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의문사 Ⅲ
#018. 의문사 Ⅲ
"어?"
"형아!"
방으로 돌아오니 문 앞에서 울먹이는 동생과 동생손을 꼭 잡아주고 있는 장하나 주무관이 보였다. 동생은 내가 보이자마자 내게 달려오더니 서러웠다는 듯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하소연하듯 울음 섞인 말들을 쏟아냈다.
"치안···대 아저씨들이 흐흑···"
"괜찮아 이제··· 미안 내가 신경 썼어야 했는데."
동생의 얼굴에는 긁힌 듯한 상처가 한 두 군데 정도 생겨있었다. 아마 사람들에 치여서 난 상처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하나 주무관은 어느새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익숙한 꼬맹이가 혼자 구석에서 울고 있길래 데려왔어."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운이 좋았던 거지. 만약에 치안대 사람들이랑 엮였으면 모르긴 몰라도 친절하게 여기까지 데려오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장하나 주무관에게 고개 숙여 다시 감사의 인사를 했고, 주무관은 됐다는 듯 손사래를 치더니 이제 가겠다는 듯 뒤돌아섰다. 순간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의문을 꺼내 물었다.
"근데 이번에 감염으로 죽었다는 사람··· 그 할아버지··· 감염사 아니죠?"
나의 얘기에 장하나 주무관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섰고, 잠시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뒷모습만 보이더니 이내 뒤돌아 다시 나를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감염사가 아니라는 게?"
나는 목석 같이 서있는 장하나 주무관을 향해 내 머릿속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제 덕호 할아버지를 찾으러 지하 3층에 갔어요."
"지하 3층?"
장하나 주무관은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다.
"네. 거기서 치안대 요원한테 빌었어요 제발 할아버지를 보게 해달라고. 그런데 그 치안대 요원이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거예요. 전··· 말도 안 된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왜 죽었냐고 물었죠. 그리고 그 사람이 제게 해준 말은, 할아버지 머리에서 피가 많이 나서 살 수가 없는 상태였다고 했어요. 싸우다가 생긴 상처 때문인 것 같다고 했죠."
"..."
나는 장하나 주무관의 굳어있는 얼굴을 다시 한번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전 그날을 확실히 기억해요. 아무래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날이니까요. 그날 할아버지 둘이서 싸우긴 했지만 그 정도로 심한 상처는 절대 나지 않았었어요. 둘 다 죽기 살기로 싸웠다기보다는 그냥 화가 나서 갑자기 싸운 것 같았거든요 물론 그것 때문에 할머니가···"
"할머니 일은 유감이야."
장하나 주무관은 안타깝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 맞아요. 아무튼 죽은 사람은 다행히 덕호 할아버지가 아니었어요. 오늘 격리한다고 발표하기 전에 제가 보고 왔으니 확실해요. 덕호 할아버지는··· 조금 힘들어 보이셨지만, 그 정도로 큰 상처가 없었어요. 상대방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심한 상처로 죽을 수가 있는 거죠? 제가 학교에서 감염병의 역사 시간에 배운 것에 따르면··· 절대 바이러스가 그런 상처를 만들어낼 수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하나 주무관은 말문이 막힌 듯 그저 아까처럼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로··· 너 이 이야기 다른 사람한테 한 적 있어?"
침묵을 깨고 장하나 주무관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아직···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
장하나 주무관은 알겠다는 듯하더니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우리 주위엔 아무도 없었지만 치안대 요원들의 발걸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잘 들어."
장하나 주무관은 내게 가까이오더니 아까보다 훨씬 심각한 얼굴을 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듯이 내게 말했다.
"절대 그 얘기를 아무한테도 하면 안 돼. 알았지? 특히 치안대나 나 같은 공무원들한테는 더더욱."
"... 네?"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되묻자 장하나 주무관은 손가락을 자기 마스크로 가져다 대며 "쉿." 소리를 내었다.
"절대. 절대로 말하면 안 돼. 궁금한 게 많겠지만 절대로 알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그냥 잊어버려. 그게 너와 동생을 위한 거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뒤돌아 아까 가던 길을 따라 걸으며 점점 멀어졌다. 나는 벙찐채로 방문 앞에 서있다가 치안대 요원이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갔다. 이윽고 치안대 요원들이 층을 돌면서 인원 점검을 시작했고 나와 동생은 침울한 기분으로 방에 틀어 박혀있었다.
"대체 뭐지···"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장하나 주무관의 지나치게 심각한 태도를 보니 뭔가 그 죽음이 이상한 것은 맞는 모양이었다. 다만··· 더 이상 파고들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았다. 울먹이던 동생은 지쳤는지 침대에 앉아있다 이내 잠이든 모습이었다. 그런 동생을 내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동생만은 지켜내야만 했다. 그게 부모님이 내게 하신 마지막 부탁이었으니.
***
격리가 며칠 째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그래도 한 번 겪었던 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견딜만한 것 같았다. 그때보다 가지고 있는 물건도 많았고, 최소한 방 안에서 동생이랑 밀리 학교 숙제 같은 거라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지루하고 따분한 하루하루였지만 최소한 그때처럼 낯선 공간은 더 이상 아니었다.
"무슨 소리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방에서 동생에게 이것저것 학교 수업을 가르쳐주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치안대 요원들이 고함을 치는 듯한 소리였는데 뭐라고 하는지는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나는 동생에게 기다려보라고 한 뒤 문쪽으로 다가가 창살사이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어서··· 이동··· 직여!"
확실하진 않지만··· 저번처럼 사람들을 어디론가 양을 치듯 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우린 다 이미 갇혀있는데?'
우리는 다 방에 있었다. 그것도 최소 사흘은 됐다. 그런데 밖에서 이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뻗치자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누가 또 죽은 것은 아닐지, 만약 죽었다면 어떻게 죽은 건지, 왜 죽은 건지, 갑자기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졌다.
"형 괜찮아?"
"아··· 응."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직전, 어느새 내게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아준 동생 덕분에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동생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안심시켰다.
[치지직···]
그리고 그때 방에 있는 공지용 스피커에서 잡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방금 전의 소음과 관련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시설 내에 전파합니다. 당초 12일까지 완전 격리 예정이었던 기간이 불가피한 사유로 일주일 더 연장되어 19일까지 완전 격리 조치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전파합니다···]
"뭐라고?!"
일주일은 그럭저럭 버틸만하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일주일 연장을 한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옆에 서있던 동생도 대충 눈치를 챈 건지 자리에 주저앉아 "심심한데···"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크게 동요하는 듯했다. 문의 창살 너머로 아까보다 더 많은 목소리들이 소란스럽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고함을 질렀고, 누군가는 애걸복걸하는 듯한 목소리로 처량하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그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주저앉은 동생을 일으킨 뒤 책상으로 걸어가 걸터앉았다. 책상 위에는 동생과 내가 보는 교과서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선생님도 아닌 내가 동생을 데리고 가르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일주일은 진짜 어떻게든 버티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모든 게 절망스러웠다.
"형아 갑자기 왜 더 격리를 한다는 거야?"
동생은 내 옆에 앉으며 입술을 쭉 내밀고는 물었다. 나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은 뒤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일주일을 연장한 건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정말 누군가가 또 죽어서인가 싶어 불안했고, 그게 덕호 할아버지인가 싶어서 걱정됐고, 그다음이 우리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 더 불안했다. 거기다 지금은 일주일이지만 나중에 또 말을 바꿔 2주 3주 연장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널브러져 있는 책을 가지런히 정리한 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동생에게 수업 아닌 수업을 시작했다.
***
[현 시간부로 완전 격리를 해제합니다. 모두 1층 광장에 집합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2주라는 시간은 영원한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다 보니 동생은 최소 한 달은 학교에 안 가도 될 정도로 예습을 엄청나게 하게 된 꼴이 됐고, 나는 미래의 장래희망 중에서 선생님은 절대 해서 안 되겠다는 생각을 굳건히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2주나 갇혀있었으니 방 안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쓰레기를 정리한다고 정리했지만 저번처럼 악취가 났고, 빨래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나와 동생은 각자 빨래바구니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1층을 향해 걸어내려 갔다. 사람들도 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처럼 손에 저마다 무엇 하나씩 들고 이동하고 있었다.
"이로야!"
"어 진수!"
1층에 도착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의 진수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진수도 꽤나 더러워진 옷으로 우리와 같이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자마자 서로의 꼴을 비교하며 작게 웃었다.
"그 와중에 네 동생은 깨끗하네?"
"그럼. 아마 이 시설에서 제일 깨끗한 사람일걸?"
"내가?"
우리는 이런저런 농담과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고, 사람들은 이제 다 광장으로 모인 듯싶었다.
"망할 놈의 사무관, 이번에 단단히 따져야겠어."
"그러니까요. 이게 말이 됩니까?!"
광장에 모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단단히 화가 났는지 사무관에게 따지겠다고 벌써부터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니 잠시 잊었던 덕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일주일 정도 있다 풀려날 거라던 덕호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조금씩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아아. 여러분 잘 지내셨습니까?"
사무관이 저번처럼 단상에 올라올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치안대 대대장이 확성기를 들고 단상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달려들 것처럼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꾹 닫고 서로 눈치만 보고서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이어진 대대장의 말은 나의 예상을 모두 빗나갔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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