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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5.0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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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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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비보 Ⅱ

DUMMY

#021. 비보 Ⅱ


전날부터 수진이 형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우리 방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동생이 수진이 형에게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했고, 형도 그런 동생이 귀엽다는 듯 밀어내지 않고 받아주었다. 당장 언제 생산소로 투입될지 모르는 내 입장에선 형이 동생을 돌봐주는 게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녀올게요."


"그래."


오전에 생산소에 들어갈 수진이 형을 뒤로하고 나와 동생은 학교로 향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런 하루의 시작이었지만, 오늘은 약간 들뜬 마음으로 등굣길에 올랐다. 여전히 건물 안은 사람들 싸우는 소리로 정신없고 시끄러웠고, 나는 이런데도 불구하고 유환이와 친구들이 올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마지막으로 본 게 2주도 넘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이번엔 무슨 간식을 가지고 올까 기대도 됐다. 그리고 유환이나 준수··· 그리고 특히 진수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지수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처음 봤을 때는 너무 차가 워 보이고 우리에게 관심도 없는 것 같아서 그러려니 했는데, 몇 번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상냥하고 공감도 잘해주는 좋은 친구였다. 거기다가 진수말처럼 금발의 아이돌 같은 정말 이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외모는 그런 지수를 더욱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형 뭐가 재미있어?"


"응?"


동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게 물었고, 나는 그제야 내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렇게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그럼 이따가 봐. 무슨 일 있으면 선생님한테 말씀드리고."


"응."


초급반 교실로 뛰어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확인한 뒤, 내교실로 발걸음을 옮기니 나처럼 조금 들떠 보이는 모습의 진수가 손을 흔들며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그런 진수 옆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만날 4 도시 친구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에 대해 진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4 도시 애들 오면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진수는 나의 물음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답을 했다.


"새로 온 사람들 이야기를 해야겠지? 그리고 생산소?"


"맞아."


나는 진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지막 만남 때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내가 제정신이 아니기도 했고, 거기다 갑자기 애들이 떠나야 해서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으나, 새로 온 사람들과 생산소 이야기는 꼭 나눠야만 할 것 같았다.


"선생님 오셨다."


"이따가 마저 이야기하자."


그렇게 큰 주제를 정해놓고 무슨 이야기를 더 나눌까 고민하는데 굳은 표정을 한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그는 교실에 빈자리가 조금 생긴 것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짧게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즘 생산소 근무한다고 바쁜 건 알겠는데. 만약에 근무에 들어가게 되면 미리 선생님한테 얘기해 줄 수 있도록 해라. 알겠지?"


"네!!"


처음 학교가 생겼을 때는 빈자리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내 차례는 아직 안 왔지만, 모두가 돌아가며 생산소근무를 하기 때문이었는데 많게는 10명까지도 학교에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새로 온 이주자, 생산소, 결석.'


나는 이따가 4 도시 애들을 만날 때 챙겨갈 공책에 '결석'을 추가로 적고 진수에게 보여주었다. 진수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게 있으면 공책에 하나씩 하나씩 추가로 적어내려 갔다.


그렇게 수업 듣느랴, 주제 정하느랴 나름 조용하지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됐고, 우리는 선생님께 확인을 받은 뒤 다용도실로 가 청소와 세팅 등을 하며 친구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먼지가 쌓여있던 다용도실이 어느 정도 깔끔한 모습을 갖출 때쯤 유환이를 비롯해, 준수, 그리고 지수가 손에 빵이 든 봉투를 하나씩 들고 들어왔고 나와 진수는 그런 친구들에게서 봉투를 하나씩 건네받았다.


'앗.'


내가 지수에게서 봉투를 건네받는 순간 의도치 않게 나와 지수의 손이 서로 맞닿았고, 나는 당황한 얼굴로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도 살짝 놀란듯한 표정을 마스크 속으로 보였지만, 이내 괜찮다는 듯 곧바로 미소 지어 보였다. 다행히 4 도시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은 이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았고 그렇게 나와 지수만 아는 작은 비밀이 생긴 것 같아 어딘가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자, 매번 말하는 거지만 직접 접촉은 삼가고, 각자의 자리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화만 하도록 하자.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당부사항을 전달하는 것을 끝으로 자리를 비웠고, 우리들은 기다렸다는 듯 반가운 목소리로 서로의 근황을 묻기 시작했다.


"다들 잘 지냈어? 마지막에 본건 아마 이로뿐이었지?"


"맞아. 그땐 내가 정신이 없었어서···"


"지금은 괜찮아?"


내가 그날의 사건을 떠올리며 유환이의 질문에 답하자 지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고, 나는 괜찮다는 듯 지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응. 괜찮아. 그나저나 다들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다시 봐서 다행이다."


"하... 맞아. 감염이니 뭐니 해서 완전격리 기간이 또 있었거든··· 죽는 줄 알았지 뭐야."


진수는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말했다.


"그 완전격리 기간이라는 게 예전에 처음 왔을 때 겪었던 것 과 같은 걸 말하는 거지?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그런?"


반장 준수는 우리에게 되물으며 여느 때처럼 자신이 가져온 공책에 무언가를 적어내려갔다. 나와 진수는 그런 반장에게 완전 격리기간에 대해 다시 설명해주었고, 얘기를 듣던 4도시 아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자신들은 절대 못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 격리기간이 2주였잖아. 그게 혹시 내가 생각하는 이유 때문인가?"


우리가 설명을 마치자 유환인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고, 나는 맞다는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맞아. 새로운 이주자들이 오면서 격리기간이 다시 늘어난거야. 그래서 유독 더 힘들었던 것 같아 이번엔."


"힘들었겠네··· 불법 이주자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 걱정됐어. 가뜩이나 부족한게 많은 시설인데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말이야."


'불법 이주자'라는 유환이의 말에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그냥 그럴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응. 아무래도 마스크나 기타 생필품 보급이 현저히 줄었거든··· 거기다가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랑 새로온 이주자들이랑 자주 부딪히고있어. 사람들은 이주자들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가지고 두 쪽으로 갈라졌고."


"두 쪽으로 갈라서다니?"


반장 준수가 흥미롭다는 듯 자신의 안경을 손으로 올리며 물었다. 진수는 그런 그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답했다.


"말 그대로야. 이주자들을 받아줘야 한다와 받지 말고 우리끼리 잘살자라는 두 편으로 갈라섰어. 그래서 계속 싸움이 나는거고···"


"어차피 같이 살아야하는거 아니야?"


진수의 답에 유환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맞아. 어차피 우리는 선택권이 없는데··· 뭐 그래도 어른들은 다르게 생각했나 봐. 아무튼 그런 일 때문에 여기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어. 사실 그래서 너희들이 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됐고."


나는 말을 마치면서 살짝 지수를 쳐다보았고, 지수와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마음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돌린 곳에선 유환이가 뚫어져라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행이네 우리가 이렇게 올 수 있어서."


"맞아."


유환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불법 이주자 문제 말고도 다른 것들도 많이 변하지 않았어?"


"아··· 공작소가 이제는 생산소로 바뀌었어. 추가로 몇 군데 더 생기기도 했고···"


"생산소?"


지수는 생산소라는 말에 그게 대체 뭐냐는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응. 뭐랄까··· 공장 같은 곳이야. 거기서 이제 부족한 보급품들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어.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긴 하지만 말이야."


"거기서 지금 너도 일하는 거야?"


나는 지수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아직은 아니야. 돌아가면서 일을 하거든. 나도 이제 곧 투입되겠지."


"아··· 힘들 텐데···"


지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돌려 유환이 쪽을 바라보았다. 유환이는 놀란듯한 모습으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우리가 건의한 공작소가 그런 식으로 운영되다니··· 조금 충격이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일시적으로 그렇게 운영되는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심지어 밤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어. 다행히 우리는 학생이라 낮에만 일하긴 하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


"그런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말이야. 이건 아무래도 우리가 건의해야 할 사항인 것 같아. 야간에는 사람들이 쉬게 해야만 한다고 말이야."


유환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책에 그 내용을 받아 적었다. 지수는 그런 유환이를 미묘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다 더해서 불법 이주자 문제도 얘기를 해볼게. 거주 공간을 따로 마련할 수 있는지, 하다 못해 생필품 보급이라도 늘릴 수 있을지 말이야."


"아··· 고마워 유환아."


불법 이주자라는 유환이의 말이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 그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진수도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이후로도 우리는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 새로운 이주자와 생산소에 관련된 이야기 들었다. 아까 수업시간에 진수와 이야기를 나눌 땐 좋은 주제들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니 같은 이야기의 연속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4 도시 친구들은 우리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고, 특히 유환이는 이 모든 것들이 반드시 개선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보겠다고 했다.


"자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순식간에 시간이 갔다. 4 도시 선생님이 들어와 마무리를 지으라 했고, 나와 친구들은 모두 아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용도실을 빠져나갔다.


"그럼 다음 주에 볼 수 있겠지?"


유환이가 나와 진수를 보며 물었고, 우리는 당연하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는 아쉬움을 나누며 1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섰고 그때 낯익은 얼굴이 우리 쪽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어?"


수진이 형이었다. 형은 우리를 슬쩍 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지나갔고, 유환이는 그런 나와 수진이 형을 번갈아보더니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아. 이번에 우리 방으로 배정된 사람이야."


나의 말에 유환이는 대충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불법 이주자구나."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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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42. 정체 Ⅲ 25.01.21 6 0 12쪽
41 #041. 정체 Ⅱ 25.01.16 6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7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10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7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7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9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9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10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10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9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9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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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027. 비현실 Ⅰ 24.11.28 10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9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10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11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10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9 0 12쪽
» #021. 비보 Ⅱ 24.11.07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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