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변화.(2)

'어린이집이라면 보육시설이지 않나! 왜 거기서 아이를 때리는데?'
[그런 경우 많아. 다른 사례들이 종종 뉴스에 나오는데 찾아보든가.]
21세기에 왜 그런 걸 걱정해야 하는건데, 사빈은 통탄스러운 마음에 주먹으로 바닥을 쾅쾅 쳤다.
아니,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나. 사람을 고문하는 게 정보 수집에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걸 사회과학적으로 알아낸 시대에 사는 놈들이 아이를 때리는 게 행동 교정에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고? 멍청이들인가?
[자기보다 절대적으로 약한 아이를 때리는 놈이 멍청이가 아니겠냐?]
하긴 그렇네! 사빈은 돌아버린 자가당착의 오류를 원망하며 머리를 싸맨 채 명인의 독서방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안 맞을 수 있다고 해도 어린 놈들이 몸 다 큰 놈한테 맞는 걸 보는 건 별론데.'
애초에 애를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놈은 잘못한 게 없어도 화풀이로 때릴 수 있겠구나, 자신이라고 안전할 리가 없다는 사실까지 생각이 닿은 사빈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만약 잘 행동해서 자신이 앞으로 다닐 어린이집을 바꾼다 해도, 이미 그 어린이집에서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찝찝함이 계속 남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수 없지, 사빈은 누워있던 자신의 몸을 다시 일으켰다.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직접 봐야지 생각이 날 것 같네.'
자고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도 있으니까.
***
다음 날, 사빈은 아직 신규 원생을 받기 전인 새벽하늘 어린이집에 아침 일찍 찾아갔다.
[하...]
물론 늦잠을 자고 싶던 명인도 깨워서 같이 데려왔다. 자신한테 핸드폰이 없으니 어쩔 수 있나.
아직 등원 시간 전이라서 그런지 창문으로 보이는 어린이집의 교실 안에는 불이 켜져있지 않았고, 출근을 한 선생님들을 위한 복도에만 불이 들어와 있는 게 반투명한 어린이집 대문을 통해 보였다.
'오, 여기 직원 명단이 있군.'
어린이집 건물 앞에는 A4용지 사이즈의 투명한 함이 네 개 붙어 있었는데, 가장 앞에 나와있는 종이들은 각각 직원 명단, 어린이집 일일 시간표, 이번 주 원사일정, 한 달 동안의 급식표였다.
사빈은 그 중 직원 명단을 주의깊게 외워두었다. 원장의 증명사진이 가장 위에, 그 아래로 일반 교사들과 인턴처럼 보이는 갓 대학을 졸업한 교사들의 사진이 있는 형태였다.
'때리는 모습은 CCTV에 보이지 않았어. 일부러 사각지대에서만 그러는 거겠지.'
명인이 그곳의 전자기기들을 해킹해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지 않았다면 이 두 소년들도 어린이집의 실체를 모른 채 등원하게 됐을 터였다.
그렇기에 사빈은 폭력을 주도적으로 행하는 이가 누구인지 몰랐다. 나머지 선생놈들도 방조자이니 거기서 거기겠지만.
딱,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나 사빈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거기엔 명인이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시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은 오전 6시 반. 곧 있으면 예주가 일어날 시간이었다.
만약 그 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 어린이집을 조사하고 있으면, 예주와 현빈이 자신을 찾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다.
'알았어. 이만 돌아가지.'
사빈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이집 등원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 약 1주.
거리와 시설로 보아 새벽하늘 어린이집이 현재 사빈과 명인이 다닐 수 있는 보육시설 중 가장 좋은 곳임은 분명했다. ...일단 어른들이 알 수 있는 정보로만 평가했다는 전제 하에.
그렇기에 사빈은, 일주일 동안 새벽하늘 어린이집의 원아 폭력 사건을 어떻게 알리고, 개선해야 할지 고안하기로 했다.
'잠깐, 서명인 너는 왜 같이 고민하지 않는거지?'
[난 니놈 하는 꼴이나 구경하고 싶은 거지, 귀찮게 그런 걸 신경쓰고 싶진 않아.]
...역시 초면 비슷할 때 전기충격질이나 한 인성은 어디 안 가는군, 사빈은 생각했다.
***
첫째 날, 사빈은 원래라면 낮잠을 자야 할 시간에(그래서 현빈의 관심이 다른 데 쏠려있는 시간에) 몰래 집 밖으로 나와 새벽하늘 어린이집 원아들의 하원 풍경을 관찰했다.
"아정아~어머니 오셨다~!"
"더 놀래요!"
하원을 담당하는 교사는 두 명이었는데, 그들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확연히 차이났다.
한 명은 숏컷과 단발 사이의 머리를 한 교사였는데, 아이들은 그 선생을 툭툭 치는 장난을 치기도 하고 부정적인 표현도 가감없이 하는 등, 그 나이 특유의 치기어림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저 놈이로군.'
포니테일을 하고 앞머리를 내린 긴 머리의 교사였는데, 그가 아이들을 하원시킬 땐 아이들이 살짝 경직되어 있다가 제 보호자를 보는 순간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포니테일 교사의 '뛰면 안 되지!'라는 말 한 마디에 브레이크를 걸듯이 멈춘다. 아무런 웃음기도 없이.
그를 보며 사빈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머, 저기 풀숲에 애가 있는데요?"
'헉, 위장은 완벽했는데!'
비록 어떤 학부모한테 들키긴 했지만, 어찌됐든 소기의 목적인 아이들의 상태 관찰을 통한 어린이집 내 폭력 사실 교차 검증은 끝냈다.
둘째 날, 사빈은 명인에게 빌린 초소형 도청장치를 어린이집 낮잠시간(14시-15시 반)을 틈타 6-7세, 4-5세, 3세 이하 아이들의 반에 하나씩 붙여두었다.
'그 놈이 이런 요상한 걸 잘 만든단 말이지.'
선미 씨를 통해 어디 암시장 같은 데서 사는 건가 싶어 물어봤더니, 아동완구나 철물점에서 부품을 떼어내 직접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깜짝 놀랐다.
자신도 의약계나 인문계가 아니라 공학도의 길을 걷는 게 좋았을까 잠깐 고민했을 정도였다.
'핸드폰보다 티는 안 나면서, CCTV영상과 잘 합치면 핸드폰으로 찍은 만큼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지.'
여기서 말하는 효과라는 건 이 사건이 공론화 되었을 때 대중의 반응이다.
'제가 이 사람 아동학대범인 거 알고 교묘하게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어요' 보다는 '헐 님들 제가 우연히 봐서 어쩌다가 증거까지 남겼는데 이 사람 아동학대범인 듯?ㄷㄷ'가 훨씬 더 호소력과 신빙성이 높은 법이니까.
셋째 날,
사빈은 나무 위에 올라 아이들이 등원하는 모습을 잠깐잠깐 찍었다. 정확히 CCTV가 있는 각도였는데, 화질이 좋지 않아 아이들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저 6번째 카메라 영상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했다.
'쯧.'
예상한 대로 아이들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단순히 부모와 헤어지기 싫은 칭얼거림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도살장에 들어가는 동물의 그것과 비슷했다.
'어라, 그러고 보니...'
또한 사빈은 그들의 표정에서 규칙성을 하나 더 발견했다.
6-7세 아이들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고, 3세 이하 아이들은 그들 특유의 방긋방긋 웃거나 엉엉 울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중간 연령, 그러니까 4-5세 반에서 방금 말한 '곧 도축될 양'의 표정이 유독 잘 보였다.
허, 사빈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곤 비소를 내뱉었다.
너무 어린 아이들은 폭력에 노출되면 행동이 눈에 띌 정도로 이상해질 테고, 사고력과 자아가 충분히 성장한 아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른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당장의 억압은 통하면서도 후환이 덜할 네다섯 살의 아이들 위주로 폭력의 흔적이 보이는 것이다.
'...그냥 지금 죽일까?'
사빈은 진심으로 고민했다. 아무리 쓸 수 있는 염력이 약하다지만, 그게 연약한 민간인 하나 처리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힘이 약하다면 접촉면접을 줄이고, 힘의 총량이 부족하면 접촉 시간을 줄인다. 한 점에 가까운 공간, 한 점에 가까운 시간의 충격이 급소를 통해 가해진다면 즉사하지 않을 인간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사빈의 마음이 사적 제재로 기울던 그 때였다.
[야.]
'어어? 나 아무 생각 안 했다!'
[너희 어머니 깼다. 나랑 같이 놀고 있다고 둘러대긴 했는데 이제 돌아와.]
'아하...'
넷째 날,
예주가 퇴근하는 길에 어린이집 원복과 가방을 받아왔다. 선미 씨도 받아왔다.
파란 마린룩의 청량한 디자인과 애쉬그레이 색의 활동적인 디자인 두 가지가 있었는데, 예주가 기록용으로 사빈의 인별 계정에 올렸더니 좋아요가 백 개를 넘어갔다.
'와우.'
...다양한 의미로 좀 오싹했다. 보육시설이 보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면 이렇게 되는구나. 이대로 계속 됐다가 새벽하늘 어린이집 원생들은 참 얌전하고 순하다는 소리를 듣게 됐으려나 착잡해졌다.
다섯 째 날,
'헉.'
[...!]
CCTV 영상을 실시간으로 접근해 보고 있던 두 사람은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지금 식판으로 때린 거야?'
[맞은 사람은 5세 강지은.]
화면에 제대로 찍혔다. 두 사람이 굳이 증거를 남겨두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한 가지 결점이 남은 것이다.
'만약 CCTV 관리자가 이 영상을 지운다면...'
[그 관리자도 공범으로 봐야 하는거지.]
그래, 다른 증거가 없었다면 모를까 지금 그들에겐 차고 넘치는 게 증거니까. 남은 건 누구까지 가해자고, 그래서 누구까지 갈아야 하는 지를 분별하는 것 뿐이였다.
'그래도 출처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명확한 영상 증거가 남았다는 건 좋은 일이긴 해. 불행 중 다행인 정도지만.'
여섯 째, 일곱 째 날은 아이들이 등원을 하지 않는 주말이었다.
사빈은 명인의 도움을 받아 가해 교사와 다른 교사들, 그리고 몇몇 원생 학부형 들의 SNS계정을 살폈다.
구글링이냐고? 아니, 이들의 알고리즘에 새벽하늘 어린이집의 실체를 띄우기 위한 준비다.
만으로 1.5세도 되지 않은 이들이 언론사에 제보를 할 순 없으니,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를 이용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알림장 챙겼고~수건 챙겼고~여벌옷 챙겼고~물티슈랑 티슈도 챙겼고~"
'아동학대범의 사회적 인생을 죽이겠다는 마음가짐도 챙겼다.'
후후, 사빈은 폭신하고 가벼운 게 빵빵하게 든, 고양이 형태가 양각되어있는 어린이집 가방을 등에 맨 채 집 현관에서 웃었다.
사빈의 첫 등원날이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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