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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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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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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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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 묘수(妙手) Ⅱ

DUMMY

#039. 묘수(妙手) Ⅱ


'치안대! 그리고 통제부는 우리 아들의 죽음을 설명하라!'


피켓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50대 정도로 돼 보이는 다소 남루해 보이는 옷차림의 아주머니는 땡볕 한가운데에서 작열하는 태양빛도 상관없다는 듯 결연한 얼굴로 피켓을 들고 서있었다. 나는 그런 아주머니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눈길을 거두고 천천히, 그리고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시선을 돌려 나를 향해 물었다.


"여기서 일하세요?"


아주머니는 번쩍이는 시청 건물을 한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고, 나는 즉각 답을 하지 못한 채 대충 고개만 살짝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그는 알겠다는 듯 입을 오므린 채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서서히 내쪽을 향해 걸어왔다. 나는 두려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가오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마스크를 고쳐 썼다.


"저 좀 도와주세요···"


아주머니는 피켓을 내려놓고 주름이 가득하고 거친 피부의 손으로 나의 손을 살며시 부여잡으며 말했다.


"네? 제가··· 뭘···"


나는 일단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에게 답했지만, 그는 내 양복에 달려있는 금색 배지를 눈짓으로 가리키고는 말을 이었다.


"보니까 젊은 청년이 높은 사람들하고 일하는 것 같은데··· 제발 부탁할게요 저 좀 도와주세요."


"아···"


밝게 빛나는 금배지가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 배지가 무얼 의미하는지 도시 사람들은 다 알았다. 여기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지, 아니면 더 이야기를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나는 우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주위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행인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우선 아주머니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그··· 자리를 좀 옮기시죠."


아주머니는 나의 말에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려놓은 피켓을 다시 집어 들고는 시청 옆 공터를 향하는 나를 뒤따랐다. 그렇게 공터에 도착하니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시청회의실에 앉아 아마도 분명히 이 아주머니의 아들인 치안대 요원의 감염사를 다른 이유로 뒤집어 씌우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어떤 형태로든 일어날 일이었다. 특히나 박정아가 앞장서서 일을 진행할 테니, 남은 건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그 직전에 내가 당사자를 먼저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었다.


"피켓은 봤습니다만···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죠?"


공터 벤치에 앉아 아주머니에게 묻자 아주머니는 조금씩 울먹이기 시작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 아들이 얼마 전에 죽었어요. 그렇게 건강하던 녀석이었는데··· 그날 아침에 출근한다고 나갈 때도 멀쩡했고, 그전에도 아픈 곳 하나 없던 정말로 건강한 아들이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아주머니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나는 그런 아주머니에게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었다.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물을 닦으며 계속했다.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돌아오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엔 야근을 하나보다 했죠··· 치안대에서는 늘 있는 일이고, 예전에도 그런 적이 많았으니까요."


"아··· 그런··· 연락은 해보셨던 건가요?"


나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저도 너무 이상했어요. 처음에 아들은 도시 순찰을 도는 그런 역할을 하는 중대에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조금 특이한 곳에서 일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특이한 곳이요?"


"네. 그래서 어디냐고 물었더니 말해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무슨 보안 상의 이유로요."


분명히 임시거주시설이었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다음부터는 근무 중에 연락이 안 됐어요. 핸드폰을 들고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비상연락망 같은 것도 없어서 매일 늦으면 늦는 대로 그냥 오매불망 기다리기만 해야 했어요. 그런데 이제 기다려도 오지 않게 된 거죠···"


"그렇군요···"


공무원들은 그냥 들고 다니던 핸드폰을 치안대에서는 금지한 모양이었다. 어딘가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치안대 대대장 성격을 봤을 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저는 치안대 본부에 연락했어요. 아들이 며칠 째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요."


"본부라··· 거기서 뭐라고 하던가요?"


아주머니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답했다.


"특수한 임무를 수행 중이라 아마 며칠 걸릴 거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그게 진짜인 줄 알고 철석같이 믿었죠. 하지만···"


그날을 회상하는 게 괴로웠는지 아주머니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을 이었다.


"제게 돌아온 건 아들이 아니라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담긴 편지 한 통뿐이었어요.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우편함에 꽂혀있더군요··· 마치 공과금 고지서가 그런 것처럼 정말 별일 아닌 듯이···"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의 옆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앉아 그저 아주머니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분여 간 그렇게 눈물을 흘리던 아주머니는 조금 진정이 됐는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뒤 잠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죄송해요. 너무··· 갑자기."


"아! 괜찮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으니··· 당연히 힘드시겠죠."


나의 말에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어요 너무. 아들이 죽은 것도 힘들지만, 더 힘든 사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뭘 하다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에요. 거기다 세상에··· 대체 어떤 회사에서 아들을 죽여놓고 시신도 부모 마음대로 처리 못하게 하나요?... 저는 아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만 통보받고 아들의··· 얼굴조차··· 보질 못했다고요!"


"그것 참··· 이상하네요."


분명히 감염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염된 시신의 처리는 엄격했고, 가족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처리되는 실정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리 없는 아주머니는 그저 억울한 심정일 것이었다.


"이상하죠! 그래서 제가 몇 날 며칠을 혼자서 수소문하고 다녔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우리 아들에게 있었던 건지 확인하려고 말이에요."


아주머니는 주머니에서 노트를 하나 꺼내며 이것저것 적은 것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투박하게 적힌 글자들 사이에는 '2 도시', '임시시설', '바이러스'와 같이 낯익은 글자들이 군데군데 섞여있었다.


"제 생각인데, 아마 아들은 이 '2 도시 임시 거주시설'이란 곳에서 근무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락도 안 됐던 거고 거기다가 거기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죽은 거죠··· 죽었는데 시신을 보여주지도 않는 걸 보니 정말··· 말도 안 되지만 감염사가 아니었을까요? 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걸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설명이 안 돼요."


등줄기를 타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얼굴에도 살짝 경련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나는 애써 침착한 모습을 유지한 채로 고개만 까딱였지만, 심장은 터질 듯이 크게 뛰고 있었다. 어떻게 이 아주머니 혼자서 거기까지 알아낸 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이미 거의 모든 사실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단지 거기에 대한 확증 같은 것이 없었던 것뿐이다.


"제발···"


아주머니는 다시 한번 내 손을 부여잡고 말했다.


"우리 아들의 죽음을 밝혀주세요. 시장님이나 아니면 시의회라도 얘기를 해서 저 좀 도와주세요··· 네? 부탁드릴게요··· 제발···"


나는 별다른 대답은 하지 못한 채 천천히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그는 노트에 자신의 이름과 번호를 적고는 찢어 나의 손에 쥐어주며 말을 이었다.


"바쁘실 테니 더 붙잡지 않을게요. 이건 제 연락처예요. 혹시나··· 밝혀지는 사실 같은 게 있다면··· 뭐라도 좋으니까 꼭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네···"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하고는 공터를 떠났다. 나는 그가 떠난 걸 확인한 뒤 땅이 꺼져라 크게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아까와는 달리 최근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에 걸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실타래에 뒤엉킨 채로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 익숙한 장소 앞에 도착해 있음을 깨달았다.


"오랜만이네."


학교 정문에 선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당연히 누군가의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대답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네?"


대답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지수가 보였다. 여느 때처럼 밝게 빛나는 금발머리는 그대로였고, 그 특유의 장난스러운 목소리도 그대로였다.


"아··· 잘 지내지?"


내가 어색하게 말을 건네자 지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왜 이렇게 어색해? 지난번에 그러고 도망쳐서 그런 거야?"


"아··· 그건 사과할게."


이전에 지수의 손을 부러트릴 듯이 잡아 쥔 순간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그 이후로 제대로 된 사과나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됐어. 별 일도 아니었는걸. 그래도 사과는 받아줄게."


지수가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고, 그제야 나도 긴장이 풀렸는지 얼굴에 미소가 조금 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안 들어갈 거야?"


"응. 그냥 온 거야.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렇게 말하자 지수는 내쪽으로 걸어오더니 내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뭔가 네가 꿈꾸던 사람이 된 것 같긴 한데··· 실상은 그렇게 꿈꾸던 것과 같진 않나 봐?"


지수의 말은 사실이었다. 언제부턴가 나의 한계가 느껴졌다.


"뭐··· 아니라고는 못하겠네. 조금 다르긴 해."


내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하자 지수가 내 등을 힘껏 후려쳤다. 찌릿한 고통이 등에서부터 퍼졌고, 나는 놀란 얼굴로 지수를 바라보았다.


"힘내! 당연히 이상과 현실은 다른 거잖아. 어쩌면 네가 너무 힘을 빡주고 있는 걸 수도 있어."


"그래?"


"응. 적어도 너는 뭐가 옳고 그른지는 알잖아? 어릴 때부터 그랬고."


"그랬었나···"


옳고 그름이라는 말에 방금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주머니와의 대화, 시청에서의 회의, 그리고 그 사이의 나.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지수는 이제 곧 학교에 들어가려는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나저나 2 도시 애들은 어떻게 지내? 너라면 알 거 아니야?"


나는 지수의 질문에 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최근에 일어난 소요사태와 강화된 통제··· 등 2 도시 애들에게 좋을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이제 예전처럼 다 같이 모여서 얘기하던 건··· 아예 못하는 거야?"


내가 답이 없자 지수가 어느 정도 눈치챘는지 그렇게 다시 물었다.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지수에게 답했다.


"가능해. 약속할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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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49 피안개 25.02.13 1 0 12쪽
48 #048. 그을음 25.02.11 3 0 12쪽
47 #047. 진실 Ⅱ 25.02.06 4 0 12쪽
46 #046. 진실 Ⅰ 25.02.04 5 0 12쪽
45 #045. 이해 Ⅱ 25.01.30 5 0 12쪽
44 #044. 이해 Ⅰ 25.01.28 5 0 12쪽
43 #043 정체 Ⅳ 25.01.23 6 0 11쪽
42 #042. 정체 Ⅲ 25.01.21 6 0 12쪽
41 #041. 정체 Ⅱ 25.01.16 6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6 0 12쪽
» #039. 묘수(妙手) Ⅱ 25.01.09 10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7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6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8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8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10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9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9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9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8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9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8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9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8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10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11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10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9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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