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이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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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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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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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만남

DUMMY

결국 아무 소득 없이 강제 종료 시간이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접속 해제하는 데는 캠프 키트까지는 필요 없으므로, 다들 맥이 빠진 채로 로그아웃했다.


“주인님.”


“응.”


“제가 DNC 길드의 사이트에 공개된 이 씨 성 가진 여성들의 SNS 사진과, 어젯밤 찍힌 여성의 이미지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어제 얼굴은 못 찍었잖아, 모자 쓰고 있어서.”


“그렇지만 일어났을 때의 영상을 분석해서 대략적인 신장과 체격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는데?”


“키는 166cm, 몸무게 51킬로그램으로 추측됩니다.”


“대략적이라더니 상당히 구체적이네.”


이 정도면 실제 모습을 봤을 때 특정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김 비서가 화면에 띄워준 SNS를 하나씩 열면서 설명을 들었다.


“보시다시피 이 중에 일치하는 여성이 없으므로, 사이트 구축 후 신규 영입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탐문해보면···.”


“김 비서.”


“네.”


“아직 인간을 잘 모르는군.”


“네? 무슨 말씀인지?”


“SNS 사진은 부모도 못 알아보게 마련이야. 가끔은 자기가 봐도 못 알아본다고.”


“네? 어째서 그런 짓을?”


“그게 인간이다.”


“.......”


“다시는 SNS 사진 보정을 우습게 보지 마라.”


이제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룸이 준 퀘스트를 포기하더라도 곧장 사가트로 달려가는 수밖에. 그다음 저 길드 내에서 일어나는 일은 냉정하게 말해서 내 알 바 아니지.


‘무시하자. 내 일도 아닌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접속했다. 하지만 들어가서 처음 본 것은 머리 위로 손을 들고 있는 다섯 명의 여자였다.


‘이게 무슨···.’


“다행입니다. 늦지 않게 오셔서.”


이시연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전에 본 대신맨이나 정체 모를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한 실장으로 강력하게 의심되긴 하지만.


-팍!


두리번거리는 내 발 앞에 화살이 하나 꽂혔다. 어찌나 강하게 틀어박혔는지 땅 위에 보이는 것은 깃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런 것이 이미 수십 개 바닥에 꽂혀 있었다.


“손들어.”


나는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면서 화살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거대한 나무 위에 가냘픈 몸매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엘프!’


“이 여자들이 말하길, 네가 오길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군.”


대표로 보이는, 금발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여성 엘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얼른 지난번처럼 해봐요! 엘프어 인사라던가, 뭐든.”


“믿고 있습니다.”


“아싸! 아싸! 아웃사이더!”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거 없는데요?”


“네?”


“엘프는 원래 평화로운 종족이라서 한 번도 트러블을 빚은 적이 없었는데요? 이렇게 다짜고짜 사람한테 활을 겨누는 경우는 진짜 못 봤는데. 이상하다.”


“묶어라.”


여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수십 명의 엘프가 몰려와서 팔다리를 모두 묶고 나무를 엮어 만든 우리에 가둬버렸다.


무슨 수를 썼는지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아서 마법도 쓸 수가 없는 곳이었다.


“이게 뭐야, 아웃사이더 오빠만 믿었는데!”


플로라, 넌 역시 수상해. 용의자 점수 10점 추가한다.


“플로라, 잠시만. 혹시 여기서 탈출할 수단 있는 사람?”


“.......”


데스티니가 물었지만, 그런 게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큰일이네, 벌써 접속한 지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그러게, 딱히 뭘 시키려는 것 같지도 않고.”


“내가 좀 전에 시도해 봤는데 로그아웃도 안 돼.”


진퇴양난이다. 엘프의 성정으로 미루어봤을 때 죽이거나 해코지를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은 또 모른다. 애초에 원래대로라면 이런 일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어쩌죠?”


“글쎄요.”


나라고 무슨 뾰족한 방도가 있을 리가.


그때 남성 엘프 하나가 나타났다. 가까이 가면 오징어가 될 것 같은 외모였기에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그는 하필이면 내가 갇힌 우리 앞에 멈춰 섰다.


“나오시죠.”


“저요?”


그는 고개만 까딱했다. 내가 했다면 재수 없어 보였을 행동이지만 그가 하니 멋있어 보이는 게 상당히 기분 나빴다.


“유후, 잘생긴 엘프 오빠! 저도 꺼내주시면 안 될까요?”


“시끄러워, 플로라. 인상 찌푸리시는 거 안 보여?”


“미인계야! 하이디 언니는 알지도 못하면서.”


“바보.”


나는 남자 엘프의 손에 끌려 어디론가 이동했다.


“일행분들이 참 활발하군요.”


이거다.

이것이 바로 낙원의 엘프 화법이다. 저런 끔찍한 꼴을 보고도 점잖게 돌려 말하는.


그런데 좀 전에는 왜 이렇게 공격적으로 행동한 거지?


“활발이라기엔 좀 부끄럽군요. 그런데 종족 내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건 가서 들으시면 될 듯합니다.”


그가 데려간 곳은 대장으로 보이는 여자의 방이었다. 그는 나를 바닥에 앉히고 여자의 옆에 시립했다.


“묶은 채로 얘기하게 되어서 유감이구나.”


“아닙니다. 말씀하시죠, 하이 엘프.”


내 말에 남자가 흠칫 놀랐다.


“오면서 가르쳐 준 거니, 도리안?“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알았지?”


여자는 내 눈을 응시했다.


“그야··· 당연히 예전에 본 적이 있어서죠. 아리엘 디아즈 님 아니십니까?”


처음 얼핏 봤을 때는 몰랐지만 우리에 갇힌 동안 줄곧 어디서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시 본 순간 이 여자가 누군지 떠올랐다.


낙원의 엘프 최고위 삼인방 중 1인 아리엘 디아즈. 수명이 긴 엘프 중에서도 더욱 긴 수명을 가져서, 도무지 죽는지 아닌지조차 모를 하이 엘프가 바로 그녀다.


하이 엘프로서는 유일하게 낙원에 내려와 있던 엘프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삼십 년 정도야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터. 동면이라든지, 봉인 따위 필요도 없다.


“그걸 아는 걸 보니 너는 진정으로 용사가 맞겠구나.”


아리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머지 두 분은?”


“나머지라면 장로 둘을 일컫는 것이겠지?”


“네.”


“죽었다.”


“네?”


나머지 둘은 심지어 부부였다.


죽어도 죽을 것 같지 않던 검술의 마스터 벤드리스와 정령술의 마스터 클로드. 그 둘이 죽었다니. 나도 낙원 시절 벤드리스의 검술을 따라 한다고 한참 노력하다가 포기했었는데.


“그리고 좀비가 되었지.”


“네? 아니 어쩌다가?”


“그런데 너희는 어떻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느냐?”


감정의 고저가 없는 아리엘의 말 때문에 대답이 늦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소식은 베타 고인물로서는 충격적인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저희는···.”


배를 타고 대륙으로 넘어와 페트라를 정화하고, 그룸을 만나 드워프를 구원한 후 이 숲에 올 때까지. 그 과정을 설명하는 동안 아리엘은 줄곧 말이 없었다.


“그룸, 그 아이는 언제나 부끄러움이 많았지.”


아이, 부끄러움. 세상에서 그 그룸과 가장 안 어울리는 두 단어를 들어버렸다.


“아는 사이인가 봅니다.”


“그 아이도 이제 70세는 되었으니 그간 몇 번은 마주치지 않았겠느냐. 처음 봤을 때는 고작 20세였고.”


“대모님,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 알았다.”


아리엘은 한숨을 쉬었다.


“벤드리스와 클로드, 그 둘이 좀비가 된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아픈 사고였다. 둘 사이에 어렵게 태어난 아이가 그만 좀비화된 애완동물에게 물려버린 게야.”


아이가 잘 태어나지 않는 엘프, 그중에서도 나이 많은 두 사람에게 아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클로드는 그 사실을 모두에게 숨겼다. 남편 벤드리스에게도. 혼자 아이를 낫게 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다가 본인도 실수로 물려서 감염된 거지. 벤드리스는 자신이 직접 결말을 짓겠다고 나섰다.”


“······.”


결말을 아는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새드 엔딩이 확정된 영화를.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우리가 추후에 알아보기로 두 사람의 아이는 분명 벤드리스가 목을 베어 제거했다.”


불현듯 미영이 얼굴이 떠올랐다.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나는 그 목을 벨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후 벤드리스도 좀비가 되어 나타났다. 너무나 강한 힘을 가졌던 만큼, 두 사람은 지나치게 강한 좀비가 되어 주변을 배회했다. 아주 규칙적으로 며칠에 한 번씩. 그 둘에게 당한 일족만 해도 두 자릿수가 되었으니.”


“슬픈 일이군요.”


“지도자로서는 실격이라 아니할 수 없지. 나는 차마 그 둘에게 안식을 주지 않고서는 이곳을 뜰 수 없다. 그리고 마침 오늘, 지금부터 약 삼십 분 후 그들이 나타날 게야.”


머리가 쭈뼛 섰다.

하필 이런 순간에 찾아와서는.


“네 말을 들으니 오늘 반드시 끝을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모님, 그러지 말고 함께 자리를 피하시지요.”


“그럴 수는 없다. 너희는 저들을 풀어주고 드워프 동굴로 가거라. 거기서 드워프와 함께 새로운 곳으로 출발하는 거다. 더 이상 숫자가 줄었다간 우리는 이대로 멸족이야.”


“대모님,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과거는 과거가 상대하는 것이 맞다. 너희는 미래로 떠나라. 명령이다.”


정적이 흘렀다. 도리안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지만 하이 엘프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과거라면 저도 한 과거 하지 않습니까?”


“음?”


“과거의 용사인 저도 한자리 끼겠습니다.”


내 폭탄선언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교차했다.


“나머지 친구들은 용사가 아닙니다. 새로운 세대인 모험가죠. 과거를 대표하는 엘프의 영웅과 인간 용사 나부랭이 둘이서 끝장을 보는 겁니다.”



* * *



“너도 참 쓸데없는 참견을 잘하는 녀석이로구나.”


나는 길을 떠나는 수백의 엘프와, 우리에 갇힌 채 수레에 실려 가는 일행을 바라봤다.


무슨 일인지는 도리안이라는 친구가 설명해 주겠지.


”과거에 얽매였던 건 아리엘 님만이 아니니까요.”


“알겠다.”


아리엘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마나를 운용했다. 나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마력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제 기억에 클로드는 바람의 정령을 주로 부렸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기억하고 있구나. 너와는 상성이 좋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너는 벤드리스를 막는 데만 집중하길 바란다. 그렇게 해주면 내가 클로드를 제압하고 합류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와 아리엘은 자리에 앉아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좀 가만히 있지 못하겠느냐?”


“다리가 저려서···.”




“뭘 그렇게 부스럭거려!“


“드워프의 구원자 임명장 받은 거 잘 있나 싶어서···.”




“쫌!”


“넵.”


“내가 너와 함께 온 것이 잘한 건지 모르겠구나.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니, 에잉.”


입이 심심해서 육포를 꺼냈을 뿐인데.


“기술을 하나 전수해 주마. 너도 용사니 금방 배우겠지. 원래 엘프 비전인데 이거 원···.”


“무슨 기술인가요?”


“고요라는 기술이다.”


아리엘은 잠시 기술에 관해 설명했다.


[패시브 스킬 ‘고요’ 습득!]


[전투 개시 전 1분 이상 입을 다물고 움직이지 않을 경우, 그 상태를 유지했던 시간만큼 방어력이 100% 증가합니다.]


당했다.

뭐 이런 기술이 다 있어.


‘분명 나쁘지는 않은데···.’


나를 묶어두고자 가르친 기술이 분명하다. 나쁜 할망구.


“벌써 습득했나? 용사의 습득력은 언제 보아도 놀라워.”


어려운 싸움을 앞에 두고 이런 기술을 배웠으니, 언제 전투가 개시될지 몰라 차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제야 좀 조용하고 좋···.”


아리엘의 입이 멈추고, 긴 귀가 쫑긋거렸다.


“왔군.”


‘어디?’


차마 움직이지 못해서 확인하기 쉽지 않았는데 멀리서 먼지구름이 피어나는 것이 보였다.


‘뭐야, 둘만 오는 게 아니었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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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새로운 시대 24.11.17 3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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