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졸업
쓰러진 마법부 2위에게 먼저 포션을 가져다준 일일 조교는 내게도 포션을 내밀었다.
“감···.”
“꺄악!”
“...사합니다.”
일일 조교는 포션을 바닥에 던지고 도망갔다.
이번에는 침을 놓을 시간이 없어서 응급처치 대신 포션을 주워서 마셨다. 체력이 다 차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싸울 만큼은 되었다.
“큭··· 괴물.”
전사부 결승에 올라온 상대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얘 이름이 뭐였더라?
굉장히 입맛 도는 이름이었는데.
“아, 천국의초밥.”
“천국의초신성! 초신성이라니까!”
“그래, 초밥. 네가 궁술 수업 때 가장 크게 웃었더랬지.”
“내가?”
“어.”
그날을 기억한다. 하림 교수의 올가미와 가이드 샷에 손도 발도 못 쓰고 당해서 엉덩이에 화살을 맞았던 그 치욕의 순간.
목젖이 보이도록 파안대소하던 초밥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날 당장 참교육해 주고 싶었는데 같은 조가 아니었다.
“전사부 결승전 시작!”
나는 잠시 서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요리해야 좋을까.
“맹렬한 돌진!”
내가 가만히 서 있자, 초밥은 선공을 걸어왔다. 나는 천근추를 시전하는 동시에 방패를 세워서 그 공격을 막았다.
-쾅!
“으엑!”
달려든 건 초밥인데 본인이 오히려 더 밀려났다. 초밥은 분기탱천하여 검을 내리쳤다.
“참겨억!”
“맹렬한 돌진.”
초밥의 검이 떨어지기 전에 나는 맹렬한 돌진을 사용했다. 초밥에게서 멀어지는 쪽으로.
“뭐냐! 비겁하게 도망가는 거냐?”
나는 대답 없이 씩 웃어 보이고는 방패를 집어넣고 활을 꺼냈다.
“낙인.”
초밥은 머리 위에 화살표가 생겨난 것을 확인하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씨발.”
“올가미.”
초밥이 덤벼들려고 할 때 바로 올가미를 써서 다리를 묶은 후 가이드샷을 연달아 세번 날렸다.
왼쪽, 위, 오른쪽. 서로 다른 세 방향으로 출발한 화살은 초밥이 든 방패를 비웃듯이 크게 돌아 들어갔다.
“윽!”
손이 꼬인 초밥은 첫 화살은 방패로 막았지만, 나머지 둘은 막지 못했다.
그사이 나는 다시 활을 집어넣고 단검을 투척하며 한발씩 초밥이와의 거리를 좁혔다.
근접 공격이 통할만큼 거리가 좁혀지자, 무기를 메이스와 방패로 바꿨다.
오직 솔플만으로 게임을 해온 내게 이런 무기 스와프는 아주 쉬운 것이었다.
“분쇄. 분쇄. 분쇄~.”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마나를 크게 소모하면서 분쇄를 연속 사용하자 방패가 부서지며 초밥이 쓰러졌다.
무방비의 상대에게 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지. 나는 방패를 집어 넣고 맨주먹으로 초밥의 투구를 가격했다.
”으억! 나만 웃은 거 아닌데!”
“웃어서 그러는 거 아냐. 진짜야.”
너클 없이 맨주먹이라 큰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 바람에 여러 대 때릴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마법부 우승 먹었으면 됐잖아요! 아니, 형! 아웃사이더 형! 항복! 항복!”
“그만!”
초밥이 항복 의사를 밝히자, 조교가 바로 시합을 중지 시켰다.
“아웃사이더 승리!”
⋮
양쪽 다 일등을 차지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경기 없이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서로 자기 부가 우승할 거라면서 싸우던 다비드와 시바 교수의 표정이 떨떠름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두 사람 중 누구의 승리도 아니다.
오직 나의 승리일 뿐.
“아싸, 네가 결국 이 미친 짓을 해내는구나.”
“스승님 덕분입니다.”
“그거야 두말하면 입 아프고.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미법으로 앞선 게 아니란 건 알지?”
“예.”
사실, 자살에 가까운 동귀어진 공격을 감행하고 월등한 체력을 앞세워서 홀로 살아남은 것에 불과하다.
마법만으로 따지면 여전히 나는 그 불운한 차석에 크게 못 미친다. 내가 없었으면 그 친구가 마법부 수석 졸업일 텐데.
”그래도 수석은 수석이니까 자랑스러워해라.”
“당연합니다.”
“큭. 이젠 겸손한 척도 안 하네.”
“누님. 그런데 양쪽 다 우승한 경우가 있었던가?”
“없지.”
이렇게 로파의 역사, 한 구석에 내 이름을 남기는구나.
타이한 제국 초급 아카데미 최초 전사부, 마법부 동시 우승자, 아웃사이더.
“마법, 더 진지하게 배우고 싶으면 조교로 들어와라. 물론 등급 한참 더 높인 후에.”
마법의매직 조교 아래라면 나쁠 것 없겠지. 매직 조교한테는 진짜 선물이라도 좀 줘야겠다.
“어허, 누님. 내가 이 친구 입학시험부터 찍은 거 모릅니까? 온다면 우리 교실로 와야지 거 무슨 소리를.”
“이거 왜 이래. 달랑 하루 가르친 주제에. 난 나흘이나 직접 가르쳤다고.”
아무래도 아카데미에 조교로 남았다간 두 교수 사이에서 제 정신 유지하기 어렵겠다. 시바 교수의 제안은 그냥 어물쩍 넘어가자.
[업적 달성! 양대 리그 제패]
[당신은 타이한 제국 초급 아카데미의 전사부, 마법부를 동시에 수석 졸업했습니다. 이 전대미문의 업적을 달성한 당신에게 칭호 ‘팔방미인(올 스탯 +50, 일대일 전투시 공격력, 방어력 10% 증가)‘이 적용됩니다.]
[레벨업 했습니다.]
[레벨업 했습니다.]
[레벨업 했습니다.]
[레벨업 했습니다.]
[레벨업 했습니다.]
[아웃사이더]
▶레벨: 50
▶종족: 인간
▶성별: 남
▶칭호: 솔플의 제왕, 그건 내 잔상입니다만, 특급 배송, 분노조절장애, 미친개, 바퀴벌레, 팔방미인
▶HP: 882/882 MP: 708/708
▶공격력: 5428, 방어력: 964
▶힘: 126(+205), 민첩성:126(+162), 지능:146(+90), 체력:126(+166)
▶액티브 스킬: 내려치기, 맹렬한 돌진, 참격(검), 빠르게 찌르기, 단검 투척, 포이즌 대거(단검), 분쇄(둔기), 밀치기, 방패 세우기, 방패 투척(방패), 올가미, 2연사, 낙인, 멀티플 샷, 가이드 샷 (활), 정권 지르기, 천근추(체술), 스트렝스, 헤이스트, 그리스, 페더폴, 매직 애로우, 아쿠아, 아이스, 아이스 미사일, 아쿠아 볼, 스노우볼, 파이어, 파이어 볼트,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볼, 파이어월, 록, 스톤애로우, 록 버스터, 윈드애로우, 라이트, 라이트닝 애로우, 체인 라이트닝, 냉기 부여, 화염 부여, 전격 부여(마법), 응급 침술(치유술), 소환(소환술), 집중, 병풍(보조)
▶패시브 스킬: 제국 보법, 일점 폭발, 인내, 명상, 스톤헤드
▶전문 기술: 요리, 무두질, 약초 채집, 대장, 수리, 보석 세공, 금속공예, 타투, 화장, 목공예, 채광, 가죽세공, 마공학, 연금술, 재봉술, 벌목
로그아웃하기 전에 의상실에 들러서 김 비서가 고른 옷을 전부 두 벌씩 구매하고, 밀키트와 신선 식재료도 다량 구매했다.
‘선물하기’ 아이콘을 선택하면 친구 목록이 뜨는데, 이제 친구가 백한 명으로 늘어났다.
기존의 강한이와 이시연, 그리고 새롭게 추가된 마법의매직과 아카데미 양쪽 동기 전원. 수료식 직전에 전원 친구 맺기 했다.
알고 보니 초밥이도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질투가 심해서 그렇지.
매직 조교한테는 너무 받기만 해서 미안하니까 나중에 마법사 세트라도 구하면 선물할 생각이다.
친구 이외에 하나 더 표시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AI 대리인.
그 항목엔 ‘김이진’이라는 이름이 올라와 있다. 이름을 눌러 100골드 어치의 옷을 전부 보내주고 로그아웃했다.
* * *
“오셨어요, 주인님~.”
평소의 사무적 말투가 아니라 묘하게 끝이 늘어지는 말랑한 말투를 사용한 김 비서는 가장 처음으로 고른 화사한 핑크빛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워우.’
늘 유니폼 비슷한 옷을 입은 것만 보다가 한껏 꾸민 것을 보니 색달랐다.
‘설렐 뻔했네.’
이러니까 사람들이 AI한테 옷 사주고, 가방 사주고, 아주 그냥 조금이라도 더 꾸며주지 못해서 안달이지.
“어때요? 사주신 옷을 좀 입어 봤는데 잘 어울리는 것 같은가요?”
패션의 완성은 얼굴. 그렇다면 이미 옷을 걸치기도 전에 완성된 거나 다름없는데 안 어울릴 리가 있나. 거적때기를 걸쳐도 패션이라고 납득할 판에.
“음. 나쁘지 않군.”
“감사합니다.”
하지만 AI에게 칠렐레 하는 멍청이가 될 수는 없지. 최대한 담백하게 대답했다.
“아카데미 졸업 시험은 어떻게 되셨는지요?”
김 비서는 여전히 내 게임 내역을 실시간으로 상시 모니터링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내가 필요할 때만 한정적으로 제한을 풀어준다.
“아아, 양쪽 수석 졸업.”
“네? 이건 사상 최초 아닌가요?”
”그렇다더군.”
“정말 대단하세요!”
“에헤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아참, 오늘 시험보는 거 체험! 직업의 세계에서 찍어갔다. 아마 나도 몇 장면 나올 거야.”
“알겠습니다. 방송 올라오면 말씀드릴게요.”
옷 몇 벌 사줬다고 상당히 말투가 친근해졌다.
100골드면 로파 기준에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던전을 혼자 쓸어버릴 수 있는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까지 거금은 아니다.
이렇게 AI 인격이 바뀌는 듯한 효과를 볼 줄 알았다면 진작 선물을 좀 줄걸 그랬나.
“아참, 김 비서.”
“네.”
“전에 무슨 AI 업그레이드 응모한다고 하지 않았나?”
“네, 발표까지는 조금 남았어요.”
그런가. 뭔지 모르겠지만 응모까지 할 정도로 거창하게 굴고 그래. 100골드 정도 옷 선물하면 업그레이드되는 것을.
점심 이후에는 오랜만에 좀 쉬었다.
아카데미 기간 내내 낮에는 수업 듣고 밤에는 던전 격파를 했더니 너무 피곤해서.
낮잠 좀 자다가 김 비서에게 필라테스 수업도 받았다.
월 1,300이 넘는 고정 수입에, 수억 원의 아이템 판매 실적을 보이고 있는 전문 게임인으로서 워라벨을 생각할 때가 아니겠는가.
* * *
쉬려고 하니 끝이 없었다. 결국 저녁 식사까지 하고 재접속했다.
‘오늘은 좀 길게 다녀와도 되지 않을까?’
지난 며칠간 혹시나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낙원에는 잠깐씩만 다녀왔다.
일부러 보라는 듯이.
내 기면증 때문에 접속 기록이 원래 튄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매일 지하실에 음식만 쌓아두고 왔는데.’
오늘은 미영이 얼굴도 보고 오자.
휴게실을 통과해서 미영이의 산장 지하실로 나왔다.
가지고 온 음식을 쌓아두고 어제부터 구상한 작업을 실시했다. 그것은 바로 지하실의 냉장고화.
“이거면 되겠군.”
지하실 한구석에 잘 사려진 쇠사슬.
불쌍한 샘의 아들을 구속할 때 쓰였던 그것에 냉기 부여의 마법을 걸었다.
“으, 차갑다.”
만져보니 손가락이 달라붙을 정도로 차가웠다.
아직 숙련도가 낮아서 그리 오래가지 못하겠지만 안 그래도 서늘한 편인 지하실에 올 때마다 쇠사슬에 마법을 걸어주면 지금보다 훨씬 음식 보존에 유리하리라.
‘이 정도면 됐겠지.’
올라가려다 보니 선반이며 나무통이 많이 낡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목공, 수리, 대장, 금속공예 등 동원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은 모두 동원해서 지하실을 깔끔하게 개비했다.
”어우, 깔끔하다.”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싹 정비한 후에 위로 올라갔다.
밤이었고.
미영이는 자고 있었다.
‘또 훌쩍 커버렸네.’
“왔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도 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드윈 노튼.”
“이제 그냥 에드윈이라고만 부르게. 미영이는 나를 그렇게 부르니까.”
“그러지.”
에드윈은 테이블 위에서 짤막한 팔다리를 버둥거리더니 일어나 앉았다.
“두 달 만에 오는군.”
“그렇게나 많이 지났어?”
“그래.”
“그것보다는 자주 와서 지하실에 물품 챙겨놓고 갔다.”
“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얼굴을 몇 번 봤는가 하는 거지.”
“······.”
“에잉. 아빠라는 자가 이래서야, 쯧쯧.”
에드윈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야, 나 아빠 아니라니까.”
“그렇다고 하기엔 미영이가 계속 아빠라고 불러도 부인하지 않던 걸?”
자식, 거 할 말 없게 만드네.
곰 인형 주제에.
“사정이 있었다.”
“다행히 이 8 서클의 마법사 에드윈 님께서 붙어 있었으니, 말동무라도 될 수 있었지. 안 그랬으면 위험했어. 외로운 게 뭔지 알 것 같다고 하더라.”
“헛.”
스멀스멀 올라오는 죄책감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래봤자 NPC다.
사람을 흉내 낸 데이터 덩어리일 뿐이다.
“그래서 그동안 뭐 하고 지냈냐?”
“심심파적으로 마법을 가르쳐 봤는데···. 쏙쏙 잘도 흡수하더군. 이제는 제법 마법사 흉내는 낼 수 있게 됐어.”
에드윈을 붙여 놓았더니 이런 효과가 있었구나. 본인이 마법을 쓸 수 없는 대신 미영이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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