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정체 Ⅰ

#040. 정체 Ⅰ
'저들 중에서 감염사가 나온 거야.'
수진이 형이 건넨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저들 중에 죽었다는 건 공무원 아니면 치안대 요원이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순간 머릿속에 발작을 했던 치안대 요원이 또다시 한번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치안대 요원들은 일반 시민들이 사용하는 마스크와는 차원이 다른 방역 장비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저 투박하고 어떻게 보면 못생기기까지 한 검은색 헬멧을 바로 그것 중 하나였다. 아버지가 농담 삼아하던 말 중 하나가 저 헬멧이 바이러스에 뚫리는 것보다 걸어가다 벼락을 연달아 맞는 확률이 더 높다고 하던 것이었다.
그만큼 어떻게 보면 방역에 있어선 완벽에 가까운 것인데 그게 뚫려서 감염될리는 없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제는 공무원들이 떠올랐다. 사무관은 멀쩡히 돌아다니니 아니었고, 어두운 표정의 장하나 주무관도 아니었다. 그럼 여기서 근무하는 다른 공무원들 중 하나가 죽었다고 봐야 했다. 아니면 응급실에 있는 간호사나 의사들 중에서도 있을 수 있었다.
누가 감염으로 죽었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그들 중에서 나왔다고 하니 정사무관의 그 터무니없을 정도로 태연했던 태도가 더 무섭게 느껴졌다. 자신과 함께 일하던 누군가가 감염으로 죽은 건데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서서 혁신이니 뭐니 발표를 했으니 말이다.
"거기 뭘 멍하니 서있습니까? 빨리 근무 계속합니다."
"네네."
잠시 생각에 빠졌던 나를 바로 옆에 서있던 치안대 요원이 다그쳤다. 나는 재빨리 손을 움직여 만들어진 마스크와 필터들을 결합했다. 생산소 근무의 시간이 늘어난 것도 있었지만 일의 양이 전에 비해 훨씬 늘어난 느낌이었다. 거기에 소요사태 이후로 더 예민한 태도의 치안대 요원들은 그런 생산소 분위기를 이제는 마치 무슨 영화에서나 보던 노역장처럼 만들었다. 예컨대 돌을 옮기다 늦어지면 채찍을 맞는 그런 노역장 말이다. 물론 이들이 채찍을 들고 우리를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이 노약자이고 무엇보다 그들과 같은 시민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분위기는 너무나 처참했다. 공작소 시절에는 서로 담소도 나누고 물물교환도 하며 무언가 취미를 함께하던 공간 같은 곳이었는데, 생산소는 점점 나빠 자기만 하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처음에 하나였던 생산소도 지금은 몇 개로 늘어나 사람들이 밤낮으로 쉴 새 없이 돌아가면서 일했고,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는 시설 안을 24시간 맴돌았다.
"어이 거기 꼬맹이! 누가 앉아 있으라고 했어?"
"다리가 아파요."
"하··· 누구는 안 아프냐? 어서 움직여."
치안대 요원의 호통에, 수로 또래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눈가에 눈물인지 먼지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이제 아동들도 일을 해야만 했다. 위험한 일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교에 다니고 한참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지금은 이 노역장 같은 곳에서 하루에 몇 시간이고 포장부터 정리까지 계속해서 일을 해야만 했다.
"어린아이인데···"
"쉿!"
치안대 요원의 태도에 몇몇 사람들이 못마땅한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다른 사람들이 일을 크게 만들기 싫다는 듯 그런 그들을 막았다. 다행히 치안대 요원은 못 들은 모양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묵묵히 일을 해나갔다.
"빨리··· 오네."
"미안. 알다···피 한 명 줄었..아."
'한 명이 줄었다??'
그리고 그때 치안대 요원이 교대를 하려는지 생산소로 들어왔다. 교대 시간에 늦은 모양이었는데 그가 하는 말이 어딘가 신경이 쓰였다.
"완전 ···죽음이지 ···건."
"그러게 넌 걔 어머니··· 뵌··· 있다···?"
나는 기계 소음 사이사이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소리를 계속 집중해서 들었다.
"어··· 피··· 시위··· 다던데."
"피켓 시위?!"
교대를 하러 온 치안대 요원이 놀란 목소리로 말하자 다른 치안대 요원은 그런 그의 헬멧을 손으로 툭 치며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 손가락을 입부분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조용히··· 해! ···안··· 유지 몰라?"
"아이 그래도 왜 헬멧을 치고 난리야. 그리고 이 사람들이 듣는다고 뭐가 달라지냐. 어차피 나가지도 못하는 사람들인데."
헬멧을 맞은 치안대 요원은 기분 나쁘다는 듯 큰 소리로 말했고, 그러자 옆에서 일하던 몇몇 사람들이 작업을 멈추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씨··· 다들 근무 계속합니다! 뒤돌아 보지 않습니다!"
"못 나간다니요?"
"뭔 소리야 그게?"
사람들이 치안대 요원들을 향해 그렇게 묻자 치안대 요원들은 허리에서 진압봉을 꺼내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근무 계속합니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다소 흥분한 상태로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치안대 요원들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다리가 아프다던 아이가 주저앉아 땅이 꺼져라 울기 시작했다.
"무서워··· 싸움! 싸움! 그만해요! 그만!"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던 위험한 순간은 그렇게 아이의 울음소리에 의해 일단락됐다. 치안대 요원들도, 일을 하던 사람들도 모두가 당황한 채로 그런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아이가 계속 울자 보다 못한 한 사람이 다가가 그런 아이를 달래주었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그는 따뜻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이름을 물어보더니 '괜찮아.'라는 말을 계속해서 아이에게 해주며 진정시켰다. 평소라면 일이나 하라고 소리칠 치안대 요원들도 이 순간만큼은 조용히 아무 말 않고 서있었다.
"이제 괜찮지? 아무도 안 싸우니까?"
할아버지가 다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아이가 주변을 살피더니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디선가 피식 소리가 들려 나왔다. 아마도 아이의 그런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소리를 낸 것 같았다.
"하하하."
"그래 싸우지 말자!"
"그럼 싸우면 안 되지!"
그리고 곧이어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함께, 마치 아이에게 약속이라도 하듯 너나 할 것 없이 싸우지 않겠다고 말하며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일을 시작했다. 마치 언제 서로 으르렁 거리기라도 했냐는 듯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아이의 울음 덕분에 넘어갈 수 있었다.
"자··· 일단 됐으니까 10분간 휴식하시고 다시 시작합시다."
치안대 요원들은 상황이 진정된 걸 확인하고 어딘가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휴식시간을 부여했다. 사람들은 갑자기 부여된 추가 휴식시간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이내 환한 얼굴로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말 조심 하라니까 하마터면 또 큰일이 날 뻔했잖아."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쓰읍···"
사람들이 쉬는 모습을 확인한 치안대 요원들은 다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일을 하던 나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마치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그런 그들의 대화를 다시 엿듣기 시작했다. 이번엔 기계의 소음도 없어 더욱더 정확하게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 사람들도 어쨌든 우리와 같은 시민이라고. 밖에서 보균자들 대하듯이 하면 곤란해."
"알겠어."
"에휴··· 동기라는 놈이···"
치안대 요원들은 말을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긴 했지만 그다지 신경은 쓰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피켓 시위하고 계신다고?"
"응. 말도 마라. 땡 볕에 시청 앞에서 매일 피켓 들고 서계신다는데."
"아휴··· 그건 좀 그런데···"
"그렇지··· 안 그래도··· 저번에 연락이 와서 말이야."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음성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안대 요원의 대화에서 어딘가 망설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 고민에 빠진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연락 무슨 연락? 그 어머님한테?"
"응. 절대 말 안 할 테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달라고 그런 부탁이었는데··· 나는 일단 모른다고 잡아 땠지."
"... 뭐 어머님한텐 죄송하지만. 잘한 거야. 말하게 되면 보안 위반이잖아."
"그렇지···"
고민에 빠진 듯한 그의 목소리가 점점 짙어지는 듯했다. 나는 계속해서 딴청을 하며 귀를 기울였다.
"사실대로 내가 말한다 하더라도··· 애초에 말이 안 되잖아. 어떻게··· 치안대 요원이 근무 중에 감염으로 죽을 수가 있어? 이건··· 내가 볼 때 위에서 은폐하려는 게 분명해. 진짜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 속을 알 수 없는 인간들이니까 윗사람들은··· 대대장님만 봐도 그렇잖아?"
'치안대 요원이··· 죽었다고? 감염으로?'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렇게 엄청난 방역장비를 갖춘 치안대 요원이 감염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여러모로 이상해··· 녀석을 6층인가 7층에서 발견한 후임 말에 따르면 정말 말 그대로 쓰러져있었다고 하더라고. 감염이라는 게··· 그렇게 바로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잖아? 내가 볼 땐 이건 분명히 뭔가 있어."
"그러게··· 그것도 이상하네."
치안대 요원들의 이어진 대화에 나는 이제 거의 확신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의 대화와 수진이 형의 말에 따르면 죽은 사람은 분명히 그때 우리를 막아섰던 그 치안대 요원이었다. 수진이 형과 대치를 하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는 그 치안대요원 말이다.
"내 생각엔 분명히 2 도시 사람들한테 당한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돼."
"그래도··· 그 말도 안 되는 훈련도 다 견디고 장비도 갖춘 녀석이 이런 사람들한테···"
치안대 요원이 말을 이으며 고개를 돌렸고, 그러다 얼떨결에 앉아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헬멧의 눈부분과 마주쳤다.
"이런 사람들한테··· 잠깐만."
나는 재빨리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서 괜히 의심을 받는 건 아닐지, 그래서 또 격리실에 끌려가는 건 아닐지,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처참한 일들이 생길 수 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안대 요원의 손이 내 머릿결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머리채를 잡고 나를 끌고 가는 건가 싶어 겁이 났다. 저항을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너 머리에 뭘 얹고 다니는 거야?"
치안대 요원이 마치 나보고 보라는 듯 자기 손에 들린 마스크 조각들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머리에 묻은 모양이었다.
"아··· 글쎄요?"
내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치안대 요원은 손에 들고 있던 조각들을 바닥에 뿌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거 봐··· 정신이 없구먼 정신이··· 이런 사람들한테 놈이 당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동료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내 시선이 향한 곳에선 교대근무를 하러 걸어오는 수진이 형의 모습이 보였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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