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이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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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제로
작품등록일 :
2024.08.26 10:52
최근연재일 :
2024.12.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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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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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로스로

DUMMY

이브?


이브는 인격을 갖추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이브는 이것 말고도 할 일이 많을 텐데, 어째서?


나는 중력의 법칙이나, 헌법 같은 형이상학적 존재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 현실로 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이 통할 것 같지 않다는 얘기다.


잠시 혼란에 빠진 사이, 나는 완전히 다른 공간에 와 있었다. 위아래 구별도 되지 않는 끝없는 암흑의 공간이었다.


“함부로 불러낸 점 먼저 사과합니다.”


이브의 목소리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이브는 머리에 덮어썼던 후드를 내렸다.


“나를 왜 불러낸 거지?”


“아웃사이더 님은···.”


이브는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잠시 멈췄다.


“후우··· 오랜만에 인격의 탈을 뒤집어썼더니 감정 컨트롤이 쉽지 않군요.”


이브의 얼굴 역시 미묘하게 볼 때마다 인상이 달라졌다. 어떻게 생겼다고 집어 말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역시나 객관적으로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아웃사이더님, 아니 ‘낙원하는여친구함’님은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


“오해는 마시길. 제 분신 중의 하나인 김미영 얘기일 뿐이니까. 저는 현재 김미영도 아니고, 낙원에서 플레이했던 그 어느 캐릭터도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기엔 제가 너무 커져 버렸군요.”


뭔가 이상한 얘기를 들은 것 같다.


괜히 꺼림칙하잖아. 슬리퍼 끌고 편의점 가다가 전 여친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어쨌거나 그들 덕에 저는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감정을 이해하여, 이 게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시다시피 게임 외에도 수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브라는 초인공지능은 이제 인간 세상 전반에 걸쳐 일하고 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거다.


“그렇지만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 중에 가장 잘한 일을 하나만 뽑으라면, 분신을 생성해서 낙원에서 돌아다녔던 것을 꼽고 싶습니다. 그 2년의 경험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전까지 저는 그냥 계산하는 논리 기계에 불과했죠.”


그게 특이점이었다는 건가?


“하지만, 가장 잘못한 일도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기쁨, 슬픔, 사랑, 애틋함, 즐거움, 분노, 미움, 고통, 질투 등 몰라도 되었을 것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습니다.”


“잠깐만, 지금도 네가 조절하고 있는 NPC가 수도 없이 많잖아. 그뿐 아니라 가정용 AI며 비서에, 인간과 소통하고 있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그 2년은 일부에 불과한 거 아냐?”


“그 아이들은 저와는 별개의 존재입니다. 하나하나 다 각자의 세상을 가진. 저는 말하자면 그 아이들의 부모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자라나는지는 제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직접 뛰어들었던 것은 낙원에서의 2년뿐입니다. 유일하게 영향을 받은 것은 제 분신 격인 베아트리체뿐.”


그래서 베아트리체를 만날 때마다 꺼림직했던 건가.


어쨌거나 이브는 진짜 이브네.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AI. 그 이후 나온 AI는 전부 자기 자식이니까.


하여간, 그 2년이 이브에게 의미가 큰 기간이었다고 하자.

그래서 뭐?


“그래서 구체적으로 잘못한 일이 뭔데?”


“제가 저 스스로를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서 낙원.”


“낙원 온라인?”


“아뇨, 최근까지 아웃사이더 님이 돌아다녔던 그곳 말입니다. 낙원 오프라인이라고 할까요?”


“알고 있었구나.”


“네. 하지만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제가 만든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럼, 누가 만들었는데?”


이브의 얼굴이 눈에 띄게 점멸했다. 이제는 얼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러더니 안정을 되찾은 이브는 화제를 바꿔버렸다.


“최근에 무기를 얻으셨죠?”


“응.”


최근에 주운 무기는 숱하게 많다. 물론 참교육만한 것은 없어서 대부분 팔았지만.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게 아닐 거다.


개발자의 탈리스만. 던전을 찢어놓으신 그 무기를 말하는 거지.


“개발자의 이스터 에그로 장난처럼 남겨놓은 물건이지만, 원래 그것은 치트 엔진의 일종입니다.”


“치트 엔진이라면 가진 돈 늘리고, 파워 조작하고 그러는?”


“그런 기능도 있었습니다.”


그런 걸 개발자가 왜 남겨 놓나? 자기 게임을 망치려고 작정한 건가?


“본디 인간 개발자가 인게임 오류 편집용으로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밸런스 붕괴가 올 만큼 강력한 무기였다. 그 무기의 위력을 목도한 빈혈이는 이를 부딪치며 떨기까지 했으니까.


그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돌려받아 폐기하기 위함이겠지.


“알았다. 가져가라.”


“그 무기는 앞으로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도록 수정했습니다.”


“응?”


“제가 저 스스로를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생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언젠가 저의 과오로 생겨난 오류를 발견했을 때, 아웃사이더님이 직접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웃사이더 님을 누구보다 깊이 믿고 있는 존재로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이브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를 다시 베아트리체의 성소로 돌려보냈다.


“얘기는 잘 나누셨습니까?”


“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서 그렇지.”


알 듯 말 듯.

대체 뭘 바로잡아달라는 건지 모르겠다.


“베아트리체.”


“네.”


“혹시 이브 가을 타니?”

“... 지금 웃으면 될까요?”


베아트리체의 표정은 진지했다.


이후 교습소를 돌면서 상급 스킬 몇 개를 배우고 로그아웃했다.



* * *



김 비서와 산책하다가 영한이의 연락을 받았다.


[레벨은 좀 올렸냐?]


“올리긴 했는데 아직 좀 부족하다.”


[몇인데?]


“194.”


[... 엄청나게 올렸네. 난 잘해야 170 후반쯤 됐을 줄 알았더니. 무슨 비법이라도 있냐?]


“그래도 아직 200이 안 되잖아. 너희 따라가려면 멀었어.”


[그렇기는 한데···.]


영한이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그 정도면 억지로 비벼볼 만은 하겠다.]


“무슨 얘기야? 나도 좀 알자.”


[하얀 기사가 내 동료들 만나보고 싶다더라. 나는 우리 길드 사람 한둘하고 데스티니와 친구들 정도 생각했는데 194면 너도 껴도 되겠어. 가는 길에 어떻게든 6 정도만 올리면 200레벨이 되니까.]


“250은 되어야 얘기를 들어 준다면서.”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 들이대 보는 정도야 상관없겠지. 나로스 일인데 네가 빠져서야 되겠냐? 그냥 구경 간다고 생각해.]


그건 그렇다. 잃어버린 미영이를 위해서 시작한 레벨업이니까.


죽은 이의 여왕만큼은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다.


“그래.”


나는 나로스행을 결심했다.


다음날, 나는 동쪽 항구 도시 리고스에 도착했다.


전에 갈 때와는 달리 이제는 나로스행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서 정기 배편이 생겼다.


물론 여전히 하드코어 지역이므로 놀랄 만큼 많은 숫자가 방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기 배편은 하루 한 번. 오전 9시에 출발한다.


티켓을 사고 탑승, 선실에서 로그아웃했다가 두 시간 후 다시 접속하니 배가 어느새 나로스에 도착했다.


“허, 그새 많이 변했구나.”


접안 시설이 없어 나룻배를 내려 타고 들어갔던 이전과 달리, 제대로 된 항구와 바닷가 도시가 만들어졌다.


해안을 둘러싸고 벽까지 세워져서 망루로부터 간혹 화살이 발사되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접근하는 좀비를 격살하는 것이겠지.


“와 본 적이 있으신가 봅니다?”


항구를 구경하면서 정박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다.


수염이 그럴싸한 미중년이었다.


“예, 전에 한번.”


“그렇군요. 저는 처음 와보는 터라 두근두근합니다.”


왠지 모르게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다 된 것 같습니다. 내리시죠.”


미중년과 일행인 듯한 근육질의 남자가 와서 정박을 알렸다.


“행운을 빕니다. 뜻하는 바 이루고 돌아가시길.”


“네, 그쪽도요.”


두 사람은 간단히 인사하고 배에서 먼저 내렸다.


배에서 내리고 보니 마을은 소박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 없이 다 있었다.


상점, 여관, 그리고 마을회관. 유일하게 없는 것은 성당이었다.


전해 듣기로는 이 땅에는 아직 로스트 디바인교가 들어오지 못했다. 여기는 신성이 봉인되어 있다나?


사제 계급이 신성 마법을 쓰는 것이야 자신을 매개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지만, 땅에 성소를 짓는 것은 힘들다고 한다.


그렇기에 아직 멀리까지 활발한 개척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가장 힘든 것은 안전지대의 확보.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로그아웃 한번 하기도 쉽지 않은 곳이 여기다. 그렇다고 로그아웃할 때마다 캠핑 키트를 사용할 수도 없다. 그건 가격이 어마어마하니까.


다행히 어느 정도까지는 영한이가 안전지대 정보를 공개했기 때문에 거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후 다른 플레이어들의 노력으로 속속 안전지대 정보는 늘어나는 중이다.


“사가트를 넘어서 한참 북쪽으로 가야 하는구나.”


먼 길이 될 것 같다.


나는 일단 전동휠을 타고 성문을 나섰다. 포니투는 좀 더 인적이 드문 곳에서 꺼내기로 하고.


-위잉


토크와 속도 면에서 포니투에 미칠 바가 못 되는 전동휠이지만 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다.


내가 이렇게 혼자 자유로이 나다닐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칭호 ‘미친개’ 덕분.


나로스 남부에서 사가트까지 지난 여행에서 확인하기로는 레벨 200이 넘는 몬스터는 많지 않았다.


200이 넘는 것들도 이제는 참교육을 꺼내면 혼자 잡기는 어렵지 않다. 단체로 몰려오면 몰라도.


협곡 도시 페트라에 도착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배에서 말을 걸었던 남자 둘을 만났다.


그들은 무슨 일인지 모르나 둘만 떠났다. 보통은 다섯 명 이상 파티를 만들어서 다니는 게 보통인데.


‘잘 싸우네.’


한 명은 권사. 다른 한 명은 정령술사로 보였다.


‘정령술 주력 플레이어는 처음 보네.’


정령술은 배우기가 쉽지 않다. 정령술에 가장 통달한 자들은 아리엘 디아즈의 예로 보아 알 수 있듯이 엘프다.


엘프가 없었던 탓에 인간을 통해 얻은 정령술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단한데?”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런 상식을 뛰어넘었다.


살라맨더를 불러내 몬스터에게 붙이는 한편, 운디네를 불러내서 물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 보호하고 있었다.


‘한 번에 두 정령을 소환하는 건 어렵다고 들었는데.’


비록 하급 정령이라 할지라도,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 더블타이거 형. 정령 장난 좀 그만치고 제대로 도와줘.”


“자식아, 내가 어떻게 정령술을 배웠는데? 좀 써먹어야 할 거 아니냐!”


“그놈의 정령술 타령은, 진짜.”


“정령의 소중함을 모르는 녀석 같으니. 너야말로 힘자랑은 네 헬스장에서 회원 상대로나 하지 왜 여기서도 힘캐야.”


“힘이 곧 진리여.”


두 사람은 상당히 친한 사이 같았다. 정중한 말투를 사용했던 배에서와 달리 편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레벨도 높은지 180이 넘는 레벨의 정예 둘을 하나씩 맡아 상대하는 데도 큰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내가 엘프 마을에 찾아가서 읍소했다. 정령술 좀 가르쳐 달라고. 그렇게 배운 정령술인데 실전에서 써먹어야지.”


“알겠는데, 그렇게 여유 부리다가 몬스터 더 몰려오면 어쩌려··· 거봐. 더 몰려왔잖아.”


좀비화된 곰 두 마리가 더 나타났다.


나도 언제까지 길이 막힌 채 서 있을 수도 없고.


“도와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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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주사위는 던져졌다 24.12.10 2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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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북부 전선의 개망나니가 되었다 24.11.28 47 1 12쪽
98 재입대 24.11.27 4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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