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감염사? Ⅰ

#035. 감염사? Ⅰ
불행 중 다행인가 아니면 불행이 늦어지는 것뿐일까? 수로가 건네준 안내문에 떨리던 손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다음 날부터 다시 완전격리기간에 들어갔다. 여전히 치안대 요원들과 공무원들은 그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았으나, 나는 어렴풋이 그냥 또 누군가 죽어버렸구나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죽음을 덮기 위해 또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시 시작된 격리 기간에 당연히 동생은 또 한 번 지루함을 못 이겨 심술이 났고 나는 그런 동생을 달래느라 진을 뺐다. 반면에 수진이 형은 세상 평온한 모습으로 격리기간을 보냈다.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격리기간이든 아니든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한 모습을 항상 보이던 형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어쩌면 무난히 보냈던 둘과 달리 나는 계속해서 머릿속에 드는 어떤 의문점에 시달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갑자기 발작하며 쓰러진 치안대요원 때문이었다. 수진이 형은 순전히 운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타이밍이 절묘했다. 거기다 수진이 형은 얼마나 침착했는지, 사건 당일을 돌이켜보니 다시 한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 거야?"
"아, 아니에요."
형은 내가 그를 멀뚱멀뚱 보고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게 물었다. 나는 별일 아닌 듯 손을 저으며 그런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냈지만 계속해서 드는 의구심은 좀처럼 내게서 떠나질 않았다.
"그나저나 이제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은데. 슬슬 풀려나려나?"
"그랬으면 좋겠어요. 예전엔 한 번 느닷없이 연장된 적이···"
나는 왜 그때 격리기간이 연장됐는지를 설명하려다 말끝을 흐리며 얼버무렸다. 그때 기간이 연장됐던 건 다름 아닌 형과 같은 새로운 이주민들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아마 형도 알겠지만 굳이 그날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다시 떠올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이라··· 그래봐야 몇 주 정도 아니야?"
"그렇죠 뭐···"
형은 침대에 누운 채로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참··· 여기는 정말이지 하루가 일 년 같은 느낌이야. 뭐랄까··· 하루가 너무 긴데 그에 비해 할 수 있는 건 너무 없으니까 그 긴 하루가 더 길어지는 느낌이랄까."
나는 형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그런 나를 슬쩍 돌아보더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끝에 걸터앉았다. 그러더니 어딘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계속해서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그런 형의 모습에 내 꺼림칙한 의구심을 형에게 들킨 건가 싶어 시선을 나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다시 돌렸고, 형은 다시 한번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너··· 무슨 일 있지?"
형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고,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완전격리기간만 되면 뭔가 멍해져서···"
나의 대답에 형은 여전히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다시 드러누우며 말을 이었다.
"하긴. 이중으로 갇혀있는 셈이니까.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조금 멍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맞은편 침대에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는 동생과 나를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이번엔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넌 여기서 나가면 뭐 할 거야?"
"네?"
"나가면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형의 질문에 나는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로는 형이 그런 질문을 갑자기 했다는 것에서였고, 두 번째로는 내가 그 질문을 들었을 때 우리가 언젠가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 글쎄요··· 우선은 수로를 학교부터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전 아무래도··· 일을 시작해야겠죠? 나이도 찼고, 수로 학비도 벌어야 하고··· 아마도··· 이젠 저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가장노릇을 해야 할 테니까요."
내가 독백하듯 천천히 그렇게 말을 쏟아내자 형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거라고 이미 그렇게 믿고 있는 거야?"
"그건···"
형의 이어진 질문에 뭔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여러 정황과 소식들을 봤을 때 부모님은 이미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 참···"
내가 말을 차마 끝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수진이 형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그런 나를 향해 말했다.
"너 조차도 부모님이 살아있을 거라 생각을 안 하는데 신이라고 그런 두 분을 살려두고 싶을까?"
"네?"
형은 나의 물음에 다시 한번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너부터 두 분이 살아계실 거라 믿고 그렇게 행동해야지. 그래야 나중에 두 분을 찾던지 만나던지 할 거 아니야. 벌써부터 돌아가셨을 거라 가정하고 행동하면 언젠가 두 분을 찾을 기회가 네 옆으로 떨어지더라도 너는 눈치조차 채지도 못하고 지나갈 거라고."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야."
수진이 형의 말에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형의 말대로였다. 아직 부모님이 정말로 돌아가셨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수진이 형은 무언가 깨달은 듯 한 내 얼굴을 보더니 다시 한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네 상황이 힘든 거 알아. 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마. 특히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내가 이전에 말했지? 여기 오기까지 정말 별에 별 일을 다 겪었다고. 너한테 다 얘기해 줄 순 없지만, 진짜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들을 겪어왔어."
형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더니 그날을 회상하듯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나도 너처럼 포기하고 싶었어. 진짜 너무 힘들었거든. 무엇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뭔가 좀 나아질라고 하다가도 끝에는 엎어지면서 오히려 안 좋아졌지. 그리고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니까 정말··· 난 안되는가 보다 하고 스스로를 아예 안될 놈이라는 틀에 가두기까지 했어. 어차피 이번 생은 이렇게 태어났으니 이렇게 끝나는가 보다 했지."
좀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 형이 오늘은 왠지 모르게 기다렸다는 듯 자기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는 것이 조금은 의외였지만, 나는 귀를 기울여 그런 형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들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 내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절대 포기할 순 없었거든. 언젠가 모든 게 나아질 거란 그런 희망을 절대 놓지 않았지··· 그리고 그런 나의 간절함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찾아왔고 정말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나는 형이 대체 무슨 일들을 겪어왔을지 궁금했지만 애써 물어보지는 않았다. 잘은 몰라도 형이 그날을 회상할 때마다 형의 얼굴이 너무나 슬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그 말도 안 되는 소요사태도 말이야··· 사실 내가 겪어온 일들에 비하면 그렇게 최악도 아니었어. 그래서인지 나는 어딘가 조금은 무덤덤했지만, 아마도 이런 일을 처음 겪은 너는 충격이 크겠지. 그러다 보니 정작 네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 싶었어, 그래서 네게 굳이 나가서 뭘 할 거냐고 물어본 거고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희망도 놓지 말라고 얘기한 거야.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그게 중요한 거니까."
형의 말에 나는 어딘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고, 어느새 눈가에 맺히기 시작한 눈물을 닦아냈다. 형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마치 그런 내 모습을 못 본 것처럼 기지개를 켜며 움직였다.
[.... 아 아···]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내 방송을 준비하는 사무관의 목소리가 방 안으로 울려 퍼졌다.
"격리기간이 끝났나 보군."
수진이 형은 활짝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했고, 어느새 잠이 깬 동생은 눈을 비비며 방송이 나오는 스피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2 도시 시민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립니다. 지금 전 인원 즉시 1층 광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그의 안내방송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철컥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문틈으로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진이 형과 나, 그리고 수로는 대충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천천히 방을 빠져나와 1층을 향해 내려갔다.
"..."
1층으로 향하다 보니 이전에 치안대 요원이 쓰러졌던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별표시가 락카 같은 걸로 칠해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치안대나 공무원들 중 하나가 표시를 한 게 아닐까 싶었다.
"무슨 일이야 대체?"
"또 누가 죽은 건가?"
"이제 지긋지긋해···"
1층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볼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 얼굴엔 지친 기색이 가득했고, 몇몇은 벌써부터 질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기도 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사람들이 모일 때 무언가 기대감이 있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그와는 정 반대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많이도 불렀네···"
1층에 도착하자 수진이 형은 단상 위의 치안대 요원들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형의 말대로 이전과 달리 최소 두 배는 돼 보이는 치안대 요원들이 단상을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몇몇은 권총도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 우선 다들 격리기간 보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단상 위에서 사무관이 마이크를 잡고 운을 뗐다. 이전 같았으면 한 마디씩 불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이번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무관은 조용한 우리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긴장으로 굳어진 얼굴을 느슨하게 풀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마 왜 격리가 됐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아 그것 먼저 말씀 드겠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완전격리는 감염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만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시설 내에서 또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왔다는 이야기지요."
사무관의 말에 사람들이 수근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들 누가 죽었는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확인하는 소리였다. 사무관은 이런 사람들의 모습에 조금 짜증이 난 듯 마이크를 두드리며 집중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보냈다.
"집중해 주세요. 다들 지금 누가 죽었는지 그것 때문에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 같은데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닙니다. 앞으로 저희 시설의 운영 방향에 대해 많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에요. 현재 시의회에서 저희 시설을 혁신하겠다는 결정이 나온 상황입니다."
'혁신?'
사람들은 그 단어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사무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 여보이더니 힘찬 목소리로 그런 우리들을 향해 말했다.
"그 혁신의 시작으로 이곳은 이제부터 '2 도시 혁신 구역'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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