭔지 정신이 없었지만, 대충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친자식은 하 대감 댁에 데려다주고, 설희의 아들은 자신들이 키우겠다는 말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남편의 윽박질에 숙희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기보다도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꽁보리밥에 감자라도 먹으면 다행이었다.
이 아이만은······.
이 아이만은 그렇게 키울 수 없다.
숙희 엄마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눈물과 핏물이 범벅이 되어 이불 위로 뚝뚝 떨어졌다.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안아 올렸다.
두 손이 와들와들 떨렸다.
그 사이 남편 하지웅은 무당 딸 설희의 아들을 방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아내로부터 친아들을 받아들었다.
하숙희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아, 앞으로 이 업보를 어찌한단 말인가?”
나는 유골함을 묻기 위해 파냈던 봉분을 잔디로 덮었다.
때맞춰 내리는 비 덕분에 잔디는 금방 자랄 것이다.
“모두들 고생하셨어요. 시냇물이 더 불어나기 전에 그만 나가시죠.”
나는 지켜보던 지인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건너편 ‘김가네 식당’에 음식을 준비해뒀으니, 그곳으로 가세요.”
산소 위를 정리하며 뒷마무리를 하던 나는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이화보살을 돌아보았다.
“와 줘서 고마워, 이화야. 아니, 보살님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려면 어때, 당연히 와야지.”
누나의 말에 이화보살은 가볍게 웃었다.
“지연이는?”
“가벼운 타박상이래요. 며칠 쉬다가 퇴원하면 된대요. 어머니 일은 충격을 받을까 봐 일부러 말하지 않았어요.”
이화보살의 말에 나는 묻지도 않은 것까지 주절주절 이야기하였다.
빗줄기는 많이 줄어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합장되어 있는 묘지를 되돌아보았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내 책임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로 위에 나타난 소녀들의 영혼,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한 괴이한 행동, 그건 모두 나를 향 한 경고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서서히 분노가 치밀었다.
지금까지 두려움에 도망치려고만 하였는데, 지연에게 영혼을 보내 괴롭히고, 어머니까지 죽음으로 내몬 악령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이나 공포가 아닌 분노가 일었다.
“이놈! 소용돌이를 포클레인으로 메우는 한이 있더라도 네 놈을 그냥 두지 않겠다!”
나는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나는 아버지의 산소에서 채 10분도 되지 않는 무당바위를 향해 차를 몰았다.
“얘, 성우야! 어디 가는 거야?”
조문객들을 위해 마을 입구 식당을 예약해 놓고 손님들을 접대하던 누나는 동생이 식사도 하지않고 그대로 도로를 내달리자 놀라 소리쳤다.
당황스러운 것은 이화보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볼게. 재헌 씨 가요!”
이화보살의 조수인 재헌은 마침 길가에 세워두었던 차의 시동을 걸고는 하성우의 뒤를 쫓았다.
빵빵빵빵!
빵빵빵빵빵빵!
시끄럽게 경적소리를 내며 뒤쫓았지만, 눈이 뒤집힌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조수석에 탄 이화보살이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이미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하늘은 짙은 먹구름이 뒤덮고 있었고 언제 빗줄기를 쏟아부을지 알 수 없었다.
비록 지척에 있는 무당바위였지만 뒤를 쫓는 이화보살에게는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바짝 따라가 경적을 울려대도 성우는 멈출 줄을 몰랐다.
끼이이익!
갑자기 하성우의 구형 그랜저가 도로 한 가운데 멈춰 섰다.
“아!”
이화보살은 가슴이 뭉클하여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주르르륵!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재헌은 이화보살과 멈춰 서 있는 하성우의 차량을 번갈아 보았지만,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도로 한가운데 여인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소녀들이 아니었다.
이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은 하얀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반듯한 이마와 오뚝한 코, 새하얀 피부, 짙은 눈썹과 맑은 두 눈, 양 갈래로 딴 머리는 성숙한 여인이기보다 사춘기 소녀에 가까웠다.
나는 도로를 막고 있는 여인이 산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녀와 두 눈이 마주치자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주르륵!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동안 차 안을 바라보던 여인은 서서히 물안개처럼 사라져 갔다.
똑똑똑!
재헌이 차창을 두드릴 때까지 나는 넋을 놓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흐린 날씨 탓인지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이화보살의 재촉에 일행은 이미 원주 시내로 나온 지 오래였다.
자주 가는 카페에 모인 이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 같았어요.”
“······.”
나 역시 대답은 하지 않았으나, 이미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마주쳤던 영혼들하고는 너무도 다른 느낌이었다.
포근함··· 따뜻함······.
어떤 표현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오늘 장례를 치른 어머니로부터도 그런 온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화보살은 무녀의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하성우의 앞을 막았던 그 여인이 진짜 어머니라는 것을······.
친어머니가 아니면 그런 따사로운 기운으로 성우를 감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여인은 온 힘을 다해 하성우를 둘러싸고 있는 악한 기운을 몰아냈다.
사실, 내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무당바위로 향한 것은 소용돌이에 사는 악령이 조종한 것이었다.
분노는 악령의 좋은 먹잇감이다.
어머니를 죽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일부러 분노케 하여 스스로 무당바위로 찾아오게 하는 것,
무구를 찾지 못하면 나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을 봉인하고 있는 존재와 협상을 벌이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나타난 여인의 영혼으로 인해 나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났다.
하숙희는 끝끝내 어머니가 해 준 동생의 비밀을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정신착란을 일으켜 한 말이든, 진실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성우는 누가 뭐래도 자신이 어릴 때부터 업어 키우고 돌 본 동생이었다.
무당의 딸 설희의 아들 덕분에 마을의 옥토를 받았고, 그 덕분에 자신도 전문대라도 다니지 않았던가.
정으로든, 경제적 도움으로든 성우는 의심할 것도 없는 동생이었다.
하지만······.
같은 조상으로부터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형제는 강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이다.
그게 핏줄이다.
그러면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뒤바뀐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부잣집에서 살고 있으니 당연히 좋은 집에서 맛난 음식을 먹으며 귀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1류대학을 나오고 외국 유학도 갔다 왔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으니, 결혼도 했을 것이다.
아이는 있을까?
있다면 몇 명이나 될까?
하숙희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나는 엄마로부터 아무 말도 들은 게 없어. 그냥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착란을 일으킨 거야.”
꼴꼴꼴!
소주 첫 잔을 따르면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좋아 종종 술을 마시는 하숙희는 어둠 속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그 시간, 나 역시 혼란함을 안주 삼아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앞을 막고 위험으로부터 구해준 여인으로부터 받은 따뜻한 기운,
어릴 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온정······.
그 여인은 대체 누구기에 내게 그런 온화한 미소를 지은 것일까?
나는 분명 어머니가 계신데······.
“엄마, 저예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으아악! 저, 저리가! 넌 내 아들이 아니야.”
‘치매 때문에 하신 말씀이 아닌가?’
치이익!
벌써 다섯 개의 캔맥주를 들이켰다.
장례를 치르느라 온몸이 나른해졌지만, 새벽 숲속 공기를 마신 것처럼 정신은 점점 맑아졌다.
비가 그친 도시의 밤공기는 스산하였다.
휘스스스스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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