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균자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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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5.0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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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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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 악몽 Ⅱ

DUMMY

#031. 악몽 Ⅱ


천둥소리의 정체는 총이었다. 대대장은 말 그대로 덜덜 떨고 있는 사람들을 짓밟고 올라서서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권총을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어느새 광장은 물론이고 건물 전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사람들이 덜덜 떠는소리만이 간간히 바닥을 훑고 다니는 정도였다. 덜컥 겁이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의 소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뿐만 아니라 동시에 얼게 만드는 그런 마법 같은 힘이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어느새 몸을 납작 엎드린 채로 있었다. 고개만 간신히 돌려 대대장을 볼 수 있었지만,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덜컥 겁이 났다.


"2 도시 시민 여러분! 아주 실망입니다 실망!"


대대장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메아 치며 건물 안을 맴돌았다.


"여러분을 처음 뵀을 때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죠? 여러분들이 오기 전까지 이 도시가 얼마나 깨끗하고 질서 정연했는지."


그는 한 손에 든 권총으로 이곳저곳에 뭉쳐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눈을 뜨고 보세요! 여러분이 만들어낸 이 개 같은 난장판을 직접 보란말입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시의회에서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자 소통 담당관님까지 이곳으로 보냈는데 여러분은 그분께 무슨 짓을 하셨죠? 대화의 장에서 상대의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폭력 먼저 행사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이전에 말씀드렸죠. 어떤 면에선 여러분들은 보균자들보다 못하다고. 스스로 잘들 증명해내셨군요 정말. 치가 떨릴 지경입니다."


대대장은 밟고 올라서있던 사람들에게서 내려와 어디론가로 손짓했다. 그러자 권총이 아닌 게임에서나 보던 돌격 소총을 들고 있는 치안대 요원들이 그의 뒤에서 하나씩 나타났다. 늘상 보던 치안대 요원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특이하게도 칼이 꽂힌 유령 같은 모양의 마크가 그들의 팔에 하나씩 붙어있었다. 헬멧도 어딘가 조금 달라 보였고,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그들이 풍기는 느낌이 늘 보던 요원들과는 훨씬 더 위협적이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어디 보자···"


대대장은 그의 뒤로 요원들이 나란히 선 것을 확인한 뒤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현재 시각 09시 10분. 여기 계신 모든 2 도시 인원들은 09시 20분까지 각자 방으로 이동합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하나씩 몸을 일으키자 대대장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복했다.


"현재 시각 09시 11분. 여기 계신 모든 2 도시 인원들은 09시 20분까지 각자 방으로 이동합니다. 만약 그때 방 밖으로 나와있는 인원이 있으면 전부 지하 격리실에 구금 조치 하겠습니다."


'지하 격리실'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곳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위로 향하는 계단을 찾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나머지 사람들도 부리나케 뛰기 시작했다.


"비켜! 비켜!"


"이보게 젊은이! 그렇게 사람을 밀치면 쓰나!"


"형! 어딨어! 형!"


순식간에 시설 안은 다시 아수라장이 됐다. 사람들은 서로를 밀치고 당기며 거의 때릴 듯이 서로를 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는 노인들과 어린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고, 여기저기서 고통 섞인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넘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끝도 없이 짓밟히고 있었고, 누군가는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사람들을 뒤로 던지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지옥으로 변해버린 공간에서 나는 최대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으나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람들로 가득 찬 계단들과 통로들 뿐이었다.


"한이로!! 이로!!"


그때였다. 다시 격리실로 끌려갈 거란 생각에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즈음 어디선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수진이 형이 있었다. 형은 2층의 난간 중 비교적 낮은 곳에 서 있었고 그곳에서 나에게 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지만 내겐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 나는 바로 형이 있는 곳을 향해 사람들을 뚫고 나아갔다. 그러면서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의 목덜미를 거의 잡아 뜯기도 했다. 고통 섞인 소리와 비난이 나의 등을 향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여기야 여기!"


형이 있는 2층도 어느새 사람들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수진이 형은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의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나를 향해 내려주었다. 잡고 올라는 의미였다. 나는 반신 반의 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수건은 손에 닿을락 말락 했고, 주변에는 하나씩 그런 우리를 눈치챈 사람들의 이목이 끌리는 것이 느껴졌다. 서두르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흔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간신히 형이 내려준 수건의 끄트머리를 잡을 수 있었다. 형은 내가 그 수건을 잡는 것을 보자마자 자리에 주저앉더니 양 발을 난간에 받치고, 양손으로 있는 힘껏 나를 끌어올렸다.


"으아아아아!"


매달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그저 형이 나를 끌려 올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내 몸은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내 몸이 어느 정도 난간에 가까워지자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한 손을 뻗어 난간 바닥을 잡았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금방이라도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됐다. 밑에서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잡지 마세요!! 떨어진다고요!!"


나는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지만, 그들은 그런 나의 소리를 무시했다. 내 신발로 손가락이 하나씩 닿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공포감에 사로잡힌 나는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런 손길을 피했다.


"이로야 너무 움직이지 마!"


수건을 잡고 있던 수진이 형은 악에 바친 듯 소리치며 나를 계속해서 끌어올렸고, 마침내 내 나머지 손까지 난간 바닥에 닿자, 형은 그대로 엎드려서 이번엔 내 손을 잡고 나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나의 신발에 닿던 손길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게 됐고, 나는 간신히 난간을 넘어 2층에 다다를 수 있었다.


"헉··· 헉···"


수진이 형과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 같은 숨을 골랐다. 그저 수건을 잡고 끌어올려진 나도 이 정도로 힘든데 그걸 다 해낸 형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형은 난간에 기댄 채로 손을 바들바들 떨며 눈을 거의 반쯤 감고 있었고, 그런 우리를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1층에서는 확성기를 통한 대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분. 1분 남았습니다. 여러분."


"저 미친 새끼···"


수진이 형은 대대장의 말에 욕을 내뱉으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나도 그런 그를 따라 몸을 일으킨 뒤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찬 2층을 벗어나기 위해 주위를 이리저리 살폈다.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간 곳이라 어디가 어딘지 당연히 아는 것이 맞았지만, 지옥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은 이상하게도 당연히 기억해야 할 것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저 쪽! 저 쪽으로 가자."


그렇게 혼란스러운 나를 수진이 형은 계속해서 이끌어주었다. 형도 이런 상황이 처음일 테니 놀랄 법도 한데 이렇게까지 침착한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내심 들었다. 수진이 형은 앞장서서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갔고 나는 그런 형을 그저 따라 뛰었다.


"움직여!!"


"이러지 마세요!!"


"지하로 갑니다!!"


대대장이 말한 1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끌려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1층은 물론 우리가 방금까지 있었던 2층에서도 하나씩 사람들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수진이 형은 그 모습을 무언가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순간 바라보았지만 이내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형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6층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쯤 되니 사람들이 확실히 적었고, 치안대 요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밑에서 올라오며 하나씩 잡아 데려가는 것 같았다.


"어이 거기 둘!"


"이런 젠장할···"


그리고 그렇게 잠깐 방심한 사이 7층으로 가는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치안대 요원이 하나 보였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멈추라는 듯 소리치며 진압봉을 꺼내 들었고, 나와 수진이 형은 뒷걸음질 치며 어떻게든 도망갈 틈을 찾았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그를 따돌리기는 어려웠다.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가 반대편으로 올라오는 것이었는데 그러 자기엔 이미 밑에서 사람들이 끌려가면서 내는 비명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형··· 어떻게 하죠?"


나는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형에게 물었다. 수진이 형은 나의 뒤에서 어딘가 비장한 표정으로 그런 치안대 요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형은 아마도 치안대 요원에게 달려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 치안대 요원은 아까 1층에서 봤던 그 무시무시한 치안대 요원이 아니라 늘상 보던 치안대 요원들 중 하나라서 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치안대 요원들은 딱 봐도 단단해 보이는 갑옷 같은 옷과 뼈도 쉽게 부러트릴 것 같은 진압봉이 있었다. 형은 물론이고 우리 둘이 동시에 달려든다고 해도 저 치안대 요원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당장 둘 다 무릎 꿇어!"


치안대 요원은 점점 우리에게서 가까워졌고, 밑에서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대신에 격리실에서 지겹게 듣던 치안대 요원들의 그 딱딱한 신발 소리만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 느껴졌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나는 이제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이로야 넌 뒤에서 녀석들이 오는지 좀 봐봐."


"네?"


"어서!"


그때 수진이 형이 나에게 뒤를 부탁한다고 말했고, 나는 형의 말대로 우선 뒤에서 올라오는 치안대 요원들이 있는지 확인했다. 확실히 치안대 요원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 1~2분 안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치안대 요원들에게 뒤를 잡혀 다시 그 악몽 같은 격리실에 갇히게 될 운명이었다.


"으아아악!"


그리고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형이 치안대 요원에게 혼자 달려든 모양이었다. 아마도 나까지 다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너무나도 겁이 났지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런 수진이 형을 돕기 위해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다음에 내 눈에 들어온 광경에서 난 그 비명소리가 수진이 형이 아닌 치안대 요원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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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047. 진실 Ⅱ 25.02.06 4 0 12쪽
46 #046. 진실 Ⅰ 25.02.04 5 0 12쪽
45 #045. 이해 Ⅱ 25.01.30 5 0 12쪽
44 #044. 이해 Ⅰ 25.01.28 5 0 12쪽
43 #043 정체 Ⅳ 25.01.23 6 0 11쪽
42 #042. 정체 Ⅲ 25.01.21 5 0 12쪽
41 #041. 정체 Ⅱ 25.01.16 5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6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9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7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6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8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8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10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9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8 0 12쪽
» #031. 악몽 Ⅱ 24.12.12 9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8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9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8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9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8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10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10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10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9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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