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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5.0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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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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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 묘수(妙手) Ⅰ

DUMMY

#038. 묘수(妙手) Ⅰ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아버지의 분노 가득한 목소리가 시청 회의실 안을 감돌았다. 순식간에 회의실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나와 박정아를 비롯한 나머지 당원들은 긴장한 채로 어쩔 줄 몰라하는 정태용 사무관을 바라보았다.


"그, 그것이···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정사무관은 고개를 연신 숙이며 되풀이했고, 아버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시설에서 진짜 감염사가 나왔는데··· 그게 지금 2 도시 사람들에게서 나온 게 아니라··· 엄한 치안대 요원이라는 거야? 그게 맞아?"


"네··· 맞습니다."


정사무관은 자신이 하는 말이 얼마나 얼토당토 없는지 스스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연신 눈을 깜빡이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저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정말입니다 부시장님. 저번··· 그러니까 저번에 있었던 그 소요사태 때 일어난 일인 것 같습니다."


사무관은 소요사태를 언급하면서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아마도 사태의 시발점이었던 내가 신경 쓰인 듯했다.


"그날 상층부에서 쓰러진 치안대 요원을 한 명 발견했습니다. 다행히 이송 전 이런저런 사전 검사를 통해서 감염여부를 확인하고 격리 조치를 했기에 전파가 되는 것은 어찌어찌 막았습니다만··· 아시는 것처럼 한 번 감염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지라··· 네···"


정사무관이 말끝을 흐리며 다시 고개를 숙이자 아버지는 조금은 차분해진 모습으로 손가락으로 사무관이 가져온 보고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소요사태가 일어난 게 일주일 정도 지났을 텐데 왜 이제야 보고하는 거야? 이런 건 즉각 즉각 말하라고 내가 말했어 안 했어?"


"아··· 그게··· 치안대와 같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통에 오류가 좀 있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잠잠해지고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정사무관은 나와 다른 당원들 눈치를 보더니 아버지에게 천천히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조금 놀란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지. 그럼 지금 현재 혁신구혁의 2 도시 사람들은 누가 죽었는지 아직 모른다는 거지?"


"네 맞습니다. 우선 완전격리를 해야 했기에 감염사가 있었다고 발표는 했습니다만 정확히 누가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물론 저희··· 그러니까 공무원들이나 치안대 사람들은 건너 건너 이야기를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는 것처럼 보안유지가 중요하기에 절대 누구 하나 입 밖으로 먼저 얘기를 꺼내거나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사무관의 말이 끝나자 아버지는 고심에 빠진 듯 눈을 감고 입을 앙 다문채로 고개를 숙였다. 나와 당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 채로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그중 박정아는 그래도 다른 당원들보다는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입은 아버지처럼 앙 다물고 있었지만 두 눈을 똑바로 뜬 채로 손에 들고 있는 노트와 펜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걸 있는 그대로 발표하게 되면 엄청난 이슈가 될 수 있어. 어떻게든 이걸 잘 포장해서 밖으로 꺼내야 해."


1분여 남짓 이어진 침묵을 깨고 아버지가 운을 떼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그 누구 하나 먼저 그 '포장' 방법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부시장님."


그리고 그때 노트를 접은 박정아가 한 손을 공손히 들고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아버지는 반색하며 그런 박정아에게 계속해보라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는 말씀하신 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제안드려보고 싶습니다."


박정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이제 겨우 숨을 고르는 정사무관도 마치 구세주를 보는 것처럼 그런 눈빛으로 박정아를 보고 있었다.


"어떤 제안이지?"


아버지도 기대 가득한 목소리로 되물었고, 박정아는 살짝 미소를 띄운 채로 그런 그에게 답했다.


"이번 치안대 요원의 사망을 소요사태 진압 중에 발생한 '2 도시 시민들에 의한 살인'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겁니다."


"아?"


"허허···"


박정아의 제안은 가히 파격적이었고, 모두가 놀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만큼 이 말도 안 되는 '포장'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 분명했다.


"음··· 왜 그렇게 생각한 거지?"


평소에 박정아 이야기라면 뭐든 긍정적으로 바로 오케이를 하는 아버지였지만 이번엔 아버지도 생각이 다른 듯 보였다. 아버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박정아를 응시하고 있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처음부터 부시장님이 제안하신 혁신구역의 질서유지와 통제 강화에 함께하신 분들이시지 않나요?"


박정아가 고개를 돌리며 모두에게 묻자 다들 당연하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정아는 아까처럼 다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저는 이 사망을 2 도시 시민들에 의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혁신구역의 치안을 유지하려던 요원이 소요사태 진압 중에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이렇게 발표를 대내외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시의회는 물론이고 여론도 저희의 운영 정책 방향에 더 손을 들어줄 겁니다. 현재 저희가 시행하고 있는, 시행하려는 다른 모든 정책들에도 힘이 훨씬 더 실리겠지요. 아마 저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혁신구역을 저희 뜻대로 운영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그렇듯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요."


박정아의 제안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아까와 같은 눈으로 그런 박정아를 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영래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아버지가 그렇게 한 마디 하자 박정아는 예상했다는 듯 바로 답했다.


"그분도 이번 일에는 쉽게 나서지 못할 겁니다. 선량한 치안대 요원이 공격을 받아 무고하게 죽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통제를 더 강화한다고 하는데 과연 쉽게 나설 수 있을까요? 특히··· 여론에 민감한 저희들인데··· 이렇게 감정적인 사건에서 저희에 힘을 실어줄 여론을 등지고 과연 이영래 당원이 그럴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박정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답을 끝내자 아버지는 그 날카로웠던 눈초리를 거두고 다시 여느 때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의견 없나?"


다들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에겐 어땠는지 몰라도 아버지의 시선은 내게서 꽤나 오래 머물렀다. 마치 뭐라도 말해보라는 듯한 무언의 압박 같은 것이었다. 나도 정말 진심으로 뭐라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나 박정아가 꽤나 그럴싸한 의견을 낸 다음엔 더욱이나 그랬다.


"우리 청년 대표는 다른 의견 없나?"


그러자 아버지가 이번엔 나를 직접 호명하며 물었다. 나의 머리부터 등 그리고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조금씩 손이 떨려오는 것 같았다. 뭐라도 말을 해야 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만약 저희의 '포장' 사실이 밝혀지면 그땐 어떻게 하죠?"


나의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그건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바로 옆에서 미소를 띄운채로 있던 박정아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살짝 눈을 질끈 감더니 이내 다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분명히 다른 의견을 물었는데··· 뭐 그래 좋아. 엄밀히 말하면 다른 거긴 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청년 대표는 그걸 갑자기 왜 말한 거지?"


"그냥 염려가 됐습니다. 만약에 저희가 이 계획을 밀고 나가다가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그러면 그때의 충격은···"


"왜 이게 밝혀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아··· 그건."


내가 차마 답을 못하고 얼버무리자 아버지는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마치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년 대표가 뭘 걱정하는지는 내가 이해하겠어. 하지만 말이야 우리가 이걸 발표하는 순간 이건 '진실'이 되는 거야. 그 치안대 요원은 진짜로 소요사태 진압 도중에 공격을 받아 사망하게 된 거란 말이야. 세상에 진실을 어떻게 한 번 더 밝힐 수 있겠어? 이미 더 이상 나올 게 없는 진짜 사실인데 말이야. 안 그래?"


"맞습니다."


나는 짧게 대답하고 고개를 숙였다. 급하게 의견이랍시고 말을 내뱉은 것이 후회됐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자리에 있는 모두가, 박정아까지도 그런 나를 조금은 실망스럽게 쳐다보든 것 같았다.


"다른 의견 없으면 우선 박정아 보좌관 의견대로 진행해 보도록 하지. 우선 사망한 치안대 요원을 추모하는 행사를 기획하는 걸로 시작하자고. 행사에는 1계급 특진과 가족들에게 이루어질 보상 같은 것들이 포함돼야 할 거야. 그리고 행사 전에 미리 가족들 만나서 달래주는 모습도 보여주고 말이야. 무슨 말인지 다들 알겠죠? 아! 그리고 행사가 끝난 후에는 기자들 불러서 공식적으로 발표 진행하도록 해. 발표 시작할 때 애도를 표하느라 발표가 늦었다는 점 강조하도록 하고. 발표내용 후미에는 이번일을 계기로 혁신구혁 내 치안 유지를 더 굳건히 하겠다 정도로만 언급하고."


아버지가 대략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해 주었고, 모두가 메모를 하며 이를 받아 적었다. 누구에게 이걸 하라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에 나를 보며 말을 끝낸 것을 봤을 때 총책임자를 암묵적으로 지정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럼 다들 움직이도록 하지. "


아버지의 말을 끝으로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는 무언가 내게 더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나를 붙잡지는 않았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의실을 빠져나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정사무관을 비롯해서 박정아, 그리고 나머지 청년 당원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다시 한번 압박감이 밀려왔다. 대체 이걸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선뜻 몸이 나서질 못했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서서 모두를 한 번씩 바라보았고 아내 고개를 돌려 박정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보좌관님이 우선 가족들 만나는 것부터 정리해 주겠어요?"


나의 물음에 박정아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물론이죠."


그러자 이제는 모두가 나를 아닌 박정아를 바라보았다. 정태용 사무관은 아까처럼 구세주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들을 뒤로한 채로 시청을 혼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런 시청 건물 앞에서 누군가 커다란 팻말을 들고 서서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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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46. 진실 Ⅰ 25.02.04 5 0 12쪽
45 #045. 이해 Ⅱ 25.01.30 5 0 12쪽
44 #044. 이해 Ⅰ 25.01.28 5 0 12쪽
43 #043 정체 Ⅳ 25.01.23 6 0 11쪽
42 #042. 정체 Ⅲ 25.01.21 6 0 12쪽
41 #041. 정체 Ⅱ 25.01.16 6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7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10 0 12쪽
» #038. 묘수(妙手) Ⅰ 25.01.07 8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7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9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9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10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10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9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9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9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9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8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10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9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10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11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10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9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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