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의문사 Ⅱ

#017. 의문사 Ⅱ
"감염 사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사무관의 발표에 광장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추측을 내놓았지만, 누가 감염으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사무관은 난리가 난 광장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덧 붙여 이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어제 있었던 폭력 사건 당사자들에 대해 격리를 실시하던 중, 한 명이 증상 발현을 하더니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사무관의 말에 더욱더 혼란스러워했다. 그렇다는 건 거기서 싸웠던 두 할아버지들 중 한 명이 감염자였다는 건데, 당시 거기서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감염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다시 불가피하게 완전 격리 기간을 일주일 동안 진행할 예정입니다."
다음에 이어진 사무관의 말은 이 혼란에 불을 지폈다. 대부분이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소리치며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어떤 사람들은 사무관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그 미친 짓을 또 할 순 없다고 했다. 반면에 소수이긴 하지만 격리가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주일만 버티면 모두가 안전할 테니 그냥 하자는 것이었다. 신기했던 건 이렇게 격리를 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작소에서 물건을 만들어 팔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라는 것이었다.
"자 다들 진정하세요. 이건 반대하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완전 격리는 지금 시각부터 바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치안대 요원들의 말에 적극적으로 협조 주세요."
사무관은 확성기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지만 이미 이런저런 목소리로 뒤엉킨 광장의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듯했다. 당장 내 옆에 서있는 진수만 해도 나에게 뭐라 뭐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들리지가 않았다.
"또 감염이라고?!"
뒤엉킨 소음을 뚫고 진수의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나는 눈가를 찡그리며 뭔가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진수를 향해 소리쳤다.
"뭔가 이상해!"
"뭐가?!"
진수의 물음에 나는 지난밤 할아버지를 찾아 지하로 내려갔을 때 치안대 요원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 할아버지도 죽었어.'
치안대요원의 말에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대체 어떻게···?'
나의 물음에 치안대 요원은 주위를 살짝 돌아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까 싸운 상처가 컸나 보지.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던데? 그 정도 출혈이면 원래 살기 힘들어.'
'네?... 그럴 리가 없는데."
덕호 할아버지가 주먹질을 하며 상대와 싸운 것은 맞았다. 하지만 송곳으로 할머니가 찔리는 그 짧은 순간까지 둘 중 그 누구 하나도 그 정도로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었다. 충격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 그 순간순간의 기억들 만은 내 머릿속에 명확히 각인돼 있었고, 나는 치안대 요원의 말에서 뭔가 잘못됨을 느꼈다.
'아닐 거예요··· 그럼 남은 다른 할아버지는요? 그 사람은 살아있죠?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확인해 주실 수 없나요? 제발 부탁드려요. 할아버지 성함은 덕호예요. 박덕호.''
치안대 요원의 나의 물음에 고민을 하는 듯 아무 답 없이 잠깐 동안 나를 응시하더니 기다리라고 내게 손짓을 하고는 바로 뒤의 복도로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와 내게 다음날 다시 찾아오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 감염사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덕호 할아버지는 내가 약 한 시간 전에 보고 올라왔으니 살아있는 것이 확실했고, 그렇다면 죽은 사람은 영미 할머니와 문제의 할아버지뿐이었다. 영미 할머니야 다들 보는 앞에서 그렇게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으니 그걸 감염사라 하는 것은 말도 안 됐지만, 남은 그 할아버지는 분명히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다 죽었다고 했다.
'뭔가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좀처럼 지워지지가 않았다. 감염사일리가 없었다. 정말 감염으로 사망했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나부터 시작해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깝게 지냈던 사람 모두 일찌감치 같이 격리됐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건 뭐랄까··· 마치 그때그때 만들어내는 거짓말 같았다. 사람들은 이미 완전 격리에 대해 찬반으로 갈라져서 서로 싸우기 바빴고 누구 하나 이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조용히 합니다."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진 광장 위로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무관 옆에 서있던 검은 마스크의 남자였다. 그는 자신의 말에도 좀처럼 조용해지지 않는 사람들을 한 번 쓰윽 내려다보더니 허리춤에 있는 주머니 같은 것에서 무언가를 꺼내 높이 쳐들었다.
[탕!]
그리고 곧바로 천둥소리처럼 엄청난 굉음이 건물 안을 맴돌았다. 소란스럽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연기가 조금씩 퍼져가는 그의 손에는 게임에서나 보던 권총이 한 자루 쥐어져 있었다.
"저··· 저거···"
"쉿!"
진수는 잔뜩 겁은 먹은 얼굴이었고, 나는 그런 진수를 진정시키며 이제는 총을 다시 허리춤에 집어넣고 있는 검은 마스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제 좀 조용하네."
그는 다시 한번 광장을 내려다보더니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4 도시 치안대 대대장입니다. 어제 폭력사건을 계기로 현장 치안 유지 상황을 직접 확인하러 오늘 자리했습니다."
치안대 대대장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구제불능인 것 같습니다. 저희 요원들이나 여기 사무관의 통제에 적극 협조해주셔야 할 분들이 신데 말이죠."
사람들은 그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면서 그런 그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통제부의 통계에 따르면 저희 4 도시의 3년간 바이러스 통제율은 100%였습니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이 뭐냐? 도시 내에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3년간 한 명도 없었다는 얘깁니다. 실로 경이로운 수치지요. 이런 수치를 유지하려면 저희 치안대 요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해야 하는지 혹시 아십니까? 보균자 녀석들을 통제하려고 밤낮으로 격리구역부터 소각장, 매립지 등등 녀석들을 쫓아다니면서 감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요원들은 하나의 작은 실수도 없이 그 임무를 잘 수행해 냈지요. 여러분이 오기 전까지는. "
대대장은 한 손으로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치며 말을 이었다.
"저는 너무 화가 납니다. 이런 말씀드리기 뭐 하지만 여러분들은 보균자들보다 못합니다. 적어도 그것들은 통제에 따라요. 그래서 도시에 질서가 유지되고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죠? 통제에 따르지 않고 다 자기 목소리만 내고 편한 대로만 하려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질서가 무너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감염과 감염사를 야기하는 거고요."
보균자들보다 못하다는 말에 몇몇 사람들은 다소 동요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이전처럼 목소리를 내거나 손을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광장 주위는 치안대 요원들로 조금씩 둘러싸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4 도시의 질서를 이곳에서부터 무너트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이 도시의 바이러스의 확산을 1선에서 막아야 하는 책임자로서 여러분이 그렇게 계속하게 놔둘 수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 확성기를 사무관에게 다시 건네주더니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어디론가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조금씩 우리를 둘러쌓던 치안대원들이 허리춤에서 삼단봉을 꺼내 들고는 우리를 강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동합니다."
"각자 방으로 갑니다."
여태까지는 어느 정도 주거구역의 경찰 같은 느낌으로 우리를 대해주던 치안대 요원들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경찰이 범죄자를 다루는 것처럼 우리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삼단봉으로 몸을 콕콕 찌르며 빨리 가라는 듯 재촉했고 사람들은 겁에 질린 채로 그저 그런 그들의 말을 따랐다.
"이게 무슨··· 아! 수로··· 수로는 어디 있지?"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다가 문득 혼자 학교에 있었던 수로가 떠올라 부랴부랴 동생을 찾기 시작했다.
"수로야! 한수로!"
이리저리 굽이치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아직 어린 나이라 키가 작은 수로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당장 옆에 있던 진수마저도 어디로 쓸려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사람들의 흐름을 거꾸로 따라 올라가며 계속해서 동생을 찾아 헤맸다.
"형아!"
그리고 그때 광장 한편에서 동생의 목소리가 조그맣게나마 들렸다.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밀려오는 사람들은 그런 내 앞을 쉽사리 내주지 않았다. 모두가 치안대 사람들에게 쫓기듯이, 마치 양치기가 양을 몰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쫓기듯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
"거기 그대로 있어!"
수로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가겠다고 서로를 밀치며 나아갔다. 첫날 지하 열차 승강장이 떠오르던 순간이었다. 모두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나아가던 그날의 악몽이 스멀스멀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이 너. 빨리 사람들 따라 올라가도록 해."
밀물 들어오듯 몰아치던 사람들 뒤로 치안대 요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동생 수로는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보이지도, 목소리조차 들리지도 않았다.
"동생을 찾아야 해요! 아직 어려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요. 아까 저쪽에 있었는데!"
내가 치안대 요원들 뒤를 가리키며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치안대 요원들은 삼단봉으로 나를 밀어내며 강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집도 모르는 녀석이 어딨어. 알아서 찾아가겠지. 어서 빨리 올라가."
"하지만 아직 너무 어려서..!"
항상 내가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데리고 오고 했기 때문에 수로가 스스로 집을 찾아올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건물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우리가 이따가 찾으면 올려 보내면 되잖아 이 자식아!"
치안대 요원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더니 그 커다란 손으로 내 어깨를 꽉 쥐기 시작했다. 어깨가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지며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의 옆에 있는 다른 치안대 요원들은 재밌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웃음소리 같은 것을 내고 있었다.
"으윽··· 제발 그만···"
나는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을 견디며 잘못했다는 듯 손을 빌며 사정했고, 그러자 치안대 요원은 손을 거두더니 나를 발로 툭툭 치며 위로 올라가라는 듯 손짓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화끈 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그들이 가리키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느새 저마다 방에 갇혀서, 처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눈동자만 창살 사이로 빼놓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아까 치안대 대대장이 한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쩌면 우린 정말 보균자들 보다도 못한 것 같았다. 어쩌면 보균자들이 우리보다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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