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등생? 열등생?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오세요.”
시바는 당당하게 연단으로 걸어나갔다. 남자 마법사는 피곤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왜 매번 거기 들어가 계십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아무래도 상습범이다.
도강은 금지되어 있으니까.
‘저거 저거, 어째 싸하더라니.’
남자 마법사는 거기까지 말하고 수강생들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개합니다. 시실리아 바이겔만 교수님이십니다.”
수강생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뭐? 저 꼬맹이가?’
“쳇, 왜 그렇게 한번을 안 맞춰주냐!”
시바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호통쳤지만 아무리 봐도 삼촌에게 대드는 버르장머리 없는 꼬맹이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교수님. 대학원생의 삶을 아십니까? 수업 끝나고는 시약 정리도 해야 하고 제 일에 더해서 학생 성적 관리도 해야 하는데 교수님 취미생활에 일일이 맞춰드릴 수가 없어요. 싫으면 자르십쇼. 인챈트 쪽에 사람 없던데 그리로 가든지 할게요.”
대학원생은 의욕도 고저장단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시바는 급격히 저자세가 되었다.
“얘는 또 무슨 말을 그렇게까지 하니···.”
대학원생의 차가운 패기가 교수를 압도했다.
“여러분.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바이겔만 교수님은 원소 마법의 대가로 현 마법부장을 맡고 계십니다. 요정족의 피가 섞인 가문에서 태어나 이렇게 심한 동안이시지만 사실 50대로 추정되니 실수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박수.”
‘실수는 내가 이미 왕창 했는데?’
워낙 말에 높낮이가 없다 보니 박수라는 말을 한 박자 늦게 알아들었다. 두서없는 박수가 날아다녔다.
“아··· 재미없다.”
시바 교수의 볼이 부풀어 올랐다.
“가뜩이나 하겠다는 사람 없어서 내가 4대 원소 다 해야 하는데 의욕 안 생겨···.”
시바 교수는 한참 혼자 중얼거렸다. 확실히 마법사는 정상이 아니다. 수업은 오 분의 신세 한탄 끝에 시작되었다.
“소개받은 시실리아 바이겔만이다. 앞으로 나흘간 너희에게 원소 마법을 가르칠 사람이지. 경고하는데 앞으로 행여라도 내 이름을 줄여서 ‘시바’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죽여 버릴 테니 그리 알도록.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다.”
그리하여 의욕이 꺾인 교수와, 원래 의욕이 없는 조교의 수업이 시작되었고, 교수의 억눌린 욕구는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갔다.
⋮
“뭐라고? 아싸군, ‘파이어’ 마법을 모른다고?”
“그렇습니다.”
“그럼, 야외에서 캠핑할 때 불이 필요하면 뭐로 붙이나? 하다못해 담뱃불을 붙일 때에도 가장 기본이 되는 1 서클 파이어 마법인데 말이야.”
“부싯돌로···.”
“맙소사. 소위 마나에 몸을 맡겼다 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부싯돌 따위를 들고 다닐 수가 있단 말이야?”
‘이런 시바 교수···.’
그녀는 학생들을 제대로 속이지 못한 히스테리를 전부 내게 돌렸다.
“뭐? 아는 불 속성 마법이 파이어볼밖에 없다고? 1 서클은 하나도 모르는데 3 서클은 안다? 아주 엉망진창이로구먼. 조교! 조교!”
“네, 교수님.”
“아싸군은 따로 빼서 자네가 가르쳐. 파이어부터. 저런 열등생이 어떻게 입학시험을 통과한 거야?”
조교는 나를 데리고 한쪽 구석으로 갔다.
교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그곳에서 조교는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처음부터 찍히셨어요?”
“아니, 전 가만히 있었는데 교수님이 먼저 와서 제 이름 가지고 시비를 걸기 시작하셨는데요. 그래서 저도 이름으로 장난을 좀 쳤죠. 그때는 교수님인지도 몰랐으니까.”
“그거였군요.”
남자는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더니 ‘파이어’라고 읊조렸다. 그러자 손가락에 불이 붙었고 남자는 손가락으로 담배에 불을 붙여 깊숙이 빨았다.
“하나 드릴까요?”
“아뇨. 안 피웁니다.”
“저도 현실에선 끊었는데 여기선 안 참아도 되니까 좋더라고요.”
“어? 플레이어세요?”
“네.”
깜짝 놀랐다.
NPC인 줄 알았는데.
조교는 익숙하다는 듯 덧붙였다.
“게임 내에서 취직한 사람들 은근히 많습니다. ‘신성력’ 추가 포인트 받으려고 봉사 중인 성직자 플레이어들이야 원래 많고, 저기 중심가에 가면 청과물 가게 연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그렇군요.”
이쯤 되면 현실과 게임이 역전될 지경인데, 과연 어떤 이득이 있어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잘 모르겠다. 월급을 많이 받나? 그 월급 받아서 쌀먹한다면 안될 것도 없긴 한데.
조교는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을 계속했다.
“원래 교수님 애칭이 ‘시바’였어요. 그런데 플레이어들이 자꾸 웃으니까 조사해 본 거죠. 그리고 알게 됐습니다. 그게 특정 지역에서 욕으로 쓰이는 말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걸. 그 이후부터 교수님 앞에서 금지어가 된 겁니다.”
“.......”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플레이어가 쓰는 유행어 엄청 따라해요. 그게 또 좀 귀여운 면은 있지만 조교로서는 상당히 곤란하거든요.”
귀엽다니. 역시 마법사는 NPC건 플레이어건 정상이 아니다.
“그러니 이해해 주시고 제가 일단 몇 개 가르쳐 드리죠. 파이어, 파이어볼트, 파이어 애로우면 될 겁니다.”
“혹시 스킬북을 주시나요?”
“그건 아닙니다. 조교가 되고 나서 안 사실인데 학교에 교직원으로 고용되는 순간 ‘전수’라는 스킬이 생기더라고요. 자기가 마스터한 써클 두 개 아래까지는 제 스킬로 직접 전수할 수 있습니다. 제가 4 서클 마스터 직전이니까 1 써클과 2 써클 중반까지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
조교가 내게 세 개의 마법 스킬을 가르쳐주는 데는 15분 정도 걸렸다. ‘전수’ 스킬의 쿨타임 때문에 시간이 걸렸을 뿐 배우는 시간 자체는 어이없을 정도로 짧았다.
⋮
나는 ‘마법의매직’이라 이름을 밝힌 조교에게 감사를 표하고 제 자리에 합류했다.
그곳에서는 지루한 마법 이론 강의가 한창이었다.
“그래서 원소 마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현하고자 하는 오브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심상이란 말이야.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그 수련의 일환으로 명상을 하곤 하지. 저놈처럼 잠자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영창도 하지 않고, 팔도 휘두르지 않았는데 교수의 손에서 분필이 날아가 한 남자의 이마에서 박살 났다.
“아앗!”
“넌 퇴소. 조교야, 저 친구 내보내라.”
“예.”
“교수님! 한 번만 기회를! 한버···.”
지루한 강의는 계속 이어졌지만 이제 자는 사람은 없었다. 뒤늦게 합류한 나도 필사적으로 버텼다.
어찌나 필사적이었는지, 스태미나가 20% 이하일 때 감소 속도를 절반으로 줄여주는 패시브 스킬 ‘인내’가 생겨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해서 파이어월의 운용 방법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스킬 ‘파이어 월’을 습득합니다.]
3 써클 마법 파이어월을 습득하는 것으로 수업이 모두 끝났다.
“그래, 아싸군?”
“네.”
“따라올 수 있겠어?”
“···네.”
나는 아주 제대로 찍혀 버린 모양이다. 다른 수강생의 이름을 언급하는 걸 들은 적이 없는데 끝까지 나만 물고 늘어지는 걸 보면.
“자네는 숙제를 내주지. 내일까지 파이어월을 10초 이상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와. 못하면 알지?”
“···네.”
“그럼, 이만. 내일 보자.”
시발···이 아니라 시바 교수는 그 말을 끝으로 나갔다. 조교는 내 어깨를 툭툭 치고 그 뒤를 따랐다.
‘저 시바 교수가!’
자기가 먼저 시작해 놓고 이게 무슨 짓인가. 교수가 사라지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와··· 바이겔만 교수 기분파라더니 진짜 장난 아니네요.”
“그러게, 기수 따라서 평가가 극과 극이더라고요. 어디는 천사라고 그러고 어디는 악마라고 하고.”
확실한 건 천사 턴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아싸님이라고 했죠?”
“···아뇨. 아웃사이더입니다.”
“네? 바이겔만 교수가 하도 아싸아싸 거리길래 그게 이름인 줄 알았는데. 죄송해요.“
“일주일은 꼼짝없이 아싸일 것 같은데 그냥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이름은 포기하는 편이 마음 편하겠다.
“어그로를 다 끌어가 주신 덕에 저희는 좀 편했네요. 중간에 제 이름 부를까 봐 어찌나 걱정했는지.”
“제가 원래 어그로 전문입니다.”
감사를 표하는 동기생을 뒤로하고 로그아웃했다.
* * *
“어휴, 진짜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냉장고에서 콜라 하나를 까서 벌컥벌컥 마셨더니 좀 짜증이 가셨다.
오전에는 수석으로 대접받고 오후에는 지진아로 취급당하고. 온탕 냉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나저나 파이어월을 어떻게 수련한다?”
“모든 스킬의 단련은 반복 사용이지요.”
대충 분위기를 파악한 김 비서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네.”
“김 비서야. 쏠레 시티 주변에 파이어월이 잘 통할만한 던전이나 사냥터 있을까?”
“그렇다면 검은 바위 요새 어떻습니까?”
“응?”
검은 바위 요새라면 이미 내가 레벨 20이던 때에 레벨업을 목적으로 다녀온 25레벨 5인 적정 던전이다.
“레벨업이 목적이라면 40레벨 이상으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만 새로 배운 스킬 단련이 목적이라면 안전하게 아는 곳으로 가시는 게 낫죠.”
일리가 있다.
“게다가 그곳 지형 아시잖습니까? 석조 건물에 좁은 복도가 많아서 불장난하기에는 딱 좋습니다.”
* * *
저녁 이후 로파에 재접속해서 포니투를 타고 던전으로 출발했다.
“그러고 보니 널 타고 이렇게 멀리 가보는 건 처음이구나.”
“저도 갈기나고 처음 이렇게 시원하게 달려봅니다요, 이히힝!“
쭉 뻗은 제국 공도 위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은 그리핀 처음 탔을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게다가 포니투는 승차감이 좋은 녀석이었다. 편안함이 아니라 우월감의 측면에서.
“오빠, 저거는 뭐야? 말이 아닌데?”
“헛, 저건 유유유유유유니콘?!”
“유유유유유 뭐라고?”
“아니, 유니콘, 유니콘.”
“아.”
어디서 본 듯한 커플이 나란히 말을 타고 가다가 지나치는 나를 목격했다.
“와, 엄청 빠르다. 유니콘은 다른가 봐.”
“아마 40레벨 넘은 빠른 탈 것이라서 그럴 거야.”
미안하지만 30이다.
40 넘으면 얼마나 빠를지는 나도 몰라.
“어머 갈기 휘날리는 거 봐. 엄청 예쁘다. 오빠, 내가 타면 꼭 동화 속 공주 같을 것 같지 않아?”
“그··· 그렇겠지?”
그림체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대사까지 합치면 다를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유니콘이 얼마나 경박한지 알고는 있나? 하지만, 커플은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어유. 여기는 말이 잘 나오네요. 지난번 거기는 대체 어딥니까? 말이 안 나와서 당황했지 뭡니까? 아름다운 여성분이 계신 건 마음에 들었지만. 그런 분이 주인이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히힝.”
생각해 보니 베타 시절 낙원에는 날아다니는 탈 것도 없었고, 말하는 탈 것도 없었다. 그래서 포니투가 낙원에 가면 말을 못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데가 있어. 종종 갈 거니까 말 안 나온다고 당황하지 말고.”
“알겠습니다요. 그런데 그 아리따운 여성분 옆에 있던 어린 유니콘 말인데요. 혹시 그분이 제 누님이십니까?”
같이 있던 알을 집어 왔으니 정황상 같은 배에서 나왔을 확률이 높겠지. 유니콘이 어디 널린 조랑말도 아니고.
“아마도 그렇겠지?”
“어쩐지! 이름도 이름이지만 찡하고 와닿는 뭔가 있더란 말입니다. 이런 걸 피가 당긴다고 하는 걸까요? 다음에 만나면 얘기를 좀··· 아차, 거기는 말을 못 하지.”
포니투와 대화··· 아니 청취하다 보니 던전에 도착했다.
“제 뿔에는 어떤 기능이 있을까요?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는데. 더 자라면 분명 뭔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멋진 뿔에 아무 기능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아무럼요.”
“끝났냐? 도착했는데.”
“아, 그럼 자세한 얘기는 있다가 돌아갈 때 다시 하기로 하고요. 이 던전 혹시 탈 것 소환 가능한가요? 지난번처럼 혹시···.”
“소환해제.”
던전 입구와 함께 평화가 찾아왔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