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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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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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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책임자 Ⅰ

DUMMY

#033. 책임자 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이번엔 그 도가 훨씬 지나쳤다. 아수라장이 된 시설에 치안대 대대장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의 도움 덕분에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바로 그다음이었다.


"흠··· 그러니까 대화를 시도하기도 전에 2 도시 군중들이 폭력적으로 달려들었다 이 말입니까?"


"맞습니다."


당의 대회의실 한가운데에 선 나는 여러 당원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었다. 억울한 일이지만, 어쨌거나 이 모든 일의 책임자가 나라는 이유에서였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총책임자는 아버지였지만, 아버지가 이런 행사를 계획한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불똥이 튀는 것보다 나에게 튀는 것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런 행사를 기획한 사유가 뭡니까?"


"그건···"


당원들, 특히 아버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질문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마치 그들 모두가 내가 실수하기를 기다렸다가 기회가 생기니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드는 모양새였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 들어온 터라 이 바닥이 원래 이런 곳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막상 당하는 처지가 되니 여간 기분이 더럽고,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니었다.


"사유가 뭐냐고 물었습니다만?"


사유··· 생각해 보면 그런 거창한 것은 없었다. 단지 시설 내 여론을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연출에 불과했다. 계획대로라면 그 모든 사람들 앞에서 정태용 사무관을 미리 합의한 내용에 따라 질책하고 추가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모습을 보이고 박수를 받으며 끝날일이었다.


"2 도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생활환경을 개선하여 불만을 줄여보고자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시설 내에 크고 작은 소동이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는 상황이었고요."


"그렇다고 해서 청년 대표라는 분이 그렇게 위험한 행사를 굳이 강행하고 직접참여 했어야 했습니까? 그것도 마지막 남은 학교시설까지 없앤 다음에?"


몇 번이고 눈여겨보던 젊은 당원 하나가 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는 안경테를 손으로 잡고, 마스크 속으로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꼬치꼬치 하나하나 따졌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앞자리에 앉아 정말이지 어두운 얼굴로 앉아있는 아버지를 보니 그럴 일은 꿈도 꿀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점에 대해선 제가 안일했습니다. 당원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 말씀 드립니다."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내 자존심도 함께 꺾였다. 그런 나의 모습에 몇몇이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이 정도의 모습을 보이니 이제 그만하자는 그들만의 신호 아닌 신호였다. 어처구니없는 상황, 그리고 굴욕적인 마음에 마스크 속에서 내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여기서 더 이상 싸워봐야 아무 의미 없었다.


"청년대표도 이번일을 계기로 깨우친 것이 많을 테니 이제 다들 그만하십시다. 그보다 먼저 앞으로 어떻게 시설을 운영할지에 대한 논의가 우선 아니겠습니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던 당대표가 이제 자기가 나설 때가 됐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모두가 언제 그랬냐는 듯 180도 다른 태도를 보이며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쳤다.


"그럼 청년대표는 이제 자리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내 자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후···"


"잘하셨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옆 자리의 박정아가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모두가 적인 것 같은 상황에 그래도 이렇게 박정아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아버지가 있긴 했지만, 아버지는 거의 나를 훈계하는 입장이었지 격려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모르겠네요. 이걸 계속해야 할지."


내가 넥타이를 살며시 풀며 푸념을 늘어놓자 박정아는 얼굴을 내 쪽으로 가까이 붙이며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이런 일은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일이지 피할 일이 아니니까. 앞으로 이보다 더한 것도 많이 마주하게 될 거예요. 그냥··· 이번엔 좋은 연습 했다고 생각하세요."


"좋은 연습··· 그렇게 부르기엔 너무 위험했잖아요. 나도 그렇고 보좌관님도 그렇고. 우린 하마터면 거기서 전부 다 죽을 수도 있었다고요. 나 때문에."


박정아는 그날을 회상하듯 허공을 살짝 응시하더니 고개를 살며시 가로저었다.


"위험하긴 했어요. 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대표님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리드를 한건 대표님임에는 맞지만··· 저를 포함해서 청년당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획한 행사였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본인 탓으로 몰아가진 마세요."


나는 그의 말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내심 그런 따뜻한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특히나 모두가 다 있는 이 대회의실에서는 말이다.


"그럼 다음으로 임시 거주 시설의 차후 운영 방향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관련해서 준비하신 이영래 당원님 먼저 단상으로 나오셔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대표의 말이 끝나자 내 눈에 가시 같던 그 젊은 당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찬 발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이름은 오며 가며 어렴풋이 들었지만 제대로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나이가 꽤나 있는 다른 당원들과 달리 30대의 비교적 젊은 남자였다. 보통 그의 나이면 나처럼 청년회의에 있는 것이 당연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청년회의에 속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버지 반대파 원로들과 자주 함께했다.


"이영래입니다. 제 발표 순서에 앞서, 저의 이런저런 질문에도 성실히 답해주신 김유환 청년대표님께 감사의 말씀 먼저 드리겠습니다."


이영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연출이라는 것을 알기에 탐탁지 않았지만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네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박정아가 피식 소리를 내며 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동의한다는 듯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사이 이영래는 준비한 시각 자료를 회의실 빔프로젝터를 통해 송출했다. 그가 준비한 시각자료에는 여러 그래프가 있었는데, 그래프에는 2 도시 시민 사망자 수와 범죄 발생 수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자. 존경하는 당원 여러분. 제가 준비한 자료를 봐주십시오. 보시자마자 바로 인지하셨겠지만, 2 도시 시민의 사망자 수와 범죄 발생 수가 거의 정비례하며 상승하고 있습니다. 특히 범죄 발생 같은 경우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죠.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시설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영래는 단상을 이리저리 오가며 마치 회사 대표가 차기 신제품을 소개하는 것 마냥 회의실 사람들의 이목을 계속해서 끌어 잡았다.


"이유는 말씀 안 드려도 다들 아시겠지요? 이들이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일반 시민들을 격리구역의 보균자들 다루듯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죠."


"어허! 그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그건 아니죠."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지 자리 주위에서 여러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이영래는 이미 예상 했다는 듯 씩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여유 있는 모습으로 계속해서 발표를 이끌어갔다.


"더 이상 부정한다고 해서 부정될 사실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제시된 이 표를 확인해 주십시오."


그가 다음으로 넘긴 시각 자료에서는 격리구역의 실태와 임시 거주 시설의 실태를 비교한 표가 보였다. 각 행마다 어떠한 조건을 명시하고, 그 옆으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비교하는 모양새였다.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의 생활반경이 제한되는 것이 동일합니다. 자. 보균자들이 외부로 나갈 수 있습니까? 없지요? 그럼 이들은 외부로 나갈 수 있습니까? 없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들에게 지원되는 품목과 서비스들을 나란히 살펴보십시오. 전부 동일하지요? 물론 제공되는 것들의 품질에 대해서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만, 제공되는 방식이나 품목이 너무나 똑같지 않습니까? 물론 마스크는 제외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발표가 계속될수록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일부 당원들은 불편한 기색을 대놓고 드러내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그래요. 비슷하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해법이라도 있다는 겁니까? 아시다시피 외부 여론이 그들에게 부정적이지 않습니까?"


아버지 주위에서 또 한 번 큰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이영래는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만 까딱이더니 그런 당원들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저는. 2 도시 임시 거주 시설의 즉시 해체를 제안합니다."


"허···"


"뭐라고요?"


"즉시??"


당원들 모두가 당황하며 한 마디 씩 뱉어냈다. 이번엔 아버지 쪽 사람들 뿐만 아니라 반대편, 그리고 원로들 사이에서도 한 목소리가 나왔다.


"임시 거주 시설을 즉시··· 그러니까 바로 해체하고 시 안으로 들여보내자··· 이 말입니까?"


아버지 옆에 앉아있던 시장의 목소리가 이영래를 향했다. 이영래는 이번엔 마스크 속으로 크게 미소를 지으며 그런 시장에게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맞습니다. 정확하십니다."


시장은 당황한 걸 넘어서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었고, 아버지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영래는 모두가 어이없어하는 와중에도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에 서있었다.


"여론이 얼마나 부정적인지 알고는 계시고 하는 말씀이시죠?"


"아 물론 지금은 그렇죠."


이영래는 '지금은'이란 말을 강조하면서 시각자료를 다음으로 넘겼다. 다음에 펼쳐진 시각 자료에서는 2 도시 임시 거주시설 시민들이 생활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생산소에서 노인들이 일하는 모습, 보급품이 부족해 애걸복걸하는 모습, 처참하기 그지없는 식사를 먹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등등이었다.


"저··· 저걸 어디서?"


나는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으며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당황한 건 박정아도 마찬가지였다. 이영래는 내가 앉아있는 자리를 슬쩍 쳐다보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시설에 근무 중인 공무원들, 치안대 요원들 모두 기밀유지는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의로운 공익 제보자는 항상 나타나는 법이지요. 이 자료들은 모두 그 공익 제보자로부터 전달받은 자료입니다. 저는 이 시각 자료들을 포함해 2 도시 시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배포할 생각입니다. 이것은 시민들의 알 권리에도 해당하니까요."


그의 대담한 계획이 발표되자, 그제야 아버지가 손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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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042. 정체 Ⅲ 25.01.21 6 0 12쪽
41 #041. 정체 Ⅱ 25.01.16 6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7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10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7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7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9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9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10 0 12쪽
» #033. 책임자 Ⅰ 24.12.19 10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9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9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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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028. 비현실 Ⅱ 24.12.03 8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10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8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10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11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10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9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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