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이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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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제로
작품등록일 :
2024.08.26 10:52
최근연재일 :
2024.12.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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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개발자의 탈리스만: 손]

▶부착형 원거리 공격 무기

▶충전율: 37%


나는 프란츠의 막사 근처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휴게실 자판기에서 튀어나온 아이템을 만지작거렸다.


낙원에서 마지막으로 가지고 나온 물건이다.


감정을 해봤지만, 설명이 부실한 이 아이템은 도무지 뭔지 잘 모르겠다. 장심에 가져다 대면 건틀릿 위에 찰칵하고 달라붙는데, 작동은 되지 않았다.


저 충전율이라는 것이 뭔지는 최근에 알게 되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정예 몬스터를 처리했더니 36에서 37로 올라간 것이다.


충전이 끝나면? 원거리 무기라니까 마력탄 같은 것을 발사할 거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장풍이냐?’


뭐가 발사되는지, 위력이 어떤지는 충전이 끝나야 알 것 같다.



“엠와이, 황녀님 도착하셨다.”


대장 프란츠의 말에 탈리스만을 인벤토리에 넣고 프란츠 옆에 섰다.


황녀를 태운 요란한 마차와 호위병들이 연병장에 서고, 그 안에서 앳된 얼굴의 여자가 하나 내렸다. 그리고, 그 여자의 부축을 받아 드레스를 입은 황녀가 내렸다.


“오, 전장에 온다고 평소보다 활동적인 복장을 하셨군 그래.”


“저게?”


“어, 진짜야.”


황녀는 어쩐지 상기된 얼굴로 시녀의 손을 잡고 걸어왔다. 호위대장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바짝 뒤를 따랐다.


“황녀 기분 거슬리지 않게 조심해라. 저 뒤에 남자, 만만치 않은 실력자야.”


“저건 또 누군데요?”


“하인츠라고 장미 기사단장이야. 제국의 후기지수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지. 저 뒤에 쭉 깔린 놈들이 장미 기사단이고. 황족 호위가 주 업무다.”


후기지수라면 나도 한 후기지수 하는데.


“좀 미리 얘기해주면 좋았을 거 아닙니까. 저런 골칫덩이들이 있는 걸 대면한 자리에서 알아야 해요?”


“미리 말해주면 안 맡을 거잖아.”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어쩌면 이렇게 나에 대해 잘 아는지.


황녀가 다가오자 프란츠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도 눈치껏 따라했다.


“일어나세요, 프란츠 경.”


‘경은 무슨. 용병 나부랭이한테.’


프란츠는 생각보다 황족을 대하는 데 익숙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이사벨 황녀님.”


“반가워요. 소문으로만 듣던 흑건 용병대장을 직접 만나니 감회가 새롭군요.”


프란츠와 황녀는 뻔한 얘기를 인사랍시고 한참 주고받았다.


“그럼, 저는 이만 출전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안내는 여기 엠와이가 해드릴 겁니다.”


치고 빠지는 솜씨가 예술이다.


“믿음직하고 실력도 뛰어난 데다가, 외모도 우리 용병단 넘버 원이죠. 잘 부탁하네, 엠와이.”


프란츠는 뻔뻔하게 윙크도 한번 날리고 사라졌다.


‘어, 짜증 나.’


일단은 위문하러 온 것이니까 용병대 막사로 공주를 데리고 갔다.


“커헉, 황녀님이 여기까지 오시다니!”


내 예상과 달리 황녀의 방문에 감격하는 놈들이 제법 되었다.


‘단순 무식한 놈들 같으니.’


북부의 칼바람에도 덥다면서 웃통을 깐 녀석들이 있는데, 황녀는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손을 흔들어줬다.


이 무식한 놈들은 그런 황녀의 모습에 진짜로 감격한 건지 평소답지 않게 발랄했다.


“아, 정말 감동적이야!”


막사를 떠나서도 황녀의 감동은 가라앉지 않았다.


“황녀님, 정말 수도에서 본 소설하고 비슷하지 않아요? 저도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나올 뻔했지 뭐에요?”


“그래, 안나. 묘사가 어찌나 사실적이었는지, 상상했던 것과 똑같구나.”


수행하던 장미 기사단장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두 여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기··· 엠와이 님이라고 하셨던가요?”


“네.”


안나가 슬쩍 다가왔다.


“여기 다른 분들하고는 좀 다르신데, 언제 입단하셨어요?”


“입단한 지는 며칠 안 됐습니다만, 다르다는 게 무슨 말씀인지?”


“다른 분들은 막 우락부락하시잖아요. 엠와이 님은 그에 비하면 호리호리하시고, 모험가들 표현을 빌자면 그림체가 다르달까?”


“싸우는데 그림체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 여자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와! 방금 그거 소설 대사 같았어요! 싸우는데 그림체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황녀는 굵은 목소리를 흉내 내는 안나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이건 황녀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보면 된다.


“프란츠 단장님하고는 무슨 사이신가요?”


“무슨 사이?”


“사이가 좋아 보이셔서요. 아, 나 너무 설레.”


안나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무서울 정도다. 수도에서는 지금 대체 어떤 소설이 유행하고 있는 건가.


‘죽일까?’


이것들을 다 죽이고 반역 한번 해버려? 불경한 상상을 키워가는데 누군가 어깨에 손을 짚었다.


나를 보면서 고개를 가로젓는 하인츠 기사단장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너도?’


내 눈빛을 알아본 것일까?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처음 본 나에게 이러는데, 매일 붙어있다시피 한 기사단장은 오죽할까. 하필이면 젊고 잘생긴 데다가 기사단 이름마저 ‘장미’.


나는 그의 슬픈 눈망울을 보고 간신히 살심을 억누를 수 있었다. 눈치 없는 황녀는 두 남자의 슬픈 눈을 알아채지 못했다.


“흑건을 어디 두르는지는 정하지 않은 모양이네요?”


“원래는 두건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사람마다 원하는 곳에 두릅니다. 저는 복면으로 쓰지만, 스카프, 심지어 속옷 대신 쓰는 놈도 있습니다.”


“어머!”


안나가 킥킥 웃었다. 황녀는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겨우 참는 모양새였다.


“또 가보고 싶은 데가 있으십니까?”


“전장에 가보고 싶군요.”


“황녀님, 거기는 위험합니다.”


묵묵히 하자는 대로 따르던 하인츠가 처음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황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기사에게 기사도가 있다면, 황족에겐 황족의 의무가 있어요. 황녀인 저야말로 전장의 꽃이자 희망. 피 흘리는 병사들이 저를 보고 투지를 불태울 수 있도록 해야죠.”


투지가 불타기는 한다.

엎어놓고 볼기를 치고 싶은 투지가.


‘어떤 놈이 쓴 소설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반드시 찾는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 아닙니다. 다음을 기약하셔야 하겠군요.”


“어째서?”


“365일 24시간 싸우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 놀고 있다는 말인가요? 소설에선 쉴 새 없이 싸운다고 되어 있었는데.”


죽인다. 내가 반드시 그 소설 쓴 놈 찾아서 죽인다.


-콰광!


갑자기 목책 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뭐지?’


지난 며칠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소리가 들린 것은 처음이다. 나는 지나가는 병사에게 소리쳤다.


“이봐! 무슨 일이야!”


“공습이야!”


“뭐? 어째서 여기까지?!”


“나도 몰라!”


이건 긴급 상황이다. 여태까지 기지가 직접 공격받은 적은 없었으니까.


“황녀님, 후방으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황녀에게 말해서는 소용이 없겠다.


“하인츠 경! 어서요!”


하인츠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움직이려 했지만,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엎드려요!”


와이번이다.


급강하한 와이번 하나가 황녀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장미 기사단이 몰려와 방패를 이어 붙이고 물샐틈없이 막았지만, 상대가 좋지 않다.


-콰앙!


상대는 와이번 중에서도 가장 큰 필드 보스급의 정예, ‘찢어진 날개’다.


황녀를 감쌌던 기사들은 볼링핀 자빠지듯 튕겨 나갔다.


“또 온다! 일어나서 다시 막아!”


장미 기사단은 절뚝거리면서도 기어이 진형을 갖췄다.


이번에는 하인츠가 방패진 앞에 혼자 나왔다.


‘오러!’


하인츠의 검에 붉은 기운을 띄는 오러가 넘실거렸다.


하인츠는 날아드는 와이번의 머리에 검을 휘둘렀다. 바위라도 쪼갤 것 같은 기세였지만 찢어진 날개를 상대로는 역부족이었다.


“크앗!”


용케 검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하인츠는 마치 트럭에 치인 것처럼 날아갔다.


“하인츠 경!”


노력이 헛되지 않아 와이번의 비행 궤적이 흔들렸다. 노한 와이번은 하늘을 선회하며 포효했다.


“대장님!”


하인츠는 정신을 잃었는지 일어나지 못했다. 장미 기사단이 방패로 막는 데도 한계가 있다.


“에휴, 어부지리 좀 얻나 했더니.”


이대로는 퀘스트가 위험하다. 나는 기사단 앞에 다리를 벌리고 섰다.


마치 야구선수가 타석에 서듯. 이때껏 사용하던 드워프제 검을 집어넣고 참교육을 꺼냈다.


“여기서 한참 있으려고 했는데, 안녕이네.”


이제 참교육이 내 무기인 것은 세상 사람이 다 안다.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꺼내면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더는 그곳에서 활동하기 어렵다.


그래서 굳이 가명을 쓰는 곳으로 온 건데.


이왕 꺼낸 김에 뽕을 뽑아야지.


-깡!


‘찢어진 날개’의 긴 목이 뒤로 꺾이며 바닥에 처박혔다.


“이 자식아! 그러게 왜 안하던 공습을 해가지고!“


-깡!


“아웃사이더 팬클럽 정보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나 해? 내가 어떻게 숨었는데!”


-깡! 깡!


“맷집 좋구나! 죽어라! 죽어! 크하하!”


-깡! 깡!


오랜만에 참교육을 꺼냈더니 막힌 속이 뻥 뚫리는 효과가 있었다.


아예 날아가지 못하게 목을 붙잡고 직접 대가리를 두드렸는데도, 빙룡의 보스급 부하답게 무려 여섯 대나 버텼다.


시간이 없어서 루팅한 아이템을 대충 쑤셔 넣고 일어났더니, 황녀와 안나, 막 깨어난 장미 기사단장 하인츠까지 경악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이런 야만적인 건 난!”


황녀의 눈에 반짝이는 건 눈물인가? 원하던 대로 전장의 모습을 제대로 본 것 같은데 울기는 왜 울어?


이사벨은 그대로 뒤로 돌아 달려갔다.


“황녀님! 같이 가요!”


“안나, 잠깐만!”


나는 급히 안나를 불러 세웠다.


“왜, 왜요···.”


“읽었다던 소설 제목과 소설가 이름이?”


“몰라요!”


안나는 대답 없이 도망갔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소설가. 넌 안나 덕에 산 줄 알아라.


-띵!


[퀘스트 부분 완료! 황녀 보호]

[황녀를 위험으로부터 구했지만, 전장의 꽃이 되고 싶다는 희망은 무참히 꺾어 버렸다.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고맙소, 아웃사이더 경. 수도에 오시면 꼭 연락주시오.”


하인츠는 그 말을 끝으로 황녀를 따라갔다.


NPC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는구나. 이젠 정말 타임어택이다. 공습을 빨리 정리하고 여기를 떠야지.



[속보! 아웃사이더님 현 위치]


[포레버아싸 회원 여러분! 잠시 종적이 묘연했던 아웃사이더님께서 북부 전선에서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무지성 닥돌로 유명한 흑건 용병단에 몸담고 계셨던 것 같은데, 지금 적의 공세에 맞서 무쌍을 찍고 계신다고 합니다.


지인이 급히 알려줬는데 저는 지금 나로스에서 아웃사이더님의 고행길을 따라 성지 순례 중이라서 가볼 수가 없네요 ㅠㅠ.]


└ 우왓! 나 북부 사냥꾼 마을인데! 그리핀으로 3분 거리에요.


└ 이런···. 난 폴리나. 아무리 빨리 가도 한 시간은 걸릴 텐데.


└ 저는 쏠레 시티. 아슬아슬하네요. 당장 출발합니다.


└ 헛, 나 흑건 용병단인데? 대체 누가 아웃사이더님입니까?


└ 앗, 그럼 님 지금 같이 계신 거에요?


└ 지금 로그아웃 중이긴 한데, 빨리 접속하겠습니다.


└ 님 빨리요! 빨리 가서 동영상 좀! 빨리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나는 목책 위를 뛰어다니며 와이번을 때려잡았다. 와이번의 집단 공습으로 힘을 못 쓰던 흑건 용병단은 내 합류에 숨통을 틔웠다.


하늘에 떠 있다가 급강하하여 들이받거나, 입에 물고 가서 떨어뜨리는 공격방식을 갖고 있는 와이번.


길목만 잘 막고 있으면 한 번에 하나씩 떨어뜨릴 수 있었으므로 내게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봐, 엠와이!”


“왜요! 바쁜 거 안 보여요?”


“애들 열 명쯤 데리고 나가서 저것 좀 막아줘!”


프란츠 단장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마치 공성 무기처럼 바위를 집어 던지는 오거들이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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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주사위는 던져졌다 24.12.11 27 1 12쪽
111 주사위는 던져졌다 24.12.10 27 1 12쪽
110 성동격서 24.12.09 30 1 12쪽
109 성동격서 24.12.08 34 1 12쪽
108 재회 24.12.07 35 1 12쪽
107 재회 24.12.06 37 1 12쪽
106 레벨 업 24.12.05 40 1 12쪽
105 레벨 업 24.12.04 38 1 12쪽
104 다시 나로스로 24.12.03 36 1 12쪽
103 다시 나로스로 24.12.02 46 1 11쪽
102 다시 나로스로 24.12.01 41 1 12쪽
101 북부 전선의 개망나니가 되었다 24.11.30 44 1 11쪽
100 북부 전선의 개망나니가 되었다 24.11.29 43 2 12쪽
99 북부 전선의 개망나니가 되었다 24.11.28 48 1 12쪽
» 재입대 24.11.27 49 2 12쪽
97 재입대 24.11.26 54 1 11쪽
96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 24.11.25 48 1 13쪽
95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 24.11.24 4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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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파티로구나 24.11.22 4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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