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등생? 열등생?
“제가 오늘 여러분께 가르쳐드릴 기술은 간단합니다. 잘 막고, 잘 때리는 거죠. 간단하지만 효과적입니다. 그 외에 제 주력 기술인 축복이나 오라, 치유 같은 것은 교단에 가입해서 신성력을 일깨워야 하므로 아쉽게도 가르쳐 드릴 수 없겠네요. 관심 있으신 분은 오늘이 가기 전에 제게 말씀해 주시면 추천장을 써 드리겠습니다.”
루나는 설명 겸 영업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세계 최강의 전사 ‘신성모독’도 한때 저희 교단에서 수학했죠. 그 이름 때문에 고위층의 반대가 심해서 정식 사제 서품은 받지 못했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정신 나간 놈이네.
성기사 컨셉으로 가고, 세계 최대 교단에서 기술도 배울 거면서 왜 이름을 그 따위로 지어?
루나 교수는 오늘 배울 기술, ‘분쇄’와 ‘방패 세우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 설명이 끝나자, 조교가 들어와서 학생들에게 연습용 방패와 메이스를 나눠주었다.
“자, 한 명씩 조를 짜서 섭니다. 오른쪽부터 둔기로 ‘분쇄’ 기술을 사용해서 공격하고, 왼쪽은 ‘방패 세우기’ 기술로 막습니다. 다음 차례에는 공수를 바꿔서 숙달 때까지 반복 실습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루나 교수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짝을 찾아 움직였다. 누구를 고를지 보고 있는데 어제 아는 척했던 남자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아웃사이더 님, 저와 함께하실까요?”
“그러죠. 천상의초밥 님이라고 하셨던가요?”
“천상의초신성··· 입니다.”
이름이야 어쨌건 바로 실습이 시작되었다.
조금 얼굴이 굳은 초신성은 메이스를 들어, 내 방패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탕!
내리친 힘이 너무 약해서 방패가 조금도 요동이 없었다.
‘이래서야 기술 습득이 되려나 모르겠네?’
초신성이 방패를 꽉 붙드는 것을 확인하고 메이스를 적당히 내리쳤다.
-콰앙!
“컥!”
초신성은 방패를 놓치고 맹렬하게 뒷걸음질 친 끝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저런! 괜찮습니까?”
“.......”
이렇게 공손하게 물어보는데 왜 저 자식은 눈을 저렇게 떠? 참교육 마렵게.
둘의 소동을 바라보던 루나 교수가 다가왔다.
“아무래도 힘의 차이가 너무 커서 그대로는 실습이 어렵겠네요. 아웃사이더님 상대는 제가 해드리죠. 조교! 초밥님을 맡으세요!”
“이랏샤이마세!”
설마 저 조교도 플레이어인가?
“시험 볼 당시 20레벨에 전사 부장님을 한주먹에 쓰러뜨렸다고 하던데 과연 그럴만한 힘이군요. 저는 방심하지 않고 나름 최선을 다할 테니 아웃사이더 님도 전력으로 해주세요. 효율을 위해 한번 할 때마다 바꾸지 말고 다섯 번씩 하죠.”
“예.”
초밥 때와는 달리 심호흡도 한번 하고 둔기를 내리쳤다.
교수는 내리칠 때 방패건, 무기건 부딪히는 물체가 부서지는 심상을 담아 내리치라고 했다. 아마도 그것이 숙달될 때에 스킬의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리라.
-쾅! 쾅! 쾅! 쾅! 콰앙!
마지막 다섯 번째는 특별히 120%의 힘으로 내리쳤다. 어깨가 아파질 만큼.
내심 루나 교수도 넘어지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휴···. 쩌릿쩌릿하군요. 동 레벨, 아니 50레벨까지도 상대가 없겠어요.”
루나 교수는 방패에서 팔을 빼고 어깨를 빙빙 돌렸다.
“공격력은 그렇다 치고 방어력도 쓸만한가 볼까요?”
나는 방패에 팔을 끼우고 아래를 바닥에 잘 고정했다. 어깨로 방패를 받치고 두 다리를 앞뒤로 벌려 충격에 대비했다. 기분 같아서는 자동차가 달려와서 박아도 한 번쯤은 버틸 것 같다.
“갑니다!”
쾅! 쾅! 쾅!
처음 두 번은 버틸 만했지만 세 번째에 이미 머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쾅!
네 번째에는 뒷다리에 쥐가 나고, 어깨가 떨어질 듯 아팠다.
쾅!
마지막 다섯 번째, 루나 교수가 입술을 잘근 깨무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는 앞선 네 번과는 격이 다른 공격이 방패에 직격했다.
-콰직!
방패가 산산이 부서지며 날아간 내 몸은 훈련 중인 동기생 한가운데로 굴러갔다.
“쿨럭!”
게임을 시작하고 처음 당해보는 강한 타격에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강의장 내에서는 아무리 강한 타격을 입어도 죽지는 않게 설정되어 있지만, HP가 1만 남은 것을 보니 실제로는 죽음에 이를 만큼 강한 공격이었음이 틀림없다.
“치유의 빛!”
이어진 루나 교수의 영창에 빠르게 회복됐지만 등골이 오싹한 경험이다.
“아아···. 내가 무슨 짓을! 신이시여!”
루나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연속해서 치유의 빛을 사용했다.
“으윽.”
“죄송합니다! 너무 잘 버티시길래 저도 모르게 힘을 심하게 줬어요. 그래서는 안 됐는데.”
“아이고 죽겠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스킬 하나만 더 배우면 싹 다 나을 것도 같은데···.”
“네? 그러면 형평성의 문제가.”
“아이고, 허리야. 그러면 다 가르쳐 주시면···.”
“치유의 빛! 알겠습니다!”
결국 수업이 끝났을 때는 ’분쇄‘와 ’방패 세우기‘ 외에 ’방패 투척‘까지 획득했다.
다른 동기도 모두 배우게 되었으니 내 평판이 올라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웃사이더 님, 살신성인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동기인데요.“
“반장! 반장으로 추대합니다!”
“그런 제도가 있어요?”
“지금부터 만들면 되죠.”
물론 천국의초밥은 예외다. 그 일행은 뭐 씹은 표정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업적 달성! 저승사자가 보여]
[당신은 HP 1이 남은 상태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놀라운 생존력을 보여준 당신에게 이제 칭호 ‘바퀴벌레(HP 10% 이하일 때 방어력 2배)’가 적용됩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건 버그에 가깝다.
교육시설인 이곳에서는 학생의 안전을 위해 아무리 심한 공격을 받아도 체력이 1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죽어 마땅한 공격을 받았지만, 그 효과로 체력이 1이 되었던 것인데 칭호가 생긴 것이다.
50레벨 학생이 연습용 장비를 들고 연습하다가 상대를 죽음에 이를 만큼 강한 공격을 할 수 있을 리 없으니 거기서 그 칭호를 얻은 건 내가 최초일지 모른다.
* * *
“입학하길 잘했어!”
“학교에서 좋은 일 있으셨나 봅니다?”
“어, 죽도록 두들겨 맞으니까 스킬이 막 생긴다? 신기하지?”
“아··· 그러셨군요. 참 좋으셨나 봅니다.”
김 비서는 한동안 보지 못했던 경멸의 표정을 지었지만 내 기분이 매우 좋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김 비서야, 로스트 디바인 교의 루나 갈란테라는 NPC에 대해서 좀 검색해 줄래?”
내게는 힘세지만 착한 여자, 욱하는 호구, 간혹 눈이 뒤집혀서 상대를 가리지 않지만, 본성은 나쁘지 않은 존재로 각인되었다.
한 마디로 ‘애는 참 착한데···’다.
“그년한테 쳐맞···. 검색 결과 알려드리겠습니다. 로스트 디바인 교의 3대 무력 중 하나. ‘신의 방패’라 불리며 레벨은 200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워우, 200레벨한테 진심으로 맞으면 평타라도 이렇게 되는구나. 나중에 이시연한테도 말조심해야겠다.
* * *
점심 식사 후 시간은 좀 이르지만 접속했다.
어제 늦게 던전에서 나오는 바람에 강제 종료 시간에 걸렸다. 그리고 아침에는 출석하느라 바빠서 던전에서 획득한 아이템을 정리할 새가 없었다.
감정 스크롤을 사용해 봤지만, 흑기사 세트를 마련한 던전보다 급이 낮은 곳이었기 때문에 장비는 별 대단한 것이 없었다.
”이것들은 싹 경매장이나 상점에 팔아넘기도록 하고.”
이제 문제의 아이템, 회색 오크가 준 구슬이다. 감정 전에는 물음표로만 표시돼서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자식 설마 날 속인 건 아니겠지? 귀한 거 아니기만 해봐라.”
감정 스크롤을 북 찢었다.
[회색 오크 전사의 정수: 소환수]
[역대 최강의 회색 오크 전사를 소환할 수 있다.]
[사용법: 구슬을 깨면 개인 소환수로 등록. 소환수의 레벨은 소환자의 80%로 자동 설정된다.]
“소환수?”
테이머가 많은 서부 평원에서는 직접 동물을 길들이고 소환수로 부리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못 본 것인지는 몰라도, 오크를 소환수로 부리는 경우는 없었다.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있는 종족을 소환수로 부리는 것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보면 알겠지.”
구슬을 깨는 것과 동시에 ‘소환’이라는 스킬이 등록됐다.
수업 시작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고, 인구 밀도 높은 이 쏠레 시티에서 여기보다 한적한 곳은 없다. 수상쩍은 스킬을 시험해 보기 좋다는 뜻이다.
곧바로 소환 스킬을 시전하자, 하위 메뉴에 [회색 오크 전사]가 표시됐다. 그것을 활성화하자 눈앞에 건장한 회색 오크가 등장했다.
“어?”
나타난 회색 오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내 얼굴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너, 너!”
“야, 반갑다.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데 입장이 다르니까 잘 생겨 보이네.”
그 오크는 어제 보스 방에서 만난 회색 오크 족장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인가!?”
“뭐래. 어제 받은 구슬 깨니까 네가 나오더라.”
“!”
오크는 가혹한 현실에 그만 주저앉았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이었다.
“어쩐지··· 정수는 절대 누구에게도 넘겨선 안 된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 이런 뜻이었던가. 너같이 악독한 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그워어어!”
“너? 언제까지 너라고 부를 거야? 분위기 파악 못 해?”
“큭··· 마스터.”
“그래. 우리 과거는 잊고 한번 잘 지내보자.”
나는 오크의 등을 툭툭 두드려줬다. 이 돌덩이 같은 근육이 내 소환수의 것이라니 듬직하기 짝이 없다.
내 소환수라 다른 캐릭터와는 달리 스탯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름: ??]
▶레벨: 24
▶종족: 회색 오크
▶성별: 남
▶HP: 240/240, MP: 45/45
▶공격력: 210, 방어력: 155
▶힘: 70, 민첩성:60, 지능:15, 체력:80
▶스킬: 스톤 스킨, 맹렬한 일격
“생각보다 많이 허약한 놈이었구나.”
소환수가 되면서 너프된 것인지 체감상 느낌이 생각보다 약했다.
“약하다고? 그워어어! 이 정도면 같은 등급에서는 훌륭한 편이다! 마스터가 레벨이 낮아서 나도 24밖에 안 되는 거 아닌가!”
“알았다, 알았어.”
다행히도 무기와 갑옷 정도는 장착할 수 있으니, 나중에 쓸만한 거 구하면 들려주기로 하자.
“그럼 이름을 지어볼까?”
스탯창에 이름란이 물음표로 반짝이고 있었다.
“너 원래 이름은 뭐였더라?”
뭔가 거창한 이름이었는데 여러 번 봤어도 신경을 안 썼더니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이름도 드높은 오크족의 전사, 아즈쉬 빈헬이다!”
“존댓말.”
“아즈쉬 빈헬···입니다.”
“아저씨 빈혈? 마침 얼굴도 핏기 하나 없이 회색이고 딱 좋네. 지금부터 네 이름은 ‘아저씨 빈혈’이다.”
“그워억! 아즈쉬 빈헬이라니까요!”
“발음의 미묘한 차이일 뿐이니까 대충 넘어가. 넌 ‘아저씨 빈혈’이 맞아.”
“제기랄···.”
“사람들 올 시간 됐으니까 넌 일단 들어가.”
빈혈이는 뭔가 큰 소리를 내면서 사라졌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나도 뜻하지 않게 고기 방패, 아니 소환수를 갖게 되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곧 오후 수업 시간이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