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식충 Ⅱ

#010. 식충 Ⅱ
셀 수 도 없이 많은 노인들이 밥을 먹기 위해 좁은 계단통로를 통해 끝도 없이 내려갔다. 그런 그들의 모습의 보니 마치 공원에 뿌려진 과자 부스러기를 쫓는 비둘기 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줄이 걸어가는 그 모습이 정말이지 우스워서 당장이라도 웃음이 삐져나올 것 같았지만 입술을 살짝 깨물며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우리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분들인데··· 슬프네."
반장 준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을 포함한 몇몇 동아리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준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저분들도 다 2 도시에서는 우리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집에서 지내셨을 텐데··· 참··· 이렇게 지내시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
"네··· 몇몇 분들은 걷는 것도 불편해 보이는데 여기는 계단 밖에 없어서 더 힘드실 것 같아요."
"그러게···"
그렇게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노인들의 행렬이 끝나자 아까 흰 옷을 입고 있던 담당자가 헐레벌떡 계단실을 뛰어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아까와는 달리 조금은 편해 보이는 마스크를 차고 있었고, 숨을 헐떡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담당자님 여기입니다!"
"아!"
두리번거리던 담당자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단상 쪽을 쳐다보고는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런 그의 마스크에는 어느새 입김이 잔뜩 서려있었다.
"하··· 오래 기다리셨죠? 점심 식사 시간이 겹치는 걸 깜빡했네요··· 그래도 어떻게 보면 다행입니다. 식사시간엔 전부 지하 2층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공용공간에 사람이 많이 없거든요. 그럼 이쪽으로 내려가서 1층부터 보실까요?"
"그러시죠. 얘들아 천천히 담당자님 따라가자."
"네. 선생님."
우리는 어느새 텅 비어있는 1층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1층은 휴게실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지 식탁과 의자가 여기저기 놓여있었고, 한 편에는 학교 보건실 같은 느낌의 의료실과, 많이 부족하지만 구색은 갖춰놓은 편의점도 있었다. 거기에 커다란 티브이가 놓인 방도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채널 변경은 안 됐고, 명상 영상만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야··· 여기 살면 엄청 지루하겠다."
지수는 그런 티브이가 있는 방을 보면서 한 마디 던졌고, 나는 그런 지수의 말에 당치도 않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이것도 어디야. 2 도시 지원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세금으로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거잖아. 감사한 줄 알아야지."
"너는 참··· 가끔 보면 너무 계산적이라니까?"
지수가 팔짱을 끼더니 나를 응시하며 말했고, 나는 그렇지 않다는 듯 다시 손을 가로저었다.
"그렇다기보단 우리 사람들을 더 챙기는 거지. 뭐··· 우리 집에도 먹을 게 없는데 갑자기 옆집 사람들이 당장 죽겠다고 문 열고 들어와서 음식 가져가고 방도 한 칸 차지하고··· 그건 좀 아니지 않아?"
"그렇긴 한데··· 야, 애들 온다."
지수와 한참 진심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다른 동아리원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지수는 눈치껏 나의 팔을 찌르며 그만 떠들라는 듯 나를 막았고, 나는 입을 꾹 닫고 그저 신기하다는 듯 방 안을 둘러보는 모습을 보였다.
"얘들아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 것 같아? 아니면 건의사항도 좋고. 준수는 뭔가 체육시설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하던데."
동아리원 중 하나가 한 손에 메모장과 펜을 들고 이것저것 끄적이며 나와 지수에게 물었고, 지수는 1초의 고민 없이 명랑한 목소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뭔가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뜨개질이나 뭐 그런 거 말이야. 할머니들은 그런 거 좋아하잖아. 아니면··· 바둑이나 장기 같은 할아버지들 취향의 것들도 좋을 것 같고. 우리 또래 애들이야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상관없을 테고."
"그게··· 여기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안된데. 통신사가 2 도시랑 달라서 그런가 봐."
"와 진짜?! 그럼 여기 애들은 뭐 하고 노는 거야 대체?"
"몰라··· 아마 엄청 심심하겠지 하루종일···"
지수와 동아리원들은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체육활동과 취미활동이라는 말에 조금 어이가 없었던 나는 그저 그런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가뜩이나 예산 부족에 허덕이는 우리 도시였는데 여기에 또 돈을 써서 그런 것들을 만들어주자고 하는 것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만 보자··· 체육활동과 취미생활이라···'
그러던 중 순간 무언가 번뜩하고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차피 건의해봤자 어른들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도 있었지만 만약 실현된다면 어느 정도 생산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럼 혹시 '공작소'는 어때?"
"공작소?"
"그게 뭐야?"
그게 뭐냐는 지수의 말에 나는 한숨을 짧게 내쉰 뒤 간단히 공작소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런저런 물건을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 뜨개질이라고 했잖아? 그런 걸 하는 공간인데 좀 더 다양한 걸 만들 수 있게 시설을 갖춘 거지."
"다양한 거라면 뭐···?"
"글쎄. 시에서 어떤 재료들을 지원해 주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그건? 기계나 마스크나 뭐···"
"작은 공장 같은 거야?"
어느새 다가온 준수가 궁금증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묻자 순간 뜨끔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침착함을 유지한 채로 그런 준수에게 당치도 않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공장은 일하는 곳이잖아? 공작소는 자기들 취미생활 하는 곳이지. 거기다 체육시설이 필요하면 자기들이 직접 만들 수도 있는 거고··· 아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전에 다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셨을 테니 그 정도는 충분히 하실 거야. 우리는 그냥 그걸 만들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드리는 거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오···"
어느새 나의 말에 설득이 된 듯 한 모습의 준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뒤이어 우리를 따라온 선생님이 한 마디 거들었다.
"괜찮은 생각이긴 하네. 물론 비용 문제랑··· 안전 문제가 있어서 될지는 모르겠다만, 건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선생님이 견학 보고서에 한 번 넣어볼 테니까 어떻게 될지 한 번 지켜보자."
"저도 이번 당내 청년 회의에서 한 번 얘기해 볼게요."
"오 그러네 유환이가 거기서 얘기해 보면 좋겠는걸?"
선생님과 아이들은 나의 말에 반색했고,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멋쩍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모두가 그렇게 나의 연기 아닌 연기에 호응해 줬으나 지수만큼은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연신 가로젓고 있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전화 좀 받느라··· 이제 장주무관님이 거의 다 오셨다고 하네요. 아마 오시면 저 대신 안내 계속 도와드릴 겁니다."
"아 괜찮습니다."
우리가 방을 둘러보는 동안 전화를 받으러 갔던 담당자가 돌아왔고, 그는 선생님과 몇 마디 더 나눈 뒤 다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의 그와 동시에 건물 입구 문이 열리며 키가 큰, 모델 같은 모습의 여자가 뚜벅뚜벅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많이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주무관님. 바쁘신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제가 미리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저희 방문 요청을 받아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죠."
새로운 얼굴은 아무래도 원래 오늘 우리를 안내해 주기로 한 공무원 같았다. 그는 마치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과 우리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왠지 그게 진심으로 와닿지는 않았다.
"그럼 1층은 다 둘러보신 걸까요?"
"아~ 네. 아까 그 흰 옷 입으신 담당자분과 함께 돌아봤습니다."
"아하. 그러면 2층은 제가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장주무관과 선생님이 앞장서자 준수와 나머지 동아리원들이 뒤를 따랐다. 나와 지수는 가장 뒤에 서서 그 뒤를 쫓았다.
"이쪽 계단으로 올라오세요."
우리는 장주무관의 안내에 따라 2층에 도착했고, 역시나 가는 길은 계단 천지였다. 보통 일자로 만들었을 계단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그재그로 꼬아놓았고, 그래서인지 엄청 불편한 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2층도 동그랗게 지어진 건물 내부를 따라 방이 하나씩 듬성듬성 있는 것이 벽만 보면 1층과 별다를 게 없는 구조였는데 다른 게 있다면 1층처럼 바닥이 없고, 한쪽 끝과 나머지 한쪽 끝을 이어주는 철제 다리 같은 것이 십자로 나 있었다.
"조심하세요. 펜스를 높게 해 놓긴 했는데, 그래도 자칫하면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장주무관은 우리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철제 다리 위에 올라 밑을 내다보았다.
"2층에도 1층처럼 공용시설이 있어요. 대부분 임시 학교와 관련된 곳들이고 저쪽에 보이는 방부터 오른쪽으로 각각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임시 배정해 놨어요. 아무래도 조건이 열악하다 보니 학년에 맞춰서 수업은 힘들고, 나이대가 비슷한 아이들끼리 묶어서 반을 구성했죠."
주무관이 가리키는 반대편 방향을 바라보니 그의 말처럼 방이 여러 개 나란히 붙어있는 곳이 있었는데, 문이 닫혀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수업 중인 모양이었다.
"여기 학생들이랑 얘기해 볼 수 있나요?"
"준수야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안전 문제도 있는데."
"그냥··· 저희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을지 직접 얘기해보고 싶어서요. 같은 또래잖아요."
주무관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준수가 앞으로 나서며 선생님에게 물었고, 선생님은 조금 당황한듯한 얼굴로 장주무관 눈치를 보았다. 장주무관은 그런 선생님의 눈빛을 보더니 우리에게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고는 교실 중 하나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돌아온 장 주무관은 마스크 속으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여기 담임 선생님과 얘기해 봤더니 거리 두기를 한 상태에서 잠깐 대화하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하시네요. 확인해 보니 그 정도면 저희 규정에 어긋나는 부분도 없고요. 그래서 괜찮으시면 이따가 점심시간에 10~15분 정도 몇몇 선별된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공은 선생님에게 넘어갔고, 준수와 몇몇 동아리원들은 간절한 눈으로 그런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그런 애들의 표정을 하나씩 보더니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주무관에게 말했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신에 거리두기 관련해서 제가 사전에 몇 가지만 확인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필요한 것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저희 사무관님도 최대한 도와드리라고 하셨거든요."
"감사합니다. 그럼 우선···"
선생님과 주무관은 우리 옆에서 앞으로 있을 대화 시간에 대해 이런저런 논의를 하기 시작했고, 준수와 나머지 아이들은 다들 신이 난 모습으로 무엇을 물어볼지 노트에 하나씩 적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뒤로한 채, 철제 다리에 기대어 하나둘씩 밥을 처먹고 올라오는 사람들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뭐 해?"
어느새 지수가 옆에 서서 그런 나를 보며 물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내뱉었다.
"꺼지라고 신호 보내고 있는 거야."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