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이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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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제로
작품등록일 :
2024.08.26 10:52
최근연재일 :
2024.12.14 12:1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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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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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우등생? 열등생?

DUMMY

검은 바위 요새는 변종 오크의 한 부류가 사는 곳이다.


주류 오크 세력에서 밀려난 회색 오크가 어물쩍 자리 잡고, 납치한 인간과 드워프 기술자를 이용해서 지은 반 동굴, 반 성채의 요새로 점차 세력을 늘려가는 중이라 타이한 제국의 골칫거리가 되어가는 곳이다.


“확실히 파이어월 놀이하기에 적절하긴 하다.”


옮겨붙을 곳 없고, 자리만 잘 선정하면 피할 곳도 많지 않다.


허리띠의 12개 슬롯 중 10개를 마나포션으로 채워서 가지고 왔다. 뿐만 아니라 인벤토리에도 각종 포션을 잔뜩 가지고 왔으니 이제 불장난만 하면 된다.


다만, 참교육으로 냅다 두드려 팰 때와는 달라서 의미 있는 데미지가 들어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그 소요 시간부터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다 한곳에 유인해서 불 지르고, 바로 절대 방어를 쓰면 될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절대 방어의 쿨타임은 30분으로 상당히 길기 때문에 함부로 남발할 수도 없다.


요새에는 입구가 두 개 있다.


그중 넓은 정문이 아니라 오크 병사 숙소가 있는 뒷문으로 접근했다. 어느 쪽이든 지금 내게는 큰 차이가 없지만 파이어월을 위해서는 좁으면 좁을수록 좋다.


‘여기도 경계병이 있기는 있구나.’


후방으로 침투하는 것은 약한 자들의 방법이라며 지난번에는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갔기 때문에 뒷문은 처음이다.


그곳에는 반쯤 졸고 있는 오크가 하나.

‘경계 근무를 서는 중인가?’


오크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게 오히려 좋았다. 어차피 여기는 레벨이 낮아서 참교육 성장에 도움이 안 되므로 오랜만에 아마추어의 야구 배트를 들었다.


“파이어월.”


-화르륵!


“꾸엑!”


불이 피어오르자 놀란 오크가 바로 내게로 달려왔다.


‘역시 기동성을 갖춘 소수의 적을 위한 스킬은 아냐.’


제일 좋은 것은 탱커가 몸빵으로 길을 틀어막고 다수의 오크를 막아둔 채 파이어월을 터뜨리는 것이다. 혼자서 하려면 못할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깡!


방망이로 오크를 때리자, 오크가 몇 발 밀려났다. 참교육처럼 날아가 버리지는 않지만 넉백과 동시에 스턴이 걸리는 것은 같다.


비틀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는 오크에게 주문을 날렸다.


“파이어월!”


지글지글.

약 3초의 스턴.

그 시간이면 충분했다.


정신을 차린 오크가 나를 공격하려고 다가올 때 한 번 더 파이어월을 시전하는 것으로 오크는 사망에 이르렀다.


“꾸에엑!”


“좋았어. 이 조합으로 가자.”


결정을 내린 뒤엔 일사천리였다.


-깡!


화르륵, 지글지글. 깡!


방문을 열고, 처음 나오는 오크의 머리를 때려 스턴을 건 다음 불을 지른다. 그리고 방패로 버티면서 파이어월을 내 주변에 두른다.


‘나쁘지 않네.’


로파에서는 전무후무한 방패 법사의 탄생이다.


이런 짓은 스탯이 골고루 높기에 가능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마나의 소모가 극심한 데다, HP도 꽤나 줄어들지만 수련을 위해서니까 어쩔 수 없다.


“아, 돼지고기 굽는 냄새.”


결심했다.

야식으로는 삼겹살에 소주다.


그러나 지금 당장 마셔야 할 것은 소주가 아니라 마나 포션.


“제길, 배부르잖아. 그놈의 시바 교수 때문에!”


사실 죽을 위험은 없다. 깨려고만 하면 언제든 깰 수 있는 던전에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시바 교수가 내준 숙제 때문 아닌가.


내 짜증은 보스 방에 도달하여 절정에 달했다.


“그워어, 인간. 용케 여기까지 살아서 도착했군. 그 운도 여기까지다. 잘못했다고 빌면 목숨은 살려주지. 물론 노예가 되겠지만 말이야.”


“미안하다.”


“그웍?”


“미안하다고.”


“이거 참신한 반응인데 그래? 그렇다면 당장 무장을 해제하고 내 앞에 엎드려라.”


“아, 이거 오해가 좀 있나 보네.”


회색 오크 족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미친놈이었나? 혼자 들어온 것부터 제정신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내가 미친놈이지. 뭐 한다고 전사부, 마법부 둘 다 지원해서는.”


나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내 파이어월의 지속 시간은 아직 7초. 처음 들어왔을 때 3초였으니까 제법 늘었지만 10초가 되려면 멀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니까 네가 좀 많이 도와줘야겠다.”


나는 회초리를 뽑아 들고 회색 오크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죽. 여. 줘.”


“응, 안 돼.”


나는 아직도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오크의 등을 탁탁 두드려 잔불을 껐다.


파이어월에 한 50번 당할 때까지는 그래도 상태 이상 ‘복종’이 풀리기만 하면 무섭게 대들었다.


그러나 그게 100번을 넘고 150번을 넘어서자, 회초리 없이도 반항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고 말았다.


“자, 쭉 들이켜.”


“그웍, 나··· 꿀꺽··· 한테 대체 왜 이러는 꿀꺽, 건가! 무슨 꿀꺽, 억하심정으로.”


오늘에서야 처음 안 건데 포션은 몬스터에게도 통한다. 한참 구워놓고 회복되길 기다리는 것이 지겨워서 체력 포션을 먹여봤는데 결과는 성공.


“그래서 처음부터 말했잖아. 미안하다고.”


살려놓고 반쯤 죽이기를 무한 반복한 결과 파이어월의 지속 시간이 이제 9초가 되었다.


“조금만 힘내자, 응? 파이팅! 할 수 있다!”


인벤토리에 있던 다른 아이템을 은행에 맡기고서까지 포션들로 채워오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하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체력 포션은 지금 것이 마지막.


“이, 이걸···받아줘.”


“이게 뭔데?”


그사이 30년은 늙어버린 듯한 족장은 품에서 구슬 하나를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우리 회색 오크 전사의 정수다. 그 누구에게도 넘겨준 적 없는 소중한 것이지. 부디 이걸 받고···.”


나는 족장에게서 구슬을 받았다.


“죽.여.줘.”


정확히 뭐에 쓰는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귀한 것이겠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나도 양심상 더 하기는 어려웠다.


‘9초나 10초나 큰 차이도 아닌데 그만할까?’


이미 던전에 들어온 지 3시간. 던전이 아니었다면 진작 강제 로그아웃되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래, 알았다. 이제 끝낼게.”


“고맙다, 그워어.”


“고맙긴 뭘. 다 돕고 사는 거지. 그전에 입은 것 좀 다 벗어봐.”


“큭.”


족장은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결국 장비를 모두 해제하고 체념한 표정으로 내 앞에 앉았다.


“수고 많았다.”


“최대한 빨리 부탁한다.”


“그래. 나도 그 정도 양심은 있는 놈이야.”


나는 마나를 모아 오늘의 마지막 스펠을 외쳤다.


“파이어월!”


-화르륵!



[업적 달성! 난 한 놈만 패]


[당신은 한 명의 적에게 200번의 동일한 공격을 적중시켰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업적을 이룬 당신에게 칭호 ‘미친개(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에게 선공을 당하지 않음)‘가 적용됩니다.]


“칭호가 기분 나빠 보긴 처음이다.”


어감은 좋지 않지만, 효과는 탁월한 칭호도 얻었으니 이제 나갈 시간이다.


던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강제 로그아웃되었다.


* * *


“어떻게 이렇게 오래 있다 나오셨습니까?”


“던전에서 파이어월 연습하느라고 그랬지.”


“그럼, 그 던전에서만 혼자서 세 시간 넘게 있으셨단 말입니까?”


“응.”


나는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냈다. 로그아웃 후에 마시는 차가운 콜라는 각별하다.


“이런 미ㅊ··· 치료보다는 예방이 쉽습니다. 게임 중독 예방 프로그램 적용해 드릴까요?”


“됐음.”


“그렇다면 이제 매일 제게 운동을 배워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제게는 기구 없이 맨손으로 트레이닝할 수 있는 357개의 운동 프로그램이 있고, 그 모든 것을 강사 수준 이상으로 지도할 수 있습니다.”


조깅을 그만두고 뭔가 배워볼까 하던 참이라 수락했다가 처음 해보는 필라테스에 큰코다치고 말았다.


김 비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엄한 선생님이었다.


덧붙여서 삼겹살에 소주도 날아갔다.



* * *



전날 피곤했던 탓인가. 평소보다 살짝 늦게 접속했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멀리 나와 있었다는 것을.


“으아! 달려! 달려! 지각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아무리 오전은 전사부 수업이고 거기서 내 위상은 우등생 포지션이라지만 조심할 건 조심하자.


더구나 오늘은 날 좋게 봤던 전사 부장 교수의 수업도 아니니까. 4종의 비약을 복용하면서 포니투를 미칠 듯이 몰았다.


“히히힝! 아니 그래도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렇게 달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몸 풀 시간은 좀 주셔야죠!”


“어쩔 수 없어!”


“악덕 주인! 남자인 것도 모자라서! 푸르르르!”


포니투로 미칠듯한 난폭운전을 한끝에 간신히 세이프 할 수 있었다.


교정을 가로질러 수업 장소까지 직접 포니투를 몰고 질주한 덕에 가능했던 쾌거였다.


대 연무장에는 학생 전원이 이미 착석해 있었고 한창 출석을 부르는 중이었다.


“아웃사이더 도착했습니다!”


“유니콘?”


위아래로 은빛의 갑옷을 챙겨입은 여자가 출석부를 들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내게로 다가왔다.


“어째서 본교의 신수가 당신에게?”


“네? 무슨 말씀인지?”


한바탕 잔소리를 각오했던 나는 조금 당황했다. 유니콘은 나만 가진 것도 아니라면서 왜 갑자기 이러는 거지?


실수였나.

아무리 급해도 여기까지 끌고 와서 보여주는 게 아니었는데.


“자칭 ‘유니콘’이라 주장하는 돌연변이 괴물이나 두경부 골종양 짐승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이 순백색, 완벽한 비율. 곧게 뻗은 뿔! 십수 년 전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이후 종적을 완전히 감춘 순혈의 유니콘이 틀림없습니다!”


“제가요?”


“?”


포니투의 말에 얼어붙은 것은 중갑옷의 여자뿐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전사부의 학생 전원의 표정이 굳어 버렸다.


“마···말이 말을?”


“섹시한 누님, 제가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었다는 말씀인가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시커먼 남자를 주인이라 부르면서 혹사 당해왔는데. 이제야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지난날의 고통을 보상받게 되는 건가요?! 누님, 어서 날 가져요, 엉엉!”


“소환 해제.”


더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얼른 소환해제 했다. 갑옷 여자는 혼란에 빠진 듯이 보였다.


“아니··· 말을 한다는 전승은 없었는데? 게다가 이렇게 경박한?”


“저기요. 제가 보기엔 제 말은 환잡니다. 뿔만 멀쩡하지,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아요. 신수 같은 성스러운 녀석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게 신수라면 상점에서 파는 철검도 성검이에요.”


“흠··· 보고는 해 봐야겠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여자는 의외로 간단하게 물러났다. 그만큼 포니투의 천박함은 파괴력이 상당했다.


“자, 조용히 하세요.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은빛 중갑옷의 여성은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고 강단에 섰다.


“저는 둔기 및 방패술 수업을 맡은 루나 갈란테 초빙 교수입니다. 원 소속은 로스트 디바인 교의 교황청 직속 성당 기사단이고, 파견을 명 받아 타이한 대학에서 교수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권력의 핵심에 가까운 여자였다.


‘이거 포니투 때문에 영 귀찮아지는 거 아냐?’


당장 어디서 구했냐고 물으면 대답할 길이 없는데.


둘러댈 변명거리를 필사적으로 구상하는 가운데 수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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