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중독자 외할머니.(1)
우선 지금까지 외부로 공개된 사건의 전개를 확인하자면 다음과 같다.
3월 11일 오전 4시. 맘카페와 익명 사이트에 새벽하늘 어린이집 내 학대사건 고발글(서명인 作)게시.
3월 11일 오전 7시. 새벽하늘 어린이집의 일정 시작시간 및 학부모와 지역 내 맘카페 이용자들에 의한 문의전화 시작.
3월 11일 오전 10시. 소규모 신문사의 기자 방문.
3월 11일 오후 2시, 익명의 제보자(서 모 군)로부터 메신저 앱을 통한 어린이집 교사들의 증거 인멸 현장 영상이 3대 방송사로 전달.
이후 하원 시간이 지난 11일 저녁, 여러 SNS사이트에서 '새벽하늘 폭력사건'에 대한 여러 정보글들이 돌아다니기 시작. 이 글을 처음 공유한 계정들은 모두 당일 만들어진 기본 프로필 계정이었다.
3월 12일 새벽 1시 경, 명인의 개입이나 알고리즘 조작 없이도 대중들은 스스로 새벽하늘 폭력사건에 대한 글을 재게시, 재상산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월 12일 오전 8시, 새벽하늘 어린이집 내 폭력은 'ㅅ모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대표 방송사의 아침 종합뉴스로 보도되는 쾌거를 달성하게 된다.
서 모 군의 역할이 뭐가 많은 것 같다면 기분 탓이 아니고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사빈은...
'근데 왜 내가 핸드폰에 맞을 때 영상에서 내 얼굴에 모자이크가 있는 거지?'
[왜겠냐?]
'...왠데?'
[진짜 몰라?]
...사빈은 인터넷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학식은 높지만 키오스크 주문은 못 하는 연로하신 교수님 정도라고 하면 될 것이다.
[지금 저 영상에서 네 얼굴이 보인다면 앞으로 네 배우인생 내내 꽤나 걸림돌이 될 거다.]
'이유가 뭐지?'
저게 내 논란인 것도 아닌데? 사빈은 명인이 무슨 세상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무지 종잡지 못했다. 어차피 빠르게 스쳐가는 픽셀 덩어리 중 하나일 뿐이지 않나.
'후일 어떤 사람이 내가 성장했을 때 과사라고 공개할 것도 아니고, 맞을 때 못생겼다며 조롱거리 삼을 것도 아닌 것을.'
물론 사빈의 모든 생각이 들리는 명인은 그에게 '그것만 하겠냐. 성인이 되어서도 네 얼굴에다 저 핸드폰 합성해서 음침하게 노는 놈들도 생길거다.'라고 쏘아주고 싶었지만, 그에게 맥락을 알려주는 게 우선이었다.
[동정은 가장 정신적 체력 소모가 빠른 감정 중 하나니까. 게다가 효율도 안 좋지.]
아하, 인문적 설명으로 들어오니 그제야 사빈은 명인의 말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 대한 모든 관심이 소모되기 쉬운 것으로 변질된다는 소리였군.'
원리는 여러 사람들을 대할 때의 인간관계와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대중에게 사빈의 존재를 알리는 시기인데, 첫 인상이 동정심으로 시작된다면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보일 때마다 이 사건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대중은 연기자인 사빈에게 집중하기보다는 폭력 사건의 피해자인 사빈을 떠올릴 것이고, 어린 그를 가엽게, 딱하게 여겼던 감정이 되살아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초반에는 일반적인 흐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감정들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사람의 정신을 소모시킨다.
결국 사빈을 볼 때마다 대중들은 피로가 쉽게 쌓일테고, 그건 곧 그 대상을 외면하게 만드는 중대한 이유로 작용한다.
'흐음.'
여기까지 생각이 떠오른 사빈은 이번 생, 현대의 정서는 지난 시기의 것들과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는 감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을 제외하고, 부모가 있었던 그의 생애엔 '아동학대'란 단어가 없었다. 그러지 않는 집이 드물었으니까.
문제의식이 없으니 그에 대한 말도, 단어도 만들어지지 않았던 때였다.
'부모가 일을 나가있는동안 애가 난동부리지 말라고 향정신성 약물을 거리낌 없이 먹였으니, 말 다했지.'
보육시설이니 만큼 같은 지역 내에서나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했는데, 사빈의 생각보다 더 큰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어휴, 복잡하군.'
골치가 아파진 사빈이 머리를 툭툭 두드리고 있자니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그럼 어린이집도 아예 옮겨야 하는 건가?'
방송사에서는 새벽하늘 어린이집을 ㅅ어린이집이라 필터링 한다지만, 대중이 눈 뜬 장님도 아니고 지역과 건물 구조가 특정된 어린이집 이름 하나 알아내지 못 하겠는가.
분명 나중에 이 시기에 새벽하늘 어린이집을 다녔다고 말하기만 해도 교사한테 맞는 거기 아니냐고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선 아예 재학, 아니 재원기록을 덮어 씌우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아, 그건 아냐.]
아니라고? 사빈은 고개를 기울여 의문을 표하는 몸짓을 취했다.
'방금 자네가 내 얼굴이 보이면 내 커리어에 걸림돌이 될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건 맞아.]
'둘 다 똑같이 폭력의 피해자인건데 뭐가 달라서 그러나?'
[방금 전 그 글이 어떻게 적히게 됐다고 생각해?]
사빈은 깨어나자마자 명인이 보여줬던 SNS게시물을 떠올렸다.
뉴스에서 계속 나오는 'ㅅ'어린이집에 자신이 재원 중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우사빈의 첫 필모인 육식식물과 당장의 어린이집 폭로사건을 장난스리운 말투로 엮었던 글.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하네.'
그 글은 사빈이 다니는 어린이집이 폭력의 온상이라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사빈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동정심은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건 왜 그런거지?'
명인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하는 사빈을 잠시 쳐다봤다.
"하."
그러더니 피식 웃었다. 사빈은 왜 웃은 거냐고 추가로 묻고 싶었지만, 그럴 틈도 없이 곧바로 명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일부러 중간반 아이들이 많이 맞았다는 기사를 중점적으로 띄웠지.]
딱히 과장된 사실도, 허위사실도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었을 뿐.
막내반의 단 한 명 맞은 사람(선우 모 군)이 달리다가 교사의 핸드폰에 맞는 부분은 확실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미지였지만,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해온 건 아니니 글로 적게 되면 자극성이 떨어져 생략하고 영상만 첨부한 기사가 많았다.
그러니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을 뿐 저 아이가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은 가지지 않았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얼굴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생각해보자.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김 모 씨(김현경)는 중간반의 담임이었고, 따라서 그에게 맞은 아이들 역시 중간반이었다.
그리고 <육식식물>의 그분 배우인 선우사빈 어린이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의 모습도 기억하고 있다. 나이에 비해 성장이 빠르긴 하지만 잘 봐줘도 한 살 정도인 어린아이.
시사회 때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한국식 나이가 아닌 실제 신체 나이는 키를 보고 잘 쳐준다 해도 3살은 과하다.
그러니 나이순으로 막내-중간-형님반으로 호명하는 새벽하늘 어린이집의 시스템을 알게 되면 자연히 그 아역배우는 막내반일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런 생각까지 뻗치는 거다.
'그럼 이 아역배우는 막내반이니까, 안 맞은 거네?'
설마 막내반 아이 13명 중 유일하게 맞은 사람이 하필 저 사빈이라는 아역배우일 확률은 낮으니, 보편적인 쪽에 기대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동정의 표적은 막내반 아이들을, 그러니까 사빈을 비껴나가게 된다.
'폭력에 노출되는 것도 또 다른 폭력인데?'
[보통 거기까진 생각 안 하거든. 인간의 심리야.]
하긴, 대중은 눈에 똑바로 보이는 것 외엔 믿지 않지. 명인의 설명을 납득한 사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근데 기자들은 나인 걸 확인할 수 있지 않나? 용케 기사에 안 실었네?'
지금과 같은 인터넷 기사 형식은 아니었지만, 사빈 역시 신문과 라디오는 겪어 봤다. 어떤 사건에 유명인이 아주 조금이라도 엮여 있다면 악착갇이 끌어다 쓰는 게 언론이고, 사빈은 유명하지 않을지언정 사빈이 출연한 <육식식물>은 유명하니까.
자신만큼 뛰어난 얼굴은 흔하지 않으니 분명 자신이 '그분' 배우라는 걸 알았을 테고, 심지어 맞는 영상도 처음부터 폭로글에 있었으니 끼워 넣을 수 있었을텐데.
어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다고 볼 수 있었기에 사빈은 아리쏭했다.
[새벽하늘 어린이집의 CCTV는 영상 저장을 외부가 아니라 기기 내부에서 한다는 사실을 알아?]
'모르지.'
압축된 파일 여는 법도 모르는데 뭘 바라, 사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내가 따로 부쉈어.]
'응?'
[네놈 얼굴이 나와있는 원본 영상은 지우고, 백업도 못 하게 저장장치 부쉈다고. 기자들도 네가 맞는 영상은 모자이크 처리된 것 밖에 못 봤을거야.]
'...허.'
기계 다루는 놈이라서 그런가, 별 짓을 다 해놨군. 사빈은 감탄했다.
[그래도 뭐, 일단 네가 원생 중 한 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을테니 어떻게든 엮어볼 심산이었겠지만...]
영화 <육식식물>의 배우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폭력 사건 발생, 뭐 이런 식의 기사 제목을 떠올리던 사빈은 금방 이어지는 명인의 말에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일단 선우사빈이 단순 동명이인이 아니라 아역배우인 니새끼가 맞는지는 확인을 해야 돼서 말이지.]
'근데.'
[한살배기인 너와 대화를 할 순 없으니 네 보호자인 예주 씨나 현빈 씨 쪽으로 연락을 시도할 거야. 그치?]
'그렇지.'
[기자들 쪽에서 전화나 메세지를 남기면 내가 너희 어머니 아버지 폰에 몰래 설치해 놓은 유령앱이 자동 차단해 줄 거거든.]
[아하, 그렇...]
뭘 어떻게 설치했다고? 사빈은 고개를 돌려 명인을 빤히 쳐다봤다.
[그건 중요한 게 아냐.]
'말 돌리지 마라.'
[진짜야, 더 중요한 게 있어.]
'...뭔데?'
호기심을 참지 못한 사빈은 결국 명인의 말 돌리기에 넘어가고 말았다.
[잘 들어.]
답지않게 뜸을 들이는 그 모습에, 사빈은 긴장되어 침을 삼켰다. 이놈이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 거지?
[지금 밖에 네놈 외할머니가 와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반응하려던 사빈은 자신의 '외할머니'라고 추정되던 존재가 누구인지 기억해 냈다.
'그 알코올 중독자 욕쟁이?'
새벽 6시에 고주망태가 되어, 딸인 예주의 전화로 상스러운 욕밖에 지껄이지 않은 사람 말이다. 심지어 이어지는 명인의 설명은 더 가관이었다.
[알코올...은 모르겠고, 도박중독자다.]
'망했군.'
[빚은 15억쯤.]
'망했군!'
[원래는 16억 5천 정도 됐는데, 예주 씨와 네놈 이모 되시는 민서 씨가 5억쯤 갚아드렸다.]
'...근데 왜 많이 남았지?'
[변제하는 도중에 또 꼴아박은 거지.]
이야, 가관이군. 사빈은 생각했다. 나 그냥 외할머니 없는 셈 치면 안 되는 건가?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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