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이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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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제로
작품등록일 :
2024.08.26 10:52
최근연재일 :
2024.12.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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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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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나의 길을 걷겠어

DUMMY

레벨 20만 되면 날아다닐 줄 알았는데, 자꾸 게임 외적으로 다른 일이 생긴다.


‘뭐, 이것도 한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일이니까.’


[주인님, 5분 후면 본가에 도착합니다.]


“그래, 김 비서.”


자동차의 AI 권한도 넘겨줬기 때문에 기존의 보급형 자동차 AI는 운전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2인용의 컴팩트한 자동차에는 아예 운전대와 엑셀, 브레이크가 없다. 긴급시에는 튀어나오게 되어 있지만 그럴 필요가 있는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나는 좌석에 길게 드러누워 발만 까딱거렸다.


“그런데 본가라고 하니까 되게 거창하다. 재벌 2세쯤 되는 줄.”


그 ‘본가’라는 것은 흔한 경기도 신도시의 아파트다. 평수도 넓지 않다.


부모님은 은퇴 이후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아파트에 사는 흔한 연금 생활자에 불과하고, 얼마 전까지 내 아래 직장 의료보험 가입자로 되어 있었다.


퇴사 이후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지역 가입자로 전환된다는 통보를 엄마가 받은 것은, 내 주소지가 여전히 그 집에 되어 있었던 탓이다.


“저 왔어요.”


“오랜만이다. 아주 그냥 얼굴 까먹겠어?”


“당신은 왜 오자마자 긁고 그래. 앉아라. 수진이도 곧 도착할 거다.”


엄마는 삐졌는지 별말이 없고, 아버지가 나서서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하셨다.


“수진이도요?”


“그래, 진우도 데리고 올 거다.”


연년생인 동생 수진이와 그 아들 강진우. 요즘 세태를 감안하면 지나치리만치 일찌감치 결혼한 수진이에겐 이미 7살짜리 아들이 있다.

내가 미영이를 구해준 이유도 진우가 생각나서였다.


반갑기는 하지만, 여동생과 조카가 보는 앞에서 나의 실직에 대해 성토하시겠다는 건가?




“오빠, 오랜만이야.”


“삼촌!”


머지않아 동생 모자가 도착했고, 그대로 점심 식사가 시작됐다.


뜻밖에도 근황과 가벼운 일상 얘기만이 오갔을 뿐, 누구도 나의 퇴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먼저 참지 못하고 식후의 과일 앞에서 말을 꺼냈다.





”그렇게 해서 그만두게 된 거예요.“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후 먼저 입을 연 것은 엄마였다.


“잘됐네.”


“?”


“월급 주는 거에 비하면 너무 심하게 부려 먹더니만, 잘 됐어. 더 좋은 데 가면 돼.”


“아, 그래서 말인데. 할 일은 이미 정했어요.”


“뭐야, 요즘 AI에 떠밀려서 일자리 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오빠 재주 좋다?”


“그간 열심히 살았는데 너무 조급하게 정하지 말고 천천히 구해보지 그랬어. 그런데 구했다는 일은 뭐야?”


아버지의 말에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게임입니다. 로스트 파라다이스요.”


“응? 방금 그거 안 해서 잘린 거나 다름없다고 하지 않았어?”


“그 이후 시작해 봤는데 의외로 돈이 되더라고요.”


“그게 돈이 돼? 이제 막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의문도 타당하다.

로스트 파라다이스를 플레이하는 인구가 전 세계 1억이 넘지만, 그것으로 생활을 영위할 만큼 돈을 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1 퍼센트도 될까 말까.


레벨 20에 돈을 번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


“되던데요. 회사보다 훨씬 더.”


“오빠. 오빠가 아무리 옛날에 게임 중독이었다 하더라도 그게 말이 되나? 로파로 돈 벌겠다는 말은 곧 프로게이머라는 뜻이잖아.”


“우와! 삼촌 프로게이머야? 멋지다!”


요즘 아이들의 우상은 로파의 랭커다.


아이들더러 장래 희망이 뭐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프로게이머라고 할 것이다.


“삼촌! 삼촌! 신성모독하고 친해?”


그중에서도 단연코 신성모독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베일에 덮인 절대강자. 그 닉네임까지 중2병을 자극하지 않는가.


“신성모독하고는 모르는 사이지만 이시연하고는 알고 지내는데···.”


“이시연? 데스티니? 진짜? 우리 유치원 애들도 데스티니 좋아하는 애들 많은데! 나는 신성모독이 조금 더 좋지만.”


“서준아. 엄마는 괜찮으니까 그렇게 부풀릴 필요까지는 없다.”


“아, 뭐래.”


아버지도 동생도 비슷한 얼굴이었다. 내 말을 믿는 건 진우 뿐.


“나, 참. 아들의 신뢰도가 바닥이구만.”


나는 스마트 워치를 스피커폰으로 두고 말했다.


“김 비서.”


“네, 주인님.”


“우와! 삼촌 AI 비서도 있어?”


진우는 신이 났다. 백수 삼촌이 알고 보니 랭커였다··· 고 오해하는 것 같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아직 의심 중이다.


회사 다니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사람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퇴사 이후 내 계좌 순수입이 어떻게 되지?”


“각종 아이템 판매 대금 이억 육천구백팔십일만 원, 공모전 상금 일억원, 기타 이시연 님 사례금 백만 원으로 총 삼억 칠천팔십일만 원 수입. 지출은 이백팔십칠만 원으로, 순수입 삼억 육천칠백구십사만 원 기록하고 있습니다.”


숫자가 너무 크니까 말이 아니라 마법 주문 같다. 실제로 마법을 목도한 사람들처럼 부모님과 동생의 눈이 커졌다.


“삼··· 삼억 육천!?”


“이시연, 진짜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설득한 것은 계좌에 찍힌 액수보다도 이시연의 이름이 조금 더 컸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아는 그 얼굴. 티브이를 틀기만 하면 나오는 그 얼굴은 로파에 지배당한 현대인에게 보증수표와도 같으니까.


덕분에 쉽게 내 선택에 대해 납득시킬 수 있었다. 사소한 부작용도 있었지만.


“아들아, 나는 시연이 대찬성이다. 언제 한번 데리고 와라.”


그런 사이 아닙니다.

그 여자는 그냥 거래 상대일 뿐이라니까요.


* * *


오후 세 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접속할 수 있었다.


캡슐도 설치했고, 본의 아니게 가족도 설득했으니 이제 게임에만 전념하면 된다.


“어휴··· 어떻게 된 게 캡슐이 생기니까 더 접속을 못 하네.”


아지오 시티에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오늘은 반드시 쏠레 시티로 가고 말겠다.


쏠레 시티로 가서 각종 스킬 더 배우고, 도서관 옆 서점에 가서 책도 사고, 탈 것도 사고, 미영이 밀키트도 더 사고. 할 일이 많으니까.



나는 아지오 시에 있는 곤지암 운송 지점을 찾아갔다. 거기서 그리핀을 타고 쏠레 시티까지는 정말 지척이다.


“실례합니다. 쏠레 시티까지 그리핀 이용하려면 얼마일까요?”


“2골드··· 저기, 아웃사이더님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환영합니다. 아웃사이더 님! 당연히 공짜죠. 언제 어디서든 무료로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이용료를 내고 그리핀을 타려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오빠, 저 사람은 왜 돈 안 내?”


“몰라. NPC 아닐까?”


“그건 아닐걸?”


“왜?”


“로파의 NPC는 다 예쁘고 잘생겼잖아.”


“아하! 이제 엘사 너도 로파인 다 됐구나.”


어디서 본 것 같은 남녀가 추한 억지소리를 지껄였지만 무시했다.


‘질투하기는, 훗.’


곤지암 운송의 은인이 되길 잘했어.




그리핀은 생각보다 컸다. 그래서 생각보다 승차감이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태우고 네발로 타닥타닥 뛰어가던 그리핀이 하늘로 뛰어올랐을 때는 잠깐 가슴이 철렁했지만, 곧 어마어마한 해방감이 나를 매료시켰다.


“이거지! 우와! 와아아!”


보이는 것은 온통 파란 하늘. 머리를 스치는 건 시원한 바람.


중력을 거스르는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아지오 시가 미니어처처럼 작아졌다.


“아아아!”


첫 비행. 낙원에서는 비행용 탈것이 없었기에 가상현실의 비행은 오늘이 처음이다.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 소리쳤다.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감동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오빠. 저 사람 왜 저래? 어디 아픈가?”


“진짜 플레이어 맞나보다. 소리 지르는 거 보니까.”


“왜?”


“처음 타보는 사람들이 원래 저래. 후··· 오빠는 하도 많이 타봐서 이제 그리핀이 따릉이 같다.”


“나도 오늘 처음인데, 난 저러지 말아야지.”




그리핀 비행은 짧았다.


5분의 비행이 끝났을 때는 다시 아지오로 타고 갔다가 돌아올까, 잠깐 고민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탈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며 참았다.


“비행은 즐거우셨습니까?”


“네, 최고네요.”


“저희 곤지암 운송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리핀의 횃대가 있는 이착륙장은 쏠레 시티의 외성 벽 한켠에 있었다.


이착륙장의 크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성벽이 어찌나 크고 넓은지, 전체 규모에 비하면 극히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 성을 걸어서 다닐 수는 있나? 너무 넓은데?’


실제로 도시 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탈것을 타고 다녔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은 아무래도 말. 종종 늑대 같은 간지 터지는 탈것을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극히 드물게 그리핀이나 와이번을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수도 상공에서는 비행이 금지된다더니···.’


실제로 와이번과 그리핀은 걷고 있었다. 와이번을 타고 있는 사람의 갑옷은 어찌나 번쩍거리던지 갑옷을 거울로 써서 면도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랭커겠지?’


랭커가 날아다니는 탈것을 가지지 못한 경우는 많아도, 나는 탈것을 가진 사람이 랭커가 아닌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얻을까 말까 하는 것이 비행 탈것이다.


부러움을 뒤로 하고 경비병에게 길을 물어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게 도서관?”


장엄과 거대, 엄숙, 이런 단어들을 버무려서 실체화시킨 것 같은 거대한 대리석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세상에.”


대학교 도서관 같은 것을 상상하면서 왔던 내가 우스울 지경이었다.


고대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더니 크기에서부터 압도적이었다.


광활한 계단을 이십여 칸 걸어 올라가자 가운데는 분수대가 있었고, 그 분수대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또는 담소를 나누기도 하며 자유로이 행동하고 있었다.


도서관 건물은 그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친 형태였다.


‘분위기 좋네.’


도서관이 아니라 마치 대학 캠퍼스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확 들었다.


분수 주변 잔디밭을 걸어 가운데 건물에 들어갔더니 사서로 보이는 NPC가 나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것이 수도의 향기인가?

NPC에서 부드러운 향수 냄새가 났다.


“지금 당장 도서관 이용을 할 건 아니고, 부속 서점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어딥니까?”


“서점은 밖으로 나가셔서 왼쪽 건물 끝부분에 있습니다. 이 도서관은 대여가 가능한데 그건 필요 없으시고요?”


“누구 선물할 거라 그렇습니다. 그리고 혹시 거기서 스킬북도 파는 게 있습니까?”


“희귀한 건 없지만 초급류는 적당히 구비하고 있을 겁니다. 스킬을 올리고 싶으시면 타이한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방법도 있으니 고민해 보시면 좋겠네요. 입학비가 좀 들지만 다양한 스킬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물론 경쟁률이 꽤 있는 편이지만.”


사서는 친절하게 내가 묻지 않은 정보도 술술 안내해 주었다.


“아카데미요?”


“네. 전사 아카데미와 마법사 아카데미 두 종류가 있는데 지금 마침 39기 모집 중이거든요. 나가시기 전에 게시판 보시면 공고문 있을 거예요. 참고하세요.”


“감사합니다.”



[지금! 여기! 초심자를 위한 유서 깊은 타이한 아카데미]


[모집인원 전사 계열: 50인, 마법 계열: 50인

지원 자격: 레벨 50 이하라면 누구나

접수 기간: 제국력 7월 20~30일

선발 장소: 타이한 대학 대운동장]


30일이라면 내일이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얼마나 걸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장소를 잘 새겨두고 중앙 건물에서 나왔다. 하드코어 지역 가는데 방해만 안 된다면 지원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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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그리고, 오늘 24.12.13 34 1 16쪽
113 내일의 게임 24.12.12 30 1 12쪽
112 주사위는 던져졌다 24.12.11 35 1 12쪽
111 주사위는 던져졌다 24.12.10 35 1 12쪽
110 성동격서 24.12.09 37 1 12쪽
109 성동격서 24.12.08 42 1 12쪽
108 재회 24.12.07 43 1 12쪽
107 재회 24.12.06 45 1 12쪽
106 레벨 업 24.12.05 48 1 12쪽
105 레벨 업 24.12.04 46 1 12쪽
104 다시 나로스로 24.12.03 44 1 12쪽
103 다시 나로스로 24.12.02 53 1 11쪽
102 다시 나로스로 24.12.01 48 1 12쪽
101 북부 전선의 개망나니가 되었다 24.11.30 51 1 11쪽
100 북부 전선의 개망나니가 되었다 24.11.29 50 2 12쪽
99 북부 전선의 개망나니가 되었다 24.11.28 55 1 12쪽
98 재입대 24.11.27 57 2 12쪽
97 재입대 24.11.26 61 1 11쪽
96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 24.11.25 55 1 13쪽
95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 24.11.24 5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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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파티로구나 24.11.22 55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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