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스타 도전!(2)
후후후후후, 계속해서 수상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는 사빈을 명인이 떨떠름하게 쳐다봤다.
너...뭐 하냐?
[미쳤냐? 정신 차려.]
그렇게 수상쩍게 웃고 있으면 아무리 순진한 너희 부모님이라도 한 번 쯤은 의심을 하겠다. 명인은 식탁 밑으로 사빈의 정강이를 툭 치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좋은 생각이 났어.'
[...난 네놈의 좋은 생각이라 하면 분노가 땅 끝까지 치솟을 것 같은데.]
속닥속닥, 사빈은 텔레파시로 자신이 방금 한 생각의 청사진을 설명했다.
"자, 검은 포크는 사빈이 거~하얀 포크는 명인이 거~."
"감사합니다."
예주로부터 어린아이용 포크를 받아 든 명인은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대다가, 케이크 위에 있는 체리를 한 입에 넣고는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나쁜 생각은 아닌데, 난 도와줄 생각 없어.]
'검색하면 다 나오니 괜찮을 게다.'
대체 뭘 믿고 저리 당당하지? 명인은 저 머리통을 후려쳐 방금 한 계획을 잊게 만들까 싶었다. 뭘 못 하게 만들면 일단 사고는 안 치지 않겠는가.
그치만 정말 사빈의 말대로, 계획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작 몇 개만 하면 끝날 일이고, 원리도 사빈에게는 직관적으로 다가올 수준의 난이도였으니까.
'...별 일 없겠지,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는, 케이크 위에 올려진 크림을 떠 먹었다.
***
이틀 후, 토요일.
사빈은 주말을 맞아 꼭 붙어서 낮잠을 자고 있는 예주와 현빈의 모습을 안방 문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좋아, 얌전히 자고 있군.'
예상대로야, 사빈은 얼굴에 웃음이 만연한 채로 거실 티비 앞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티비 밑 서랍장 위에 올려져 있는 콘센트와 케이블 뭉치, 그리고 거기에 곱게 연결되어 충전 된 예주와 현빈의 휴대폰으로.
'후후, 어제 침실 케이블을 미리 망가뜨려 놓길 잘했다니까.'
사빈은 경건한 마음으로 배터리가 100%인 예주의 휴대폰을 잡았다. 이틀 동안 참느라 힘들었다!
아, 케이블은 왜 굳이 망가트려야 했냐고?
사빈의 체구가 커지기 시작하니, 아주 어릴 때와는 달리 움직이는 소리가 선명해져 밤에 몰래 행동할 때마다 예주가 자꾸 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베개 밑에 있는 핸드폰을 들추려고 하는 정도만 눈치채더니, 시간이 지나자 순전히, 순수하게 물 마시러 일어나는 것에도 사빈이 어디가게? 하며 깨는 것이 아닌가.
결국 처음부터 핸드폰을 예주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거리에 놓아두도록 해야만 했다. 그래야 사빈이 눈치보지 않고 핸드폰을 쓸 수 있으니까.
'어찌됐든 술수가 성공해서 지금 핸드폰이 내 손에 있는 거지!'
신난다 신나, 사빈은 승리의 기분을 만끽하며 트로피라도 된 것처럼 핸드폰을 쥔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보자, 보자...어플리케이션 서치에 인별이라고 치면 나왔지?'
거실 소파의 등받이 위에 앉은 사빈은 핸드폰을 무릎 위에 두고 타자를 쳤다. 전형적인 독수리 타법이었다. 한 달 전 고발글 초고를 쓸 때 명인에게 엄청나게 잔소리 들었지만, 쓸 수만 있으면 되는 법이니까.
이...ㄴ...ㅂ..ㅕ..ㄹ.
'오, 바로 나오네!'
인터넷 검색이 아닌 핸드폰 자체에 저장된 걸 직접 찾아본 건 처음인 사빈은 신이 났다. 이것 봐, 나도 서명인이나 제페토119 도움 없이도 할 수 있잖아!
[부르셨나요?]
'응?'
갑자기 인별에 로그인 되고 있던 도중 제페토119의 멀끔한 음성이 들렸다. 아니, 안 불렀는데...?
[약 7초 전 '제페토119 도움'이라는 명령어가 입력되었는데, 오류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 당당한 설명에 사빈은 잠시 벙쪘다.
'내 생각 맘대로 읽지 말라고!'
[저런, 한 번 연결된 뇌파를 완전히 차단하는 방법은 저희 제페토119의 학습 목록에 없네요.]
제페토119의 말투는 저번 블루 홀 레스토랑에서의 대화 이후로 한층 인간미가 묻어나는 높낮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가증스러워!'
내 프라이버시는 왜 존중받지 못 하는 건데, 사빈은 억울한 마음에 제페토119의 텍스트가 출력되는 중이던 핸드폰 화면을 콩콩 쥐어박았다.
내가 이래봬도 어느 세계에서나 천재라고 불렸는데, 이깟 전자기기쯤은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피노키오, 저희 제페토119는 인공지능인 만큼 전자기기 사용 보조엔 특화된...]
'필요 없어!'
아무리 내가 공학도는 아니였기노서니 왜 자꾸 자존심을 건드리는 거야? 사빈은 단호하게 선언했다.
[진짜 필요 없나요?]
'그래, 필요 없다.'
[진짜?]
'진짜로.'
[진짜진짜로?]
'진짜진짜진짜로.'
[진짜진짜진짜진짜로?]
'진짜진짜진짜진짜진짜로!'
[흐음...알겠습니다.]
사빈은 이 음성 뒤로 '후회할 텐데'라는 말이 얼핏 들린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려니 했다.
삐롱, 소리와 함께 제페토119의 텍스트가 출력되고 있던 화면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새 로그인이 다 된 인별 어플리케이션만이 열려 있었다.
'흥, 진작 그럴 것이지.'
드디어 방해꾼 비슷한 게 사라졌다고 생각한 사빈은 화면의 우측 하단에 있는 프로필 아이콘을 눌렀다.
자동 로그인 설정이 되어있는 계정은 예주의 계정이었는데, 프로필 사진은 무슨...이상하고 바보같게 생긴 캐릭터의 동상 옆에서 찍은 예주의 독사진이었다. 앳된 모습인 걸 보니 아주 오래 전에 설정하고는 그 이후로 바꾸지 않은 모양이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즈음 아닐까.
스크롤을 아주 조금만 내렸을 뿐인데 맨 처음 게시물이 금방 보였다.
과학기술원 어쩌구의 졸업장과 학사모, 그리고 졸업생 복장을 하고 있는 예주의 독사진이나 현빈과 같이 찍은 사진 묶음이었다.
'으음?'
사빈 자신의 사진은 조리원에서 막 태어났을 때 아기수첩과 인식띠를 같이 두고 찍은 것 밖에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 사진만 따로 올리는 계정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건 어떻게 찾는거지?
사빈은 곧장 인터넷 페이지에 들어가 '인별 계정 여러 개 바꾸는 법'을 검색했고, 가장 상단에 나온 방법을 실행했다.
'여기로 들어가서...이쪽의...으음, 아! 이걸 클릭하라는 뜻이군.'
그러자 계정명 몇 개가 주루룩 떴다. 아마 지인들 모두 알고있는 계정, 학창시절 친구들끼리만 팔로하는 비계, 가까운 친구들만 받는 비계, 레전드 찐친끼리만 팔로하는 비계인 모양이었다.
'후,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 좀 해봤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계정이 하나 있었다. 계정명 형식이 기존의 것들과는 묘하게 다르고 프로필 사진도 사빈의 돌사진으로 되어있는 게, 딱 봐도 사빈 전용 계정이었다.
톡.
사빈은 자신의 이름과 생일이 조합되어 있는 계정을 클릭했다.
그러자 딱 봐도 뭐가 많이 설정되어 있고, 그게 다 아기 사진인 계정의 페이지가 주루룩 떴다.
'...아침마다 하나씩 올린거야?!'
사빈은 무심코 스크롤을 내리다가 내려도 내려도 계속 리젠되는 사진들에 감탄했다. 생긴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았을 이 계정의 게시물 수가 5년 이상은 거뜬히 넘긴 예주의 모든 계정에 올라와 있는 게시물 수의 다섯 배는 거뜬해 보였다.
팔로잉은 예주와 현빈의 친구들용 계정 하나씩이었는데, 팔로워든 사백 명이 넘었다. 많진 않았지만 두 사람 다 아기 계정을 자랑하고 다닐 성격이 아니란 걸 감안하면, 우연히 피드 추천을 타고 들어오거나 육식식물의 크레딧 정도를 보고 검색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와우, 사빈은 감탄하며 중간에 있던 사진을 아무거나 하나 클릭했다. 그날그날의 코디를 현관문 앞에서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라 옷을 빼면 사진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똑같은 배경, 똑같은 구도.
그리고...
#OOTD
...하나뿐인 해시태그.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사빈은 눈가를 손으로 한 번 비비적대고 스크롤을 쓱쓱 내렸다.
모두, 해시태그는 하나 아니면 두 개였다. 하다못해 아기, 아역배우 이런 것도 안 붙어 있었다.
'뭐야, 이거!'
이래서는 배우 활동을 해도 사람들이 내 계정인지도 모르겠다! 사빈은 경악했다.
심지어 시사회 날 아침의 착장도 계정에 올라와 있었것만, 태그는 평소처럼 OOTD 하나였다.
아니! 하다못해 이런 날에는 그냥 영화만 보러 간 사람들도 #육식식물 정도는 하겠다!
사빈은 울분에 차 마음 속으로 거의 고릴라 급의 분노를 내고 있었다.
'보니까 아역배우들 컨텍은 SNS로도 엄청 받는 것 같던데, 제작사들도 긴가민가 하다가 에이~이 계정 아닌가보다 하고 포기하겠네!'
예주는 그냥 대기업 다니는 회사원이니 그렇다 치고, 현빈은 성우면서 아들 이름 네 자만 띡 쓰고 올리는 거야? 사빈은 분노를 넘어 어이가 털렸다.
그래서 현빈은 계정을 어떻게 꾸며놨나 들어가 봤더니, 내 아비는 이 계정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찾아 팔로우 해 준 팬들에게 가슴 깊이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후기가 남았다.
'....드디어 깨달았다.'
그제서야 사빈은 부정하고 싶었던 이 한 가지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주와 현빈은 내가 배우가 되든 말든 별로 큰 상관이 없는 거야.'
하긴, 육식식물도 그렇고 비형랑도 그렇고, 타이밍과 인간관계가 맞아들은 것 뿐 두 사람은 사빈의 아역배우 활동에 그리 열성적이지 않았다.
물론 바보부부는 그저 아이가 부담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어릴 땐 굳이 힘들게 뭘 시키지 않고 싶은 마음인 거지만...
'부담 줘! 좀 시켜!'
하필 그 아이가 사빈이었다는 게 문제다.
사빈은 하필이면 좋은 부모가 이럴 때 걸리냐고 자신의 운명까지 원망하기 시작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날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그러고는, 자신의 계획을 곧바로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SNS 라이브 생방송을.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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