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균자 : 에필로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SF

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5.02.13 18:00
연재수 :
49 회
조회수 :
663
추천수 :
10
글자수 :
258,294

작성
24.12.05 18:00
조회
8
추천
0
글자
12쪽

#029. 비현실 Ⅲ

DUMMY

#029. 비현실 Ⅲ


"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차를 대기시키라는 나의 말에도 박정아는 꼼짝 않고 제자리에 서서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제자리를 빙빙 돌면서 그런 박정아에게 다시 명령하듯 말했다.


"빨리 차를 대기시켜요! 당장 시설로 가야겠으니까."


박정아는 그런 나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절대 안 된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무슨 생각으로 시설에 가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곳에 가지 않는 것이 좋아요. 거기서 우리가 뭘 하든 무조건 마이너스가 될 테니까요."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죠. 우리에게 여론이 안 좋은 상황에서 내가 한이로를 구해내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정태용 사무관을 질책한다면 말이죠."


내가 박정아 못지않게 단호하게 말하자 그는 아까처럼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거기 사람들도 그 정도 연출은 눈치챌 거예요. 거기다 다는 아니더라도 일부 사람들은 이미 대표님과 한이로 씨의 관계를 알고 있잖아요?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던 사이라는 걸. 그러면 오히려 형평성을 가지고 문제 삼을 수 있어요."


"아니··· 이 상황에 그런 걸 문제 삼을 사람이 있다고요?"


"물론이죠. 사람들은 보통 자기들 생각 먼저 하니까요. 거기 보고서에 있으니 이미 알겠지만 , 최근에 구금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고 있어요. 가벼운 소란으로도 이틀은 구금되는 상황이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소통 담당관 친구라는 이유로 하루 만에 풀려났다? 그러면 문제가 될 거예요. 오히려 거기 사람들에게 대표님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만 심어줄 수 있다고요."


박정아의 말에 아까 봤던 보고서를 다시 들춰보니 뒷장에 시설에서 발생되는 사건사고에 대해 간략한 설명이 통계와 함께 기재돼 있었다. 단순한 소음 문제부터, 실제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난 폭력 사건 등 크고 작은 일들이 매일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프는 어느 시점부터 놀라울 정도로 가파른 경사를 그리며 솟구치고 있었는데 아마도 불법 이주자들이 들어온 시점인 것 같았다.


"이걸 기회로 삼겠다고 생각한 건 기발한 생각이에요. 그리고 실제로 그 생각이 사람들에게 잘 먹힐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는 무리할 필요가 없어요. 아까 내가 말한 것처럼 중간만 가도 괜찮으니까."


"음···"


나는 들고 있던 보고서를 책상 위에 다시 내려놓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박정아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확실히 오늘은 회의 때부터 무리를 했고, 더 이상 그런 행동은 취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오늘은 일단 집에 가서 쉬고. 시설에 방문하는 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이제는 사적으로 방문하긴 힘들게 됐으니, 공식적으로 추진해야죠."


"알겠어요."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머리가 차가워지면서 내가 왜 갑자기 나답지 않게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럴 때면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와중에 나를 멈춰 준 박정아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난 먼저 들어갈게요. 보좌관님··· 아니 정아 씨."


내가 정아 씨라고 말하자 박정아는 순간 놀란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네. 들어가요 유환 씨."


***


일주일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나와 박정아, 그리고 동료 의원들은 임시 거주 시설 내 학교 일부를 생산소로 전환하는 계획을 실행으로 차차 옮겼고, 동시에 시설에 방문하여 2 도시 사람들과 소통하는 행사를 기획했다. 다소 짧은 기간 내에 모든 걸 해야 했기에 우리는 밤낮으로 같이 붙어 일했고, 그리고 그런 노력 덕분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모든 일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그리고 오늘은 최종점검 및 소통 행사를 위해 시설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긴장되네요."


"다 괜찮을 거예요."


차에 타서 이동하는데 입술이 바싹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공식적으로 처음 추진한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일주일 내내 들었던 것 때문이기도 했다. 단순히 피곤한 것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걸 넘어서는 어떤 무언가가 지난 일주일 동안 나를 괴롭혔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안감이 주위를 맴돌고 떠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와 박정아는 늘 그럴 때마다 괜찮다고 말해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면증까지 겪어가며 이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싸웠다.


"어제도 잘 못 잔 거예요?"


"아··· 그런 셈이죠. 아무래도 행사 전날이니."


"오늘 다 끝나고 푹 쉬어요."


박정아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해주었고, 나는 피곤했지만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그에게 화답했다. 차는 어느새 익숙한 회색건물에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그 건물 앞으로는 저번처럼 정태용 사무관과 여러 공무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우리 차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자 분주하게 자리를 잡고는 고개를 숙이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오랜만입니다. 사무관님."


내가 차에서 내려 정태용 사무관에 다가가 손을 건네자 사무관은 이번엔 허리를 굽혀가며 내 손을 잡았다.


"오시는 길은 괜찮으셨는지요? 요즘 날이 덥다 보니···"


정태용 사무관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요즘 갑자기 후덥지근해진 날씨를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듯 그를 향해 말했다.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저보다는 현장에 계신 사무관님과 다른 분들이 괜찮으셨을지가 더 궁금하네요. 냉방 시설이 아직 다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들어서요."


"아··· 확실히 일부 구역에는 냉방시설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선풍기 등은 여러 장소에 비치해 두어서 심각할 정도는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정태용 사무관의 신호에 따라 저번처럼 1층의 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고, 햇빛이 그 틈새로 조금씩 새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모습이 드러나는 광장에는 치안대 요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그 모습에 나는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우선 새로 추가된 생산소 먼저 보실까요?"


"그러시죠."


나는 정태용 사무관, 그리고 박정아와 나란히 앞에서 걸으며 한 때 교실이었을 생산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2층에 올라서자마자 나는 잠깐 굳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생산소로 전환된 교실이 이로와 진수가 소속돼 있었던 다용도실 옆 학급이었기 때문이었다. 계획을 직접 했기에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막상 두 눈으로 마주하니 무언가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책상과 의자 등이 가득했던 곳에는 이제 각종 기계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대신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만이 가득했다. 몇 개 설치되지 않은 환풍기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그런 생산소 안의 탁한 먼지를 비추었고, 전체적인 인상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한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었는데 어떻게 다 정리가 됐네요?"


옆에 있던 박정아가 어딘가 감격한 듯한 목소리로 생산소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정사무관은 조금은 자랑스럽다는 듯 양팔을 벌려 보이더니 답했다.


"보내주신 계획과 정확히 일치하게 모두 세팅했습니다. 기존에 지하에서 생산하던 양까지 하면 총생산량의 두 배는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관련해서 보내주신 새로운 근무 규정도 다 살펴보았고, 이미 어느 정도 근무자 스케줄도 작성해 뒀습니다. 아무래도 인력이 많이 늘어나다 보니 근무자 스케줄 구성도 훨씬 유연해져서 앞으로 생산소 가동이 더 원활해질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고생 많으셨겠네요. 그 근무자 스케줄은 이따가 같이 간단히 확인해 보도록 해요."


박정아는 업무용 미소를 지으며 정태용에게 말했고, 정태용은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예정대로 소통 행사를 진행할까요?"


"네 그러시죠!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잔뜩 신이 난 정태용 사무관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우리를 다시 1층으로 안내했고, 거기엔 늘 보았던 단상과 그런 단상 위로 세팅된 의자들과 마이크 등이 있었다. 행사장이라고 하기엔 다소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세팅이었지만, 최대한 간소하고 검소해 보여야 한다는 박정아의 의견에 따른 결과였다.


"그런데 너무 간소한건 아닌지···"


정태용 사무관은 단상 위에 있는 의자들을 가리키며 말했고, 박정아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대화를 나누는 장에 사람과 사람만 있으면 되죠. 불필요하게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 네···"


"그보다 경호만 조금 신경 써주세요. 그럴 분들이 아니란 건 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치안대 대대장이 특별히 선별한 인원들로 행사장 통제를 하고 있으니까요."


정사무관의 말에 나와 박정아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저번보다 많은 인원들이 시설 곳곳에 배치돼있는 것이 보였다. 1층은 물론 2층과 3층, 심지어 4층까지 치안대 요원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주위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럼 안내 방송 시작해 주세요.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내가 정사무관에게 말하자. 사무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부리나케 어디론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설 내부에는 정사무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2 도시 시민분들께 말씀 전합니다. 잠시 후 1층에서 2 도시 시의회당 청년대표시자 임시 거주 시설의 소통담당관으로 계신 김유환 담당관님과 함께하는 소통의 날 행사가 시작할 예정입니다. 평소 4 도시 정부에 궁금했던 사항 또는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는 분들은 1층으로 오셔서 행사에 참석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와 1층으로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보이자 나는 조금씩 긴장을 하게 됐고, 잠시 잊었던 불안감이 온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걱정 마요."


나의 떨리는 손을 박정아가 잡아주었고, 나는 눈을 감은채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심호흡을 마치고 눈을 뜨자 어느새 광장과 2층, 그리고 3층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전 방위로 포위를 당한 듯한 압도되는 느낌에 순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지만, 이내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2 도시 시민 여러분. 김유환입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소통의 자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나는 말을 마친 뒤 허리 숙여 여러 방향으로 인사를 했고, 동시에 사람들이 수근덕 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곳에서 지내시는 게 얼마나 힘드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담당관 역할을 수행하기 전 시설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인사를 마치고 말을 이어가던 와중 군중 속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고, 나는 순간 말을 멈추었다.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한이로가 사람들 사이에 서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보균자 : 에필로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안내. 24.08.29 27 0 -
49 #049 피안개 25.02.13 1 0 12쪽
48 #048. 그을음 25.02.11 3 0 12쪽
47 #047. 진실 Ⅱ 25.02.06 4 0 12쪽
46 #046. 진실 Ⅰ 25.02.04 5 0 12쪽
45 #045. 이해 Ⅱ 25.01.30 5 0 12쪽
44 #044. 이해 Ⅰ 25.01.28 5 0 12쪽
43 #043 정체 Ⅳ 25.01.23 6 0 11쪽
42 #042. 정체 Ⅲ 25.01.21 5 0 12쪽
41 #041. 정체 Ⅱ 25.01.16 5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6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9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7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6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8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8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9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9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8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8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8 0 12쪽
» #029. 비현실 Ⅲ 24.12.05 9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8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9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8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10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10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10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9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9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