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성장(3)
정말 제대로 쐈다.
하락으로 이어지던 흐름이 완전히 되돌려져 상승 구조를 만들어낼 정도로.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차트 분석만으로 죽음의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특성의 경험치가 크게 오릅니다.]
[특성 레벨이 두 단계 오릅니다.]
<차트를 보는 눈 Lv5>
“오?!”
[차트 타겟 리미트가 일부 해제됩니다.]
[타 각성자의 차트를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차트 추가 정보가 개방됩니다.]
[레버리지 최대 배율이 5배로 상승합니다.]
“다른 각성자의 차트! 대박인데?”
하지만 공명이 놀라 소리치는 순간 다른 내용이 뒤따랐다.
[주의!]
[현재 뉴비 특전 ‘수수료 무료’가 적용중입니다.]
[특성 레벨 6 달성시 뉴비 특전이 사라집니다.]
“아······, 수수료······.”
공명이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긁적였다.
사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아무리 엄청난 특성이라도 사용하기 위한 대가는 있기 마련.
반면 차트를 보는 눈은 대가라 할 만한 게 크게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특정 조건에 따라 추가적인 제한이 생겨나는 거 아닐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하필 수수료라니······.”
수수료라는 제한이 생기는 순간 매매가 더욱 어려워진다.
매매하는 순간 무조건 마이너스되는 금액이 생기는 거니까.
살 때도 팔 때도.
그걸 메우기 위해 조금은 더 공격적인 매매를 해야 하는데 그게 또 더 큰 손실을 불러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물론 공명이 그 정도로 쉽게 흔들릴 만큼 초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능력에 아무런 대가도 없는 게 말도 안 되기도 하고.”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수수료를 지급하는 건 아주 익숙한 구조이기도 했고.
본인만 잘하면 큰 단점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공명의 입꼬리가 실룩였다.
각성자를 대상으로 열리는 차트라니.
이건 새롭다!
당장이라도 테스트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어디 지나가는 각성자 하나 없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12층.
마침 대로변이었다.
대여섯 명이 길을 걷고 있는 게 보였다.
그중 아무한테나 타겟팅해봤다.
[잘못된 대상입니다.]
“일단 비각성자는 마찬가지고.”
그 후로 한 명씩.
[잘못된 대상입니다.]
[잘못된 대상입니다.]
다섯 명이 모두 일반인인 걸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도 별 기대감 없이 타겟팅하는데.
차트 온.
촤르륵—!
“······응?!”
갑작스러운 반응에 공명이 놀랐다.
마지막 사내는 각성자였다.
“와, 진짜 있네.”
설마 했는데.
공명은 사내가 시야 밖으로 사라질세라 급히 차트를 살펴봤다.
아쉽게도 셀프 차트처럼 전투력 차트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대신 통합 상태 차트만큼은 명확하게 보였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런 것도 보인다고?!”
종목명 : 김홍구
섹터 : 혜성 길드 시크릿 5팀
종목설명 : 은밀 특성을 사용한다. 혜성 길드 내 더러운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시크릿 팀에 소속되어 있다.
차트 추가 정보가 아마도 이것인 모양.
하지만 추가 정보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첫 각성자 차트 오픈 기념으로 조금만 넣어볼까?”
남들 모르는 소심한 세레머니.
공명은 1코인만 슬쩍 넣어봤다.
<x1 시장가 체결 성공!>
이번에 열린 추가 정보가 더 있다는 건 직후 깨달았다.
“어? 이거!”
새로운 감각이 깨어났다.
그건 마치 냄새를 맡는 것과 같았다.
음식 냄새에 이끌려 걸음을 옮기다 보면 그게 어느 음식점에서 나는 냄새인지 금세 찾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해야 할까.
김홍구가 있는 방향에서 그런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얼마나 멀리까지 인식할 수 있는 걸까.
“이참에 한 번 시험해 보는 게 좋겠어.”
넣어둔 건 고작 1코인.
잃어도 그만인 수준이었기에 그대로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홍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밤.
“으아악! 잠 좀 자자! 이놈의 이상한 감각아!”
공명은 계속 풍겨오는 김홍구의 냄새(?)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 * *
권용찬은 혜성 길드의 간부다.
자신이 승승장구하며 걸어온 길을 책으로 쓰자면 열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어찌 된 일인지.
“뭐? 또 놓쳤어?”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었다.
시작은 그 이상한 게시글이었다.
그게 자신이 계획한 일을 꼬아놓기 시작했다.
일이 한 번 꼬이자 인생까지 꼬이는 기분이었고.
“이번에는 믿고 맡겨달라며!”
“죄송합니다.”
“이 새끼가!”
쾅!
“커헉!”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돈을 들여 서울 내 모든 숙박시설에 공명의 인상착의를 뿌렸다.
아무것도 없는 놈이 가면 어딜 가겠는가.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실제로 꽤 많은 제보가 들어왔고, 그중에서도 이번 제보는 거의 확실했다.
돈에 미친 모텔 사장이 cctv에 담긴 공명의 모습까지 보내왔기에 단번에 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놓쳐? 노옿쳐—?”
도착하니 이미 사라진 후란다.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했다.
멍청한 모텔 사장이 놈을 그냥 놔준 것이다.
한 시간만 더 끌었어도 잡을 수 있었을 건데.
권용찬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무릎 꿇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텔 사장이 보였다.
“저희가 뭐라고 했습니까?”
“네? 뭐, 뭘······.”
“뭐긴 뭐겠어요. 놈이 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한다. 듣지 못했습니까?”
“드, 들었죠.”
“그런데?”
“아니, 걸음이 어찌나 바르던지. 급하게 쫓아갔는데 이미 사라진 후였어요.”
뭔가를 생각하던 권용찬이 약간 누그러진 음성으로 물었다.
“흐음. 책임이 없으시다?”
그 모습에 용기를 얻었는지 모텔 사장이 하고 싶던 말을 뱉어냈다.
“거, 거기다 전 수배서 받자마자 연락드린 거란 말입니다!”
맞는 말이긴 하다.
“처맞는 말.”
“네?”
하지만 권용찬에게는 책임 전가로만 느껴졌다.
“처맞자고 이 새끼야.”
“······에······네?”
권용찬이 옆으로 손짓했다.
“넵!”
“이 새끼 데려가서 처리해. 뭔지 알지? 티 안 나게.”
“네!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제야 일이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느낀 모텔 사장이 울먹였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가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맞아. 죽을죄. 뭐해 끌고가.”
“네!”
“으······으어어! 사, 살려······!”
퍼억!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장이 조용해졌다.
지시를 받은 길드원들이 그를 들쳐업은 채 빠르게 사라졌다.
휑해진 사무실을 보며 권용찬이 머리를 쓸어올렸다.
이번에는 길드장에게 뭐라고 변명한단 말인가.
이번에 느껴본바.
그의 기세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건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방법을 찾아야 해, 방법을. 차라리 길드원들한테 알리고······.”
서성이는 권용찬.
그러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위에서 해결 못하니 아래로 전가하여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것.
유혜성이 가장 싫어하는 일 처리 방식이다.
게다가 이번 건은 길드의 수치와도 같은 일이다.
이걸 유혜성에게 묻지도 않고 길드원들을 동원한다면 오히려 담기는 건 자신이 될 것이다.
“젠장! 뭘 어떻게 해야······.”
그러다 문득 놓치고 있던 걸 떠올렸다.
바로 슈퍼개미의 존재.
공명을 못 잡는다면 놈이라도 잡아 오면 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가 급히 휴대폰을 들었다.
시크릿 팀 하나 더 붙이는 정도는 허용범위 이내겠지.
“우선순위를 바꾼다.”
빠르게 계획을 전달하는 권용찬.
그의 밤이 깊어 갔다.
* * *
“어후—, 안 되겠다!”
공명은 결국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롭게 생긴 이상한 감각은 도저히 적응이 되질 않았다.
좀 익숙해져 보려 했지만, 이건 쉽게 익숙해질 수준의 감각이 아니었다.
후각처럼 한 냄새에 오래 노출된다고 마비가 되지도 않았다.
그냥 홍어 지린내가 온종일 난다고 생각하면 딱이었다.
“이건 아냐. 걍 가서 물량 없애자.”
여기서는 차트를 열 수가 없었다.
김홍구가 시야에 들어와야만 차트를 여는 게 가능했다.
결국 공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급히 문을 열고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조만간 차도 하나 마련해야겠는데.’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 방향,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지.
서울에 들어서 택시에서 내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김홍구의 존재가 느껴지고 있었다.
“후욱후욱! 신선한 공기를 마셔도 똑같네, 젠장.”
마음이 급해서일까.
빨라진 발걸음만큼이나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술집 앞.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김홍구가 진하게 느껴졌다.
뛰듯이 내려간 공명은 단번에 김홍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얼마나 술을 마셔댔는지 꼬부라진 혀로 동료들과 한참 얘기 중이었다.
“그렇다니까 그러네. 내가 그놈 대가리를 딱 잡으니까 글쎄 이놈이 살려주세요 하면서 어찌나 빌빌······.”
“야, 이 새끼 취했다. 크크크크크 벌써 갔네 갔어. 몬스터가 살려주세요는 무슨 크킄. 몇 번째 같은 얘기냐? 븅.”
“왜 내비둬봐. 재밌는데 크크크. 찍어찍어. 내일 형들한테 돌리자, 개 까이게 크크.”
공명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앉았다.
당연히 김홍구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였다.
차트를 막 열려는 찰나 알바가 다가왔다.
“여기 메뉴판이요.”
“아, 네.”
빤—.
공명은 자리에 서서 쳐다보는 알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뉴판을 들었다.
‘아, 빨리 없애고 싶은데.’
어쩔 수 없었다.
예쁜 여자 알바가 빤히 쳐다보는 상황.
이런 거엔 내성이 제로에 가까운 공명이었다.
“이, 이거랑 이거 주세요.”
“술은요?”
“어······, 그냥 소주요.”
“어떤 소주요?”
아오 말 좀 그만 걸어줘 힘들어.
속으로만 아우성친 공명이 급히 답했다.
“진짜 이슬이요.”
“네~.”
드디어 알바가 갔다.
공명은 기다렸다는 듯 김홍구를 쳐다봤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 그가 계단 너머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딱 봐도 담배 피우러 가는 모양새였다.
“아, 진짜.”
어쩔 수 없었다.
‘이걸 더 견뎠다가는 무조건 죽을 거야.’
공명은 헛구역질 나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급히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마침 계단 바로 앞에서 셋이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됐다!’
드디어 타이밍이 잡혔다.
공명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차트창을 열었다.
마침 무슨 일인지 김홍구 일행도 조용해졌다.
당연하지만 공명은 거기까지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타겟팅 모드.
차트 온!
<시장가 종료 성공!>
애초에 1코인이었기에 물량은 금세 털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직후 거짓말처럼.
“후읍! 후우—. 아, 살겠다.”
죽을 만큼 괴롭던 감각이 사라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와······. 이거 진짜 각성자한테는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겠다.’
잠깐의 반성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응?”
그제야 차트 내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와는 다른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종목명 : 김홍구
섹터 : 혜성 길드 시크릿 5팀
종목설명 : 은밀 특성을 사용한다. 혜성 길드 내 더러운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시크릿 팀에 소속되어 있다. 현재 비밀 채팅에 접속 중이다.
비밀 채팅!
그게 공명의 눈에 팍 와서 박혔다.
동시에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내버려두었던 보상 하나가 떠올랐다.
튜토리얼 클리어와 함께 얻어냈던 비밀 채팅 도청 기회.
‘아, 이게 이렇게 쓸 수 있는 거구나!’
총 3회.
심적으로 여유가 생긴 공명은 김홍구 일행을 유심히 살폈다.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 중이었다.
잠깐 살펴본 바로 셋 다 혜성 길드였다.
게다가 시크릿 팀.
‘어차피 3번 가능하니까 한 번 정도는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사실 길드, 그것도 시크릿 팀은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공명은 가볍게 생각하며 보상을 사용했다.
[비밀 채팅 도청권을 1회 사용합니다.]
[김홍구의 비밀 채팅방에 잠입합니다.]
[총 1분간 비밀 채팅을 도청할 수 있습니다.]
직후 처음 보는 채팅창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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