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10층(2)
다음 날.
공명은 느즈막히 일어났다.
술을 꽤 마셔 숙취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짱했다.
“하긴 말도 엄청 많이 해서 약간 깬 상태로 잤으니까.”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부재중 전화와 톡이 수십 개씩 와 있었다.
박아연이었다.
“무슨······.”
- 오빠! 자는 거죠?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요?
- 우리 파티 맞죠? 낚은 거 아니죠? 술김에 한 얘기 아니죠?
- 오늘 일어나서 술 마시고 한 실수였다고 하면 죽여버릴 거예요!
“어, 그러니까······.”
누가 보면 연애하는 줄 알겠다.
공명은 짧게 답을 남겼다,
- 파티 맞고 등반도 같이 갈 거야. 그러니까 그만 좀 해. 톡에서 목소리 들리는 거 같아.
- 휴— 다행이다. 키킥 그게 내 매력인데 왜 그만 해요. 더 할 거야 더 할 거야!
답은 금세 왔다.
그러고도 몇 개의 톡이 연달아왔지만, 그냥 폰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어우, 시끄러워.”
8층에 오를 차례다.
공명은 징징 울리는 폰을 애써 무시하며 마인드컨트롤에 들어갔다.
고블린 주술사가 두 마리.
오늘은 특별히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어제 열린 등반자 차트에서 힌트를 얻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특성에 제한을 뒀단 말이지.”
탑 한정이기는 하지만, 나무에도 차트가 있고 바위에도, 곤충에도 차트가 있었다.
그렇다면 주술사의 불덩이에도 차트가 있지 않을까.
즉, 마법에도 차트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번뜩 든 것이다.
“일단 한 마리 빠르게 처리한 다음에 확인해보자.”
물론 코인은 최대한 뽑아내면서.
[탑 8층에 진입합니다.]
[이동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지이이이잉—.
언제나처럼 고블린 주술사 두 마리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공명은 제대로 시작하기 전 현 상태부터 간단하게 점검했다.
특성 레벨 : 5
레버리지 5배
지갑 : 18,846 코인
전투력 : 20,000 코인
2만 코인을 투자해둔 전투력은 이미 주술사 이상이었다.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는 말.
거기까지 확인한 공명은 곧장 고스트 무빙을 활성화했다.
타겟은 오른쪽의 조금 더 큰 녀석이었다.
<x5 시장가 체결 성공!>
무려 5배의 레버리지!
그게 공명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줬다.
‘크으—, 쩐다.’
1분에 걸친 물량 매입은 순조로웠다.
놈들이 알아차린 건 역시나 고스트 무빙의 제한 시간이 모두 끝났을 때였다.
“크륵?!”
“키르윽??”
“일단 한 놈!”
공명이 바위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두 놈이 허둥댔다.
7층보다도 더 수월하게.
스걱—.
공명의 검이 작은 놈을 갈랐다.
놈에게서 코인을 뽑아내지 못하는 게 아깝긴 했지만, 그런 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지나친 욕심은 오히려 위험으로 다가오는 법.
공명은 그 욕심을 절제할 줄 알았다.
‘앞으로도 기회는 무궁무진하다고!’
“키헥!”
남은 큰 놈이 화들짝 놀랐다.
당연히 캔들이 팍 튀었다.
공명이 노리던 순간이었다.
<시장가 종료 성공!>
수익이 무려 만 3천 코인에 달했다.
하지만 공명은 들뜨지 않고 계획한 일을 했다.
바로 마법을 타겟팅하는 거였다.
뭔가를 중얼거리며 손을 높이 드는 주술사.
공명은 일부러 거리를 벌려주었다.
마치 제대로 마법을 써보라는 듯.
동시에 새로운 차트를 펼쳤다.
타겟팅 모드.
차트 온!
대상은 당연히 주술사가 번쩍 든 손 바로 위.
그리고 공명의 예상대로.
촤르르르륵—!
차트가 펼쳐졌다.
캔들은 단 하나였다.
타임프레임 기본 설정을 10초로 해두었음에도 이제 막 생겨나는 마법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와—, 장난 없네!”
하나뿐인 캔들.
그게 미친 듯이 치솟고 있었다.
마법이 이런 식으로 표현된다는 거에 신기함을 느끼는 건 나중 문제였다.
공명은 생각할 것도 없이 모든 코인을 들이부었다.
<x5 시장가 체결 성공!>
쿠오오오오—!
불덩어리여야 할 마력 흐름이 미친 듯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폭풍과도 같았다.
캔들도 당연히 급등했다.
주술사가 묘한 신음을 내며 남은 한 손을 마저 들었다.
놈도 컨트롤하기가 힘든지 휘청였다.
“젠장!”
그리고 버티기 힘든 건 공명도 마찬가지였다.
강대한 마력 폭풍이 점차 뜨겁게 달아올랐기에.
이대로라면 주술사는 물론 공명까지 그 폭발에 휩쓸릴 판이었다.
‘이대론 안 돼!’
공명이 결단을 내렸다.
코인 좀 손해보더라도 일단 모두 빼내고 보기로.
급히 모든 물량을 판매했다.
동시에 캔들이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수요와 공급이 제멋대로이다 보니 가격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럼에도 판매는 금세 끝났다.
캔들은 공명이 처음 봤을 때보다 한참이나 낮아졌다.
당연히 날뛰던 마력 흐름도 미풍 수준으로 잠잠해져 버렸다.
이젠 불덩이라고 부르기도 애처로운 수준이었다.
<시장가 종료 성공!>
그런데.
“응? 왜 이득이지?”
그것도 30%나.
반면 주술사는 여전히 휘청였다.
저 미약한 마력 흐름조차 통제를 못하다니.
혹시나 싶어 주술사의 차트를 열어본 공명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렇게 된 거구나!”
상황은 금방 파악됐다.
한껏 낮아진 주술사의 캔들.
녀석의 남아있던 마력마저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그중 일부가 공명의 이득으로 돌아온 거고.
의도치 않았지만, 골수까지 빨아먹은 격이었다.
꽤 괜찮은 가성비.
하지만 공명은 고개를 내저었다.
조금 전 그 무시무시했던 마력의 폭풍은 공명조차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으니까.
“두 번 했다가는 나도 뒤질 듯.”
당분간 마법을 직접 건드리는 건 최대한 피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그냥 내버려둬도 죽겠는데?”
주술사의 볼이 핼쑥해졌다.
무슨 생기라도 빨린 좀비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털썩!
[미션 클리어!]
[압도적인 실력으로 8층을 클리어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등록됩니다.]
비공개 (8층) 명예 +8
8층 공략이 싱겁게 끝을 맺었다.
* * *
탑 공략하랴.
박아연 상대하랴.
혜성 길드 정보 수집하랴.
공명은 알차게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
9층 역시 어렵지 않게 클리어했다.
고작 주술사 하나 늘어난 거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갑 : 68,325 코인
전투력 : 20,000 코인
“오! 좋아. 많이 모였어.”
9층을 공략한 후 행복한 고민이 생겼다.
벌어들인 코인을 어디에 사용할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었다.
“보조지표는 아직 좀 이르고. 타임프레임도 당장 다른 시간대가 필요하지는 않은데.”
고민하던 공명은 결단을 내렸다.
지갑 : 38,325 코인
전투력 : 50,000 코인
“그래. 일단 내가 강하고 봐야지. 이제 10층인데 위험하게 움직이기도 좀 그렇잖아?”
3만 코인을 전투력에 추가로 투입했다.
단번에 2배 이상 올라간 전투력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남은 건 일단 시드로 가자.”
층을 올라갈수록 느껴졌다.
필요한 코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게.
박아연에게도 투자하고.
자신에게도 투자해야 한다.
보조지표도 저게 끝이 아닐 거다.
거기다 아직 열리지 않은 메뉴들이 열리기 시작하면?
특성은 돈 먹는 하마가 될 것이다.
그걸 모두 커버하기 위해선 큰 시드로 많은 코인을 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거기다 11층부터는 등반 패턴 자체가 바뀌기에 더더욱 그랬다.
다시 다음 날.
“드디어 10층이네.”
등반자들은 10층을 변곡점이라고 부르곤 했다.
탑을 등반하는 방식이나 메인 미션 등이 여러 방향으로 분화하는 시작점이기 때문이었다.
“후우—. 은근히 긴장되네.”
몸을 한 차례 푼 공명.
그가 탑에 진입했다.
[탑 10층에 진입합니다.]
[등반자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이동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지이이이잉—.
곧이어 펼쳐진 풍경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검은 대지와 붉은 하늘이 사라지고, 울창한 숲이 그를 기다렸다.
빽빽한 숲 한 가운데.
아담하게 들어선 신전 하나.
그 앞에 눈먼 노인 한 명이 가만히 서 있었다.
줄곧 몬스터만 나오던 초반 층과는 확실히 다른 층이었다.
“어서오시게. 등반자여.”
노인의 말은 느릿느릿했다.
게다가 어찌나 자상한지 절로 긴장이 풀려나갔다.
“별 볼 일 없는 탑을 오르느라 고생이 많았네. 이번 층은 잠시 쉬어가도록 하게나.”
“그냥 쉬기만 해도 되나요?”
“그래도 되고, 욕심이 있다면 쉬지 않아도 되고. 허허허.”
말이 금세 바뀌는 노인.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노인은 탑 밖에서도 꽤 유명했다.
오죽하면 패러디 만화까지 있을 정도.
그만큼 지금 대화는 잘 알려져 있었다.
물론 그건 지금까지만.
이제부터 모든 건 등반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그냥 여기 누워서 쉬어도 되고.
숲을 탐험해도 되고.
신전에 들어가 보물을 취해도 된다.
그 외의 무궁무진한 선택이 가능했다.
하지만 본인을 제외한 누구도 그 결과를 알지 못했다.
선택에 따른 결과.
그건 절대적인 계약에 묶이게 되기에.
발설하는 순간 죽는다.
그렇기에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알고 있다고 해서 따라 할 생각은 없지만.’
공명은 이미 할 일을 정해놨다.
이곳은 자유로운 공간이다.
저 먼 땅 위에 수없이 많은 몬스터가 돌아다니고 있다.
몬스터에게서 코인을 취한다.
공명에게 이보다 매력적인 게 어디 있겠는가.
다른 좋은 선택지가 있었어도 몬스터부터 잡고 돌아다녔을 것이다.
“숲에 들어가 볼게요.”
“허허. 그게 자네의 선택인가?”
“네. 몬스터 좀 잡으려고요.”
“투쟁을 선택했구만. 그럼 내가 좋은 걸 하나 알려주겠네.”
노인이 뒤로 돌아 한 곳을 가리켰다.
숲 깊숙한 어딘가였다.
“숲 깊은 곳에는 이 숲의 지배자가 있다네. 등반자 중 아직 지배자를 만나본 이조차 없지. 어떤가? 자네라면 할 수 있겠나?”
“글쎄요.”
당연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놈이 얼마나 강할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기에.
아니 애초에 정체조차 지금 처음 듣는 거였으니 더더욱.
“솔직하구만. 자네가 걷는 길을 여기서 지켜보도록 하지. 아, 그 전에.”
가만히 공명이 서 있는 근처를 응시하던 노인.
물론 진짜 응시한 건 아닐 것이다.
그는 앞을 보지 못했으니까.
그가 한참을 그리 있다 말을 이었다.
“안전을 원하는가? 힘을 원하는가?”
“당연히 안전하면 좋죠.”
“확실히 다른 등반자들과는 뭔가 다르군. 그렇다면 이걸 조심하게. 해가 지기 전까지 일을 마치게나. 그러지 못한다면 어둠이 자네를 집어삼킬 것이니.”
노인은 천천히 신전 앞 계단에 앉았다.
자신의 일을 모두 마쳤다는 양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공명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우거진 수풀.
이리저리 헤치며 걸어가니 어느 순간 공기가 변하는 게 느껴졌다.
마치 신전의 공간이 여기까지라는 듯.
‘역시 시작은 고블린이네.’
머지않아 고블린을 발견했다.
이미 익숙한 몬스터.
차트 확인부터 사냥까지.
이제는 너무 자연스러워 물 흐르듯 이어질 지경이었다.
<대상 종목 상장 폐지!>
녀석이 시작이었다.
공명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숲을 헤집었다.
고블린.
고블린 전사.
고블린 주술사까지.
꾸준히 나아간 끝에 새로운 종을 만났다.
‘오크!’
11층부터 나오는 고블린보다 약간 강한 몬스터.
약간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고블린 주술사 3마리가 모여도 오크 한 마리를 어찌하지는 못했으니.
하지만 공명에게는.
서걱—!
털썩!
“뭐야, 왜 이렇게 쉬워?”
고블린과 별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진입 전 전투력에 쏟아부은 코인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대로면 이 근처 몬스터 정도는 전부 쓸어버릴 수 있겠는데?”
공명은 목표는 시드 모으기.
그래서 노인이 얘기해준 지배자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오크 잡기에 혈안이 되었다.
“돈 복사! 이게 노다지지!”
<시장가 종료 성공!>
뎅겅—!
풀썩.
반면 그 행동이 신경에 거슬리는 존재도 있었다.
스아아아아—.
하나씩 죽어 나간다.
자신과 링크되어 마력을 채워주던 존재들이.
심지어 뭘 어떻게 한 것인지 자신의 마력까지 일부 새어나간다.
그렇지 않아도 마력이 부족한 판에!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번쩍!
쿠오오오오—!
숲의 지배자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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