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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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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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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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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의문사 Ⅰ

DUMMY

#016. 의문사 Ⅰ


"할아버지 몸은 좀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그나저나··· 영미가··· 할망구가··· 그렇게 됐다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치안대 요원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사건이 있은 다음날 아침에 장하나 주무관이 연락을 줘서 겨우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엄연히 말하면 사실이기도 했다. 죽은 할아버지는 덕호 할아버지가 아닌 그 문제의 노인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다음날 다시 지하 격리실에서 만나게 된 할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도 비참했다. 분명히 살이 있긴 했지만, 영혼이 죽은 것처럼 할아버지는 무기력했다. 무슨 말을 해도 할머니 이야기를 끝에 붙이며 좀처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와 쇠창살이 달린 창을 사이에 두고 서서 계속해서 할아버지에게 기운을 북돋아주려 노력했다.


"할아버지 식사는 하고 계신 거죠?"


"응··· 그나저나 할멈이 그렇게 돼서 어쩌냐··· 나 때문에···"


"할아버지···"


할아버지와는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밖으로 나와야 할아버지가 정신을 차리실 것 같은데, 치안대원들 말로는 아마 일주일은 넘게 걸릴 것이라고 했다. 절망적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렇게 창살을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에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것뿐이었다.


"어이 학생. 이제 그만 올라가. 여기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돼."


"네···"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치안대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를 독촉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창살너머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내일 다시 오겠다고 말한 뒤,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무릎사이로 넣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다시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제의 일들이 순간순간의 장면이 돼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때 내가 나섰으면, 그때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며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터질 것 같은 머릿속을 방치한 채로 지상에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응급실의 모습은 이 모든 것에 불을 지폈다.


처음 할머니를 만난 날부터 할머니가 차갑게 식는 순간까지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나는 결국 더 이상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할머니의 죽음도 슬펐지만, 어느 순간 부모님이 죽었을 거란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죽음으로써 그 생각은 내게 거의 기정사실이 됐다. 그리고 그렇게 고아가 됐다고 생각하니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한 동안 가만히 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평소라면 부끄러워했겠지만 이젠 그런 건 다 소용없었다. 그냥 이 순간만큼은 슬퍼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시선이 내 주위로 꽂혀가는 게 느껴질 때쯤, 누군가가 내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이로야."


익숙한 목소리에 눈물을 닦고 뒤돌아보니 4 도시 아이들이 있었다. 오늘은 웬일인지 반장 준수, 유환, 그리고 지수만이 방문을 한 모양이었다. 울고 있는 나의 모습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는지 준수와 지수는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유환이는 비교적 담담한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유환인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며 내게 물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이며 옷소매로 남은 눈물을 닦아냈다.


"슬픈 일이 하나 있었어."


"슬픈 일?"


옆에 서있던 지수가 안쓰럽다는 얼굴을 하고는 앞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얘기해줄 수 있어?."


지수가 계속해서 묻자 지켜보던 유환이가 기다려보라는 듯 지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우선 여긴 장소가 좀 그러니까. 우리 맨날 얘기 나누던 곳으로 가자. 선생님 오시기 전에."


"그래. 그러자."


준수와 유환이가 앞장서서 다용도실로 향했고, 나는 지수와 함께 그런 둘을 뒤따랐다. 그렇게 평소보다 길게 느껴지는 거리를 걸어 도착한 다용도실은 아직 준비가 안 돼서 그런지 너저분했지만 조용했다. 원래 같으면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에나 여기서 모였을 텐데, 나는 이미 수업을 빼먹고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 상황이라 어쩌다 보니 우리끼리만 대화를 먼저 시작한 모양새가 됐다.


"우리끼리만 있지만··· 뭐 상관없겠지?"


유환이가 자리에 앉으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그러자 반장 준수는 다용도실 문 밖으로 누가 오는지 살펴보더니 문을 닫고는 자기도 자리에 앉으며 답했다.


"상관없을 거야. 늘 하던 것 그냥 먼저 하는 거니까."


지수는 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마지막으로 나까지 가림막 너머 자리에 앉자 유환이가 천천히 숨을 고르고는 나에게 조심히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혹시 말하기 너무 어려운 거면 얘기 안 해도 돼."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지수가 그런 내 심정을 안다는 듯 평소보다 훨씬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지수에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인 뒤,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어 털어놓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가 몇 번 말했던 할머니 할아버지 있잖아?"


"응. 그 열차에서 만난 두 분?"


"응···"


"그분들이 왜?"


유환이의 물음에 다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하고 떨어졌다. 나는 최대한 슬퍼 보이지 않으려 그런 눈물을 옷으로 다시 한번 닦아내고 차분하게 하나하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들이게 설명해 주었다. 내 설명을 다 듣고 난 뒤 애들은 다소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시내 병원으로 이송이 안 됐다고?"


유환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내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그는 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건 잘못된 것 같아. 시설도 제대로 안된 의료시설을 갖춰놓은 것도 문제인데 거기다가 응급환자 외부 이송도 안된다니 말이야. 이건··· 너무하잖아."


유환이가 참담하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지수가 그런 유환이를 어딘가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준수는 유환이의 말에 극히 공감한다는 듯 연신 "맞아."라고 말하며 여느 때처럼 가지고 온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유환아. 우리가 이걸 학교에 얘기하면··· 아니 네가 당이나 아버지한테 얘기하면··· 혹시 개선이 될 수 있을까?"


유환이는 준수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모르겠어. 아마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된 걸 텐데 말이야. 그래도 얘기는 해볼 수 있지··· 힘들 것 같긴 하지만."


"그래···"


준수는 다소 무기력한 모습으로 노트에 마침표를 찍고는 유환이가 그랬던 것처럼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던 지수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니 따뜻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럼 할머니 장례 같은 건 어떻게 되는 거야?"


"글쎄··· 장하나 주무관님이 알지 않을까. 나는 사실 가족도 아니니까··· 아니면 할아버지가 알 텐데··· 할아버지도 지하에 갇혀있고··· 모르겠어. 어떻게 될지."


"아··· 그것 참··· 어렵네···"


사실 그날 기절한 뒤로 할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들은 바가 전혀 없었다. 할아버지가 얼른 지하에서 나와야 뭐라도 해결이 될 텐데 그것이 어려우니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이곳에서 한 분 돌아가셨다 하지 않았어? 감염사인가 뭔가 해서? 그분은 어떻게 되었는지 혹시 알아?"


준수가 유환이를 돌아보며 묻자 유환이는 그제야 무언가 생각난 듯한 얼굴로 답했다.


"이 맞아. 그때는··· 장례는 따로 없었고, 시신은 아마 시 외곽의 화장터에서 화장하고 공립 봉안당에 안치됐다고 들었던 것 같아."


"그렇다면 비슷하게 진행하려나···"


"그렇지 않을까···"


다들 침울한 분위기에 고개를 떨구고 있던 그때 누군가 부리나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용도실 문이 부서질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4 도시 애들 선생님이었는데 그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다.


"헉···. 헉··· 빨리 나와!"


"네?"


다짜고짜 나오라고 하는 선생님의 말에 우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고, 그는 죽겠다는 듯 눈을 찡그리더니 다시 한번 우리를, 정확히는 4 도시 애들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나와! 여기서 떠나야 돼."


그제야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나에게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뛰어나갔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그런 애들을 쫓아 사라진 뒤 나는 홀로 다용도실에 남아 잠깐 넋이 나간 얼굴로 그렇게 열려있는 다용도실 문을 쳐다보았다.


"이로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짝꿍 진수가 다용도실로 급하게 뛰어들어와 나를 밖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정신을 차린 내가 2층에서 1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내려갈 때쯤에는 이미 1층에 시설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있었다. 마치 우리가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사무관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우리를 다 불러모았던 그때와 같았다. 진수는 다소 흥분한 듯한 얼굴로 나를 질질 끌고 가며 자신이 들은 것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중대발표가 있다고 1층으로 다 나오라고 했데. 한 명도 빠짐없이!"


"뭐..?"



순간 어제 있었던 사고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좋은 일은 아니었으니 앞으로 싸우면 어떻게 하겠다는 등··· 공작소를 없앴다는 등··· 그런 얘기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최대한 빨리 간다고 갔으나 진수와 나는 1층에 도착하기 직전 사람들에 가로막혀 계단에 서있는 모양새가 됐다.

우리는 1층과 2층 사이, 그 애매한 공간에서 단상에 올라온 사람을 바라보았다. 위치가 위치라 그런지 저번보다는 확실히 눈높이가 맞아 어딘가 편한 기분이었다.


"아아 다들 잘 지내셨습니까?"


"저 사람 그때 그 사무관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지?"


"응 맞아."


단상 위에 올라온 사람들은 저번의 사무관과 그의 부하 공무원들로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딱 봐도 군인이나 경찰 같은 사람 하나가 검은색 마스크와 치안대 옷 같은 것을 위아래로 갖춰 입고 서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


진수가 그 남자를 가리키며 물었지만 알리가 없는 나는 그저 모른다는 듯 고개만 가로저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인 것을 확인한 사무관은 다시 한번 확성기를 들더니 불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마치 경품 대회에서 1등이라도 나온 것 같은 얼굴로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 안타깝게도 감염으로 한 명 또 사망했습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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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040. 정체 Ⅰ 25.01.14 3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6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6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5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7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7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8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8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7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7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7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7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7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8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7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8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9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9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8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8 0 12쪽
20 #020. 비보 Ⅰ 24.11.05 8 0 12쪽
19 #019. 엎친데 덮친 24.10.31 10 0 12쪽
18 #018. 의문사 Ⅲ 24.10.29 11 0 12쪽
17 #017. 의문사 Ⅱ 24.10.24 17 0 12쪽
» #016. 의문사 Ⅰ 24.10.22 17 0 12쪽
15 #015. 밥상머리 Ⅱ 24.10.17 17 0 12쪽
14 #014. 밥상머리 Ⅰ 24.10.15 15 0 12쪽
13 #013. 원치 않던 변화 Ⅲ 24.10.10 1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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