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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5.01.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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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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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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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 뒤틀린 신념 Ⅱ

DUMMY

#025. 뒤틀린 신념 Ⅱ


정말이지 내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초급반 교실로 들어가 머리가 헝클어진 수로를 향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한수로!"


수로는 나를 보자 든든한 지원군이 왔다는 듯 환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런 수로에게 달려가 보란 듯이 모두의 앞에서 뺨을 한 대 때려주었다. 그 모습에 수로는 물론이고 같은 반 아이들 그리고 진수까지 모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왜··· 왜!?"


"수로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운 거야?!"


나는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수로를 쏘아붙였다. 갑자기 난입한 나 때문에 수로와 치고박던 아이들은 어느샌가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뒤늦게 따라 들어온 진수는 이제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수로와 아직도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로야! 일단 곧 수업도 시작하고 하니까 나중에 얘기하는 게 어때? 학교 끝나고 얘기해도 되잖아."


"..."


내가 아무 말 않고 씩씩거리며 수로를 계속해서 노려보자 진수는 그런 나와 수로 사이에 몸을 밀어 넣고 이젠 수로를 보호하듯 나를 막아서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수로도 그리고 다른 애들도 겁먹은 거 안 보여? 이따가 얘기해. 그게 좋을 것 같아. 선생님 들어오면 또 골치 아파질 테고."


진수의 말은 백번 맞는 말이었다. 나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후회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으로 뒤섞인 속을 가라앉히며 뒤돌아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런 나의 뒤로 울먹거리기 시작하는 수로와 그런 수로를 달래주는 진수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우리 교실로 돌아온 나는 혼자 자리에 앉아 방금 일어난 일을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썼다. 수로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욕이나 그와 비슷한 어떠한 나쁜 말들을 입에서 뱉어낸 적이 없었다. 거기다 내가 4 도시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실도 알았기에 4 도시 사람들에 대한 그 어떤 나쁜 생각이나 말을 할 거라고는 꿈도 꿔본 적이 없었다.


"미치겠네···"


달라진 유환이를 마주하고 가뜩이나 마음이 싱숭생숭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수로까지 이런 모습을 보이니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지경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은채 머리를 쥐어 잡고 있다가 갑자기 답답한 느낌이 들어 마스크를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해서는 안될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야!"


수로를 달래고 온 진수가 깜짝 놀란 듯 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책상 위에 있는 마스크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처음엔 됐다며 손을 휘저었지만 진수는 계속해서 마스크를 들이밀었고, 결국 나는 졌다는 듯 마스크를 받아 썼다.


"수로는 내가 잘 얘기했어. 조금 울긴 했지만 내가 나올 땐 울음도 그쳤고···"


"그래··· 고마워."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돌이켜보니 내 행동이 너무 과했었다. 진수 말처럼 일단 말로 조금 주의만 주고 나중에 자세히 얘기해도 충분히 괜찮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치 뭐에 씐 것처럼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달려가 동생을 때렸으니··· 이따가 동생과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초급반을 찾아 평소처럼 동생을 기다렸다. 몇몇 아이들은 그런 나를 보며 숙덕거렸고 어떤 아이들은 아예 나를 피해 빙 돌아서 걸어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죄인 같은 마음으로 몇 분여 더 기다리자 동생 수로가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수로는 나를 한번 슬쩍 보더니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지나 혼자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수로."


당황한 내가 뒤돌아 동생 이름을 불렀지만 동생은 못들 은척 하며 계속해서 나에게서 멀어졌다. 순간 나를 무시하는 동생의 모습에 약간 짜증이 났지만, 내가 한 행동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서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거리를 유지한 채 그런 동생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렇게 어색한 동행이 끝나고 도착한 우리는 방 문을 닫고 한 동안 아무 말하지 않은 채 서로의 가방만 정리했다. 계속되는 침묵에,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가방을 정리하고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기 시작하는 동생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수로야. 너 형이랑 얘기 이제 안 할 거야?"


"..."


수로는 잔뜩 삐졌는지 듣는 채도 안 하고 평소에는 그렇게 싫어하던 수학 숙제를 계속해서 풀었다. 나는 옅게 한숨을 내뱉은 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동생에게 말했다.


"형이 아까 때려서 그래?"


"... 몰라."


수로는 잠자코 있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고, 동생이 풀고 있던 숙제 위로 조그마한 눈물들이 뚝뚝 떨어졌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던 나는 옷소매로 동생의 눈가를 훔쳐주며 진심으로 그런 동생에게 사과했다.


"형이 진짜 미안해. 아까는 형이 잘못했어. 때리면 안 됐는데··· 정말 미안해 수로야. 이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나의 사과가 마음에 닿은 건지 모르겠지만 수로는 이후 한 동안 펑펑 울었다. 그렇게 서럽게 우는 동생의 모습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분 동안 서럽게 울던 동생은 조금은 화가 풀린 건지 퉁퉁 부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진짜 안 때릴 거야?"


"그럼!"


"약속이야?"


"약속이지."


나는 동생에게 새끼손가락을 걸어 보이며 말했고, 그제야 동생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동생에게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냐고 당장이라도 다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은 일단 그냥 이렇게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동생의 숙제를 도와주며 동생의 기분을 계속해서 풀어주었다.


"아~ 죽겠다."


그렇게 동생의 숙제를 한참 도와주고, 저녁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생산소 오후 근무를 끝낸 수진이 형이 땀냄새를 잔뜩 풍기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 형을 보자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평소처럼 형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도 물량이 많았어요?"


나의 물음에 수진이 형은 땀내 나는 작업복을 하나씩 벗어 빨래통에 던지며 답했다.


"말도 마. 점점 늘어나는 모양이야. 이러다가 교대근무 시간도 점점 늘어날지도 모르겠어."


수진이 형은 잠깐 생각에 빠진 듯 눈을 감았다가 뜨며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무슨 양복 입은 사람들이 잔뜩 왔다며?"


수진이 형의 말에 순간 유환이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이어지는 말들에 그 생각이 이내 사라졌다.


"모르긴 몰라도 안 좋은 일들이 늘어날 징조 같은데. 4 도시 쓰레기들은 믿을게 못되니까. 또 우릴 어떻게 부려먹을까 구상하러 왔겠지."


4 도시 사람들을 향한 가시 돋친 말들, 특히 '쓰레기'라는 말에 나는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의심이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수진이 형은 처음부터 정부와 4 도시 사람들에게 불만이 많이 있었다. 그래도 저렇게 까지 말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었는데, 최근 생산소 근무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지 거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고 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형에게 동생을 맡기고 생산소 근무를 나가고 있었다. 오전 근무야 내가 나가면서 동생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퇴근 시간에 맞춰서 동생을 데리고 올 수 있었지만, 오후 근무는 사정이 달랐다. 동생 혼자서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그러기엔 최근 시설 분위기가 그렇게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후 근무 때마다 형에게 수로를 맡겼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진이 형에게서 그런 말들을 배운 것 같았다.


"형 그런 말들은 되도록 집에선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작업복을 던져 넣고 샤워를 하려는 형에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수진이 형은 멈칫하더니 뒤돌아 나를 응시하며 물었다.


"무슨 말을 말하는 거야?"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문 뒤 단호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4 도시 사람들이 쓰레기니 뭐니 하는 그런 말들이 요."


그러고는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수로를 가리켰다.


"동생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런 말들을 배우고 말하고 다니면 곤란하잖아요."


나의 말이 끝나자 수진이 형은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한숨을 짧게 내쉬더니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내가 뭐 틀린 말을 한건 아니잖아? 그리고 수로가 그런 것도 이해를 못 할까?"


예상대로였다. 수진이 형은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4 도시 사람들은 우리를 받아줬다며 생색내고 있지만, 실은 우리를 가둬두고 이제는 심지어 이용해먹고 있잖아. 시설 운영비가 부족하니 뭐니 백날 천날 떠들어대면서 우릴 세뇌시키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게 4 도시 사람들이 우리를 자기들 동네로 끌어들이기 싫어서 일어나는 일이고. 그런 것들이 쓰레기가 아니면 대체 뭔데?"


"그건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걸 정말 모른다고 하는 거야? 너무나 명백한 사실인데? 지금 이런 생각하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게 아니야. 생산소뿐만 아니라 시설 여기저기서 4 도시 사람들과 정부에 대한 불만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나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너는 그 사람들이 전부 다 틀렸다고 할 거야? 왜? 네가 거의 매주 만나는 그 4 도시 친구들 때문에?"


4 도시 친구들을 갑자기 대화에 끌어들인 형의 모습에 순간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 형은 계속해서 나를 쏘아붙였다.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는 거야. 인간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사악한지 말이야. 네 친구들이라는 그 4 도시 애들도 결국 중요한 순간엔 네게 등을 돌릴 거라고.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니까."


친구들을 계속해서 깎아내리는 형의 모습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을 생각 없이 그대로 내뱉어냈다.


"형이···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형도 결국엔 무서워서 도망쳐온 주제에. 그것도 다른 사람들을 버려가면서까지 도망쳐온 도망자이면서!"


내가 수진이 형을 똑바로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렇게 소리치자 순간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수진이 형은 어느새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정적을 깬 건 수진이 형이었다. 형은 들고 있던 수건을 바닥에 내려놓고 내게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나의 눈을 마주친 채로 떠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터질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여차하면 형이랑 정말로 치고받고 싸우게 될 수 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예상과 달리 수진이 형은 내 쪽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러고는 나의 눈을 바라보며 얼음장 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다 알아. 그래서 지금 여기에 살아서 있는 거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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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041. 정체 Ⅱ 25.01.16 3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5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7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6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5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7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7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8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8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7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7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7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7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7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8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7 0 12쪽
»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9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9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9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8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8 0 12쪽
20 #020. 비보 Ⅰ 24.11.05 9 0 12쪽
19 #019. 엎친데 덮친 24.10.31 10 0 12쪽
18 #018. 의문사 Ⅲ 24.10.29 11 0 12쪽
17 #017. 의문사 Ⅱ 24.10.24 17 0 12쪽
16 #016. 의문사 Ⅰ 24.10.22 17 0 12쪽
15 #015. 밥상머리 Ⅱ 24.10.17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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