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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5.0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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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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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 책임자 Ⅱ

DUMMY

#034. 책임자 Ⅱ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의 뒷모습이 어딘가 거대해 보였다. 원래도 체구가 큰 편이긴 했지만, 왠지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는 유독 더 커 보였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엄청난 분노를 쏟아내기 직전인 상황 같은 경우엔 커 보이는 것을 넘어서 마치 거대한 산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영래 당원님."


아버지의 낮지만 위압적인 목소리가 대회의실 전체를 감돌았다. 분명히 작은 소리였음에도 좌중을 압도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 모두가 순식간에 조용해진 가운데, 오직 이영래만이 단상 위에서 미소를 유지한 채로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계속해보라는 듯 손짓을 하고 있었다.


"당원님이 그런 악의적인 보도자료를 배포하시면 당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의 질문에 이영래는 "흠" 소리를 내며 한 손으로 턱을 받치더니 고개를 갸우뚱해 보이며 오히려 아버지에게 되물었다.


"답을 해드리기에 앞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 단어 선택에 조금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악의적인' 보도자료라니요? 김창일 부시장님께서는 이게 악의적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이영래의 당돌한 태도에 아버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악의적인 게 아니면 뭐겠습니까? 시설의 열악한 부분만을 비추어서 보도자료를 만든다는 게 다분히 의도적이지 않습니까? 만약 이영래 당원님께서 진정한 진실을 외부에 알리고 싶으시다면, 시설의 긍정적인 부분도 함께 자료에 담아서 알려야 하는 게 이치 아닙니까?"


"옳소!"


"백번 맞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아버지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옹호했다. 이영래는 그럼에도 전혀 주눅 든 기색 없이 아버지의 말을 받아쳤다.


"진실이라··· 말씀 잘해주셨습니다. 부시장님 말씀대로 저도 시설 내에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말인즉슨 진실만을 담아 배포하려 했다는 거지요. 그런데 너무나도 어이없게도 이 시설에 긍정적인 부분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말을 이어가는 이영래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2 도시에서 우리와 같은 삶의 질을 누리던 일반 시민들이 보균자 취급을 받으며 임시 거주시설이라는 새로운 격리 구역에 갇혀 지내고 있습니다. 보균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와 보급품들을 지급받으면서 하루하루를 사는··· 아니 생존해 나가고 있어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도시 정부는 이들에게 언제 이런 것들이 끝날 것이다라는 희망조차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4 도시 시민들의 여론이 안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요."


이영래는 팔을 크게 벌리며 회의실 안의 모두의 주목을 끌어들였다.


"이렇게 희망도 없고 갇혀 지내는 일반 시민들이 이제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감염사로요. 솔직히 그게 감염사가 맞았는지 의문이긴 하지만요. 거기다 언론도 통제되고 있다는 소식을 제 정보원을 통해 듣기도 했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마치 누군가가 시설 내의 상황을 여론을 피해서 꽁꽁 숨겨두려는 모습이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정확히 아버지가 있는 곳을 응시했다.


"통제된 언론, 갇혀서 죽어가는 사람들. 저는 이것을 또 다른 의미의 학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보세요 이영래 당원!"


"거 말이 너무 지나칩니다!!"


"학살이라니요?!"


당회의실 여기저기서 그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장내는 아수라장이 됐고, 여기저기서 귀가 아플 정도로 당원들이 큰 목소리로 이영래를 질타했다. 하나 정작 당사자는 너무나 평온한 모습으로 단상 위에서 그런 그들의 질타를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적이긴 했지만 아까 나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정말이지 존경스러울 정도의 침착함이었다.


"그보다 더 걸맞은 표현이 있습니까? 사람들을 가둬 놓고 천천히 죽이는데 학살이 아니면 무어라고 표현할까요?"


"더 이상 듣지 않겠습니다!"


"당 내부 분열을 일으키려고 작정하신 겁니까?"


회의실 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졌다. 결국 당대표까지 단상으로 나섰고, 그가 이영래를 회의실 밖으로 직접 이끌고 나가서야 소란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제가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이영래가 나가는 것을 지켜본 아버지가 단상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말했고, 아무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단상에서 이영래가 그랬던 것처럼 회의실 안의 사람들을 한 번 쭉 둘러본 뒤 아까처럼 낮지만 힘이 가득 실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영래 당원께서 의도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이런저런 거친 말이 오갔지만 결국엔 2 도시 시민 분들의 무사와 안녕을 바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 계신 모든 동료 선배님들과 같은 마음이겠지요?"


"옳소!"


"그렇고 말고, 학살은 무슨 쯧쯧···"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의 사람들이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흡족한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들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여러분 모두 아시겠지만 현재 여론은 아직 그들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입니다. 당장 여론 조사 결과만 봐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비율이 과반을 넘어서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여론을 다소 의도가 보이는 자료들로 선동까지 해가면서, 2 도시 시민들을 시내로 들여야 할까요? 저는 백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4 도시 시민분들이 진실된 마음으로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우리는 2 도시 시민분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당원 동료 선배님들께 한 번 묻겠습니다. 우리 4 도시 시민들이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저희가 2 도시 시민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물음에 여기저기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대부분 아버지 쪽 사람들이었기에 그동안 아버지, 그리고 내가 추진했던 일들을 되풀이하는 내용들이었다. 아버지는 다시 한번 그런 그들에게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다들 맞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거기에 제가 좀 더 덧붙여서 앞으로 저희가 나아가야 할 방안을 제시하고 싶군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에게 이목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의 무사와 안녕을 위한 더욱더 확고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현재까지 진행 돼온 다소 유연했던 관리 시스템을 조금 더 견고히 하고 매뉴얼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나 막대한 시의 재정이 소요가 되는 이 시설에서 조금이라도 경제적 생산성을 늘릴 요소가 있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를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만약 저희 시의 재정 상황이 더욱더 어려워질 경우 그들에 대한 지원이 제일 먼저 줄어드는 건 불가피할 것입니다. 하여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들 스스로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생산 조건을 만드는 것이 시급합니다."


조금은 급진적인 이야기였지만, 아버지는 개의치 않고 단호한 어투로 당원들을 향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 시스템 구축의 시장으로 저는 2 도시 임시 거주 시설의 명칭을 '2 도시 혁신구역'으로 개정하는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혁신구역이라···"


"다소 급진적인 느낌이긴 한데···"


아버지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단순히 시설의 명칭을 바꾸는 얘기였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아차리는 듯했다.


"회의 초반 김유환 청년대표가 저를 대신해서 질타를 받긴 했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이 시설의 총책임자입니다. 그 누구보다 이 시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제게 힘을 실어주신다면, 이영래 당원이 앞으로 우려하지 않을 정도로 혁신적이고 훌륭한 거주 환경을 그들에게 반드시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회의실을 다시 한번 둘러보더니 자리로 내려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웅성거렸고, 옆에 있는 박정아는 노트에 이영래부터 아버지까지 오고 갔던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뭔가··· 엄청 많은 일이 생길 것 같네요."


내가 그에게 넌지시 한마디 던지자 박정아는 시선을 노트에 고정한 채로 답했다.


"네. 특히 대표님이 많이 바빠지시겠어요."


"그런가요?"


내가 반신반의하며 되묻자 박정아는 시선을 노트에게서 나로 돌리며 말했다.


"그럼요. 만약 부시장님 뜻대로 진행된다면 그 모든 일은 다 대표님으로 떨어질 거예요. 그래서 저렇게 끝에 굳이 간접적으로나마 언급하신 거겠죠."


"역시··· 그렇게 되겠군요."


나는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한 일이었지만 박정아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니 거의 확실하게 모든 게 나를 책임자로 하여 다시 시작될 것 같았다. 아직 시작도 전이지만, 심지어 시작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생각만 해도 그 압박감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자. 당원님들 다들 오늘 회의는 이렇게 마무리하시죠. 모두 바쁘신 분들이니 우선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시고··· 이영래 당원과 김창일 부시장의 제안 건들에 대해서는 빠르면 이번 주 내로 일정 조율해서 표결을 붙이겠습니다. 그때까진 서로 문제가 될만한 행동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어느새 회의실로 돌아온 당대표가 회의를 마무리하자 하나 둘 회의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다들 친한 당원들과 삼삼오오 모여 오늘 회의에 대해 이런저런 코멘트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무리들 중에는 당연 아버지의 무리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무리였는데, 최근에 시장까지 합류하게 되면서 그 세가 엄청났다. 아버지와 시장을 중심으로 커다란 무리가 회의실 통로를 따라 걸어 나왔고, 나와 박정아, 그리고 청년 당원들은 그런 그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어··· 청년 대표님 오늘 고생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런 손을 재빨리 마주 잡은 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의 말에 아버지와 그의 당원들은 허허 웃음소리를 내며 마치 뭐 대단한 거라도 본 것처럼 반응했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하니 말인데. 오후에 시간 되면 보좌관님과 같이 시청으로 방문하실 수 있을지 싶습니다. 표결에 앞서 어느 정도 설득할만한 계획을 같이 만들어봐야지요. 특히나 우리 청년대표님은 시설의 소통담당관도 겸하고 있으니까요."


아버지의 말에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일들이 나에게 주어질 것 만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마치 한동안 나를 계속 따라다녔던 그 불길한 예감처럼 말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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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46. 진실 Ⅰ 25.02.04 5 0 12쪽
45 #045. 이해 Ⅱ 25.01.30 5 0 12쪽
44 #044. 이해 Ⅰ 25.01.28 5 0 12쪽
43 #043 정체 Ⅳ 25.01.23 6 0 11쪽
42 #042. 정체 Ⅲ 25.01.21 5 0 12쪽
41 #041. 정체 Ⅱ 25.01.16 5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6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9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7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6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8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8 0 12쪽
» #034. 책임자 Ⅱ 24.12.24 10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9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8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8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8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9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8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9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8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10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10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10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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