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과 인야 3

밴이 준 지도를 챙기고 길드에서 나왔다. 그의 작전대로 인야를 유인하기 위해 유실이 어린 수인족처럼 보여야 했다. 유실은 외모는 완벽했으나 의복이 없었다.
지난번에 구매한 의복은 귀족 전용 의류점에서 구매한 것으로 이번 일에 사용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래서 유실과 함께 일반적인 의류점으로 갔다.
의류점에 들어가자 점주가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이 친구한테 어울리는 옷을 사려고 하는데요, 가급적 평범한 것으로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점주는 몇 벌의 옷을 들고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전부 어린 여성용 의복이었다. 그러자 옷을 본 유실이 자신이 남성임을 밝히려고 했다.
“저기, 저는 여자가 안 읍...”
손으로 유실의 입을 막았다. 이유는 유실의 외모를 보았을 때 여성용 의복이 더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유실에게 귓속말했다.
“미안 유실, 인야를 속이려면 이런 옷이 더 좋을 것 같아.”
“하지만 패트릭 난...”
“이번 의뢰는 꼭 성공해야 해. 그러니까 미안.”
“에에?...”
유실은 살짝 당황한(귀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으나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부탁했다. 사실 흑심이 좀 있었는데, 여성용 의복을 입은 유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잠시 뒤 유실은 부끄러워하며 탈의실에서 나왔다.
“어, 어때?”
‘귀여워! 위험해, 종족 특성이 다시... 크윽 진정해라 나.’
간신히 이성을 붙들고 대답했다.
“응, 잘 어울, 아니 이번 일에 잘 맞겠어.”
옷을 입은 유실의 모습은 13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 그 자체였다. 인야는 반드시 속아넘어갈 것이다.
점주가 가져온 옷을 유실에게 차례로 입혀보고 내 판단에 따라 가장 자연스러운(꼴리는?) 옷을 구매했다.
옷을 구매한 후 여관으로 돌아와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
해가 지자 유실과 함께 동쪽 숲으로 향했다. 유실은 낮에 구매한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자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만 놀리고 말았다.
“이러니까 왠지 여동생이 생긴 것 같은데?”
“정말 패트릭, 난 남자라구! 이제는 앞으로도 계속 남자인 채라구!”
“그래그래. 진짜 여자로 변한 건 나지만...”
내가 살짝 풀이 죽은 것처럼 보였는지 유실이 물었다.
“패트릭은 여자가 된 것이 싫어?”
“처음에는 황당했었지. 근데 이제는‘뭐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여자든 남자든 결국 나라는 것은 그대로이니까. 유실도 마찬가지잖아?”
유실은 웃으며 대답했다.
“응. 그대로야. 내가 좋아하는 그대로의 패트릭이야.”
“윽...”
‘너무 갑자기 훅 들어오잖아. 심장에 안 좋아.’
유실은 살짝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또 물었다.
“손, 잡아도 될까?”
“응”
걸으면서 잡은 유실의 손은 따뜻했다. 곧 인야의 본거지를 습격해야 하지만 이대로 계속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드릭의 동문으로 나가 숲 입구에 도착했다. 계획대로 유실이 숲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미아처럼 보여야 한다.
숲에 들어가기 전 유실의 손에 두 가지의 술식을 각인하고 말했다.
“유실, 너의 양손에 2가지의 술식을 각인했어. 왼손에는 [마력연결]의 술식, 이것으로 내가 네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그리고 오른손에는 중상급 공간마법 [순간전이]의 술식, 이것으로 내가 너한테로 순식간에 전이할 수 있지.”
“왼손에는 연결 오른손에는 전이?”
“응, 놈들한테 붙잡힌 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때에 오른손의 술식에 마력을 집중해, 그럼 내가 유실한테로 즉시 소환될 거야.”
“오, 대단해! 뭔가 패트릭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야.”
“정말, 말해두지만 일회성이니까. 신중하게 써야 해.”
“응 알았어, 알았어.”
“[마력엄폐], 이걸로 인야에 마도사가 있어도 네 양손에 각인된 술식을 인지하지 못할 거야.”
유실과 함께 숲으로 들어가 밴이 지도에 표시한 위치의 인근에 도착했다. 풀숲에 몸을 숨기고 해당 위치 부근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폐가로 위장한 듯한 목조건축물들이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인야의 본거지가 거의 확실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근처에 결계나 은폐 등의 술식이 감지되지 않았다.
‘본거지가 아니라 임시로 머무는 곳인가? 들어가서 확인해 볼 수밖에 없겠군.’
유실이 그곳으로 가기 전 나는 유실의 양손을 붙잡고 신신당부했다.
“유실, 이 세상에서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 그러니까 위험해지면 반드시 도망치는 거야. 약속해 줘.”
“알았어. 약속할게. 그리고 패트릭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건 절대 싫으니까, 난 죽지 않을 거라구?”
유실은 그 말을 끝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떠나가는 유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널 다시 볼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면 이제는 견딜 수가 없어. 그러니까 절대 죽지 마, 유실.”
사실 유실이 모르게 그의 몸에 [실드배리어]를 각인했다. 일종의 안전장치로 그의 생명이 위협받게 되면 발동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 술식이 발동하는 상황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유실이 미끼로서 탐색으로 위해 한 폐가 안으로 들어가자 [마력연결]로 그의 위치를 계속 감지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순간회복] 외에 결계 술식을 각인했다.
잠시 뒤 유실은 들어갔던 폐가에서 나오더니 다른 건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버려진 제단인 듯한 건물로 향했다.
그러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복면을 뒤집어쓴 두 명의 사람이 유실을 붙잡아 끌고 들어갔다. 그들의 옷에는 낮에 보았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인야였다.
유실이 건물 안으로 끌려간 것을 확인하자 즉시 [마력감지]를 최대한 넓게 펼쳤다. 다행히 제단으로 보이는 건물 안을 제외하고는 이 일대에 사람이 없었다.
즉, 놈들은 전부 저 건물 안에 있다.
마도사는 상대의 [마력감지]를 인지해 자신이 감지당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추측건대 놈들 중에 마도사가 있다면 나의 [마력감지]는 간파당했을 것이다.
‘지금 해야 겠군.’
“연속영창 상급 공간마법 [절대결계(중)]”
제단 근처에 [절대결계(중)]을 10중으로 펼쳤다. 이 결계는 상급 속성마법 정도는 1회에 한해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다.
10중의 결계를 완전히 뚫고 나오려면 최소한 상급 속성마법 10번을 시전해야 한다. 어지간한 마도사의 마력량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최상급 마법이라도 익힌 마도사가 있다면 또 모를까.
[절대결계]는 시전자가 지정한 것 외에 다른 생명체가 결계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거기다 내 [절대결계]는 술식을 직접 개조한 것으로 결계 안에서는 결계를 구축한 사람 외에 공간마법의 시전이 불가능하다.
‘이것으로 놈들은 완벽하게 독 안에 든 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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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은 제단처럼 보이는 건물로 향했다. 그러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건물 안에서 복면을 쓴 두 명의 남성이 나왔다.
“설마 상품이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
“응? 어이 어이 이건 상등품이라고? 그 녀석한테서 돈을 더 뜯어낼 수 있겠어.”
“아저씨들은 누구?”
“알 것 없다. 얌전히 따라오면 해치지는 않으마.”
그들은 유실을 제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사전에 계획한 대로 유실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유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문이 있어 지하실로 보이는 듯한 공간이 있었다. 복면을 쓴 자들은 그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간 곳은 마치 지하 감옥과 같았다. 유실은 그들에게 끌려가면서 여러 방들을 보았다. 돈이 잔뜩 있는 방이 있었고 누군가 머물면서 생활하는 듯한 방도 있었다.
유실은 어떤 방의 앞을 지나가면서 역한 냄새를 맡았다. 여러 수인족의 피와 체액이 뒤섞인 썩은 냄새와 어디선가 맡아본 기억이 있는 남성의 체취인 듯한 냄새가 강렬하게 났다.
그가 어렸을 적 밤중에 잠이 깨서 가끔 부모가 있는 방으로 향하면 나던 냄새였다.
그 방의 철문이 굳게 닫혀있어 안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유실은 그곳만큼은 절대로 들어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실을 끌고 가던 남자들은 감옥같이 생긴 철창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 철창 안에는 10명의 어린 수인들이 모여 있었다.
남자들은 철창을 열고 유실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다시 철창을 닫고 자물쇠로 잠갔다.
남자들이 철창 앞에서 떠나가자 갇혀 있던 수인 중 한 명이 유실에게 물었다.
“누나도 잡혀온 거야?”
“아니, 너희를 구하러 왔어. 그리고 난 남자야.”
그러자 다른 수인이 말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너도 잡혔잖아. 이제 모두 끝이라고, 그 녀석한테 죽고 말 거야.”
“그 녀석?”
또 다른 갯과의 수인이 유실에게 대답했다.
“바깥에 인간들이 그 인간을 모드릭의 의장이라고 했어. 그런 사람이 어째서 우리를 죽이는 거야?”
그러자 유실은 그 갯과의 수인에게 물었다.
“죽인다고? 누가? 어떻게? 자세히 얘기해 줘.”
“잘은 몰라. 어떤 인간이 우리 중 몇 명을 어제 저쪽의 철문으로 끌고 갔어.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어.
그동안 다른 애들도 모두 그곳으로 끌려가고는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어. 아마 죽었을 거야. 우리도 곧... 으앙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 내가 구해줄게.”
“흑흑, 어떻게?”
“잠시 기다려.”
유실은 자신의 오른손에 마력을 집중했다. 그러자 그의 오른손에 있던 술식의 각인이 빛나기 시작했다. 몇 초 뒤 한 인간인 성인 여성이 수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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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을 철창에 집어넣은 두 남성은 의장에게 큰돈을 뜯어낼 생각에 기뻐하며 자신들의 대장에게로 향했다. 그들이 대장의 방으로 들어가서 말했다.
“대장, 이번에 우리가 제법 상등품을 잡았습니다. 그 녀석한테 50만록은 족히 뜯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대장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너희들 무슨 짓을 한 거냐? 이곳 전체에 대규모 [마력감지]가 행해졌다. 그 상등품은 미끼였어!”
“네?!”
“멍청한 놈들, 적은 마도사다. 게다가 아까 [마력감지]의 규모를 보았을 때 마도사 중에서도 굴지의 강자임이 틀림없다.
너희 둘, 지금 당장 모아놓은 돈과 서류를 챙겨. 시간이 없다. 지금 도망쳐야 해!”
“하지만 어디로 도망친단 말입니까?”
“지난번 조직의 중앙(본부)에서 파견된 마도사가 지금 중상급 공간마법의 술식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전이하여 도망친다. 빨리 움직여!”
대장은 나지막이 말했다.
“크윽 조금만 더 했으면 이곳이 조직의 임시가 아닌 지부가 되었을 텐데...”
조금 뒤 인야의 일원들이 돈뭉치와 각종 서류들을 들고 숨 가쁘게 뛰어왔다.
“허억 허억, 다 챙겼습니다. 남아 있는 수인들은 어떻게 할까요?”
“이곳의 흔적을 지워야 한다. 기지 곳곳에 숨겨 놓은 폭발용 마도구를 가동해.”
그때 인야의 본부에서 파견된 마도사가 다급히 외쳤다.
“안됩니다! 지금 공간마법의 술식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결계입니다. 상대측 마도사가 공간마법을 못 쓰도록 결계를 쳤습니다.”
그 순간 그 대장의 머리는 생존을 위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방의 수인들을 인질로 잡아! 인질을 방패 삼아서 도망친다.”
그들 모두는 수인들이 있는 그 철창으로 서둘러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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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마법이 발동되었다. 유실이 미끼로서 그들의 본거지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소환된 곳을 둘러보니 감옥 같은 철창 안이었다. 좁은 철창 안에는 유실과 10명의 어린 수인족들이 있었다. 아까 [마력감지]로 파악한 수인들의 인원과 동일했다.
소환에 성공하자 유실이 날 껴안으며 말했다.
“패트릭!”
“수고했어 유실.”
그곳에 있던 수인족의 아이가 물었다.
“언니는 누구야? 어떻게 갑자기 나타났어?”
“난 길드에서 파견된 모험가야. 여기 유실과 함께 너희를 구하러 왔어. 모두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줄게.”
또 다른 수인족의 아이가 물었다.
“우리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응, 물론이지.”
그러자 그 아이가 다른 수인족들한테 말했다.
“얘들아, 길드에서 구하러 왔대. 다들 모여.”
아이들은 훌쩍이며 물었다.
“정말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난 모드릭 최고의 마도사라고? 부모님한테로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보내줄게.”
수인족 아이들이 모이자 사전에 계획한 대로 공간마법의 술식을 영창했다.
“상급 공간마법 [특정전이]”
모드릭 길드 건물 지하에는 각종 재해로부터 피난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밴의 작전대로 유실을 제외한 수인족들을 그곳으로 전부 전이시켰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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