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랑족 4
큰 인성(人聲)에 자고 있던 뮤틸과 유실은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유노는 고막이 아팠는지 귀를 부여잡고 말했다.
“윽, 시끄러워! 네가 정말 패트릭이라고?”
“누, 누나? 난 살아 있는 거야?”
유노는 유실의 몸에 애석이 흡수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유실 너 애석이!...”
“어, 어라? 어디로 갔지?”
“어떻게 이런 일이, 유실 애석이 네 몸속으로 흡수되어 있어. 그것도 절반만.”
“에엣? 그럼 나 결혼한 거야? 누구랑?”
남매는 당황하여 무심코 나를 바라보고는 더욱 놀라워했다. 유노가 나에게 물었다.
“왜 유실의 애석 절반이 너한테 흡수되어 있어? 어떻게 한 거야? 그것보다 넌 누구야?”
“저,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제가 패트릭입니다.”
“네? 패트릭님은 남자인데요?”
“잠깐 기다려봐.”
유노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가령 네가 패트릭이라고 하면, 어젯밤 유실에게 뭘 한 거야?”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3명에게 어젯밤 한 일과 본 것을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듣는 도중 유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랬구나. 그래서 이렇게 된 거였어.”
그러자 뮤틸이 말했다.
“유노님 이해하셨다면 이 상황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유노가 대답했다.
“아마 이 여자는 패트릭이 맞을 거야. 단순히 패트릭이 어제 입고 있었던 옷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야.”
유노의 설명에 따르면 백랑족은 자신과 다른 백랑족의 애석을 눈으로 확인하거나 감지하여 어떤 상태인지 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유실이 살아있는 이유는 애석에 마력을 주입당한 결과 애석의 성질이 변형되었으며, 그로 인해 반으로 쪼개진 뒤 각각 나와 유실에게 흡수되었다고 한다.
“즉, 패트릭 넌 귀와 꼬리가 없고 머리색 역시 그대로이지만 인간과 백랑족이 융합한 형태가 되어버렸어.”
유노의 설명을 들은 유실이 유노에게 다시 물었다.
“누나 그럼 난 패트릭님하고 결혼한 거야?”
유노가 아리송해하며 대답했다.
“으음, 그렇게 되나?”
그러자 뮤틸이 웃으며 유실에게 말했다.
“유실씨 축하드려요. 아름다운 아내분을 얻으셨네요.”
‘자, 잠깐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 가는데?’
난 당황하여 오해가 커지기 전에 즉시 유노에게 물었다.
“잠깐만요! 그러면 저는 왜 여자가 된 거죠?”
“아 그건 백랑족의 특성 때문인데...”
유노의 말에 의하면 결혼한 백랑족은 4가지의 특성을 갖는데,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불로와 생물학적 성장정지(成長停止)
2. 배우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자연적으로는 불사
(단, 백랑족 부부인 경우는 그렇지 아니함)
3. 배우자의 이상형으로 신체가 변모(성별 포함)
4.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짐
유노는 이 중에서 세 번째 특성이 반사되어 내 신체가 여자로 변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대게의 경우에는 백랑족과 맺어지는 사람이 상대방 그 자체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성별을 포함한 신체가 변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럼 이 모습은...”
“어제까지 네가 이상형으로 생각했었던 이성의 모습이겠지.”
“그럼 만약에 제가 유실의 고백을 긍정했더라면...”
“그렇다면 유실이 지금의 네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귀와 꼬리가 달리고 머리색도 달랐겠지만.”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젠장, 결국 난 미인인 여친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발로 차버린 거잖아! 아니 내용물이 쇼타인데 괜찮은 거냐?’
그러자 유노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했다.
“방금 했던 말은 취소할게. 만약 네가 긍정했다고 하더라도 유실의 신체는 변하지 않았을 거야. 백랑족의 애석은 상대방 역시 진심으로 받아들여야만 흡수되니까. 거짓으로 긍정하면 거절하는 행위와 결과는 같아.”
상황을 지켜보던 유실은 기쁜 표정으로 유노에게 되물었다.
“아무튼 난 이제 패트릭님과 부부인 거지?”
“응, 축하해.”
꿈인가 싶을 정도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아니 상황 그 자체가 변한 건 없었으나, 이대로면 유실의 아내가 되어버리는 결론이 내려진다. 따라서 나는 설득하고자 했다.
“아니 유실 잠깐만, 이상하잖아. 넌 이런 결과에 납득하는 거야?”
“호오, 그렇다면 넌 내 소중한 유실과 이혼 즉, 유실을 결혼하자마자 버리겠다고?”
“아니 그게...”
유실은 슬퍼하는 듯한 아니 치명적으로 귀여운 표정으로 말했다.
“패트릭님 저를 버리실 건가요?”
“허억...”
유실을 보고 느낀 것은 평상시와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차오르며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새하얀 가운데 유실만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몸 상태가 이상했는지 다리에 힘이 풀리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잠깐의 순간에 감정이 강하게 일었다. 스스로 뺨을 때려 이성이 회복되지 않았다면 그대로 유실을 덮쳤을 것이다.
“패트릭님 괜찮으세요?”
유실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유실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성을 부여잡고자 소리쳤다.
“다, 다가오지 마!”
“에엣?”
그러자 유노가 내 얼굴을 쳐다보고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는지 히죽이며 유실에게 말했다.
“유실 괜찮아. 패트릭은 널 싫어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반대랄까? 가서 꼭 안아주면 나을지도 몰라.”
“그런가? 그럼 에잇!”
유노의 말을 들은 유실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껴안았다.
부정맥이 온 것처럼 맥박이 불안정하고 호흡이 어려웠다. 안면이 핫팩처럼 발열되는 느낌과 알 수 없는 행복감이 마음에서 차올랐다.
무엇보다도 유실의 몸에서 나는 듯한 좋은 냄새가 나를 미치게 했다.
유노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패트릭, 너 완전히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이야.”
유노의 말에 벽에 붙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얼굴을 적색으로 물들인 채 행복해하는 소녀가 있었다.
“앞으로는 시누이로서 잘 부탁해 올케.”
유실은 껴안던 자신의 양쪽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얼굴을 가까이에 마주한 채 말했다.
“잘 부탁해요. 패트릭님 아니 여보.”
심장이 한계였다. 유실의 말을 끝으로 나는 또다시 기절하고 말았다.
시간이 또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유실의 얼굴이 보였다.
유실이 내게 무릎베개를 해주고 있었다. 황급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그와 함께 머물던 여관으로 돌아와 있었다.
“패트릭님 잠은 깨셨나요?”
“음, 어...”
혼란스러웠다. 너무 많은 일들이 한순간에 일어나서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유실은 쪽지로 보이는 접혀 있는 종이를 내게 건넸다.
“패트릭님, 이거 누나가 깨어나면 전해주라고 했어요.”
유노가 직접 적은 쪽지로 보였는데. 내용은 이랬다.
< 자고 있는 사이에 네가 머물던 여관으로 옮겨줬어. 그리고 관청에다가 이미 혼인신고까지 했으니까 너와 유실은 이제 법적으로도 부부야. 올케가 생겨서 난 기뻐. 다만, 유실을 울리거나 슬프게 하면 그땐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
‘끄아악, 그 자식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런 현실이 있겠냐고!’
마음속으로 절규하면서 읽다 보니 쪽지의 하단에 접혀 있는 듯한 부분이 있어 추가로 펼쳐보았다. 펼친 부분에는 유노의 글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 참고로 이제 남자로는 절대 못 돌아가. 신체 변화는 백랑족의 종족 특성으로 애석을 다시 빼내지 않는 한 그대로야. 그리고 애석은 이미 네 심장하고 융합해 버렸어.
남자로 돌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네 몸속에서 심장을 꺼내 애석과 분리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너 확실하게 죽어.
알려줄 것은 애석이 반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종족 특성 4가지 역시 너와 유실에게로 나누어졌어. 추측건대 불로와 성장정지 그리고 불사는 유실한테, 나머지는 네가 갖게 된 모양이야.
즉, 넌 이제 유실 아니 네 서방님 없이는 못 견딜 거야. 그럼 신혼생활 즐겁게 보내! >
‘아, 이거 꿈이구나. 아하하하, 이게 현실일 리가 없지.’
현자타임, 스스로 위로하고 난 직후에 찾아오는 그것이 현재는 위로할 대상조차도 없는, 아니 기존까지와는 다른 나에게 찾아왔다.
‘내 꿈이, 몸매 좋은 미녀와 결혼해서 평생 꽁냥대면서 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자신이 그 미녀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는데...’
이번 생에서도 남성으로서 여친을 가질 수 없게 된 나는 멍하니 방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젯밤의 일들이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유실, 내 뺨을 꼬집어 줄래?”
유실이 꼬집은 뺨이 아팠다. 아무래도 답이 없는 이 상황은 명백한 현실인 모양이다. 유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패트릭님 괜찮으세요? 쪽지에 무언가 좋지 않은 내용이 있었나요?”
“아니야 괜찮아. 그리고 유실, 이제부터는 편하게 패트릭이라고 불러.”
“네, 패트릭”
“경어도 필요 없어. 편하게 얘기해.”
“응, 그럴게.”
유실이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이러니까 뭔가 진짜 부부 같아.”
‘아니 이제 이미 법적으로 부부라고.’
무심코 쳐다본 유실의 얼굴은 귀여웠다. 아까 무릎베개를 하고 있었을 때부터 귀여웠다. 아니 사실 아침에 유실이 눈을 뜬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그랬다.
어제와는 달랐다. 어제까지는 순수한 아이같은 외모와 행동에서 느껴졌던 귀여움이 어느새 이성으로서 바라보는 사랑스러움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내가 드디어 정신이 나갔구나. 나는 남자다. 겉은 변했어도 속은 거유의 여친을 바라던 남자라고, 같은 남자를 사랑할 수 있겠냐!’
그럼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석에 의해 종족 특성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느껴졌다. 상태이상마법 [매료]와는 술식이 달랐으나 형태는 유사했다.
마치 심장에서 애석의 마력이 솟구쳐 뇌를 지배하는 감각이었다. 그 감각에 정신과 마음은 이미 중독되어 있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유실을 바라볼 때마다 심장이 뛰고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를 똑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내가 왜 이러는 거야? 저 녀석은 그냥 내 의탁생이라고! 아니 법적으로는 부부였지 젠장.’
유실의 얼굴에서 눈을 돌린 채 자문했다.
‘난 유실에게 뭘 바라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머릿속으로 떠오른 상상을 이랬다.
오늘 아침과 같이 껴안아 주기를 바랐다.
어제 아침과 같이 입맞춤해주기를 바랐다.
그날 저녁과 같이 좋아한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끄아아아아아악!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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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타락의 시작
잠시 동안 고뇌에 빠졌다. 반백년을 살면서 이토록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일생일대의 결정 중 가장 무거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인생이 장가도 아니고 쇼타한테 시집을 가게 될 줄은 몰랐으나 더 생각해 봐야 답이 없었다.
이미 종족 특성에 마음과 정신이 지배당한지라 감정은 솔직했고 법적으로도 졸지에 유부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설령 종족 특성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는 유실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된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 인해 유실은
목숨을 잃어버릴 뻔했다.
신체가 성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종족적으로는 결혼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버리거나 도망가는 행위는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받아들이기로 정했다.
마지막으로 유실에게 물었다.
“너는 괜찮은 거야? 결국 여자가 된 나하고 결혼해 버렸는데 네가 원했던 결과인 거야?”
유실은 웃으며 대답했다.
“응, 전 아니 난 패트릭을 좋아하니까. 여자이든 남자이든 관계없어. 패트릭이 다시 남자로 돌아가더라도, 남자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여자로 계속 있더라도 상관없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패트릭 당신이니까.”
유실이 사랑스러웠다. 미치도록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래서 참을 수 없었다. 유실을 껴안으며 그의 입술을 훔쳤다.
부연설명
귀족에 대해
하급 귀족은 대를 이을 장남 또는 장녀가 아니면 대를 이을 수 없다. 다만 장녀가 상위 귀족에게 시집을 가면 그 밑의 차녀 또는 장남이 대를 이을 수 있다.
귀족의 결혼에서 일반적으로는 아내가 남편의 성씨를 따르지만 결혼 대상자가 귀족으로서 여성의 계급이 높으면 남편이 아내의 성씨를 따른다. 하급 귀족의 대를 잇지 않는 자녀는 그렇지 아니하다.
미들네임
이 세계의 모든 사람(인간, 수인 등)은 미들네임을 가지고 있다. 다만, 미들네임은 자기소개나 일반적인 호칭으로 거의 쓰지 않으며, 동명이인을 구분하기 위해서 등 특정한 경우만 사용한다. 사람의 미들네임은 그 사람의 출신지의 지명으로 정한다.
이름의 조합은 이름 + 출신지 + 성씨(귀족한정)이다.
[패트릭 에번스]는 [패트릭 가이나 에번스]가 풀네임이다.
- 작가의말
서브히로인은 좀 뒤에 등장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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