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이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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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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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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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대로 거두리라

DUMMY

나는 내 앞에 선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아저씨, 대체 왜 이러는 거지?’


8강전이 시작되어 무대 위에 올랐을 때, 상대인 김 부장이 원래 입었던 중갑옷을 버리고 상당히 허전해 보이는 방어구로 갈아입고 나온 것을 발견했다.


‘전에 입었던 판금 갑옷 튼튼해 보이던데 왜 어울리지도 않는 가죽옷을 입고 나왔어? 내가 모르는 꿍꿍이가 있나?’


내가 퇴사하기 전, 회식할 때면 김 부장은 언제나 데스티니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가.


그 데스티니 스타일이란 건 힘을 극단적으로 키우고 상대적으로 낮은 체력을 중갑옷으로 보완하면서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거라고 알고 있는데.


“거, 시원하겠습니다?”


왜 자신의 단점을 저렇게 대놓고 드러내는 거지?


“어때? 허를 찔리니 당황스럽나?”


“허를 찔려요?”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이미 넌 우리 부사··· 아니 내게 완전히 간파되었다고.”


무슨 허를 찌르겠다는 건지, 어울리지도 않는 가죽 바지에 얼기설기 엮은 가죽조끼에다가 민소매 스타일이라 어깨가 훤히 드러났다.


부사장이 무슨 조언을 해 줬는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이전 방어구가 훨씬 나아 보인다.


“어디 다시 소환수를 꺼내보시지. 활이나 다른 무기로 정신을 팔리게 해도 좋고. 마법방어가 좋은 와이번 가죽 방어구를 걸친 이상 네 속임수 따위엔··· 흠.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했군. 문답무용!”


미치겠다.

부장, 이런 스타일이었나?


‘그냥 무시하자.’


뭐라 지껄이건 그저 할 일을 하면 그만이다.


메이스와 방패를 꺼내 들었다. 이왕 방어력을 낮춰 주시겠다는데 이용하지 않을 도리가 있어야지.


“큭큭. 끝까지 기만질이군. 그런 식으로 여기까지는 용케 올라왔다만, 이제는 끝이다.”


아이, 거참 집중 안 되게 자꾸 떠드네. 시작 신호는 진작 울렸는데 아직 발도 못 뗐다.


“그럼 갑니다. 후회하지 마시고.”


“얼마든지.”


처음부터 ‘맹렬한 돌진’을 사용해서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분쇄!’


이시연으로부터 배운 둔기술을 사용해서 부장의 왼발등을 있는 힘껏 찍어 버렸다.


-쾅!


“으악!”


상체를 방어하고 있던 부장은 뜻하지 않은 통증에 겅중겅중 뛰었다.


“큭··· 이 정도는! 아니, 마법사치고는 상당히 아프긴 하지만···.”


-쾅! 쾅! 쾅!


오른발, 머리, 다시 왼발.


‘가위바위보 되게 못 하겠다. 하나도 예측을 못 하네.’


부장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아니, 이럴 리가 없는데? 마법사가 물리 공격력이 이만큼이나 나온다고?”


‘대체 왜 저 따위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 상상도 안 간다.’


하지만 오해를 하고 있다면 조금 같이 어울려 줘 볼까? 원하는 대로 마법을 가볍게 날려봤다.


“파이어 볼!”


“크하핫! 드디어 마법을 사용했구나!”


기세 좋게 날아간 파이어 볼은 부장의 가죽옷에 부딪힌 후 힘없이 사그러 들었다.


‘마법 방어 옵션이 상당히 붙었군.’


무슨 이유인지 나를 마법사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물리 방어를 줄인 대신, 마법 방어를 극대화해서 나왔다.


“어디 얼마든지 사용해 보시지! 나, 일검일살에게 그런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큭! 낭패다!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니!”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당황한 모습을 보여줬다.


의기양양, 김 부장은 양손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텅! 텅! 터더덩!


나는 방패로 공격을 막으면서 뒷걸음질 쳤다.


확실히 데스티니를 벤치마킹한 덕에 공격력은 훌륭했지만, 너무 단순했다.


‘버스만 타고 다녔나. 실전 경험은 거의 없어 보이고.’


어울려주는 것도 재미는 있지만, 어디 이제 슬슬 끝내볼까?


-쾅!


방패 밀치기를 사용해서 김 부장을 멀리 밀어 버렸다. 양손검이라 방패가 없는 김 부장은 주르륵 밀려났다.


나는 그새 인벤토리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서 내용물을 바닥에 탈탈 털었다. 작은 물체가 바닥에 잔뜩 떨어져 쌓였다.


“뭐, 뭐냐! 독이냐? 암기?”


“거 참, 무협지 많이 보셨나 보네.”


바닥에 쏟아 놓은 것은 예전에 미영이 주면 좋아할까 싶어서 사뒀던 블록 장난감이었다.


하도 마법이다 검술이다 수련에만 열중하는 탓에, 아이답게 놀아보게 하려고 사뒀던 것인데.


“레X? 장난해?”


“장난이라니. 이거 안 밟아 보셨나?”


“안 밟아봤는데?”


“허···.”


세상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알려진 몇 가지 통증이 있다.


산통, 치통, 결석통 같은 것이 그것인데.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를 더하고 싶다.


첫째로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문지방에 새끼발가락을 찧는 문콕통.


그보다 한 단계 심한 것이 무심코 디딘 발 아래에 X고가 있을 때 얻게 되는 블록통이다.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르는 그 극심한 고통.


“이번에 좀 알아두시면 되겠네.”


다시 맹렬한 돌진을 사용하여 부장에게 바짝 붙었다.


“자, 출발합니다. 꽉 잡으세요.”

나는 김 부장의 팔을 붙들고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뭐, 뭐 하려는 거야?!”


김부장은 팔다리를 버둥거리면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가까이 끌어당기면서 윙크를 날렸다.


“저리 가!”


“싫은데.”


목적지는 저 블록 밭.


32강 전에서 어떤 마법사를 상대할 때 사용했던 기술 그대로 공중에서 호쾌한 업어치기를 시전했다.


-펑!


김 부장은 발 대신 등으로 블록 위에 떨어졌다.


위치 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다시 그 모든 에너지가 충격량으로 변환되면서 마치 폭탄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 부장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메쳐진 상태 그대로 얼어붙었다. 입을 벌렸지만,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휴, 이거 죄송해서 어쩌나? 한 방에 끝났으면 피차 편했을 건데.”


나는 김 부장을 억지로 세워서 등에 붙은 블록을 털어냈다. 가죽 갑옷 사이 맨살에 박힌 블록은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반쯤 정신을 놓고 스턴 상태에 걸린 부장은 내 손길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렸다.


“사··· 살려···.”


“에이, 겨우 이런 거에 사람이 어떻게 죽습니까? 제가 좀 당해봤는데 피가 되고 살이 됩디다.”


나는 김 부장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한번 메쳤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어때요? 마법 같죠? 이게 바로 정신 마법입니다. 이제 곧 착해지실 거거든요.”


한 세 번쯤 더 메쳐지고 결국 HP가 바닥난 부장이 사라졌을 땐, 장난감 블록이 전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아웃사이더 승!”



* * *



“어우, 끔찍해.”


강지민은 닭살이 잔뜩 돋은 팔을 문질렀다.


저토록 잔혹한 남자라니. 블록이 잔뜩 깔린 바닥에 일검일살인지 일검자살인지 하는 남자가 처박힐 땐 차마 직접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지민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관중석에는 그 참혹함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을 블록 위에 던지다니 그게 인간으로서 할 짓인가?


“언니, 저 사람 혹시 사이코패스 아냐?”


“글쎄, 여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는데.”


합리적이고 빠릿하다는 생각은 했다. 일 처리도 확실하고.


“저 사람하고 언니가 거길 갈 거라고 생각하니까 안심이 안 된다. 저렇게 잔인한 사람이 혹시 해코지라도 하면 어떻게 해?”


“그러기엔 레벨 차이가 너무 나잖아.”


“저기 비무대회에서 저 사람한테 진 사람들도 같은 생각 했을걸?”


“나만 가는 것도 아닌데 뭘. 우리 길드원 데려가잖아. 저 사람은 혼자고.”


시연과 지민은 마스크를 쓰고 관중석에 자리 잡았다.


할 얘기도 있고 마침 시간도 난 김에 겸사겸사 찾아왔는데 아웃사이더라는 남자가 의외로 승승장구하는 바람에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런데 진짜 100레벨 안 되는 거 맞아? 왜 저렇게 잘 싸워?”


예선전에서 봤을 땐 정말 기가 막히도록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절대 운 같은 것이 아니었다.


스킬 자체는 초보 수준의 것만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아카데미에 출강했을 때 레벨 50이 안되는 것 같았으니까, 지금은 아무리 잘 봐줘도 60대일걸?”


“진짜? 언니, 우리도 금남의 룰을 깨고 저 남자 길드에 끌어들이는 거 어때?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잠재력은 엄청난데.”


“그건 나로스 대륙 다녀온 후에 생각해 보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시연은 저 사람은 어디 길드에 소속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저기··· 혹시?”


“네?”


옆자리에 있던 남자가 갑자기 다가와서 이시연에게 말을 걸었다.


“데스티니 님 아니신지? 마스크 위로 눈매가 너무 닮으셔서.”


이젠 마스크를 써도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 현실에 이시연은 한숨을 조금 내쉬었다.


“어머, 언니 좋겠다. 데스티니하고 비교당하고.”


“······.”


“죄송합니다만, 우리 언니 그런 여자 아닙니다. 실례할게요.”


지민은 시연의 팔을 끌고 자리를 떴다.


“맞는 것 같지 않냐?”


“난 잘 모르겠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가만있어봐. 좀 보고 올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남자는 두 여자의 뒤를 따랐다.


“언니, 답장 왔어?”


“잠깐만.”


두 사람은 선수 대기실 근처에 도달해 있었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타인의 입장이 제한된 곳이지만 선수가 직접 지정한 사람에 한해 입장할 수 있었다. 두 여자는 그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 거. 아웃사이던지 아싸인지 얼굴 보기 되게 힘드네. 그냥 내일모레 보면 안 돼?”


“시간 낭비야. 오늘 시간 났을 때 빨리 해치우는 게 나아.”


이시연은 단호했다.


“아, 들어오래.”


“천하의 데스티니를 오라 가라 하고 아주 대단하다.”


두 여자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쩌겠어. 내가 먼저 매달린 처지인데.”


두 여자는 대기실로 들어갔다.


* * *


“오랜만입니다.”


나는 이시연과 다른 한 명의 여자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아카데미에서 보고 며칠 안 됐는데, 그새 많은 걸 이루고 계시네요.”


“바쁘게 살다 보니.”


“처음 보네요.”


이시연 옆에 있던 여자가 아는척했다. 전에 어딘가 인터뷰 영상에서 보아 알고 있다. 저 여자는 DNC의 부 길마다.


“반갑습니다.”


“경기 내용은 굉장히 충격적인데, 이렇게 보니 생긴 건 온화해 보이네요.”


”그렇습니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사이에요?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편?”


“바쁘실 텐데 빨리 얘기하고 갈게요.”


이시연은 얼른 끼어들어 종이 몇장을 내밀었다.


“이건 가시려는 ###마을까지 경로를 나타낸 지도에요. 솔직히 좀 부실하지만 일단 등록해 두시고요. 다음 페이지는 거기까지 가는 타임테이블과 필요물품 목록입니다. 중요한 물품은 대부분 우리가 준비하겠지만 개인 물품은 알아서 준비해 주세요. 저희 목록 참고하시면 되겠고요. 혹시 더 필요하다 싶은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 뒷장에 있는 건 가는 경로에 예상되는 몹 목록과 레벨, 알려진 특성이에요.”


“조금 짧게 해주시죠. 곧 다음 경기 나가봐야 해서.”


“아, 네. 그렇죠. 금방 끝낼게요.”


이시연은 자기 기준으로 아주 간략한, 내 기준으로 살짝 진 빠질 정도로 긴 얘기를 늘어놓고 떠났다.


‘출발은 삼 일 뒤. 일정은 딱 사가트까지군.’


계약은 거기까지다.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 일.


길어봐야 닷새간의 길동무. 무슨 일이 기다릴지 모르지만 오랜만에 게이머의 피가 끓는다.



[아웃사이더 님. 4강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 * *



4강 상대는 여자였다.


로파답게 예쁘고 젊은 캐릭터였지만 왠지 모르게 어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아웃사이더님?”


“안녕하십니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네? 절 아십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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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파티로구나 24.11.21 30 2 11쪽
91 새로운 시대 24.11.20 32 2 12쪽
90 새로운 시대 24.11.19 33 2 13쪽
89 새로운 시대 24.11.18 36 2 12쪽
88 새로운 시대 24.11.17 31 2 11쪽
87 부모의 마음 24.11.16 30 2 12쪽
86 부모의 마음 24.11.15 31 2 12쪽
85 부모의 마음 +1 24.11.14 32 2 12쪽
84 부모의 마음 24.11.13 31 2 11쪽
83 부모의 마음 24.11.12 3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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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동물의 왕국 24.11.10 3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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