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
부끄러운 듯이 쭈뼛거리며 걸어들어오는 초절정 꽃미남.
그 어디에도 우락부락한 ‘강한남자이강한’의 모습은 없었다.
실제로 시청자 실시간 댓글도 아주 난리가 났다.
└ 장난 아니다. 사람이 저렇게 생겨도 되는 거냐? 어디 아이돌 하려고 들어왔나?
└ 엄마는 세계적 대기업 회장. 아들은 게임이나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꽃미남. 세상 이렇게 불공평해도 되는 건가?
└ 소년미 보소.
└ 레이첼 홍 회장님, 이제부터 어머님이라고 부를게요.
“저게 강한이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레이첼 홍의 눈에서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기 때문에.
[사실 이 깜짝선물을 제안한 것은 저희 제작진이 아니고, 아드님인 강한 씨입니다. 어머니와 자신의 우상인 한 분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어유, 너무 우시는데. 저기 휴지 좀 가져다주실래요?]
같이 온 아들인데 왜 갑자기 울어? 좀 오버하는 거 아냐?
[강한 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강한입니다.]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저는 제작진한테 사연을 듣지 못해서, 어머님께서 이렇게 우시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럽니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구나. 그런데 그 자식 목소리도 곱네. 게임에서는 천상 바바리안이었는데.
[제가 12살 이후에 집밖에 나와본 적이 없어서 그럴 거예요.]
[이번이 처음 나오신 거라고요? 죄송하지만 지금 나이가···.]
[열아홉입니다.]
[자그마치 7년이네요. 왜 그러셨을까요?]
[제가 지금도 너무 약하게 생겨서 마음에 안 드는데, 어렸을 때는 더 심했거든요. 대부분 여자라고 착각할 정도로.]
└ 으악! 어떻게 지금보다 더 예쁘게 생겼을 수가 있어?
└ 소년미, 병약미, 재벌미 다 가졌어
[그때는 제가 캐나다에서 인종도 다르고, 약해 보이기도 하니까 괴롭힘을 많이 당했거든요. 어머니 회사도 지금처럼 대기업이 아니라 업계에서만 유명한 수준이었다 보니까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고.]
[아, 그러셨군요.]
[하루는 제가 괴롭힘당하는 게 싫어서, 그 친구들 피해서 멀리 공사장으로 돌아가다가 사고를 당했거든요.]
[어이구! 사고가 컸습니까?]
레이첼이 괴로운 듯 더 울자, 강한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거의 한 달 만에 깨어났다고 해요. 살아난 게 기적이죠.]
[아, 이거 제가 괴로운 상처를 들쑤시는 것 아닌가 상당히 걱정이 되는데요···.]
[괜찮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런 상처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엄마에게 보여드리려고 제작진한테 연락드린 거니까요.]
└ 꽃길만 걸은 줄 알았는데 삼도천 고수부지 걸어 다녔구나.
└ 괴롭힌 놈들 진짜 잡아서 죽이고 싶다.
[그때 사고로 두 다리, 오른팔, 왼손을 잃었습니다.]
“김 비서야. 쟤가 지금 뭐라고 그런 거냐?”
“두 다리, 오른팔, 왼손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네? 저는 지금 걸어들어오는 걸 보고서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요?]
[잠시만요.]
강한은 일어나서 위에 걸친 재킷과 바지를 벗었다. 안에는 민소매 스타일의 상의와 짧은 반바지가 있었다.
그 아래 있는 것은 사람의 팔다리가 아니었다.
[.......]
국민 MC가 말을 잃었다. 댓글 창도 조용해졌다.
[사실 피부 질감 스킨 씌워서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있는데, 오늘은 보여 드리려고 일부러 없는 것으로 준비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강한의 눈에는 자신감과,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가득했다.
[아···.]
[사실 기술 자체는 어머니 회사에서 완성하신 지 조금 됐거든요. 그런데 저는 장기 일부도 인공장기인 데다가, 동기화에 필요한 시술 자체도 쉬운 편이 아니라서 용기를 못 냈습니다.
지난 7년간 게임만 한 것도 용기가 없어서 그랬을 거예요. 사람들 앞에 이 몸으로 나설 용기가 없어서. 그리고 사실 로스트 파라다이스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어요. 그건 머리만 있어도 최소한의 컨트롤이 되니까.]
그래서 저놈 캐릭터가 그런 우락부락 바바리안이었구나. 아이디에 강한 남자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도 이해가 됐다.
많이 노력했구나.
강해지고 싶어서.
강한은 잠시 기다려 달라며 자리를 비우고 신체와 유사한 팔다리로 바꿔서 다시 들어왔다.
그냥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최신 유행하는 춤을 추면서. 뛰어난 춤솜씨는 아니었지만 충분했다.
[놀랍습니다.]
국민 MC뿐 아니라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강한은 다시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정말 자연스럽네요.]
[네, 저희 어머니가 만드신 거라서가 아니고, 정말 진짜 제가 느끼기에도 진짜 같아요. 겉모습만이 아니라 실제로 생각만 해도 컨트롤이 되니까요. 이건 그냥 진짜 팔다리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 오 마이 갓.
└ 나 지금 우냐? 어린 강한이가 방안에 틀어박혀서 우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아서 미칠 것 같다. 지금 웃고 있으니까 더 슬퍼 보여.
└ 저러니까 안드로이드를 그렇게 미친 퀄리티로 뽑아내는구나. 레이첼 홍이 얼마나 자책했겠어.
└ 안드로이드가 쉬우냐, 의족, 의수가 쉬우냐?
└ 평가 기준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어떤 계기로 용기를 내셨을까요?]
[게임 속에서 어떤 형을 만났거든요.]
뭐가 좀 이상한데, 설마 그 형이 나냐?
[처음에는 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점점 빠져들게 됐어요. 남들 눈치 안 보고, 당당하고. 그러면서도 세심하게 챙겨주고. 아무 대가 없이 선물도 주고. 제가 누구인 줄도 모르면서.]
뭔가 내 기억하고 상당히 다른 것 같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좋은 분이네요.]
[네. 그 형을 따라다니면서 저도 그 형처럼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그래서 한참 고민한 끝에 용기를 냈습니다. 시술을 받고, 세상으로 나가자고요.]
[그분은 만나 보셨습니까?]
[아뇨, 이제 연락해야죠. 그런데 그새 게임 안에서 꽤 유명해지셨더라고요. 시간이 날지 모르겠어요.]
[아, 그렇습니까? 혹시 저희도 아는 분일까요?]
[아웃사이더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는 분입니다.]
└ 아웃사이더? 후기지수 무투회 우승자?
└ 이번에 드워프하고 엘프 구출해 온 사람 아냐? 데스티니보다 앞에 이름 쓰여 있었던?
└ 좀 미친놈? 그런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람은 괜찮은갑네.
└ 요즘 부쩍 그 이름이 자주 나오네. 주작 아님?
└ 포스 다이나믹스하고 주작? 말 같은 소리를 좀 하셔야지. 거기가 뭐가 아쉬워서 게이머 따위하고 주작을 하나?
세상일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저 별생각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데리고 다녔을 뿐인데 당사자는 이렇게 깊은 감명을 받고, 인생의 행로를 바꿔 놓을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주인님, 제조사로부터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레이첼 홍 회장님이 오늘 밤에 찾아봬도 좋겠냐고.”
“언제? 내가 가도 되는데. 한국에 온 손님이니까.”
“이미 근처에 와 계신 것 같습니다.”
“참 번개 같은 양반이네.”
곧 가겠다는 말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국에 온 것으로 모자라 우리 집 근처까지 오다니.
“알았다. 나가 보자.”
“네.”
나는 김 비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김 비서도 잘 있음을 보여드려야 하니까.
* * *
“드디어 나왔다.”
“어, 그 자식. 진짜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네. 이거 뭐 히키고모님인지 이모님인지 그거 아니냐?”
“저 새끼도 어쩌다가 대용이 같은 놈 성질 건드려가지고, 큭큭.”
“내가 뭐, 이 새끼야.”
“그렇잖냐. 쟤 사는 곳 보니까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하고는 사는 물이 완전히 다른데. 그깟 이시연하고 소문 하나 잘못 나서.”
김대용은 화를 버럭 냈다.
“그깟? 네가 형수님더러 그깟이라고?”
“워워. 진정해.”
친구인지 똘마니인지 모를 두 남자는 대용의 역정에 쩔쩔맸다.
“그리고 이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저 자식이 게임 내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들었잖아.”
“그거야 네가 먼저 시작했다며.”
“뭐, 인마? 그럼 넌 돈 받은 거 토하고 꺼져.”
“에이, 누가 그런대? 나도 기다린 거 억울해서 얼굴은 보러 가야겠다.”
대용과 남자 두 명이 차에서 내려서 아웃사이더라는 놈이 나온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워우, 그런데 저놈 옆에 여자는 누구야? 이시연보다 더 예쁜 것 같은데?”
“살벌하게 예쁘네. 아무래도 일행 같은데?”
“아웃사이더 저놈은 뭔데 세상 예쁜 여자가 다 꼬이냐?”
“개새끼.”
“개새끼.”
“개새끼.”
남자 세 명의 의견이 일치했다.
* * *
“언제쯤 도착한대?”
“이제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보다 주인님.”
“왜?”
“저기 세 명의 남자를 알고 계십니까?”
슬금슬금 걸어오는 남자들은 굉장히 화난 표정이었다.
“아니, 모르는데.”
“아무래도 이쪽으로 오는 것 같습니다.”
“근처 사는 애들이겠지, 뭐. 원래 저 나이 때는 표정이 더럽고 세상에 불만이 많기 마련이야.”
“각목도 들고 있습니다.”
무슨 야인시대도 아닌데, 그런 시대착오적인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려고?
“뭐 수리하러 온 사람들인가 보지.”
“그럴 시간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옷이 전부 명품입니다.”
“일할 때도 편해야 진짜 명품 아닐까?”
“주인님의 명품론은 잘 들었습니다만 확실합니다. 방금 아웃사이더를 거론했습니다.”
“허.”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내 정보는 또 어떻게 알고 여기서 뻗치기를 했나. 나는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는데.
“저놈들 중에 얼굴 알려진 사람 있나 검색해 봐.”
대답은 순식간에 나왔다.
“있습니다. 가운데 남자는 현 한국 로스트 파라다이스 랭킹 27위 ‘그레잇드래건’ 김대용입니다.”
어이구, 머리야.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그 와중에 랭킹도 속여서 말했어.
세 놈은 금방 내 앞에 도달했다.
“야.”
김대용 옆에 있던 덩치 큰 남자가 나를 불렀다.
“뭐.”
“너 아웃사이더 맞지?”
“아닌데, 완전 인싸인데.”
“어? 뭐 잘못 알았나?”
“야, 이 등신 새끼야. 거짓말하는 거잖아.”
참다못한 대용이 직접 나섰다.
“너, 이 새끼. 내가 여기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
“대용아, 대용아. 너 어쩌자고 이러니? CCTV가 두렵지도 않니?”
“여기 없는 거 알아.”
“어제 달았어.”
“뭐?”
김대용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없잖아, 이 새끼야.”
“응, 뻥이야.”
“아이씨!”
HS 그룹도 고민이 많겠다. 이런 놈도 나중에 계열사 하나 잘라줘야 할 거 아냐. 말아먹을 게 눈에 보이듯 선하다. 그나마 둘째라서 다행이지.
“됐어. 그깟 거, 죽이지만 않으면 집행유예야.”
대용은 직접 각목을 꼬나쥐고 앞으로 나섰다.
“주인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김 비서는 사태가 험악해질 기미를 보이자, 내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주인님?”
“방금 내가 들은 게 맞냐? 잘못 들은 거 아니지?”
“허··· 저런 미녀한테 그런 플레이를···.”
“개새끼야!”
“너 같은 새끼는 살아선 안 돼. 공기가 아깝다.”
남자들의 감정 게이지가 갑자기 폭주했다. 김 비서야, 네 덕에 사태가 더 복잡해진 것 같은데.
이제는 한바탕 대거리를 피할 수 없겠다.
각오를 다지는 순간, 차량 헤드라이트가 보여서 잠시 대용 일행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차량 두 대는 지나가지 않고 대용과 내 사이에 멈춰 섰고, 곧바로 문이 열렸다.
“대용아, 너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아, 아버지?”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