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과 인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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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와 밴과 핀은 모드릭 성채의 동쪽 성문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문지기로 보이는 병사가 하품을 하며 졸고 있었다. 밴이 그 문지기를 깨우며 말했다.
“모드릭 부길드장 밴이다. 성문을 열어줘.”
“으음, 이 시간에 누구... 부길드장? 에이 이 시간에는 안 돼, 알잖아, 우리 개방시간 철저한 거.”
그때 문밖에서 흐느껴 울고 있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유노가 문지기에게 소리쳤다.
“이봐, 지금 당장 성문을 열어!”
“아가씨 급한 건 알겠지만 지금은 밤중이라고, 조금 뒤에 동이 트면 열어줄 테니까 기다려.”
“네놈 죽고 싶나? 내 이름은 유노 랙턴, 성문을 열어라. 명령이다!”
“음? 랙턴?... 헉, 당장 열겠습니다.”
문지기가 황급히 성문을 열자 문 앞에서 울고 있는 백랑족 소년과 전신에 화상을 입고 죽어버린 듯한 여성이 보였다.
심한 전신 화상과 양팔이 절단된 그 여성의 모습을 본 유노는 충격을 받아 눈을 크게 뜨며 소년에게 물었다.
“유실 그, 그 여자는...”
“누나, 패트릭이 패트릭이...”
유노는 그 여자에게 급히 달려가 말했다.
“패트릭!, 패트릭 정신 차려!”
유노가 그 여자의 심장 부근에 손을 얹어 확인해 보니 다행히도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녀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다행이야, 살아 있어!”
밴과 핀도 심하게 상처를 입은 그 여자의 모습을 보고 급히 다가왔다. 핀이 말했다.
“심각하군, 대체 누가 이 여자한테 이렇게 심한 짓을...”
밴이 유노에게 물었다.
“패트릭은 아직 살아 있습니까?”
“아직 살아있어, 빨리 치료해야 해. 너 회복술사라고 했지? 패트릭을 빨리 치료해!”
“네? 이 여자가 패트릭이라고요? 제가 아는 패트릭은 남자,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군요,”
핀은 긴급히 술식을 영창했다.
“상급 회복마법 [복원]”
그러나 그 여자는 [복원]으로도 전혀 치료되지 않았다. 핀이 놀라서 중얼거렸다.
“어째서? 상급 회복마법으로 치료가 안 되는 거지?”
그러자 유노가 핀의 멱살을 붙잡고 말했다.
“너, 회복술사라며! 왜 회복이 안되는 건데?”
핀은 대답 없이 그 여자를 바라보더니 자신의 마력을 그 여자의 신체에 흘렸다. 여자의 마력파장이 이상함을 확인한 핀은 다급히 말했다.
“저주입니다! 그것도 고유마법에 의한 것입니다.”
유실이 핀에게 말했다.
“알려주세요. 어떻게 하면, 대체 어떻게 하면 패트릭을 살릴 수 있나요?”
“외부에서 회복마법을 쓰는 것은 의미 없어, 그녀가 직접 자기 자신에게 회복마법을 걸어야 해.”
그 말을 듣고 유노가 핀에게 분노했다.
“지금 그게 가당키나 해? 그냥 죽으라는 얘기잖아!”
핀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기던 밴이 무엇인가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유노에게 말했다.
“아뇨 방법이 있습니다! 패트릭은 평소에 자신의 몸에 [순간회복]의 술식을 각인하고 다닙니다. 지금도 각인되어 있을 겁니다. 다만, 술식을 발동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마력이 부족해서 그럴 겁니다.”
“즉, 패트릭의 마력이 회복되면 스스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네, 제 예상이 맞는다면 그렇습니다.”
패트릭이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유실이 밴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패트릭의 마력을 회복시킬 수 있나요?”
“[마력연결]의 술식을 각인하면 돼. 내가 빨리 마도사를 데리고 올게.”
그러자 핀이 밴을 제지하며 말했다.
“그래선 늦어! 지금 하지 않으면 이 여자는 곧 죽는다고!”
그곳에 있는 모두가 방법을 찾는 사이 유실은 문득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왼손에는 그려진 듯한 어떤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인야의 본거지를 습격하기 전 그녀가 자신에게 각인했던 술식 [마력연결]이었다.
유실은 몰랐으나 그것은 기적이었다. 그녀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임에도 [마력연결] 술식의 각인이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는 핀에게 자신의 왼손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걸로는 안 될까요?”
“이건 [마력연결]의 술식? 어떻게?... 아니 가능해! 이걸로 살릴 수 있겠어.”
그때 그 여자를 지켜보던 유노가 다급히 외쳤다.
“유실 지금 해야 해! 패트릭의 호흡이 약해지고 있어!”
유실은 눈을 감고 자신의 왼손에 마력을 집중했다.
그러자 각인된 술식이 발동하여 그의 마력이 그 여자에게로 옮겨졌다. 이윽고, [순간회복]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그 여자의 마력이 회복되었다.
밴이 그 여자에게 외쳤다.
“패트릭, 지금이야. [순간회복]을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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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깊은 바닷속 심해로 가라앉는 느낌이다.
전생에서는 아마도 즉사했기에 이 감각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걸로 패트릭 에번스의 삶도 이제 끝이다.
‘혹시 또 다음 생이 있지는 않을까?’
그때 빛줄기가 내려와 전신을 감쌌다. 포근한 이 느낌, 마치 누군가가 부르고 있는 듯했다.
‘누구였더라?’
“패트릭!!”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빛줄기를 통해 들리는 듯한 그 목소리는 완전히 꺼져버린 나의 감정을 다시 타오르게 했다.
‘유실!’
그제야 나는 그 빛줄기가 마력임을, 유실이 보내준 마력임을 깨달았다. 그는 울면서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중상급 회복마법 [순간회복]”
통증이 사라져갔다. 팔과 다리의 감각이 돌아오고 손가락이 움직여졌다.
치료된 오른쪽 눈을 뜨니 울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사랑스러운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소년은 울면서 나를 꼭 끌어안고 말했다.
“어서 와 패트릭.”
그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녀왔어.”
그때 밴이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
“감동적인 와중에 미안한데, 옷을 좀 입는 게 어때?”
“아...”
밴의 말을 듣고 자신이 알몸임을 깨달았다. 밴과 핀은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유실은 자신의 몸으로 나를 가리며 말했다.
“보, 보지 마세요. 제 아내라구요!”
밴이 놀라서 물었다.
“응?! 패트릭 너 결혼했냐?”
“그래 내 올케야.”
유노의 대답에 핀과 밴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멋쩍어하며 둘에게 말했다.
“음, 헤헷 그렇게 되어버렸어.”
그 후 밴의 망토를 빌려 몸을 가리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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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캐이틀과 이페린은 왕도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상위 귀족에 대한 재판관은 보통 법무대신이 맡으나, 피고인이 법무대신의 관련자인 경우에 한 해 다른 대신이 재판을 맡는다.
수갑으로 손이 묶인 채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그들 앞에 군부대신이 재판장석에 앉았다. 참고인석에는 법무대신이 앉아 재판을 견문했다.
이윽고, 군부대신의 주제하에 그 둘의 범죄 항목이 낭독되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둘은 자신들의 범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군부대신의 손에는 그의 며느리로부터 받은 명백한 증거들이 가득했다.
그들의 죄질이 극도로 나빴기에 선고가 당일에 내려졌다. 캐이틀은 극형에, 이페린은 귀족 지위가 박탈됐다. 그러자 이페린이 말했다.
“이 선고는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는 항소하겠습니다.”
귀족재판에서 항소란 상위의 재판관에게 재판을 맡기는 것 즉, 지금의 상황에서는 왕의 판단을 재가하겠다는 말이다. 다만, 항소의 수용 또는 기각 여부는 법무대신의 권한이다.
따라서 이페린이 항소한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인 법무대신을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그녀는 법무대신이 항소의 기각 여부를 검토하는 사이에 캐이틀과 함께 케이네스 왕국에서 도망쳐 인근 국가에 망명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를 몰랐다. 그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법무대신인 아버지가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을 확신했다.
이페린이 항소를 외치자 법무대신은 참고인석에서 내려와 그의 딸에게로 향했다. 그가 자신의 둘째 딸의 앞에 섰다.
{찰싹}
법무대신이 이페린의 뺨을 강하게 쳤다. 그가 말했다.
“너희들의 항소를 기각한다. 너희는 항소할 자격이 없다.”
그러자 놀란 그의 딸이 그에게 말했다.
“아빠!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그 말을 들은 법무대신은 분노하여 그녀에게 말했다.
“넌 이제부터 내 딸이 아니다. 이만 눈앞에서 사라져라!”
그 후 둘은 병사들에 의해 피고인석에서 끌려나갔고 군부대신이 재판을 폐회하려 했다.
그때 법무대신이 재판장인 군부대신에게 요청하여 폐회 전 청중석을 향해 발언했다.
이 재판의 청중석에는 다른 귀족들은 물론이고 왕국의 일곱 대신과 황실 친위대장 그리고 황태자까지 앉아있었다.
상위 귀족인 피고인들의 극악무도한 범죄행위가 왕도 전체에 알려졌던 것이다.
따라서 법무대신은 국가의 사법을 책임지는 우두머리로서 자신의 사위와 딸의 범죄행위에 대해 입장을 밝히려고 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제 사위와 딸이 범죄를 저지른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이 일에 대해 상위 귀족으로서 책임을 느끼는 바, 법무대신의 직위를 반납하고 사퇴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법무대신이 스스로 물러나고 그 자리에 새로운 법무대신이 임명되었다.
그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더라면 왕이 직접 자신을 해임했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해임되기 전에 자진사퇴함으로 자신의 명예를 지켰다.
이 일이 왕국 전체에 호외로 널리 퍼졌다.
재판이 끝나고 군부대신은 자신의 수종을 불러 말했다.
“흐음, 이 일에 우리 며늘아기의 동생 부부가 도움을 줬다지?”
“네 그렇습니다.”
“한번 만나보고 싶군그래, 며늘아기와 그 둘을 왕도로 초대해라.”
“분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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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로부터 하루 뒤, 일의 결말과 의뢰의 보수를 받기 위해 유실과 함께 길드로 갔다.
헤린의 안내에 따라 이번에는 혼자서 2층 방으로 올라가니 늘 그렇듯이 밴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패트릭, 몸은 다 나았나?”
“어, 이제 멀쩡해. 그 저주도 몸이 완전히 회복되니 사라지더군.”
“무리시켜서 미안하다. 나도 네가 그런 상태인 걸 보고 솔직히 많이 놀랐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나도 모험가니까 각오 정도는 되어 있다고, 그것보다 이번 일의 조사는 다 끝났어?”
“의장과 관련된 조사와 수색은 다 끝났어. 증거품들은 전부 군에서 가지고 갔다. 아마 왕도의 재판소로 가겠지.”
“그럼 인야와 관련된 내용은?”
“아쉽게도 의장의 저택에 있는 증거들로는 인야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지 못했다. 게다가 동쪽 숲에 가보니 그곳은 폭발로 인해 시체 하나 빼고는 단서가 완전히 사라졌더군.”
“확실히, 그 폭발이면 남아 있는 건 거의 없겠네.”
“패트릭, 이제 얘기해 줘.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밴에게 그날 있었던 일 전부를 이야기했다.
“고유마법 술식의 각인?! 아니 그것보다 이 도시 자체가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질 뻔했군. 위험한 놈들이야.”
“그 시체는 어떻게 됐어?”
“길드에서 조사를 해보고 싶었으나 군에서 왕도로 가져갔다. 그 시체에 각인된 흔적이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은 했는데 설마 고유마법일 줄이야. 인야놈들 이제는 국가를 위협하는 수준이 되어버렸군.”
“아무튼 그러면 왕도에서 부검이라도 할 테니 뭐라도 밝혀지겠지.”
“흐음, 그런데 말이다. 그 시체의 목이 잘려 있던데 네가 한 건가?”
밴의 질문에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유실이 했어.”
“패트릭, 농담은 그만둬 그 친구 신인이잖아.”
“아니, 진짜로 유실이 했어. 유실은 이제 강해졌다고.”
“그거 정말인가? 사실이라면 등급을 올려줄 수 있겠어.”
“그래그래, 누구의 의탁생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어차피 언젠가 올라갈 거 동등급으로 올려줘.”
“이쪽도 절차가 있어서 말이다. 한 단계 위인 구리등급으로 올려놓지.”
“칫, 쩨쩨하구만”
헤린이 끓여온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음...”
“왜 그래?”
“아니, 한 가지 의문이 들어서, 대체 인야는 왜 모드릭을 노린 거지?”
“우리가 판단한 바로는 모드릭이 케이네스에서 수인족의 인구 비율이 가장 높아서 그런 것 같다. 놈들은 아마 이 도시를 완전히 멸망시킬 생각이었을 거야.”
“놈들 정말 위험하군, 이제는 왕국에서 토벌대라도 결성해야 하겠어.”
“그래, 이번 일은 전부 왕도에 보고할 예정이니 조만간 대책을 세우겠지.”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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