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밥상머리 Ⅱ

#015. 밥상머리 Ⅱ
"빌어먹을, 며칠 조용히 굴러간다 싶더니만···"
누군가가 죽었다. 시설에서. 그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순간 당황하며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정태용이 거기 담당이지? 당장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해. 안그래도 조만간 얼굴 한 번 봐야겠다 싶었는데 잘됐네."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식모 아주머니를 불러 다과상이라도 간단하게 준비하라고 언질을 주었고, 나는 자리에 그냥 앉아 아버지의 통화내용에만 귀를 기울였다.
"헌장에는 주무관급 몇 명 붙여놓고 당장 튀어오라고 해. 어차피 지금 시간이면 퇴근했으니까 널널할거 아니야? 30분 내로 오라고 해."
아버지는 끝에 약간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고, 그러자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아버지 옆에서 나지막이 물었다.
"손님 오시는거죠?"
"손님?"
아버지는 어머니 말에 잠시 다른 세상에 가있었다가 돌아온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아 그렇지. 그 알지? 정태용이라고. 예전에 내 밑에서 직속으로 수행하던 놈. 그녀석이 올거야."
"몇 번 봤었던 것 같네요. 다과상이라도 준비해 놓으라고 했는데 괜찮죠?"
"다과상? 당치도 않지. 어차피 밥 다 먹고 집에서 누워있다 전화받았을텐데. 그냥 이따가 물이나 가져오라그래. 벌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다과상은 어림도 없지."
"알겠어요."
아버지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부엌으로 간 식모아주머니를 찾아갔고, 나와 아버지만 어느새 음식이 조금씩 치워지고 있는 테이블에 앉아 정적을 지키고 있었다. 대충 상황을 종합해보면 시설에서 누군가가 죽었고, 그걸로 인해 최종책임자 중 하나인 아버지에게 까지 연락이 온 것 같았다. 초기에도 누군가 죽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에 또 그런일이 발생했다고하니 천하의 무신경한 아버지라도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새였다.
"전 들어가 있을까요?"
어색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던 내가 조심스레 묻자 아버지는 그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가 갑자기 "아니다."라고 말하더니 자리에 다시 앉으라는 듯 의자에 손짓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 그리고 어딘가 기대스러운 마음을 동시에 안은 채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너도 당의 청년당원이고. 거기다 시설에 직접 드나드는 관계자 중 하나니까. 어떻게 보면 이런 것도 조금씩 배워가는 게 좋겠지. 돌발 상황이나 변수 같은 것 말이야."
나는 아버지 말에 잘 알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을 짓고 그를 바라보았다. 왠지 아버지는 나를 슬슬 자신의 밑에서 확실히 키울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얘기한 의견을 실제로 채택한 것도 그렇고··· 거기에 이런 심각한 대화자리에도 나를 동석시키겠다니 말이다.
"상황은 대충 들었겠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식탁 위에 있는 핸드폰을 손가락으로 툭, 툭 툭,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시설 내에 사망자가 발생한 거야. 갑자기 말이지."
"아···"
궁금하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일단 아무 말하지 않고 입을 닫고 있었다.
"노인네 둘이서 싸우는걸 할머니 하나가 말리다가 송곳에 찔려 죽었다네."
"그것 참 안타깝네요."
나는 최대한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슬쩍 보더니 아니라는 듯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다 자기들이 스스로 벌인 일이야. 자세한 건 정태용이가 와야 알겠지만 말이다."
"네··· 그런데 거기에 응급실도 있는데 거기선 조치를 못 한 건가요?"
"거기 응급실은 너네 학교 보건소 수준이야. 뭐 제대로 된 걸 하지 못해. 그렇다고 거기 사람들을 외부로 옮기는 것도 아직은 불가능하고 말이다."
"응급상황에서도요?"
"응급상황이라고 해도 다를 게 없지."
다소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죽어갈 정도로 응급한 상황인데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너··· 요즘 뉴스 보면 병원마다 의사가 없다, 병상이 없다. 이런 걸로 아우성치는 거 알고 있지?"
"아··· 네."
"우리 도시 사람들도 응급상황에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아 사망하고 있는 와중에 2 도시 사람들까지 시내 병원에서 치료한다? 이건 어불성설이야. 그래서 애초에 관련된 규정이 있었던 거고."
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 시내의 병원에서도 의사가 없거나 병상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죽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버지는 시장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의료인력 양성 프로그램 등을 몇 년째 진행하기도 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대체 왜 싸운 거지?"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더니 그렇게 말을 이었다.
"송곳은 대체 어디서 난 거야? 도망칠 때 가져온 건가? 아니면 뭐···"
"..."
순간 아까 말했던 ' 공작소'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의 머릿속도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뭐, 그건 일단 정태용이 오면 하나하나 확인해 보면 될 일이고··· 그나저나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무슨 말 인지 알지?"
"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엎질러진 거야. 되돌릴 수 없어. 일단 어떻게 이걸 수습할지를 생각해야지."
[딩동]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초인종 소리가 울렸고, 식모 아주머니의 분주한 발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정태용이라는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식탁 쪽으로 뛰어왔다.
"부시장님. 찾으셨습니까?"
"어. 거기 앉아봐."
정태용 사무관이라는 사람은 볼록 튀어나온 배에 팔에 털이 가득한, 뭔가 호감 가는 인상은 확실히 아니었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했지만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그렇게 높은 사람도 아닌 것 같았다.
"아, 아드님도 같이 계셨군요. 하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둔한 건지 정신이 없는 건지, 그는 자리에 앉고 나서야 내가 있다는 걸 알아채고는 급히 인사를 했다. 나는 어이가 조금 없었지만, 일단 그런 그에게 방긋 미소 지으며 인사를 했다.
"우리 유환이도 당의 쳥년당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시설에 직접 드나드는 몇 안 되는 관계자 중 하나기도 하니까 말이야. 지금부터 조금씩 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불만 없지?"
"아아 그럼요 부시장님. 불만이 있겠습니까. 안 그래도 아드님이 시설 오실 때마다 한 번 인사라도 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맞아서 하하···"
"그럼 다음부터는 신경 좀 써봐."
"네 물론 입죠."
사무관은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자기 얼굴과 마스크 위로 흐르고 있는 땀을 닦아냈다. 그런 그의 땀이 바닥에 혹여 떨어질까 나는 그를 예의주시했다. 정말이지 2 도시 사람들보다 더 더러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럼 처음부터 얘기해 봐. 어떻게 된 일인지."
"아··· 그것이···"
정사무관의 얘기는 이러했다. 공작소가 생긴 다음부터 시설 내에 어떠한 시장 경제가 생겨났는데 여기서 빈부격차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현금이 없는 자와 있는 자 사이에 갈등이 조금씩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점차 커지다가 이번에 공작소 사제 마스크를 만들던 노인과 그 마스크를 구걸하던 노인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있었고, 그걸 막으려던 노인의 부인이 송곳에 찔려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인간은 참 신기해."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떤 환경에서든 편을 가르는구만 편을."
"하하··· 저희도 사실 계속 관찰 중이던 이슈이긴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일이 터질 것은 예상 못해서···"
"단 한 번도 보고서에 언급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의 말에 정사무관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오므리고 꾹 닫았다. 아버지는 그런 그를 보더니 혀를 차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근데 내가 듣기론 두 명이 죽었다고 들었는데? 아까 그 노인의 부인하고, 나머지 하나는 누구야 그러면?"
"아아! 그 직접 싸우던 노인입니다."
"아니···"
아버지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두 명이 싸웠잖아. 그러면 그중에 누구야?"
"아! 그 불만을 갖고 있던 노인입니다. 공작소에서 마스크 만들던 노인이 아니라."
"그러니까 그 돈이 없어서 마스크 구걸하던 노인도 죽었다는 얘기야?"
"맞습니다."
"그 사람은 왜 죽었어요?"
내가 대화 중간에 갑자기 끼어들자 아버지와 정사무관 둘이서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찰나의 정적이 흘렀고, 이윽고 아버지는 정사무관을 바라보더니 "왜 죽었어?"라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정사무관이 다시 한번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답했다.
"그게··· 사고가 좀 있었다고 들었는데."
"사고?"
말을 하는 아버지의 눈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평소 심기가 불편할 때 보이는 표정이었다.
"네··· 그 저번에···"
정사무관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말을 끊고 아버지의 눈치를 보았다. 아버지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무관은 그다음에도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천천히 다시 입을 열어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번에 일부 치안대 요원들이 완전 격리 기간 동안 무리하게 통제하다가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처럼 같은 경우입니다. 이번에는 지하 격리실로 이송하던 과정에서 통제를 하다가 불가피하게 일이 터졌다는데···"
"치안대 새끼들 대체 뭐 하는 거야?! 사람 못패서 안달난 놈들만 모인거야 뭐야?"
아버지는 사무관의 말을 끊더니 식탁을 부서질 정도로 세게 손으로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신경질 적인 숨소리와 함께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제자리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정사무관은 그대로 얼어붙은 채로 고개를 떨구고 아버지의 분노 섞인 목소리를 계속해서 들어야만 했다.
"미친 새끼들. 저번에도 그런 것도 모자라서 이번에 또? 그리고 애초에 일이 이지경에 될 때까지 거기 있던 다른 놈들은 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야? 그냥 지켜보기만 한 건가? 싸울 때 말리던지 했으면 이렇게 안 됐을 거 아니야!!"
평소에 아버지가 화를 내는 모습을 종종 본 적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크게 화를 내는 걸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사무관도 정사무관이지만, 얼떨결에 자리를 함께하게 된 나도 덩달아 그런 아버지의 분노에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후··· 치안 대대장 내일 일정 혹시 알아?"
"아, 알아보겠습니다."
화를 겨우 식힌 듯한 아버지는 자리에 앉으며 정사무관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기 시작했고, 정사무관은 가져온 노트에 지시사항을 하나하나 받아 적었다. 아버지는 아무래도 치안대 대대장을 직접 만나 책임 소재를 따질 예정인 것 같았다.
"그··· 사망자 처리는 어떻게 할까요?"
노트를 받아 적던 정사무관이 아버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묻자, 아버지는 골치 아프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받치며 말했다.
"할머니는 어쩔 수 없고, 그 미친 노인네는 저번처럼 똑같이 처리해."
아버지의 말에 정사무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에 받아 적었다. 그런 그의 노트에 희미하게 '감염사'라는 단어가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