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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5.0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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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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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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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악몽 Ⅲ

DUMMY

#032. 악몽 Ⅲ


"어··· 어떻게?"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비명소리의 주인인 치안대 요원은 수진이 형 앞에서 쓰러져 몸을 덜덜 떨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진이 형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나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며 우리가 있는 7층으로 나를 끌고 갔다.


"형? 어떻게···"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발작을 하더라고. 운이 좋았지."


형은 정말 별일 없었다는 듯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아직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를 막아섰던 치안대 요원은 총은 없었지만 진압봉을 들고 있었고, 두 배 가까이 큰 그 덩치로 당장이라도 우리를 때려눕힐 기세였다. 그렇게 어마무시했던 치안대 요원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그것도 우리가 위급한 순간에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쓰러졌다니···


"어서 들어가!"


우리는 어느새 방에 도착했고, 형은 방금 일어난 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나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자 우리는 겨우 거친 숨을 골랐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나서야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수로가 눈에 들어왔다.


"수로야!"


"형!"


수로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번쩍 들더니 나를 향해 달려와 안겨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동생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여기저기 확인했다. 내가 격리실에 갇혀 있는 기간 동안 이런저런 고생을 했으리란 내 예상과는 달리 수로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그전보다 살도 더 찌고 깨끗해 보이기도 했다.


"이제 네 형 왔으니 나한테 보채지 마."


수진이 형은 아직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수로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없는 동안 내가 돌본다고 돌봤는데··· 네 정도 정성은 아닐지라도 나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아··· 진짜 감사해요 형."


형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고, 나는 그동안 수진이 형에 대한 나의 생각이 또 한 번 틀렸다고 생각했다. 고집불통 매사에 부정적이고 때로는 극단적이긴 했지만, 적어도 나와 수로에게 있어서는 시설에서 믿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임이 확실했다.


"형아 괜찮아?"


내가 수진이 형이 들어간 화장실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자 동생이 내게 물었고, 나는 그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답했다.


"그럼, 괜찮지."


동생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 몸 여기저기에 난 상처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동생에게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고 침대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씻어야 하는데···'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는 것을 느꼈다.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무언가가 내 눈꺼풀을 억지로 닫는 것만 같았다. 긴장이 풀린 몸은 여기저기가 쑤셔왔지만 마치 모래성이 무너지듯 스르르 몸이 뒤로 뉘어졌다. 더 이상 눈은 뜰 수가 없었고, 팔다리를 비롯해 온몸에서 전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며 그렇게 서서히 모든 것이 아득해졌다.


***


"형! 형! 일어나!"


다급한 동생의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 들려왔다. 어떻게 지금까지 깨지 않고 잠에 들어있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큰 소리였다. 여기저기 얽히고 찢긴 사람들의 소리에는 공포와 절망이 서려있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나 놀란 표정의 동생을 감싸 안고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수진이 형은? 형은 어디 간 거야?"


나의 물음에 동생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형이 방에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할 틈이 없다고 판단한 뒤 몸을 떨고 있는 수로를 데리고 방문을 나섰다.


"아아아악!!"


"도망쳐!"


방문을 벗어나자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지옥과도 같았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있었고, 치안대 요원들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거나 진압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무기도, 힘도 없는 사람들은 그저 그런 요원들에게서 도망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 달리고, 심지어 난간을 잡고 버티거나 뛰어내리는 사람들 까지 있기도 했다.


"지하! 지하의 검수구역으로 가야 돼!"


누군가가 큰소리로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검수구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저 사람이 그곳을 어떻게 아나 싶었지만 그런 생각은 지금 중요치 않았다. 나는 검수구역을 향해 동생과 함께 내달리기 시작했다. 철제 계단이 끼익 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장단을 맞췄다. 당장 내 주위에서도 사람들이 끌려가는 것이 보였다.


치안대 요원들은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포식자가 사냥을 하듯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었다. 그들의 행동에는 단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 보던 악마와 같았다. 검은 날개대신 검은 옷을 입은 악마들이었다. 나는 그런 악마들의 눈에 띌세라 몸을 낮추고 지하로 지하로 계속해서 향했다. 운이 좋은 건지 신의 도움인지 모르겠지만 악마들은 다른 사람들에 정신이 팔려 우리를 보지 못했다.


지하로 들어온 나는, 이전에 햄버거 특식을 받으러 았던 검수구역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것이 느껴졌고, 뒤에선 악마들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땀이 가득한 손으로 힘겹게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아···"


문을 열자 그곳에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어둠이었고, 처음엔 그게 산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이윽고 열린 문틈 사이로 붉은 조명 빛이 새어 들어왔다. 빛은 산을 세로로 가르며 빛을 비추었고, 그러자 나는 그것이 산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우욱···"


금방이라도 토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사람이었다. 아니. 사람이었던 것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마치 쌀포대를 쌓아놓듯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그렇게 산 처럼 쌓여있었다. 중간중간 그런 시체들의 틈에서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미세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산의 정체가 밝혀지자 그제야 악취가 콧속을 뚫고 들어왔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냄새가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수로야 이런 건···"


충격을 받았을 동생을 달래기 위해 몸을 돌려 동생을 찾았는데 동생은 그곳에 없었다. 나는 동생을 찾기 위해 마치 미친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내 시선의 끝에, 시체 더미의 꼭대기에 올라있는 동생이 보였다. 어떻게 저기까지 간 거지 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수로야!"


나는 동생의 이름을 불렀지만 동생은 내 목소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소름 끼치게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내며 시체 더미 위에서 뛰기 시작했다. 나는 충격적인 모습에 순간 몸이 얼어붙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탕' 하고 귀가 찢어질듯한 총성이 들려왔다. 순간의 총성에 나는 몸을 움찔했지만, 총알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산에서 뛰놀던 동생은 어느새 움직임을 멈추더니 옆으로 스르르 넘어졌다.


"수··· 수로야!"


나는 동생의 이름을 외치며 시체 더미를 향해 뛰었다. 발에 밟히는 감각이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 같았다. 딱딱한 뼈와 등, 그렇지 못한 다른 곳들, 정렬되지 않고 무작위로 쌓인 시체들은 내가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나의 발목을 붙잡는 것 같았다. 발이 자꾸 그들의 팔다리에 엉키고 푹푹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저 위에 동생이 쓰러져 있는데도 나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뒤에서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둔탁한 그 소리는 검수구역 안에 두꺼운 메이라리를 울려 퍼지게 했다.


발소리의 장본인의 총구는 이제는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 붉은빛으로 살짝 보이는 그의 얼굴은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2 도시 시민 여러분. 정말이지 치가 떨립니다."


익숙한 목소리와 분위기, 혐오가 가득 섞인 말투. 치안대 대대장이었다.


"더 이상은 저도 힘들 것 같군요."


그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더니 나를 향해 겨눈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


"형아! 형아! 일어나!"


"헉··· 헉···"


동생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니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정신을 차린 뒤 바로 몸을 일으켜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동생의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수로. 수로 맞지?"


"형아 무슨 말이야?"


동생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고, 나는 안도감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아무것도··· 그런데 날 왜 깨운 거야?"


내가 아직은 잠긴 목소리로 묻자, 동생은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형아가 자꾸 뭐라고 계속 말을 해서 무서워서 깨웠어."


"내가?"


나는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수로는 맞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그냥 잠꼬대 아니야?"


"무서운 말을 했어."


"무서운 말?"


동생은 눈을 질끈 감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했던 말을 되뇌었다.


"너희들 전부 다 죽여버릴 거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여버릴 거야."


"아···"


"다 죽여버릴 거야."


"그만해 이제 괜찮으니까."


나는 이제 됐다는 듯 거친 말들을 쏟아내는 동생을 끌어안았다. 동생은 이제 안심이 됐는지 내 품속에서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냥 악몽이었나···'


동생을 안은 채로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이곳에 갇혀있는 신세였지만, 적어도 꿈에서 본 것처럼 모두가 죽어나가고 있지는 않았다. 여느 때처럼 사람들 싸우는 소리만 간간히 밖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수진이 형은 어디 갔어?"


나의 말에 동생은 훌쩍이던걸 멈추고는 방문을 가리키며 답했다.


"오후에 일해야 한다고 나갔어."


"아··· 그렇구나."


사람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결국 사태가 그 지경 까지 갔는데 어떻게 생산소를 다시 운영하는지 의문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 맞다."


동생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책상으로 뛰어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에게 가져왔다.


"이게 뭐야?"


"봐봐!"


동생은 어딘가 신나는 얼굴이었고,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동생이 준 문서 안의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나도 이제 형처럼 일할 수 있어!"


동생은 어딘가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나는 문서 안에 쓰여진 '업무 지원 대상아동 안내'라는 내용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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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048. 그을음 25.02.11 3 0 12쪽
47 #047. 진실 Ⅱ 25.02.06 4 0 12쪽
46 #046. 진실 Ⅰ 25.02.04 5 0 12쪽
45 #045. 이해 Ⅱ 25.01.30 5 0 12쪽
44 #044. 이해 Ⅰ 25.01.28 5 0 12쪽
43 #043 정체 Ⅳ 25.01.23 6 0 11쪽
42 #042. 정체 Ⅲ 25.01.21 6 0 12쪽
41 #041. 정체 Ⅱ 25.01.16 6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6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9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7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6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8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8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10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9 0 12쪽
» #032. 악몽 Ⅲ 24.12.17 9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9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8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9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8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9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8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10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11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10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9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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