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균자 : 에필로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SF

새글

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최근연재일 :
2025.02.06 18:0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604
추천수 :
10
글자수 :
247,625

작성
25.01.23 18:00
조회
4
추천
0
글자
11쪽

#043 정체 Ⅳ

DUMMY

#043 정체 Ⅳ


"보균자들이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너는 어떻게 아냐고."


수진이 형과 나 사이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애써 사이좋게 지내보려고 했던 노력이 무색할 정도였다. 순간 내가 무슨 잘못 말했나 싶었지만, 내가 한 말이라고는 단지 보균자들에 대한 의견 정도뿐이었다.


"아니···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원래 같으면 조금은 양보하는 나였지만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절대로 내 의견을 굽히고 싶지 않았다. 내가 형의 눈을 똑바로 보고 되묻자, 수진이 형도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답했다.


"당연히 중요하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적어도 실상이 어떤지는 알고 있어야 될 것 아냐."


"같은··· 사람이라···"


나는 형의 말을 되씹고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사람은 맞지만. 같은 사람은 아니죠. 형도 배워서 알 거 아니에요.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건··· 다 보균자들 때문이라고요."


"허?"


형은 나의 말에 기가 차다는 듯한 소리를 냈고 나는 이에 질세라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감염병의 역사니 뭐니 저런 것 공부할 필요도 없어요. 당장 불과 몇 달 동안 일어난 일만 봐도 그렇잖아요?! 형도 거기 있었잖아요? 거기서 보균자들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여서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런 곳으로 도망 온 거잖아요!"


이전에 덕호 할아버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애초에 정부에서 보균자들 통제를 못해서 이지경이 된 거라던 말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게 그들 탓은 아니죠, 원인 제공을 하긴 했지만··· 막을 수 있었던 정부에서 그들을 제대로 통제 못한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네 말은···"


듣고 있던 수진이 형은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보균자들 때문에 이지경이 된 거다? 정부도 일부분 책임은 잊지만? 맞아?"


나는 형의 말에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이거··· 참···"


형은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순식간에 오른손을 내질러 내 얼굴을 때렸다. '퍽'소리가 들리며 나는 균형을 잃고 쓰러졌고, 그러자 수로가 울먹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진이 형은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쓰러져있는 나를 향해 얘기했다.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한 대 먹여준 거니까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


나는 쓰러진 채로 얻어맞은 뺨을 어루만지며 목청 높여 얘기하는 형을 올려다보았다.


"보균자들은 피해자야. 그리고 정부, 특히 통제부가 가해자라고. 시민들은 그들의 수작에 놀아나고 있는 거고! 방금 네가 그렇게 확신하다시피 말했던 것처럼 말이야. '이 모든 게 보균자들 때문이야.' 같이!"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사실 어디 가나 보균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보균자들을 옹호하거나 아니면 적대하거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먹질까지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그랬다. 심지어 애들끼리 싸움이 빈번한 학교에서도 별에 별 쓸데없는 이유로 싸울 수는 있을지언정 보균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싸우는 경우는 없었다.


"사태가 이지경까지 된 건 나도 유감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그들을 지지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면 그렇게 비참한 삶을 살아선 안돼···"


형은 그 말을 끝으로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들었던 주먹을 몸 옆으로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나에게 일으켜 주겠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극과 극을 오가는 형의 행동에 나는 얼떨떨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우선은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얼굴 때린 건 미안해. 갑자기 나도 모르게 너무 흥분했네."


"..."


사과를 받긴 했어도 기분이 좋았을 리 없는 나는 아무 말없이 그냥 고개만 까딱여 보였다. 형은 그 직후 나에게 무언가 더 얘기해보려 하는 듯했지만 나는 그런 형을 무시하고 울고 있는 수로에게 다가갔다. 닭똥 같이 조그만 눈물을 떨구던 수로는 내가 가까이 가자 나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괜찮아?"


"싸우지 마···"


동생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싸우지 말라고 얘기했다. 나는 알겠다고 다시 동생에게 약속했지만, 어째서인지 정작 주먹을 날린 수진이 형은 보이지가 않았다. 순간 그런 형을 찾아 나가볼까 싶기도 했지만, 이내 화끈 거리는 왼쪽 얼굴의 통증이 느껴지며 내가 그렇게 까지 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가버린 수진이 형은 저녁때가 다돼서야 돌아왔다. 평소라면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겠지만 오늘은 누구 하나 먼저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심지어 수로조차도 아무 말하지 않고 그저 내 뒤만 따랐다.


"배고프지?"


"응!"


아까 잔뜩 울어버린 탓에 수로는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며 걷는 수로의 손을 마주 잡고 나는 삐걱이는 철제계단을 타고 한 걸음씩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아까 들어갔었던 미지의 공간이 있을 법한 곳을 슬쩍 쳐다보았다. 회색과 상아색 그 오묘한 색의 탑. 그 내부에 그런 공간이 있으리라고 밖에 있는 우리 중 누가 상상이나 할까 싶었다.


"형! 빨리 가자!"


"어, 그래!"


잠시 시선을 돌린 나를 동생이 재촉했고, 우리는 조금 더 빠른 발걸음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끼익 소리를 내는 철제 계단을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는데 건물 내부에서 익숙한 잡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 아..]


누군가가 마이크를 테스트하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정사무관일 것 같았다.


[안내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이 작성해 주신 신상정보서의 1차 검토가 완료됐습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분들은 1층 광장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시작인가···'


방송이 계속되고, 건물 안이 소란스러워졌다가 갑자기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조용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고요함 속에서, 사무관은 층간 관리자를 한 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2~3층 관리자입니다. 선발되신 분은 '김정호' 님입니다. 동명이인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에라이!"


"김정호가 누구야!?"


발표가 되자마자 곧이어 사람들의 불만 섞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사무관은 계속해서 층간 관리자를 발표했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내는 6~7층 관리자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끝으로 6~7층 관리자입니다. 어··· 선발되신 분은···]


사실 내게 별 다른 상관이 없는 일이었는데도 막상 우리가 지내는 곳과 관련될 사람이라 하니 어딘가 모르게 긴장됐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내려가는 수로를 잠시 멈춰 세운 뒤 이어지는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6~7층 관리자는 '유수진' 님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6~7층 관리자는 '유수진' 님입니다. 동명이인 없습니다.]


"뭐라고..?"


방금 내가 들은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것에 관심 없는 모습을 보였던 수진이 형인데 나와 수로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슬며시 층간관리자에 지원한 것이었다.


"뭐 하는··· 대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방금까지 정부를 욕하고 보균자를 옹호하던 사람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층간관리자는 죄수가 죄수를 관리하는 꼴이라고 비꼬던 사람이, 갑자기 그런 자리를 꿰차다니 말이다.


"형! 수진이 형이 관리자가 된 거야?"


내 복잡한 머릿속을 알리 없는 동생은 그저 자기가 아는 사람이 관리자가 된 것이 신나는지 밝은 목소리로 내게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런 동생에게 대충 미소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는 사람이지 대체··· 정체가 뭐야···'


마음 같아선 동생을 혼자 식당으로 보내고 당장 뛰어올라가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 끝을 잡고 있는 동생을 보니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빨리 가자."


나는 동생을 이끌고 식당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빨리 먹고 형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이었다.


"소식 들었어? 관리자가 뽑혔다는데?"


"그 층간 관리자인가 뭔가?"


"아··· 씨··· 나는 왜 떨어진 거지?"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층간 관리자 얘기만 하고 있었다. 누가 됐는지, 왜 자신은 떨어졌는지, 납득이 안된다던지, 등등의 이야기가 줄을 이었다.


"아이고! 축하합니다!"


"아··· 하하하 별말씀을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 뒤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층간 관리자로 뽑힌 사람 같았다. 그도 다른 이들처럼 식사를 하러 오던 길에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의 아저씨였는데 마스크 사이로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그의 주위로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축하를 건네는 이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스크 같은 것들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마음만 받으면 되는데."


이상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얼마나 할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벌써부터 사람들이 그와 가까워지려 애를 쓰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다.


"밥이나 먹자."


나는 애써 그런 이상한 소란스러움을 무시하며 동생과 빠르게 배식을 받아 식사를 시작했고, 이윽고 또 다른 층간관리자가 내려오면서 식당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이번엔 아마도 4~5층 담당인 사람 같았다. 그에게도 아까의 관리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러 사람들이 붙어서 한 마디씩 건네기 시작했다. 4~5층 담당인 관리자 또한 마스크 속으로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에휴."


나는 한숨을 내쉰 뒤 그저 내 앞에 있는 식판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그 집중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들려온 사람들의 소리에 무너졌다.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젊은 청년이네!"


수진이 형이었다. 형은 내가 본 이래 가장 멀끔한 모습으로 머리까지 뒤로 묶은 채로 식당에 들어섰다. 형은 어색한 듯한 얼굴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서며 고개 숙여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그러더니 이내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얘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수진이 형이다!"


수로는 그런 수진이 형을 알아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런 수로의 목소리를 들은 건지 수진이 형은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다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로는 그런 형의 모습을 보고 어딘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못 들었나?"


"그럴걸?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분명히 들었을 것 같지만, 나는 수로에게 일단 거짓말을 하고는 식사를 재촉했다. 밥을 먹으면서 사람들 너머로 보이는 수진이 형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능숙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있었다. 마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보균자 : 에필로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안내. 24.08.29 27 0 -
47 #047. 진실 Ⅱ NEW 16시간 전 1 0 12쪽
46 #046. 진실 Ⅰ 25.02.04 2 0 12쪽
45 #045. 이해 Ⅱ 25.01.30 3 0 12쪽
44 #044. 이해 Ⅰ 25.01.28 4 0 12쪽
» #043 정체 Ⅳ 25.01.23 5 0 11쪽
42 #042. 정체 Ⅲ 25.01.21 4 0 12쪽
41 #041. 정체 Ⅱ 25.01.16 4 0 12쪽
40 #040. 정체 Ⅰ 25.01.14 5 0 12쪽
39 #039. 묘수(妙手) Ⅱ 25.01.09 8 0 12쪽
38 #038. 묘수(妙手) Ⅰ 25.01.07 6 0 12쪽
37 #037. 감염사? Ⅲ 25.01.02 5 0 12쪽
36 #036. 감염사? Ⅱ 24.12.31 7 0 11쪽
35 #035. 감염사? Ⅰ 24.12.26 7 0 12쪽
34 #034. 책임자 Ⅱ 24.12.24 8 0 12쪽
33 #033. 책임자 Ⅰ 24.12.19 8 0 12쪽
32 #032. 악몽 Ⅲ 24.12.17 7 0 12쪽
31 #031. 악몽 Ⅱ 24.12.12 7 0 11쪽
30 #030. 악몽 Ⅰ 24.12.10 7 0 12쪽
29 #029. 비현실 Ⅲ 24.12.05 7 0 12쪽
28 #028. 비현실 Ⅱ 24.12.03 7 0 12쪽
27 #027. 비현실 Ⅰ 24.11.28 8 0 12쪽
26 #026. 뒤틀린 신념 Ⅲ 24.11.26 7 0 12쪽
25 #025. 뒤틀린 신념 Ⅱ 24.11.21 9 0 12쪽
24 #024. 뒤틀린 신념 Ⅰ 24.11.19 9 0 12쪽
23 #023. 시기(猜忌) Ⅱ 24.11.14 9 0 11쪽
22 #022. 시기(猜忌) Ⅰ 24.11.12 8 0 12쪽
21 #021. 비보 Ⅱ 24.11.07 8 0 12쪽
20 #020. 비보 Ⅰ 24.11.05 9 0 12쪽
19 #019. 엎친데 덮친 24.10.31 10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