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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5.0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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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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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 악몽 Ⅰ

DUMMY

#030. 악몽 Ⅰ


'덕호 할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격리실에 갇혀서 있다 보니 불현듯 든 생각이었다. 사람 하나가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방 안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베이지 색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외부와 연결된 공간은 굳건히 닫힌 문에 뚫린 조그마한 쇠창살뿐이었다. 그런 쇠창살 사이로는 간간히 치안대 요원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런 소리가 들려올 때면 그래도 여기 누군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상하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에 기대어 앉아 무릎을 몸으로 끌어안고 있으니 덕호 할아버지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격리실은 끝없이, 그리고 천천히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장소였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냥 계속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주하는 것뿐이었다. 아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그런 할아버지의 외로운 싸움에 마침표를 찍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내가 말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제 와서 그런 생각해 봐야 무슨 소용이냐 싶으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생각하는 것 밖에 없는 이곳에서 마구 떠오르는 것들을 손가락 튕기듯이 손쉽게 무시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저녁이다."


그러던 와중 창살 사이로 치안대 요원이 저녁 식사를 밀어 넣어줬다. 창살을 삐져나와 땅으로 툭 하고 떨어진 저녁 식사는 비닐로 포장된 샌드위치와 캔음료였다. 샌드위치라고 부르긴 했지만 사실 빵에 싸구려 햄 같은 것이 들어간 것이었는데 아침으로 종종 나오던 것이었다. 나는 항상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동생인 수로는 너무나도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렇게 물끄러미 떨어진 빵과 캔음료를 보고 있자니 수로가 떠올라 걱정이 됐다. 밥은 먹고 있을지, 혹시 수진이 형이 또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닐지 같은 생각들이었다.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몸을 움직여 떨어진 빵과 음료를 주웠다. 먹고 싶지 않았지만 며칠이나 이곳에서 보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뭐라도 먹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빵은 역시나 별로였고, 음료도 항상 먹던 그 애매한 맛 그대로였다. 그렇게 말 그대로 대충 끼니를 때운 나는 다시 아까와 같은 자세로 앉아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주했다. 뭔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처럼.


***


"아침이다."


쇠창살 사이로 떨어진 캔 음료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뒹굴었다. 그 소리에 눈이 떠진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고, 온몸을 쑤시는 듯한 고통이 어느 순간부터 계속해서 이어졌다. 콘크리트 바닥에 그 어떤 침구류도 없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 이곳엔 시간 개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지금이 몇 시인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나마 날짜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치안대 요원이 음식을 던져주며 말하는 아침, 점심, 저녁을 세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방금은 여섯 번째 아침식사였다. 첫날은 저녁이었고 여섯 번의 아침이 있었으니 거의 일주일을 이곳에 갇힌 셈이었다.


나는 멍한 상태로 몸을 움직여 이제는 보기만 해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빵을 집어 들고 입에 쑤셔 넣었다. 무슨 의도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매번 똑같은 빵과 음료만이 식사로 제공됐다. 처음 몇 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계속해서 먹다 보니 이제는 정말이지 미칠 지경이었다. 억지로 식사를 하며 자리에 앉으니 우울감이 밀물처럼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처음에 이곳에 갇히면서 가지고 있던 분노와 같은 감정들은 이 무기력한 상황에 점점 씻겨져 나가듯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런 빈자리를 안 좋은 생각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동생 생각을 하며 겨우 이겨냈지만 언제까지고 이어질지 모르는 이 격리 생활은 나의 그런 마지막 의지조차 점점 꺾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애초에 사무관에게 한 번 대들었다고 이렇게 오랜 시간 갇힐 거라 생각조차 못했다.


동생에 대한 걱정도 나날로 커져갔고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불안감은 말도 안 되는 망상들로 이어지며 결국에 나는 평소에 안 하던 행동들을 하기에 이르렀다. 가령 손톱을 물어뜯는 걸로 시작해 끝도 없이 얼굴을 만지작 거린다던지 하는 것들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이게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도 이런 행동들이 내 마음대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새 내 손톱 사이사이에는 검붉은 색의 때가 잔뜩 껴있었다.


"하···"


억지스러운 식사를 끝낸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평소에 존재 자체를 의심해 오던 신을 찾고 기도를 했다. 이전에 부모님과 종교 얘기를 할 때면 질색하던 내가 이러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이제는 왜 사람들이 신이라는 존재에 기대는지 알 것 같았다.


"한이로."


"화장실 시간인가요?"


갑작스레 창살 사이로 들려오는 치안대 요원의 소리에 내가 눈을 감은 채로 답하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루에 세 번 주어지는 화장실 이용시간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벽을 짚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치안대 요원은 그런 나에게 다그치듯 말했다.


"빨리 움직여. 집에 안 갈 거야?"


"집··· 집이요?"


화들짝 놀란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치안대 요원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치안대 요원은 대답 않고 그냥 고개만 까딱이더니 빨리 가라는 듯 문 밖에서 손짓을 했다. 나는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한 걸음 씩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매일 쭈그려 앉아 있었기에 온몸이 그 모습 그대로 굳은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왠지 여기서 1초라도 멈췄다가는 다시 나를 끌고 들어갈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위에 무슨 일 있어?"


"글쎄 누가 왔다고 하던데."


"누가?"


"무슨 담당관이라고 하던데."


격리실을 벗어나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치안대 요원들이 잡담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시설 위에서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듯한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치안대 요원들은 지나가는 나를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듯 무시했고,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양이었다. 누가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중요한 사람임이 분명한 것 같았다.


"이곳에서 지내시는 게 얼마나 힘드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담당관 역할을 수행하기 전 시설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소란의 중심에는 유환이가 있었다. 단상 위에는 그런 유환이를 중심으로 저번에 봤던 보좌관, 공무원들이 나란히 있었고 그들을 보호하듯 치안대 요원들이 사방에서 경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유환이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1층은 물론이고 2층 그리고 3층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특히나 1층은 정말 빼곡하게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우리를 내보내줘!"


그리고 그때 어디선가 누군가가 큰 소리로 단상을 향해 외쳤다. 그리고 그 외침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가둬둘 거냐!"


"대답해 대답하라고!"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유환이는 당황한 듯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고, 상황을 지켜보던 공무원들이 앞으로 뛰어나와 그런 유환이를 보호하듯 감싸더니 진정하라는 듯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진정하세요! 대화를 하셔야지 일방적으로 시위하듯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공무원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쳤지만 사람들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격해지는 치안대 요원들의 통제에 배로 갚아주겠다는 듯 더 큰 목소리로 단상을 향해 소리칠 뿐이었다. 유환이는 내가 봤던 이래 가장 당황한 모습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항상 자신감 넘치고 무슨 얘기를 나누어도 늘 한결 같이 유창하던 유환이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가 보균자냐!"


"여기가 격리구역이야?!"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격해지고 있었다. 순간 이렇게 현장 한가운데에 있으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든 나는 사람들을 헤집고 어떻게든 자리를 피하려고 애를 썼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그 소리에 내 귀가 다 먹먹해질 지경이었다.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가는데 허리춤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느껴졌다. 시선을 허리로 돌려보니 그곳엔 생산소에서 쓰는 랜치가 있었다. 랜치를 들고 있던 남자는 이번에 새로 온 이주민인 듯 보였다. 건장한 체격에 다부진 인상을 한 그는 랜치와 그 랜치를 눈치챈 나를 번갈아보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이 어딘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던 찰나, 그의 손에 있던 랜치는 어느새 그 손을 떠나 단상 위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이런 미친!!... 부상자 발생!! 부상자 발생!!!"


"피해야 해!"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단상 위의 공무원 중 한 명이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하나둘씩 단상 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진정하라는 공무원들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단상 위의 사람들은 치안대 요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잡겠다는 듯 따라서 움직였다.


[시설 내 소요사태로 인하여 강제 진압 절차에 돌입합니다. 자신의 방 밖에 있는 인원은 이유 막론하고 모두 진압대상이 되니 즉시 방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전달드립니다.]


"할 테면 해봐라!"


시설 내에 안내방송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아무리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크다 하더라도 절대로 놓칠 리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방송이 기폭제가 되어 사람들을 다그치는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았다. 이제는 무기처럼 무언가 하나씩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 유환이가 이런 사람들을 뚫고 빠져나가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이 거기에 미칠 때쯤 어디선가 천둥과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굉음이 시설을 한번 훑고 지나가자 사람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수그리고 그 자리에 목석처럼 굳어있었다. 이윽고 똑같은 굉음이 몇 번이고 이어졌고 그 중심에서 잔뜩 엎드린 사람들을 밟고 올라선 치안대 대장이 보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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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48. 그을음 25.02.11 3 0 12쪽
47 #047. 진실 Ⅱ 25.02.06 4 0 12쪽
46 #046. 진실 Ⅰ 25.02.04 5 0 12쪽
45 #045. 이해 Ⅱ 25.01.30 5 0 12쪽
44 #044. 이해 Ⅰ 25.01.28 5 0 12쪽
43 #043 정체 Ⅳ 25.01.23 6 0 11쪽
42 #042. 정체 Ⅲ 25.01.21 6 0 12쪽
41 #041. 정체 Ⅱ 25.01.16 6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7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10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7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7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9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9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10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10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9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9 0 11쪽
» #030. 악몽 Ⅰ 24.12.10 9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9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8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10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9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10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11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10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9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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