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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5.0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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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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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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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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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정체 Ⅱ

DUMMY



#041. 정체 Ⅱ


그날 우리 앞에서 쓰러진 치안대 요원이 감염사로 죽은 게 거의 확실한 상황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바이러스로 발작을 일으키고 죽은 것이다. 그것도 그 짧은 시간에··· 치안대 요원들은 우리가 쓰는 마스크와는 차원이 다른 방역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 그런 치안대 요원이 바이러스에 걸렸는데··· 그 바로 앞에 있던 수진이 형은 멀쩡했다?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형! 이거 봐!"


"이게 뭐야··· 네 친형한테 가서 물어봐."


수로가 수진이 형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수진이 형은 그런 수로가 귀찮다는 듯 말했지만 결국에는 못 이기는 척 그런 수로의 장난을 받아주며 이런저런 실없는 얘기를 이어갔다. 이렇게만 보면 수진이 형은, 좋은 사람이다. 적어도 이 안에선 몇 안 되는 그런 좋은 사람이었다.


"네 형 봐봐. 우리 둘이 노는 게 부러운가 본데? 어서 네가 가서 놀아줘."


"음··· 하지만 이로형은 재미없어."


"하하하 그래? 그럼 나는 재미있고?"


"응!"


나는 장난과 농담을 주고받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뭔가··· 어딘가 찜찜하고 풀리지 않은 구석이 있는데 여기서 더 이상 나아갈 수도, 알아낼 수도 없었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직접 대놓고 수진이 형에게 내가 알아낸 것들과 내가 의심하는 것들을 털어놓아야 하는데 그랬다간 이제야 완전히 좋아진 우리 형제와의 관계가 또다시 틀어질 것 같아 걱정이었다. 특히나 요즘처럼 우리 셋 모두가 생산소에 돌아가면서 근무하는 때에는 더욱더 그랬다.


"이로 너 내일 근무 언제야?"


"아···"


그런 내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수진이 형은 여느 때처럼 나의 근무시간을 물어보았다. 수로를 돌봐야 할지도 모르니 미리 확인하는 것이었다. 나는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나의 근무표를 확인했다. 이리저리 먼지가 묻어있는 문서에는 12시간 남짓 돌아가는 생산소의 교대 근무자들이 우수수 적혀있었다.


"음··· 야간이네요. 아이고··· 야간은 진짜 싫은데."


"그래도 야간이 주간보다는 좀 더 널널하지 않아?"


"뭐 그렇긴 한데···"


야간 근무는 졸음과의 전쟁이었다. 일도 상대적으로 적고, 그러니 근무 인원도 주간보다 적었다. 마찬가지로 그런 우리를 감독하는 치안대 요원들도 적었지만, 정말이지 너무나도 피곤했다. 각자 맡은 일이 다 달랐고 때에 따라 바뀌는 편이었지만, 아이들이 하는 포장 업무를 제외하면 거의 기계를 사용한 일들이었기에 그렇게 졸리고 피곤한 상태에서 일하는 건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았다. 다치는 사람들은 하루에 몇 명이고 나왔고, 심지어 손가락이 잘린 사람이 있다고도 했다.


"수로는 언제 근무야?"


"음···"


수진이 형이 수로에게 묻자 동생은 책상으로 다가와 자신의 근무표를 확인했다. 고사리 같이 조그마한 손으로 공장과도 같은 생산소의 근무표를 확인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한참 친구들을 사귀고, 숙제가 하기 싫다고 짜증 내고, 공부가 재미없다고 투정을 부릴 나이인 동생이 생산소에서 마스크를 포장하고 옮기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절망스러웠다.


"내일 아침!"


"그래? 나도 내일 아침인데? 그럼 같이 갔다가 같이 올라오면 되겠다."


"야호!"


"하하하. 그게 좋냐?"


오래간만에 둘이 근무시간이 겹치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운이 더 좋다면 같은 생산소에서 근무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마음 편하게 오전을 보낼 수 있을 터였다. 적어도 수진이 형은 수로만큼은 정말 아끼는 것이 보이니 말이다.


"누구세요?"


그렇게 오래간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농담을 주고받던 우리는 잔뜩 긴장한 채로 방 문을 향해 물었다. 이윽고 방문이 철커덩 소리와 함께 열리고, 거기에 치안대 요원 하나가 서서 영혼 없는 시선으로 방 안을 쓱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한이로가 누구지."


"아··· 전데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혹시 저번에 대화를 엿들은 것 때문인가? 역시 그게 문제였을까? 그래도 조용히 잘 넘어간 것 같았는데? 아니면 저번에 수진이 형과 도망쳤을 때의 일 때문인가? 결국 우리를 찾아낸 건가? 대체 뭐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나와라."


치안대 요원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딱 그렇게만 말했고, 그러자 수진이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그를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


"어이 요원님. 죄송한데 이로는 왜 데려가시는 거죠?"


"..."


치안대 요원은 뒤돌아 움직이려다 수진이 형의 말을 듣고 멈춰 서서 그런 형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랐고, 수로는 어느새 나에게 다가와 내 다리를 잡고 울먹이고 있었다.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금방 돌아올 테니 그런 줄만 알아."


치안대 요원의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전해졌지만 그 속에서 왠지 모르게 짜증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수진이 형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몸을 돌려 자신의 침대로 향했고, 나는 수로에게 수진이 형 옆으로 가있으라고 잘 타일렀다.


"어서 가자. 기다리고 계시니까."


"기다린다니··· 누가요?"


예상은 했지만 치안대 요원은 대답대신 바로 뒤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형과 수로에게 "다녀올게."라고 말한 뒤 천천히 방을 나서 앞서 걷고 있는 치안대 요원을 따랐다. 철제 바닥이 끼익 소리를 내며 기분 나쁜 소름을 건네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리가 한 버도 들어가 본 적이 없던 중앙 탑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그냥 커다란 기둥 같이 생긴 곳이라 여기에 들어갈 수 있는지도 몰랐는데 따로 통로가 마련돼 있었다.


"이쪽이다."


7.5층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보는 통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중앙 탑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 앞에 서있었다. 격리실과 달리 시설의 꼭대기에 자리 잡은 이곳이 어떤 곳일지 모르는 나는 약간의 기대와 많은 걱정을 안고 치안대 요원이 열어주는 문을 지나 탑의 안으로 발걸음을 조심히 옮겼다.


'여긴··· 뭐지···'


무언가 잔뜩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안에는 밑으로 향하는 계단과 컴퓨터를 놓고 앉아있는 치안대 요원 한 두 명이 있는 것이 전부였다.


"웁! 악!"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누군가가 내 얼굴 위에 두꺼운 복면 같은 것을 씌웠다. 순간 모든 빛이 차단됐고 놀란 나는 숨을 가쁘게 쉬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파악하려 애를 썼다.


"침착해. 이제부터 밑으로 이동할 거다. 계단에 주의하도록."


앞인지 옆인지 모를 곳에서 치안대 요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계단을 딛고 내려갔다. 어둠 속에 갇히자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잘 안 들리던 소리들까지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정작 이동하는 내내 내가 들은 소리라고는 컴퓨터 타자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시계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 정도였다. 그렇게 한 3분 정도 걸었을까? 마침내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었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곧이어 들려왔다. 치안대 요원은 그제야 내 복면을 벗겨주었고, 나는 갑자기 들이닥친 빛에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가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이로."


회색으로 가득한 방 안에 학교 교장선생님들이나 쓸법한 소파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곳이었다. 소파들 앞에는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형 탁자들이 줄을 맞춰 자리하고 있었고, 그 탁자 위에는 방금 막 내린 듯 모락모락 김이나는 차와 한동안 꿈에도 꿀 수 없었던 여러 과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자리의 한가운데에 유환이가 앉아 있었다.


"유환··· 유환이 너 맞아?"


"응. 맞아."


눈처럼 새하얀 와이셔츠 위로 금색으로 빛나는 배지가 달린 짙은 남색의 양복을 위아래로 갖춘 말끔한 모습이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서있었고, 옆에 있던 치안대 요원은 유환이에게 깍듯이 인사한 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여기 와서 앉아. 괜찮아."


치안대 요원이 나가고 우리 둘 만 방에 남게 되자 유환이는 이전처럼 친근한 목소리로 자기 옆자리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소파에 가서 앉았고, 유환이는 나에게 차랑 과자들을 건네주며 먹으라는 듯 손으로 손짓했다.


"다 먹어도 돼."


"어··· 고마워."


오랜만에 봐서일지, 아니면 마지막에 본모습 때문일지 몰라도 어딘가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유환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는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마스크를 슬쩍 내리고 눈앞에 놓인 고급 과자를 하나 집어 먹었다.


"맛있네."


"다행이네."


유환이는 나의 말에 미소를 띠었고, 나는 어색한 미소를 띤 채로 이어서 차를 홀짝홀짝 마셨다.


"무슨 일인가 싶겠지?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아."


내가 궁금한 걸 물어보려던 차에 유환이가 다 안다는 듯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들어 알겠지만··· 요즘 정신이 없었거든, 시의회며 청년대표며 소통담당관이며··· 이런저런 일들이 너무 많았어서 말이야."


유환이는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자신의 손을 만지작 거렸다.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그냥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학교 앞에 내가 가있더라고. 참··· 웃기지도 않지, 그렇게 쓸모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내 발로 찾아가다니 말이야. 집도 아니고 학교로 말이지."


"..."


얘기를 계속하는 유환이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말을 계속하면서도 초조한 지 이전과 같지 않게 다리도 떨기 시작하고 어딘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서 지수를 만났어."


"지수?"


내가 반색하며 묻자 유환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뿔싸 싶어 괜스레 차를 더 홀짝였다.


"응. 지수가 네 걱정 많이 하더라. 그리고··· 가능하면 예전처럼 우리 대화하던 시간을 또 가질 수 없냐고 물어보더라고. 아무래도 이제는 내가 아니면 그런 걸 말해볼 사람이 없었겠지."


유환이 말대로, 상황이 이렇게 바뀐 다음부터 4 도시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것은 불가능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마··· 빠른 시일 내에 '소통의 장'이라고 행사를 만들어서 선별된 사람들만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해. 뭐··· 눈치챘겠지만 그 '선별된 사람'은 너나 진수 정도겠지··· 구색을 갖추려면 몇몇 사람들을 더 껴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상대하면 되고."


유환이는 내가 봤던 이래 가장 자연스러운 미소를 유지한 채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우리 사이의 어색한 기류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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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046. 진실 Ⅰ 25.02.04 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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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044. 이해 Ⅰ 25.01.28 5 0 12쪽
43 #043 정체 Ⅳ 25.01.23 6 0 11쪽
42 #042. 정체 Ⅲ 25.01.21 6 0 12쪽
» #041. 정체 Ⅱ 25.01.16 6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6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9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7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6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8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8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10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9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8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9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8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9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8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9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8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10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10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10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9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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