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이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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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제로
작품등록일 :
2024.08.26 10:52
최근연재일 :
2024.12.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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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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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새로운 시대

DUMMY

드워프의 마을에는 타이한 제국에서 임시로 붙여준 그리핀 지기가 있었다.


다른 곳으로 가는 항로는 없었고 쏠레 시티로만 가게 되어 있었다.


“무슨 편지야?”


그러나 함부로 뜯어볼 수는 없었다. 편지 수신인이 황제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얼른 궁에 들어가서 편지만 전해주고 튀어야지.’


귀찮은 일들은 후딱 해치우고 낙원에 가서 평화롭게 미영이 하고 코인이나 줍고 싶은 마음뿐이다.


‘요즘 하루가 멀다고 날아다녔더니 이제 그리핀이 따릉이 같네.’


그리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영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야, 어디냐.]


[그리핀 따릉이 타고 쏠레 시티 가는 중.]


[그래? 나도 이제 쏠레 시티 가는데 좌표 좀 찍어봐.]


날아간다니까 뭘 어쩌려고 좌표를 찍어.


“찍으라니까 찍어는 준다.”


멀리 쏠레 시티가 보이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돌다가 오랜만에 수도로 오니 그 웅장함이 새삼 느껴진다.


“야.”


그런데 궁성이 어디더라?


“얌마, 박서준.”


이럴 리가 없는데.


무슨 도시 괴담도 아니고 상공 수십 미터를 날고 있는 그리핀 위에서 왜 사람 소리가 들리냐.


“머리 위야, 위.”


나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날개 달린 최영한, 신성모독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와우. 개간지.”


전에 어디서 봤다. 신성모독의 날탈 중에 ‘이카로스의 날개’라는 것이 있다고.


“어때? 장난 아니지?”


”역시 세계랭킹 1위답다. 멋지다, 최영한.”


영한은 내가 타고 있는 그리핀 주위를 나선형으로 곡예 비행했다.


“야, 어지러워. 그만 돌아.”


“으엑. 사실 이거 하면 나도 어지러워. 토할 것 같고.”


“용쓴다, 용써.”


“그런데 어디 가냐?”


영한은 내 옆에 딱 맞춰서 활강했다.


”나, 지금 마르크 재상한테.”


“오잉? 그 양반한테는 왜?”


“드워프 지도자가 보내는 편지 심부름이다.”


“사실 나도 그 양반한테 가는데.”


“너는 무슨 일로?”


“나로스 갈 때 그 양반한테 퀘스트 받아서 갔거든. 보고하러 간다.”


우연의 일치지만 잘됐다. 심심하던 차에.


“그런데 너 그 날개 달고 수도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냐?”


“몰래 가야지. 자, 얼른 뛰어내려.”


“뭐, 인마? 밑도 끝도 없이 왜 자살 권유야?”


“재상한테 간다며. 굳이 그리핀 승강장 갔다가 빙빙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이 형님이 총알택시 태워준다.”


굳이 그런 식으로 빨리 갈 필요가 있을까?


“저기 다른 그리핀 보인다. 나 다른 플레이어 눈에 띄기 전에 얼른 뛰어내려.”


“진심이냐?”


“당연하지.”


“······.”


그래. 이 높이에서 떨어져도 페더폴 마법만 적절하게 잘 쓰면 죽지 않는다는 거 배웠으니까.


“잘 받아라.”


“걱정 마시고.”


나는 그리핀 고삐를 놓고 발걸이로부터 발을 뺐다.


‘어, 쫄리네.’


우연히 떨어지는 것과 일부러 뛰어내리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얼른.”


“에라 모르겠다.”


훌쩍. 나는 정확히 영한의 등에 올라가 목덜미를 잡았다.


“꽉 잡았냐?”


“어.”


“간다!”


-쐐애애액!


섬전.


이럴 때 섬전이라는 말을 쓰는가보다. 영한은 나를 태우고 궁성 뒤뜰을 향해 고속 하강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쏠레 시티와, 그 북쪽에 자리한 궁성이 순식간에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야! 너무 빠른 거 아냐?!”


“그러게.”


“그러게? 지금 남의 나라 월드컵 예선전 보냐?”


“될 줄 알았는데 내 마음대로 컨트롤이 안 된다.”


“지금까지 누구를 등 위에 태워본 적은 있고?”

“없지.”


“야! 이 미친놈아! 이대로면 같이 죽잖아! 게임 시작하고 아직 한 번도 안 죽었는데!”


“미안하다.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에라. 이런 놈이 무슨 랭킹 1위야.


나는 영한의 등 위에서 뛰어내렸다. 내가 사라지면 영한이 혼자서는 괜찮겠지. 그리고 나도 이대로 건물에 들이박는 건 사절이다.


“페더 폴!”


팔랑팔랑.


차라리 어디로 갈지 모르고 떨어지는 게 낫지.


팔랑팔랑.


영한은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성을 지나쳐서 날아갔다. 다시 균형을 잡는 것 같았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빨리 오기는 했네.”


어디로 떨어지는지 몰라서 그렇지.


나는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 신세가 되어 성으로 진입했다.


팔랑팔랑.

팔랑팔랑.

팔랑팔랑.


내 몸은 열린 대형 창으로 날려 들어갔다. 처음 방문하는 궁성인데 이런 식으로 난입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통통통.


벽에 몇 차례 부딪힌 후에 간신히 바닥에 안착했다.


“휴··· 살았네.”


이거야말로 구사일생이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다가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포크로 찍은 고기를 입에 넣으려는 자세로 굳어 있었다. 옆에는 시종으로 보이는 남자가 마찬가지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대는 누군가?”


“어··· 저는 아웃사이더라고 하는데요.”


중년 남자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그런데 왜 창문으로 들어왔는가? 설마 문이 있는 걸 모르는 건 아닐 테지?”


“그럴 리가요. 불의의 사고로 하늘에서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중년 남자는 포크를 내려 놓았다.


“흠··· 짐을 암살하려는 것은 아닌 것 같고.”


“폐하! 제가 이 무례한 자를 당장!”


‘짐? 지금 짐이라고 했나?’


어쩐지 본 것 같은 얼굴이다 싶었다. 이 사람은 분명 제국의 현 황제 발렌스 2세다.


나는 이 황제를 직접 본 적이 있다. 바로 던전 ‘막시무스의 투기장’에서.


다만 그것은 황제의 방탕했던 젊은 시절 모습. 지금은 그때보다 20년은 지난 시점이다.


황제는 손을 들어 시종을 제지했다.


“우리 전에 어디서 본 적 있나?”


“그, 그럴 리가요.”


던전은 던전이고 필드는 필드다. 우리는 본 적이 없는 사이다.


“왜 이렇게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지? 그 복면 위에 눈매가 꼭···.”


“제가 평범하게 생겨서,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말 진짜 엄청 듣고 다닙니다.”


“흠···.”


“진짜 진짭니다.”


젊은 시절 호전적이고 방탕했던 그는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정신을 차리고 성군이 되었다.


그를 이렇게 올바른 길로 인도한 사람이 바로···.


“폐하! 용서를!”


바로 문을 열고 나타난 이 사람, 제국 재상 마르크다.


급히 뛰어온 듯 신발도 한 짝뿐인 그의 옆에는 머리가 산발이 된 영한이도 함께 있었다.


“그자는 제국 제일의 전사 ‘신성모독’의 친우인 ‘아웃사이더’라고 합니다. 제 명을 받고 신성모독 경과 함께 나로스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던 중 불의의 사고로 그리핀에서 떨어져 불시착한 것입니다. 결코 폐하를 해하려는 의도는 없사오니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벌은 제게 내려주시옵소서.”


아따, 그 아저씨 랩 해도 되겠다.


헐떡거리면서도 무슨 대사를 200 BPM으로 때려 박네.


이름은 내가 아웃사이더인데 나는 저렇게는 도저히 못 한다.


“마르크 경, 숨 넘어가겠소.”


“폐하.”


“노여움은 무슨. 어디서 본 듯하여 담소를 나누었을 뿐인데. 게다가 이 모험가의 얼굴을 보니 어떤 이유인지 온몸이 시원해지는 듯한 것 아니겠소. 시원한 것을 넘어서 추울 정도인데, 이것이 모험가의 기술이라는 것인가?”


던전 속 황제 얼굴에 스노우볼을 처박았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설마 그 이미지가 남아 있다고?’


나의 게임 속 첫 사망은 추락사가 아니라 처형인가.


“재미있구먼. 한여름에 초대하면 좋겠어.”


황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짧은 몇 초가 내게는 몇 분이나 되는 것처럼 길었다.


“신성모독 경 오랜만이군.”


“폐하.”


영한이는 황제를 처음 본 것이 아닌 모양이다. 익숙하게 허리를 숙였다.


“경에게도 친구가 있었어. 늘 혼자 다니기에 그런 것 없는 줄 알았지 뭔가.”


“어린 시절의 친구입니다. 최근에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가.”


황제는 입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식사를 마쳤으니 가 보겠네. 자네들도 가서 일 보게.”


“감사합니다, 폐하.”


마르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허리 숙였다.


“만나서 반가웠네. 언제 만나서 눈싸움이라도 한번 하지.”


저거 100% 기억한다.




마르크는 우리를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야, 너는 떨어져도 어떻게 그리로 떨어지냐.”


“내가 그럴 줄 알았냐.”


나는 팔랑거리면서 떨어진 죄밖에 없다. 죄가 있다면 해본 적도 없으면서 등에 날 태운 영한이 네 녀석이지.


“아웃사이더 님이라 하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재상 마르크는 보는 것만으로 꼬장꼬장함이 옮을 것 같은 초로의 남자였다.


“최근 큰 일을 해내셨더군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나는 마르크에게 그룸이 준 편지를 내밀었다.


“드워프 족에서 이걸 가져다드리라 해서 왔습니다.”


마르크는 즉시 편지를 꺼내 읽었다. 보는 내내 표정 변화가 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내용인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재상은 편지를 접어 품에 넣었다.


“엘프의 복식 판매, 드워프의 기술 아카데미 건립, 두 종족 공통의 양조장 건설에 대한 내용.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지원을 부탁하는 글입니다.”


음, 그거라면 다 내가 말해 준 것인데. 확실히 제국이 지원해 준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


“전부 아웃사이더 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뭐, 그런 셈이죠.”


“혹시 제 밑에서 일해볼 생각은 없으신지?”


“어···.”


갑작스럽기도 하지만, 더 이상 다른 곳에 시간을 뺏길 수는 없다. 나는 당분간 낙원에서 골드 수급에만 전념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아직 모험가 등급이 많이 낮아서 갈 길이 멉니다.”


“등급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플레이어가 묻는다면 실례겠지만, 재상의 질문에는 답해도 되겠지.


”130 조금 넘습니다.”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아직 개인적 성취에 좀 더 힘쓸 때가 맞군요.”


그렇지. 고이고 고여버린 영한이야 큰 퀘스트를 받아서 움직이는 편이 훨씬 효율 높겠지만.


“신성모독 경은 저와 좀 더 얘기를 나눠야 합니다. 기다리셔도 좋고, 먼저 일어나셔도 좋습니다.”


“먼저 가겠습니다.”


“쏘리, 내가 또 메시지 보낼게.”


“오케이.”


들어갈 때는 엉망진창이었지만, 나올 때는 정문을 통해 당당하게 나왔다.


“음?”

잠깐 시야가 암전되더니 화려한 전체 영상이 플레이되었다.


영상의 시작에 나온 사람은 데스티니였다. 트레이드 마크인 대검을 화려하게 휘두르던 데스티니는 갑자기 튀어나온 좀비 군체에 맞고 쓰러졌다.


그 자리를 하이디와 설화가 메꾸고 나는 데스티니를 안아 일으켰다.


‘여긴 나로스인데?‘


그리고 주인공이 나로 바뀌었다. 나는 어느새 눈 덮인 산맥에서 예티를 피해 도망 다니는 중이었다.


‘저렇게까지 귀엽지는 않았는데.’


뀨엥하며 신나게 웃는 뭉치 녀석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가 싶더니, 일행은 동굴 통로를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금속의 괴물.


그리고 거기서 튀어나온 드워프, 그룸 아이언코트.


나와 그룸이 낙원 식으로 인사했다.


‘뭐야, 저렇게 근엄한 표정이 아니었다고.’


나도, 그룸도 상당히 미화되어 있었다.


장면이 바뀌어 이번에는 DNC 길드의 여자 다섯이 앉아 얘기 중이었다.


그녀들의 발치에 화살이 꽂히더니 도리언이 나타났다. 그냥 나무 위에 서 있는 실루엣과 얼굴 윤곽만 나왔는데도 꽃잎이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지?


일행이 사로잡혀 갇히고, 나는 도리언을 따라 하이 엘프 아리엘을 알현했다. 문제는 다음 장면이다.


벤드리스와 나의 일대일 대결에서, 나는 검강을 피워올리는 벤드리스를 상대로 참교육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 이거 이러면 나가린데.”


백일 천하에 내 참교육이 공개되는 순간이다.


“제기랄.”


검강을 받아치는 야구방망이라니. 다행스럽게도 그 장면은 길지 않았다.


좀비 무리에 쫓기며 사투를 벌이던 중, 갑자기 나타나 신성 영역을 선포하는 신성모독.


“허, 영한이도 나왔네. 에바도 뽀샵하나?


지나치게 멋있게 나왔는데?“


인정할 수 없다.

저것은 랭킹 1위 프리미엄이다.


드워프, 엘프와 함께 배를 타고 돌아오는 일행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나 싶었던 영상은, 뜻밖에 검은 로브의 여자와 하얀 투구의 기사가 마주 보는 샷으로 이어졌다.


비록 대부분이 그림자로 가려져서 알아볼 수 있는것은 검은 로브의 비뚤어진 미소와, 바이저 속 하얀 기사의 형형한 눈빛뿐이었지만.


[New Era]


그 여섯 글자를 남기고 영상은 끝이 났다.


영상이 끝나자 비로소 움직일 수 있었다.


‘이거 아주 난리 났겠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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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주사위는 던져졌다 24.12.10 27 1 12쪽
110 성동격서 24.12.09 30 1 12쪽
109 성동격서 24.12.08 34 1 12쪽
108 재회 24.12.07 35 1 12쪽
107 재회 24.12.06 37 1 12쪽
106 레벨 업 24.12.05 40 1 12쪽
105 레벨 업 24.12.04 38 1 12쪽
104 다시 나로스로 24.12.03 36 1 12쪽
103 다시 나로스로 24.12.02 45 1 11쪽
102 다시 나로스로 24.12.01 4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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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북부 전선의 개망나니가 되었다 24.11.29 42 2 12쪽
99 북부 전선의 개망나니가 되었다 24.11.28 47 1 12쪽
98 재입대 24.11.27 4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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