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균자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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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5.01.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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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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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식충 Ⅰ

DUMMY

#009. 식충 Ⅰ


차 안은 시끄러웠다. 선생님이 틀어놓은 음악소리, 그리고 앞에서 동아리원들이 떠드는 소리··· 거기다 옆에서 계속해서 말을 걸어대는 지수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거기다가 차 뒤에 실어 놓은 싸구려 햄버거들에서는 기분 나쁜 냄새가 풍겨왔다.


"야 김유환. 너 나 무시하냐?"


"무슨 말이야 또."


계속되는 지수의 장난에도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결국 뿔이난 지수는 마스크 속으로 잔뜩 삐진 표정을 지어내며 나를 노려보았다.


"요즘 들어 부쩍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가 있나···"


나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런 지수를 쏘아보았고, 지수는 눈을 살짝 감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나저나 나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안된다고 하면 안 물어볼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지수는 앞자리에서 선생님의 음악소리와 함께 신나게 떠들고 있는 동아리원들을 슬쩍 엿보더니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도대체 이 망할 놈의 동아리는 왜 하겠다고 한 거야?"


"아··· 그거?"


"너무 궁금해. 거기다가 나는 왜 끌어들인 거고?"


"그야 네가 그날 나 발표하게 했으니까? 복수 같은 거지."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지수는 한숨을 옅게 내뱉었다.


"그래서. 동아리는 왜 하겠다고 한 거야? 여긴 어떻게 들어올 수 있게 된 거고?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잖아."


지수는 이제 짜증이 가득 났을 때만 짓는 얼굴을 하고는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이제는 정말 답을 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나는 지수가 한 것처럼 앞 좌석의 애들과 선생님이 시끌벅적한 것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2 도시 사람들을 인도적으로 챙기는 모습으로 이미지 좀 쌓아보려고. 이번 달 말에 시의회에서 청년 당원 평가가 있거든. 어차피 별 문제없겠지만, 그래도 좋은 이미지 하나 더 쌓아두면 나쁠 것 없잖아? 그래서 아버지한테 말씀드려봤지 혹시 될까 싶어서. 진짜 될 줄은 몰랐지만."


"아··· 이 악랄한 놈··· 그럴 줄 알았어. 네가 아무 생각 없이 선뜻 이런 일을 할리가 없지."


나의 말에 지수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나는 그런 지수에게 다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상관없다는 듯한 제스처를 보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이번 달 말에는 시의회 청년 당원 평가가 있었다. 어차피 아버지 후광도 있고, 그동안 대부분의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어떠한 문제도 없이 지내왔기에 1등은 따놓은 당상이었지만. 앞으로 도시와 시정에 이런저런 영향을 줄 2 도시 사람들과 관련된 일에 먼저 앞장서서 나서는 모습을 쌓아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준수 덕분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 것이었다.


"자자 모두들 10분 뒤면 도착하니까 그렇게 알고. 이따가 또 말하겠지만 2 도시 사람들이랑 직접 접촉은 피하도록해. 감염될 확률은 거의 없다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고 무엇보다 규정이 그렇게 돼있으니까 말이야. 알겠지?"


"네!"


나는 대충 대답하고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창고 같은 모양의 회색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랑 이곳에 온 게 어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니 시간이 참 빠르다고 느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저번과는 달리 건물 밖에 치안대 사람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탄 차량은 건물 입구가 아닌 이상한 지하로 내려갔고, 지하 2층까지 내려가서야 우리는 '검수구역'이라고 적힌 무슨 물품 하역장 같은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검수구역에는 흰색 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 중 하나는 우리 차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부리나케 우리를 향해 뛰어왔다.


"학교 봉사 동아리에서 오신 거죠? 연락받았습니다."


"아 예예. 바쁘신 중에 민폐가 아니려나 모르겠네요."


"아이고 아닙니다. 우선 저쪽에 사무실로 들어가시죠."


그는 선생님과 인사를 간단히 나누고 우리를 사무실이라 불리는 컨테이너로 안내했다. 선생님부터 차에서 내리고 한 명씩 선생님을 따라 그 사무실로 이동했는데 지수는 어느새 짜증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야 여기··· 습하고 냄새도 이상해."


지수는 투덜거리며 걸었고 나는 그런 녀석의 뒤를 따라 컨테이너 사무실에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정말 기본적인 컴퓨터와 주변기기 그리고 낡은 의자들과 정수기 하나가 전부였고 우리는 모두 그 낡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우리를 맞아준 담당자에게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들었다. 대충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고 가급적 정면으로 마주 보고 말도 섞지 말라 뭐 이런 식이 었는데 사실 규정이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한 달이나 격리를 시켜서 면역이 확인된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감염될 확률은 거의 없을 터였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전에 장하나 주무관님 연락하고 오신 거죠? 오늘 무슨 견학도 하신다고 전달받은 것 같은데···"


"네. 오늘 이쪽으로 오면 본인이 연락받고 내려올 거라고 하셨어요. 저희 애들이 시설 돌아보면서 혹시 또 봉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찾고 싶다고 해서요. 혹시 연락 갔을까요?"


흰 옷을 입은 담당자는 선생님의 말에 난처한 듯 "쓰읍" 소리를 내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 장주무관님이 오늘 급하게 시청에 가서··· 혹시 자기가 못 오게 되면 저보고 안내를 해달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밖에 제가 동료들이랑 검수해야 할 것들이 쌓여있어서. 조금 기다리셔야 될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아··· 그러죠 뭐···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네네. 죄송하게 됐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선생님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담당자가 사무실을 비우자마자 바로 어디론가 급하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일정이 늦어질 것 같으니 학교에 연락을 하는 것 같았다. 나와 다른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각자의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시간을 때웠고, 그러던 와중에 밖에서 누군가가 대화하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가 왔나?"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그 담당자가 사무실로 들어와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여기 임시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특식 수령하러 내려왔는데. 괜찮으시면 이 학생들 안내받아서 먼저 올라가시는 건 어떨까요? 저도 바로 따라가겠습니다. 여기 계속 계시는 것 보다 그게 나을 것 같아서."


"위험하지 않나요?"


선생님의 질문에 담당자는 걱정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유 위험할게 뭐가 있나요. 그냥 적당히 거리만 두면 됩니다. 아마 올라가시면 치안대 요원이 붙어서 도와드릴 거예요."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차피 저희도 돌아갈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네네. 걱정 마세요."


담당자의 말이 끝나고 상황을 파악한 우리는 한 명씩 답답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 또래로 보이는 남학생 두 명이었는데 회색으로 된 체육복 같은 옷을 입고 우리가 가져온 햄버거 박스를 들고 서 있었다. 하나는 반장 준수처럼 어딘가 매가리 없어 보이는 모습에 뚱뚱한 녀석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꽤나 잘생긴 녀석이었다.


"쟤네가 우리 안내해 주는 거야?"


지수는 벌써부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런 녀석들을 바라봤고, 이미 지수에 홀린 듯한 모습의 퉁퉁이는 넋이 나간 얼굴로 그런 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에 그 옆에 있는 놈은 어딘가 묘한 눈빛으로 우리를 훑어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거리는 계속 둬. 어차피 말 섞을 일도 없겠지만."


나는 그런 지수에게 한 마디 던져주고는 앞으로 먼저 나섰고, 뒤따라 뒤에서 선생님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친구들이 우리를 일단 위 층까지 안내해줄 거야. 아까 말했듯이 직접적인 접촉이나 대화는 자제하도록 하고. 그럼 안내 좀 부탁할게?"


"아··· 이쪽을 오세요!"


선생님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한 퉁퉁이는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했고, 그 뒤를 그의 친구 녀석이 뒤따랐다. 우리는 선생님을 필두로 그런 둘을 따라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향했고, 숨이 어느 정도 차오를 때쯤이 돼서야 햇빛이 들어오는 1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야··· 신기하게 지어놨네."


반장 준수는 1층에 올라오자마자 자기가 쓰고 있는 안경을 고쳐 잡으며 말했다. 준수뿐만 아니라 다른 동아리 원들, 그리고 지수까지도 커다란 기둥 같은 것을 중심으로 한 채, 가로 세로로 얽혀서 층층이 쌓여있는 건물 내부에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희 이제 마음대로 둘러봐도 되는 거예요?"


아까와는 달리 어딘가 신이 난 모습의 지수가 폴짝 뛰며 묻자 선생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 주위에는 정말이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2 도시의 노인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모습을 보니 별로 안전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안내를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그때 눈치 없는 퉁퉁이가 갑자기 나서며 선생님에게 말했고, 선생님은 살짝 당황한 눈빛으로 그런 녀석을 바라보았다.


"무슨 짓이야 진수야. 아까 전달사항 벌써 까먹었어? 우리는 저 사람들이랑 접촉을 피해야 한다고. 사실 지금 이걸로 혼나도 전혀 안이상한 상황이란 말이야."


아까 우리를 묘한 눈빛으로 보던 나머지 녀석은 그런 그의 친구를 뜯어말렸고, 선생님은 그런 둘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지만 둘은 여기까지 안내해 주면 될 것 같아. 우선은 음식 식기 전에 어서 가져가서 친구들이랑 나눠먹도록 해. 그럼 어서 가봐."


선생님의 말에 둘은 꾸벅 인사하고는 어디론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수라는 이름의 퉁퉁이는 그 와중에도 미련이 남는지 중간중간 뒤돌아보았고, 그런 녀석의 친구가 옆에서 그런 그를 끌어당기며 제지했다.


"뭐··· 당연히 안전한 공간이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까 그 담당자를 기다리자. 우선··· 어디 보자··· 저기 단상 위에 있는 치안대 요원 옆에서 다 같이 기다리자."


선생님의 결정에 몇몇, 특히 지수는 많이 흥미를 잃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단상으로 모두 발걸음을 옮겼다. 단상은 그렇게 높지 않은 것 같았는데 올라서보니 여기저기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치안대 요원은 우리가 올라오자 자리를 조금 비켜주었고, 우리는 그런 단상에 서서 우리를 올려다보는 2 도시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얼굴에 쭈글쭈글하게 주름이 자리 잡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밑에서 여러 감정이 섞인 듯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어딘가 미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딩동댕]


어딘가 홀린듯한 기분이 들 던 그때 건물 내부에 요란하게 종소리가 울렸고, 그러자 나를 올려다보던 노인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 둘 자리를 떠나 우리가 올라왔던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당최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있는 우리를 옆에서 보던 치안대 요원은 그런 노인들을 바라보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밥 쳐 먹으러 가는 거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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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42. 정체 Ⅲ 25.01.21 2 0 12쪽
41 #041. 정체 Ⅱ 25.01.16 3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5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7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6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5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7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7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8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8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7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7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7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7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7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8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7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8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9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9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8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8 0 12쪽
20 #020. 비보 Ⅰ 24.11.05 9 0 12쪽
19 #019. 엎친데 덮친 24.10.31 10 0 12쪽
18 #018. 의문사 Ⅲ 24.10.29 11 0 12쪽
17 #017. 의문사 Ⅱ 24.10.24 17 0 12쪽
16 #016. 의문사 Ⅰ 24.10.22 17 0 12쪽
15 #015. 밥상머리 Ⅱ 24.10.17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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