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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5.0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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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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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뒤틀린 신념 Ⅲ

DUMMY

#026. 뒤틀린 신념 Ⅲ


나아지고 있었던 수진이 형과의 관계는 어제의 사건으로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그때 이후로 형과 수로는 간간이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나와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수진이 형의 도움 없이 생활하고 싶었지만, 당장 오전 근무를 나가야 하는 오늘, 나는 형의 눈치를 보며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형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동생의 끼니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였다.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동생이 혼자 남는 것을 형도 신경이 쓰이긴 하는 모양이었다. 수로가 그런 형에게 나쁜 말들을 배우고, 거기에 잘못된 생각들 까지 배우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계속해서 들었지만 내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나는 착잡한 마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다녀올게요. 수로는 수진이 형 말 잘 듣고. 학교도 잘 다녀오고."


"응!"


동생은 어제 일은 까맣게 잊은 건지 해맑은 얼굴로 대답했고, 수진이 형은 처음 봤을 때처럼 침묵을 유지한 채 그저 동생 옆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나는 그런 둘을 뒤로하고 한숨을 쉬며 방 밖으로 나와 먼지가 가득한 작업복을 손으로 털어내며 한 계단 한 계단 저 밑 지하의 생산소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철제 계단이 아프다는 듯 '끼익' 소리를 내었고, 시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피곤함이 가득한 목소리를 내며 걸어 나왔다. 다들 나와 같이 오전 근무를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이전엔 노인 아니면 내 또래의 사람들 밖에 없었지만 새로 이주자들이 들어오면서 연령대가 조금은 다양해졌다. 수진이 형처럼 젊고, 치안대 대대장처럼 강인해 보이는 사람들도 이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오전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고 있다면 반대로 지하에서는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야간 근무를 마친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아직 어른이라고 불리기엔 나이가 조금 모자란 나는 야간 근무를 하지는 않았지만, 요즘에는 노인들까지 야간 근무에 나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야간 근무를 마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친 말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씨발··· 진짜 이러다 죽겠어."


"매일 이 지랄을 해야 하다니···"


"여길 나갈 수나 있는 거야···?"


몸속 가득 쌓인 먼지와 함께 욕을 토해내며 걸어 올라오는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어제 수진이 형이 한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4 도시와 정부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수진이 형 본인처럼 그들은 4 도시와 정부가 쓰레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 없어.'


힘든 하루하루 이긴 했지만, 나는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다 수진이 형처럼 극단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계속해서 옮겼고, 어느새 이제는 정말이지 공장 비슷 무리하게 되어버린 생산소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익숙하게 2열로 줄을 서기 시작했고 이윽고 치안대 요원 하나가 안으로 들어와 출근 명부를 확인하며 한 명씩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음. 좋아. 다 왔군··· 그럼 다들 현 시간부터 작업 시작합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출근한 것을 확인한 요원의 신호에 따라 모두 익숙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 작업을 시작했다. 이 생산소에서는 마스크를 만들었는데, 과거에 덕호 할아버지, 영미 할머니와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롤러, 손가락은 우습게 자를 것 같은 커팅기계 등 정말 공장에서나 볼 것 같은 것들이 어느샌가 하나씩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작업 자체는 수작업으로 할 때 보다 훨씬 빠르고 단순해졌지만 동시에 더욱더 위험해졌다. 손가락이 끼이거나 하는 일이 가장 흔했고, 그런 사람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기 어려웠다. 천천히 하면 될일 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목표 생산량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그 생산량에 맞춰서 일을 해야 했다. 생산량을 못 맞추게 되면 근무시간이 늘어나기도 했기에 사람들은 악착같이 일해야 했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검은 헬멧을 쓰고 돌아다니는 치안대 요원들이 늘 감시했다.


"여기 한이로가 누구야?"


귀가 찡한 소음이 이명처럼 울려 퍼지고, 먼지인지 뭔지 모를 것을 뒤집어쓰며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를 찾는 목소리가 소음 사이로 어렴풋이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뒤 손을 들었고, 그러자 치안대 요원 한 명이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같이 작업을 하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 또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치안대 요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들 신경 끄고 계속 작업합니다!"


감시를 하던 치안대 요원의 호통에 사람들은 기분 나쁘다는 듯 한 마디 씩 던지며 다시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내 옆에서 나와 같이 끈 작업을 하던 아저씨는 일이 늘어난 것에 짜증이 났는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어느새 다가온 치안대 요원은 자신의 손에 들고 온 문서와 나를 번갈아 확인하더니 따라오라는 듯 내게 손짓했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런 그를 따라 생산소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귓가를 때리던 기계음이 사라졌고, 그제야 조금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가··· 박덕호 씨랑 친하다던데 맞아?"


"아··· 네. 근데 무슨 일로···"


덕호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래서인지 근무에서도 열외 됐고, 일을 하지 않으니 모든 보급품을 최소한으로 지급받으며 겨우 겨우 지냈는데 같은 방을 쓰게 된 이주자들은 그런 할아버지를 거의 없는 사람 취급하고 무시하며 지냈다. 나는 아무리 못해도 이틀에 한 번 정도는 할아버지를 찾아가 그의 상태를 매 번 확인했고, 오늘도 근무가 끝나면 돌아가는 길에 할아버지를 찾아갈 예정이었다.


"우선 오늘 작업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할아버지 있는 곳으로 가."


"네? 그게 무슨··· 어디 계시는데요?"


"응급실로 가봐."


"네···?"


응급실이라는 말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불길한 예감이 들며 모든 사고가 멈추는 듯했다. 순간의 충격 이후 정신을 차린 나는 부리나케 응급실을 향해 뛰었다. 얼마나 빨리 뛰었는지 하마터면 올라가는 계단에서 몇 번이고 넘어질뻔하기도 했다.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 도착한 응급실에는 저번처럼 의사와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영미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내가 말을 더듬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의사가 착잡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할아버지는 침대에 누워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손을 만져보니 이미 그 손은 그 온기를 잃어버린 채 차갑게 식어있었다. 두 눈은 뜬 채로 붉게 충혈돼 있었고, 입가에는 알 수 없는 하얀 거품들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의 목에는 선명한 자국이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스스로 선택하신 일이야."


"네?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현실을 부정했다. 그러나 의사는 오히려 그런 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강조했다.


"자살이야. 현장에 우리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화장실 샤워기호스로 목을 맨 상태였어.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은 근무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혼자였겠지··· 방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본 사람들의 신고로 발견된 거야."


"그럴 리가···"


나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고, 의사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드려준 뒤 의료진들과 함께 자리를 비켜주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심정이었다. 나는 고통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충혈된 할아버지의 두 눈을 손으로 억지로 닫으며 꾹 참았던 눈물을 떨구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를 썼지만 역시나 그런 일은 쉽지 않았다.


애초에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도시에서 빠져나왔을 때 자신들이 이렇게 죽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아마도 위험한 2 도시보다 더 안전한 곳일 거라 생각하고 떠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정말 더 안전한가? 처음엔 그래도 감염위험이 거의 없고 보균자들의 폭동에서 멀어졌으니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설엔 감염사대신 의문사가, 폭동대신 치안대 요원들의 진압이 자리했다. 어차피 이렇게 돌아가실 거였으면 차라리 자신들이 평생을 보낸 그 집에서 그냥 묵묵히 버티면서 지내셨을게 더 나았을 수도 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천국에서 할머니를 만나 그곳에서는 부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사시라고 말이다. 그렇게 흐느끼며 할아버지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던 와중 밖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아··· 미친··· 이건 또 뭐라고 보고하지."


남자의 목소리에는 귀찮음, 그리고 짜증이 묻어있었다.


"자살은 왜 하는 거야 대체··· 사람들 힘들게 말이야."


그는 할아버지의 죽음은 아무렇지 않고 단지 자기 할 일이 늘었다는 듯 성가시다는 말들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저 안에 있는 건 누구예요?"


"그, 할아버지랑 친하게 지냈다던 아이입니다."


"가족도 아닌데 뭐 저렇게 까지··· 일단 기다리죠 뭐."


나는 그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정태용 사무관에게 다가가 따지듯이 물었다.


"우린 여기서 절대 못 나가는 거죠 그런 거죠?"


정태용 사무관은 못 들은 것이라도 들은 것 마냥 화들짝 놀랐고, 나는 그런 그를 향해 계속해서 추궁하듯 물었다.


"여기서 다 죽는 건가요 우리는?"


사무관은 나의 물음에 말도 안 된다는 듯 큰소리를 치며 대답했다.


"때가 되면 다 나갈 거라고 얘기했잖아! 아무래도 지금 충격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은데. 일단 진정해!"


어느새 주위에 사람들이 서서히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사무관을 노려보았다. 그런 사무관 뒤로는 진압봉을 손에 쥔 채 달려오는 치안대 요원들이 보였다.


"4명···"


"뭐? 뭐가 4명이야?"


"제가 아는 것만 해도 4명이나 죽었어요 여기서."


정태용 사무관은 나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입술을 꽉 깨문 뒤 그런 그를 향해 물었다.


"얼마나 더 죽어야 내보내줄 건가요?"


나의 물음에 정태용 사무관은 순간 굳은 표정을 지었고, 어느새 달려온 치안대 요원들은 나를 향해 진압봉을 들이밀며 말했다.


"당장 무릎 꿇고 손 위로 올려! 공공질서 위반으로 체포 및 격리한다."


나는 치안대 요원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정태용 사무관에게 물었다.


"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내보내 줄 거냐고!"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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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47. 진실 Ⅱ 25.02.06 4 0 12쪽
46 #046. 진실 Ⅰ 25.02.04 5 0 12쪽
45 #045. 이해 Ⅱ 25.01.30 5 0 12쪽
44 #044. 이해 Ⅰ 25.01.28 5 0 12쪽
43 #043 정체 Ⅳ 25.01.23 6 0 11쪽
42 #042. 정체 Ⅲ 25.01.21 6 0 12쪽
41 #041. 정체 Ⅱ 25.01.16 6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7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10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7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7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9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9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10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10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9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9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8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9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8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10 0 12쪽
»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9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10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11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10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9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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