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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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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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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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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비보 Ⅰ

DUMMY

#020. 비보 Ⅰ


'불법 이주자.'


대대장은 새로 온 사람들을 그렇게 불렀다. 예정에 있지도 않았고, 불법적으로 지하열차를 이용해 4 도시로 들어왔다는 이유에서였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게 됐고, 그로 인해 안 그래도 최근의 사건들로 뒤숭숭했던 분위기가 더 안 좋아졌다. 사람들은 크게 찬성파와 반대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쪽은 우리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니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고 적응할 수 있게끔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는 사람들이었고, 나머지 한쪽은 우리도 힘겹게 하루살이를 하고 있는 마당인데 이번에 새로 온 사람들까지 들어와 함께 생활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역시 선택권은 없었고, 새로 온 사람들은 하나 둘 지하에서 나와 기존에 있던 사람들의 방에서 같이 생활하게 됐다. 어느 날 집에 식구 아닌 식구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늘어난 꼴이었다. 광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충 방마다 1~2명씩 새로운 사람들이 배정됐다.


새로 온 사람들은 대부분 조용한 편이었으나,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이들을 꺼리는 반대파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된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경우가 더 심했다. 매일 같이 시설에서는 소리치거나 싸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치안대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잡느라 뛰어다니기 바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아예 그냥 자기들 방을 이주자들에게 내주고 기존 사람들끼리만 살게 해달라고 공무원들에게 부탁까지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시설 안의 분위기는 점차 바뀌었다. 무언가 불신과 혐오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물론 우리 방에도 새로운 사람이 한 명 들어오게 됐는데, 나보다 서너 살 정도 많아 보이는 형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매번 싸움이 일어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도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는 칠흑 같은 머리를 목덜미까지 길게 기르고, 앞머리는 눈이 살짝 덮일 정도로 기르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저녁 식사 안 해요?"


"아··· 나는 생각이 없어서."


나의 물음에 간이침대에 누워있던 수진이 형은 그냥 둘이 가라는 듯 우리에게 손짓했다. 형은 거의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명상하듯 다리를 접고 바닥에 앉아 눈을 감는 일을 반복했다. 나와 동생과 달리 학교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하루종일 그렇게 방에서 지냈고, 하루에 한두 번 밥 먹으러 갈 때만 방에서 나오는 편이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응."


침대에서 손을 휘젓는 수진이 형을 뒤로하고 나와 동생은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곳곳에서 사람들이 큰 소리로 언쟁을 하는 것이 들려왔고, 그 소리에 동생은 내 옆에 찰싹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어디서 불법 이주자 주제에!"


"이봐요! 우리 다 같은 2 도시 시민 아닙니까!"


잔뜩 화가나보이는 어떤 할머니와 그보다는 훨씬 젊어 보이는 아저씨가 서로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놀라서 어쩔 줄 몰라했겠지만 요즘은 이런 일들이 매일 일어나다 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할아버지!"


"어··· 왔구나."


소란스러운 지상을 뒤로하고 지하 식당에 도착하자 너무나도 말라버린 덕호 할아버지가 주위 사람들과 달리 혼자서 구석에 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음식을 받은 뒤 그런 할아버지 옆에 앉아 이런저런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왜 이렇게 조금 드세요?"


"아··· 그냥 별로 입맛이 없어서."


할아버지의 식판에는 저녁식사라고 하기 뭐 할 정도로 적은 양의 밥과 국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고, 할아버지는 멍한 눈으로 숟가락을 잡고는 그저 식판을 내려다보았다.


"그··· 새로 온 사람들은 어때요?"


나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잡고 있던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더니 식사가 끝났다는 듯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나 먼저 가마."


"아··· 네."


할아버지는 그렇게 우리에게서 멀어졌고, 동생은 그런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할머니 보고 싶다."


나는 동생의 말에 순간 울컥했지만 티 내지 않고 그저 그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하에서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런 모습이었다. 사람들과 대화도 거의 하지 않았고, 공작소에서 더 이상 마스크를 만들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모습을 할아버지에게서 찾을 수가 없었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이던 불과 같았던 할아버지는 더 이상 세상에 없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오는데 몇몇 사람들이 작업복을 입고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전부터 시작된 야간근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시설에 사람이 늘어나니 마스크 등 보급받는 물건들이 엄청 모자라게 됐다. 그러자 사무관은 공작소와 같은 공간들을 추가로 만들었고 이곳에서 사람들이 정말로 일을 하게끔 만들었다. 이전에는 취미 같은 느낌으로 사람들이 물건은 만들었다면, 새로 생긴 공작소 일명 '생산소'에서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의무적으로 일을 해야 했다. 우선은 가장 중요한 마스크와 필터 같은 것들을 이 생산소에서 만들고 있었는데, 처음엔 낮에만 일을 시키더니 이제는 야간에도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사무관은 이렇게 해야만 시설 내의 마스크 보급이 원활해질 수 있다고 했다.


아직 내 차례가 오지는 않았지만 나도 언젠가 생산소에서 일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초급반에 있는 동생은 일을 하지는 않아도 됐다. 마스크 만드는 거야 이전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해본 경험이 있으니 걱정이 안 됐다. 다만 내가 일을 하게 되면 혼자 있게 될 동생이 조금 걱정이었다. 마음 같아선 수진이 형이 조금 돌봐줬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아직 우린 친하지도 않았고 대화도 거의 없는 사이라 그건 힘들 것 같았다.


'이참에 조금 말이라도 더 붙여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방으로 돌아오자 나갈 때와 같은 모습으로 누워있는 수진이 형이 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 눈을 감고 있는 것 정도였다. 나는 틀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고 동생은 씻고 싶다며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하···"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책상에 앉았고, 수진이 형은 동생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제야 눈을 뜨고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다녀왔어?"


"네."


평소처럼 짧디 짧은 대화가 오가고, 역시 이 형과는 가까워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다시 떠오를 때쯤 갑자기 수진이 형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내쪽으로 다가와 책상에 마주 앉았다. 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조금은 놀란 얼굴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고, 형은 뭐 못 볼 거라도 봤냐는 듯한 얼굴로 그런 나에게 물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당황해서 횡설수설하자 형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내가 뭐 불편하게 만든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형이 여기 앉은 적이 처음이잖아요."


"아···"


나의 말에 그제야 수진이 형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계속 누워만 있었으니까. 사실 요 며칠간 생각을 많이 해봤거든. 조금 고민이 많아서 말이야."


"그래요? 음··· 저는 형이 저희랑 말하기를 싫어하나 보다 했어요."


내가 형의 눈치를 보며 그렇게 말하자 그는 절대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여기까지 오는 데에 진짜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 그 기억들이 계속해서 떠올라서 정신이 없었어. 너도 알겠지만 안 좋은 기억은 계속해서 사람을 괴롭히는 법이거든."


나는 형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 여보였고, 형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나는 정말 운이 좋았지··· 도시는, 거긴 마치 지옥과도 같았어. 아··· 그러고 보니 혹시 나처럼 새로 온 사람들에게 2 도시가 어떻게 됐는지 이야기 들은 적 있어?"


"아니요 사실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그렇겠지. 아마도 다들 그 얘기는 하고 싶지가 않을 테니까."


형은 어딘가 멀리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고,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2 도시는··· 어떻게 됐어요? 저희 부모님이 아직 거기 계시는데."


"그래? 그것 참··· 뭐라 말을 해줘야 할지···"


부모님 이야기에 형은 처음으로 난감한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사람이 이런 모습도 보일줄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주거구역에 계셨겠지 아무래도?"


"네."


"나는 준주거지구에 있었어. 혼자 살았거든. 그래서 나도 전해 들은 소식밖에 모르지만··· 내가 듣기로는 격리구역의 보균자들이 대거 주거구역으로 몰려갔다고 해. 그래서 치안대가 투입도 됐고··· 하지만 아무래도 보균자들의 숫자가 많다 보니 막기엔 역부족이었나 봐.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건 주거구역에 일반 시민들은 이제 거의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어."


나는 충격으로 말을 잃었고, 형은 그런 나를 슬쩍 보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보균자들이 사람들을 전부 죽이고 하지는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보균자들 사이에서도 극단적인 녀석들이 있고 아닌 녀석들도 있는 모양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균자들이 지내던 격리구역으로 끌려갔어. 자기들이 당했던걸 고대로 돌려주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상황이 계속해서 생겨났고. 사실상 통제부는 손을 놓았어."


형은 통제부 이야기가 나오자 화가 난다는 듯 책상 위에 놓인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정부와 통제부 녀석들은 쓰레기야. 처음엔 뭐 하는 척이라도 하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어 시장은 물론이고 고위 공무원들도 전부! 소문에는 무슨 벙커인지 뭔지에 숨어 들어가 있다고 했지만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리고 그 소문 덕분에 사람들은 그 벙커를 찾겠다고 도시를 들쑤시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지하열차를 찾은 거야. 치안대가 지키고 있어서 처음엔 모두 겁을 먹고 지켜보기만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참다못한 사람들이 녀석들과 싸우기 시작했고 끝에는 치안대가 철수하게 되면서 우리는 그걸 타고 탈출할 수 있었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고위 공무원이라는 말에 순간 아버지가 떠올랐다. 형의 말대로라면 정말 어쩌면 부모님이 그 벙커에 살아계실지도 모를 일이었다. 형은 주먹을 꽉 쥔 손을 떨면서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나는 죗값을 받아내고 말 거야. 어떻게든 찾아내서 반드시 녀석들에게 죗값을 물게 할 거야.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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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7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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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036. 감염사? Ⅱ 24.12.31 7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7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8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8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7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7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7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7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7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8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7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8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9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9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8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8 0 12쪽
» #020. 비보 Ⅰ 24.11.05 9 0 12쪽
19 #019. 엎친데 덮친 24.10.31 10 0 12쪽
18 #018. 의문사 Ⅲ 24.10.29 11 0 12쪽
17 #017. 의문사 Ⅱ 24.10.24 17 0 12쪽
16 #016. 의문사 Ⅰ 24.10.22 17 0 12쪽
15 #015. 밥상머리 Ⅱ 24.10.17 17 0 12쪽
14 #014. 밥상머리 Ⅰ 24.10.15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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