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여관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졌다. 스탬피드에 [광화] 마물까지 상대하느라 매우 지쳤다. 거기다 길드에 보고까지 했으니 더 이상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군.’
그러나 침대에 누운 채 바라본 유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별수 없나? 오늘 일로 많은 것을 배웠을 테니...’
지친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다. 그러자 유실이 말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저 때문에 패트릭님이...”
유실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에휴, 난 네 훈련관이야. 널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땐 조금 방심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저 때문에 패트릭님이 돌아가시면 전, 전...”
울기 직전인 유실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아야, 아파요.”
“난 칼에 찔린 정도로 안 죽어. 그리고 넌 신인이잖아. 이 일을 경험 삼아 앞으로 더 강해지면 되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유실은 결의를 다진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강해질 테니까요. 정말로 강해져서 패트릭님을 지켜드릴 테니까요!”
“짜식, 날 지켜주겠다고? 그럼 앞으로 네 최종 목표는 백금등급 모험가다.”
“네! 전 백금등급 모험가가 될 겁니다. 그러니까 패트릭님, 앞으로도 훈련 부탁드립니다.”
“그래 빡세게 굴려주마! 일단 오늘은 좀 쉬고...”
다시 침대에 누우려던 찰나에 유실이 주뼛거리며 말했다.
“저어 패트릭님 같이 저녁 먹으러 가면 안 될까요?”
“미안, 오늘은 너무 힘들어.”
유실은 풀이 죽은 아니 거절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안 될까요?...”
‘큭 귀여워! 마치 내가 나쁜 것 같잖아. 아니 이제 저 얼굴에 넘어가지 않을 거야.’
유실은 마치 양심을 파고드는 듯한 치명적이게 귀여운 표정의 얼굴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젠장, 이러면 같이 갈 수밖에 없잖아. 너무 치사한 거 아닌가.’
귀여운 것에 면역이 없는지라 유실의 얼굴에 넘어가 버렸다.
“뭐, 나도 배고프니까 어쩔 수 없네.”
“헤헤, 빨리 가요.”
밖으로 나와 유실과 함께 지난번과는 다른 식당을 찾았다. 걷다 보니 식당인지 아리송한 상점이 영업 중이었다.
간판명이 (사랑의 달콤한 해산물)인 것이 영 마음에 걸렸으나 지친 몸으로 더 걷는 것이 귀찮았기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네 2명이요.”
“이쪽으로 오세요.”
점원이 안내한 식탁에 앉아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메뉴판을 펼치려던 찰나, 유실의 상태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저어 패트릭님 여기 정말로 괜찮나요?”
“응? 그게 무슨 소리...”
얼굴이 붉어진 유실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너무 늦게 깨달았다. 식당 안에는 부부나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잔뜩 앉아있었다.
더욱이 메뉴판에는 연인세트 1번, 연인세트 2번, 사랑의 오믈렛 등으로 메뉴가 적혀 있었다.
‘아, 여기 연인, 부부 전용 식당이다. 어떡하지? 이제 와서 나가기도 좀 애매한데...’
유실의 겉모습은 미소녀, 그래서 이곳 점원도 주저 없이 손님으로 받았겠지. 유실을 처음 보는 사람은 그가 남자일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남자 2명이서 온 것을 알면 쫓겨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메뉴판 아래쪽에는 <밤을 위한 증강 메뉴>라는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었기에 황급히 눈을 돌려 제일 위에 있는 메뉴를 주문했다.
“유실 미안하다, 여기 연인세트 1번으로 주세요.”
“네 손님, 그나저나 귀여운 여자친구분이시네요.”
유실이 점원의 말에 대답하려고 했다.
“저기 저는...”
황급히 유실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네 그럼요. 정말 귀여운 여자친구죠.”
‘미안하다 유실, 딴 식당 가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어.’
민망해서 딴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맛있게 드세요.”
문제가 발생했다. 메뉴판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볶음밥처럼 생긴 메뉴가 음료와 함께 제공되었는데 문제는 그릇이 하나다. 수저도 하나다.
심지어 음료가 담긴 컵의 빨대는 기하학적으로 하트 모양을 하고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마치 서로 마시려면 눈을 마주 보게끔 만들어 놓은 듯했다.
“어... 그, 난 별로 배고프지 않아서...”
{꼬르륵}
매우 안타깝게도 내 배는 매우 솔직했다. 마물 수십 마리를 토벌했는데 배고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생리적인 소리에 유실이 웃으면서 말했다.
“후훗, 패트릭님의 배는 솔직한데요?”
“하아, 하는 수 없지, 네가 우선 반을 먹고...”
유실은 내가 말하고 있는 사이 숟가락을 들고 음식을 떴다.
“패트릭님 자 아 ~ ”
“어이 나도 손이 있다고.”
“패트릭님 팔 아파요.”
“크읍, 냠”
민망함을 무릅쓰고 유실이 건네준 숟가락 위의 음식을 받아먹었다.
‘이 자식 난 지고는 못 산다. 똑같이 해주지.’
유실에게서 숟가락을 뺏어서 유실과 똑같이 했다.
“유실 네 차례라고, 자 아 ~ 해.”
“냠”
유실은 잘 받아먹었다.
‘어째서? 쟤는 민망함이 없나? 얼굴은 조금 달아오른 거 같은데? 혹시 백랑족은 친한 동성끼리 이 정도는 당연한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유실은 음료를 마시려고 빨대를 입에 댔다.
“음? 이거 안 나와요.”
내가 반대쪽을 빨아보았으나 역시 음료가 나오지 않았다.
‘뭐지 음료가 안 들었나? 아니 잠깐, 설마?’
“유실 이거 도, 동시에 빨아야 나오는 거 같은데...”
유실의 얼굴이 적색으로 물들었다. 아무래도 이건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실은 한 쪽의 빨대를 입에 문 채 다른 쪽을 내밀었다.
‘젠장, 이 식당 다시는 안 온다!’
마지못해 빨대를 물고 음료를 흡입했다. 눈앞에는 귀여운 미소녀가 얼굴을 적색으로 물들인 채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난 눈을 감아버렸다. 더 이상 음료가 나오지 않자 눈을 뜨니 유실이 부끄러워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훗 내가 이겼군.’
왠지 모르게 승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매우 혼란스러운 상념을 무시하고 어떻게든 식사를 마쳤다. 사실 음식의 맛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식당을 나오니 해가 지고 밤이 되어 있었다.
모드릭의 밤은 그저 어둡기만 하지 않다. 발광 마도구가 마치 지구의 가로등처럼 각 상점과 주요 도로마다 설치되어 있어 밤에도 거리를 다닐 수 있다. 덕분에 비교적 도시의 치안이 좋다.
“패트릭님 야경이 잘 보이는 곳을 아는데 같이 가실래요?”
“오 좋지.”
그렇게 유실을 따라 동쪽으로 걸어가니 시계탑이 있었다.
“너 용케 이런 곳을 알고 있네.”
“네 이곳은 문을 잠그지 않는 데다 밤이 되면 아무도 없거든요.”
유실을 따라 시계탑의 계단을 올라 옥상에 도착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모드릭의 경치는 아름다웠다.
마치 지구에서 잘 발전한 도시의 야경을 보는 것 같았다.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은하수가 흐르는 강처럼 펼쳐져 있었다.
“야경이 아름답네. 이런 장소를 알려줘서 고마워.”
“별말씀을, 저는 이곳에서 보는 야경을 좋아해요. 모드릭에 와서 소매치기를 당해 잠잘 곳조차 없었을 때에도 이곳에서 야경을 볼 때면 불안했던 하루가 잊혔거든요.”
유실은 모드릭에서 꽤나 고생한 모양이다. 그것이 모험가를 처음 시작했던 지난날의 나 자신 같아서 무심코 유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헤헤...”
정식 모험가로서 그리고 어엿한 모드릭의 주민으로서 일보 전진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유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모드릭에서 또 하나 좋아하는 것이 생겼어요.”
“응? 뭔데?”
“저는 미궁에서 죽을 뻔했어요. 이제야 꿈꾸었던 모험가가 되었는데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죠.”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건가?’
“절망하던 그 순간 누군가가 구해줬어요. 그 사람은 힘들었던 제게 있을 곳이 되어 주었죠. 그리고 오늘 또다시 저를 구해 주었어요.”
‘잠깐 이건 누가 봐도 나를 말하는 거 같은데, 응? 설마 이 분위기 기분 탓이겠지?’
유실의 가슴 중앙이 살짝 빛나고 있었다. 지난번에 그가 애석이라고 말한 것이 빛나는 것 같았다. 유실이 이어서 말했다.
“패트릭님 좋아해요. 저하고 결혼해 주세요.”
“뭐?... 저기 그 유실, 내가 오늘 많이 지쳤나 봐. 귀가 좀 맛이 갔는지 잘못 들은 거 같아.”
“우으, 이런 건 다시 말하게 하지 말라구요.”
‘음 잘못 들은 것이 확실하군, 아무래도 환청까지 들릴 만큼 몸이 지친 모양이네.’
유실은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말했다.
“패트릭님 좋아해요. 저하고 결혼해 주세요.”
‘음 또 잘못 들은 건가? 아니, 2번 연속으로 같은 말이 들렸는데 잘못 들었을 리가.’
“어... 일단 유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난 남자라고? 너도 남자잖아?”
유실은 남자가 확실했다. 욕실에서 봤던 그 거근, 여자가 가지고 있을 수 없는 대형 막대를 잘못 봤을 리가 없다. 외모가 여자 같다고 해서 진짜를 가릴 순 없다.
“그치만 반해 버렸는데 어떻게 해요! 패트릭님을 사랑한다고요!”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 현생 합쳐서 고백받은 적은 지금이 처음이다. 그것도 남자한테서 고백받을 줄이야.
마음을 가다듬고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든 변명하고자 했다.
“그... 이 세상에는 매료 마법이라는 게 있단다. 아무래도 아까 식당에서 음식에다 뭘 넣은 모양이야.”
“그런 게 아니에요! 그전부터 좋아했다구요!”
‘역시 마성의 남자, 같은 남자마저도 반하게 만들 줄이야. 훗, 내 미모는... 아니 이게 아니잖아!’
매우 당황하여 사고가 멈춰버린 것일까, 지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머리가 하얗게 되어 버렸다.
“유실씨 그전부터 라면 혹시 언제를?...”
“미궁에서 처음 구해주셨을 때요. 저 정말로 죽는 줄 알아서, 꿈에 그리던 모험가를 이제 막 시작했는데 죽는 줄 알아서 엄청 무서웠어요. 그런데 패트릭님이 구해주셨죠.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아 이 사람이 내 운명의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해 버린 순간 반해버렸어요.”
이 무슨 로맨틱한 고백인가. 하지만 난 남자를 이성적으로 볼 수 없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거절하지? 그리고 거절했을 경우 훈련관으로서 유실을 가르쳐야 하는데 앞으로 그를 어떻게 본단 말인가.
나의 복잡한 심정과는 별개로 유실은 결의를 다진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인간은 결혼 이전 단계가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전 패트릭님과 연인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거절은 거절하겠습니다. 모블에 들어가기 전에 가능한 것이라면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셨잖아요.”
‘위험해, 자신의 말로 인해 함정에 걸려 버렸다. 그냥 여자라고 생각하고 확 사귀어 버려? 아니, 난 쇼타콘은 더욱 아니지만 로리콘도 아니야!’
“그 유실 연인이라는 것은 좀 더 서로를 잘 알아야 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같이 씻고, 같이 자고, 같이 밥도 먹었잖아요. 저 이제 패트릭님이 아니면 결혼 못 해요. 책임져 주세요.”
“미안 유실, 하급 상태이상마법 [슬립]”
마법을 사용해 유실을 강제로 재운 뒤 그를 업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복잡한 것을 생각하기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피로했다.
‘에이 모르겠다.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하자.’
유실을 침대에 눕히고 그 옆에 누워서 잠들었다.
부연설명
술식 영창
영창은 마법의 발동 조건이 되는 술식을 마력으로 작성하는 행위이다. 영창과 관련된 마도사의 4가지 스킬이 있다.
다중영창: 여러 술식을 동시에 영창하는 것
연속영창: 하나의 술식을 연속해서 영창하는 것
고속영창: 술식을 시전자의 최고 속력으로 영창하는 것
무영창: 술식을 순서에 맞게 영창하는 것이 아닌 일순간에 전체를(도장을 날인하듯) 발동하는 것, 각인은 일종의 무영창이다.
단, 최하급 마법은 술식이 매우 간단하기에 무영창과 고속영창은 큰 의미가 없다.
- 작가의말
곧 백랑족의 비밀이 밝혀집니다. 힌트는 TS와 불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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