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성장(1)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공명은 쿨쿨 잤다.
따르르르릉—!
“헉!”
방 전화가 갑작스레 울릴 때가 되어서야 놀라 팔딱 일어났다.
“어······, 네 여보세요? 아, 퇴실이요? 연장할게요. 3일 더요. 네네, 계산은 이따 내려가서 할게요.”
깜짝이야.
공명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정신을 차렸다.
아무래도 쫓기는 신세다 보니 작은 거 하나에도 놀라버린 모양이다.
길게 기지개를 켠 공명이 몸을 일으켰다.
“피로도 얼추 풀린 거 같고, 슬슬 움직여도 되겠어.”
움직일 때 움직이더라도 일단 밥부터 먹고.
공명이 잠깐 나가 편의점 도시락을 사 왔다.
돌아오며 숙박비도 미리 결제했다.
현금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었지만, 마음만큼은 풍족했다.
이제는 언제든 벌 수 있는 돈이었기에.
“그럼 다시 코인 좀 벌러 가볼까.”
1층을 통해 난이도를 확인했다.
퍽 쉽게 클리어했다.
적어도 3층까지는 크게 무리 없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목표는 3층까지 클리어.
그 이후 층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코인만 충분하면 몇 층이든 문제없을 거 같긴 하지만 까불다 털리면 아픈 걸로 안 끝날 테니까 조심해야지.”
자만심은 금물.
등반은 목숨이 걸린 일이다.
공명은 그 사실을 되뇌며 무구를 장착했다.
<2층 진입>
[탑 2층에 진입합니다.]
[이동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지이이잉—.
검은 대지와 검붉은 하늘.
풍경은 1층과 마찬가지.
적어도 첫 번째 분기가 시작되는 10층까지는 이 삭막한 광경과 함께해야 했다.
<미션>
고블린 3마리 처치
1층보다 조금 어려워진 미션.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그대로다.
‘다 고만고만해 보여도 저 중에 리더 역할을 하는 놈이 있다고 했었지 아마?’
놈이 가장 강하다고 했다.
가장 강하다는 건 캔들도 그만큼 날뛸 거라는 것.
당연히 공명이 먼저 노리는 타겟이었다.
마침 저 멀리서 어슬렁거리며 고블린 3마리가 나타났다.
타겟팅.
차트 온.
‘저놈이다!’
금세 리더를 추려냈다.
유독 높은 피스 당 가격이 그 증거였다.
‘이거 차트 쓰임새가 이리저리 상당한데?’
단순 돈벌이뿐만이 아니었다.
전투, 상태 스캔 등 여러 가지 용도를 보여주는 차트.
아마 특성 레벨이 높아지면 또 다른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다.
그건 곧 공명이 강해진다는 의미였고.
‘달려보자고!’
코인을 잘게 쪼개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
한 번 해봐서인지 1층에서보다 훨씬 스무스하게 물량을 매집해 나갔다.
대략 10분.
전액을 밀어 넣은 공명이 과감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키륵—!”
“키헤헤헤헥—!”
흐름은 1층 때와 똑같았다.
머릿수만 바뀌었을 뿐.
리더에게서 벌어온 코인으로 자신의 전투력을 강화.
리더를 단번에 해치웠다.
이후 한 마리도 마저 갈라버린 후 나머지 한 마리에게서 코인을 쪽쪽 빨아먹었다.
<시장가 종료 성공!>
<대상 종목 상장 폐지!>
지갑 : 13,275코인
코인이 순식간에 만 3천까지 불어났다.
거기다 당연하다는 듯 명예 수치 또한 올라갔다.
[미션 클리어!]
[압도적인 실력으로 2층을 클리어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등록됩니다.]
비공개 (2층) 명예 +2
곧바로 이어진 3층 공략.
<미션>
고블린 5마리 처치
이건 2층보다도 더 쉬웠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코인이 한몫했다.
압도적으로 강해진 전투력.
거기다 코인이 늘어난 만큼 뺏어오는 코인 또한 늘어났다.
그야말로 선순환이었다.
거기다 예상치 못한 레벨업까지.
[특성 경험치가 기준치를 넘어섰습니다.]
[특성 레벨업!]
[차트 상점 내 보조지표가 오픈됩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3층을 클리어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등록됩니다.]
비공개 (3층) 명예 +3
이틀 만에 얻어낸 3 명예 포인트.
이쯤 되자 등반자들이 공명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 * *
강지유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부서진 문.
어질러진 집안.
공명은 없고 난장판 된 방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 이거 골치깨나 썩겠는데.”
이번에 당했다는 세력의 짓이 분명했다.
공명은 도망이라도 친 것일까.
강지유는 우선 근처의 cctv부터 확보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건물에 우르르 몰려 들어온 이들.
“혜성?! 혜성 길드라고?”
세력의 정체 때문이었다.
혜성 길드라니.
대한민국 최강 길드.
정부조차 견제만 하는 게 전부인 대형 길드.
나쁜 소문은 죄다 달고 다니는 이들이 바로 혜성 길드였다.
이렇게 대놓고 활보해도 누구 하나 제지하지 못하니 버젓이 마크를 달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혜성 길드와 공명.
강지유가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래서 누구를 잡아야 하는 거지?
누가 잘못한 건데?
만약 누군가 강지유에게 묻는다면 그녀는 무조건 이렇게 답할 것이다.
혜성은 악의 근원이다.
cctv를 다시 돌려봤다.
급하게 골목을 빠져나가는 공명이 포착됐다.
그는 혜성이 올 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 그걸 떠나서 도대체 무슨 수로 혜성을 엿 먹인 걸까.
그저 범죄 각성자를 잡으러 온 거였지만, 이 시간부로 목적이 바뀌었다.
강지유는 머리에 새기듯 화면 속 공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너······, 뭐 하는 놈이니?”
혜성 길드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런 악의 근원을 무너뜨리는 게 자신 같은 공무원의 사명.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현실에 항상 좌절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 답을 공명에게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놈들이 찾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내야 해.”
강지유가 급히 자리를 떠나려고 할 때였다.
지이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을 보니 수사팀 후배였다.
“선배!”
“왜?”
“등반자 커뮤니티 좀 보셔야겠어요.”
“커뮤니티? 그건 왜?”
강지유는 되물으면서도 커뮤니티를 열었다.
쓱 훑어본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보긴 뭘 봐! 아무것도 없구만. 나 바쁘니까 이따······.”
“성격 급한 건 여전하다니까. 그러지 말고 명예의 전당 마지막 페이지 자세히 봐봐요.”
“명예의 전당?”
리스트를 쭉 내리던 그녀가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말도 안 되는 기록이 적혀 있었기에.
“뭐야 이거. 비공개? 3층에 3명예 포인트?”
“쩔죠?”
“어디서 갑자기 이런 놈이······?”
“확인해 보니까 어제 명예의 전당에 올라온 친구더라고요. 캬―, 잠재력이 보이지 않아요? 이런 친구가 딱 우리 옆에 있어야 든든할 텐데.”
“그래. 대단하긴 한데. 너 고작 이거 하나 말하려고 바쁜 사람 붙잡고 전화를······. 아니다, 마침 전화 잘했다. 너 하나만 알아봐라.”
“엌! 저 갑자기 바쁜 일이 떠올······.”
“뒤질래?”
“크흠. 뭘 하면 되겠습니까, 팀장님?”
“인적 사항 톡으로 보내줄 테니까 이 사람이 혜성하고 연관성이 있는지 확인 좀 해봐. 각성자인 거 숨기고 있는 건 아닌지도 좀 확인해보고.”
“알았어요. 확인하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지유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어때?”
“전혀 연관성 없는데요? 공명 이 사람 그냥 엄청 평범한 사람이에요. 각성자인 걸 숨기는 거 같지도 않고요. 혜성하고의 연관성도 1도 없어요.”
“그렇단 말이지?”
“선배 뭐 또 이상한 일 꾸미는 거 아니죠?”
“아니니까 걱정 마. 알겠고, 일단 끊어봐.”
“어?! 선배! 이번에도 청장님 눈 밖에 나면 선배 진짜 옷 벗······.”
뚝.
매몰차게 전화를 끊은 강지유.
그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각성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혜성하고의 연관성도 없고? 그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거지?’
미궁에 빠진 수사.
문득 소설 같은 스토리가 그려졌다.
만약 공명이 이제 막 각성한 사람이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첫 타겟으로 혜성 길드를 고른 거라면?
명예의 전당에 오른 저 비공개 인사가 공명과 동일 인물이라면?
“별 미친 생각이 다 드네.”
강지유가 자기도 어처구니없다는 듯 픽 웃고는 자리를 떴다.
다른 단서를 찾기 위해서.
지금 한 생각이 정답에 가깝다는 것도 모른 채.
* * *
웅장한 빌딩.
최고층.
중년의 남성은 다리를 꼰 채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못 찾았다?”
“네. 믿고 맡겨주셨는데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길드장님.”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아랫놈들이 일을 못 하는 거지.”
권용찬이 마른침을 삼켰다.
나긋나긋한 말투지만, 그 안에 담긴 가시를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제가 직접 나서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그거야 뭐 알아서 하고. 다음번에는 그놈 낯짝 좀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네! 물론입니다.”
“그나저나.”
“······?”
“흠, 이게 영 거슬린단 말이지.”
권용찬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허공을 터치하는 길드장.
대번에 무얼 말함인지 깨달았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녀석이 누구인지도 함께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다음 주쯤에는 결과를 알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물론입니다!”
“음, 좋아. 나가봐.”
“네!”
달칵.
문이 닫히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던 유혜성이 읊조렸다.
“감히 혜성을 건드린 간 큰 일반인. 마침 타이밍 좋게 나타나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루키.”
톡톡.
팔걸이를 두드리던 유혜성이 눈을 번뜩였다.
“만약 둘이 동일 인물이라면······.”
뒷말을 길게 늘이던 그가 픽 웃고 말았다.
“그럴 리가 없지.”
* * *
반면 공명이 지내는 모텔.
그는 무슨 오해가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희희낙락 중이었다.
“2만 코인. 2만 코인이란 말이지?”
정확하게는 24,561코인.
3층을 클리어했을 때 지갑에 찍힌 금액이었다.
공명은 그 거금을 보며 어떻게 분배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일단 전투력에 좀 넣어두는 게 안전할 거 같긴 하고.”
등반자가 된 이상 불시에 찾아올지도 모를 위기에 대비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한 힘이 있어야만 했고.
공명은 절반에 가까운 1만 코인을 과감히 전투력에 몰빵했다.
치솟은 에너지가 온몸에 가득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5층도 수월하겠는데?”
물론 느낌만으로 그런 거고 실제로는 도전해 봐야 알 일이었다.
공명이 다음으로 눈독을 들인 건 차트 상점이었다.
잠금이 풀린 보조지표.
그걸 확인할 차례였다.
“역시 차트 볼 때 필수 지표는 거래량······, 어라?”
공명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거래량.
볼린저 밴드.
이동평균선 등등.
트레이더라면 익숙한 것들.
공명이 예상한 지표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상점 창에 보이는 보조지표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고스트 무빙>
상세 : 대상의 감각을 1분간 속인다. 캔들의 실제 무빙과는 별개로 무빙이 없는 것처럼 느끼게끔 만든다.
제한 : 쿨타임 1일
가격 : 30,000코인
<가격잠금>
상세 : 캔들의 무빙을 1분간 멈춘다. 모든 수요와 공급이 차단된다.
제한 : 쿨타임 5일
가격 : 50,000코인
<미래시>
상세 : 100일 이내 미래의 일봉 중 무작위로 하나를 보여준다. 미래시가 보여주는 일봉은 지표 사용 당시 가장 확률이 높은 미래다.
제한 : 쿨타임 10일
가격 : 100,000코인
— 이하 잠김 —
사악한 가격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지표들.
아니, 이미 지표라고 부를 수준이 아니었다.
가장 저렴한 고스트 무빙만 봐도 그렇다.
고블린의 차트를 마구 들쑤셔놔도 1분간 고블린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는 지표였다.
가격잠금이나 미래시는 그 이상이었다.
특히 미래시는 미쳤다고밖에는 표현이 안 되었다.
“미래를 안다. 특성으로 이런 게 가능한 거였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당장이라도 가지고 싶은 지표들뿐.
문제는 너무 비싸다는 거였는데.
“뭐가 문제야.”
탑에서 나온 지 고작 6시간.
공명은 참지 못하고 다시 상태창을 열었다.
<4층 진입>
“비싸면 벌면 그만이지!”
[탑 4층에 진입합니다.]
[이동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지이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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