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10층(3)
얼마나 사냥에 매진했을까.
공명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지갑 : 243,895 코인
“미쳤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숫자가 지갑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니, 이거 이렇게 벌어가도 되는 거야?
잠깐의 불안감이 들었지만 이내 떨쳐내었다.
“줄 때 먹어야지. 줄 때.”
언젠가는 코인을 잃을 때도 있을 거다.
그때를 대비해 잘 모아두는 게 지금 할 일이었다.
“그나저나 좀 전부터 뭔가 묘한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몬스터가 안 나온 지가 꽤 됐다.
자신이 근처 몬스터의 씨를 말렸나 싶을 때.
그 묘했던 냄새가 점차 짙어졌다.
그건 마치.
“유황?”
묘하게 어디선가 맡아봤던 것 같은 냄새.
공명은 본능적으로 냄새의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저런 냄새를 풍기는 거 하고는 부딪혀서 좋을 게 없다.
어쩌면 숲의 지배자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공명의 의도와는 다르게.
투다다다다—!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왔다.
직후.
파앗—!
“엇!”
수풀을 가로지르며 그것이 튀어나왔다.
공명이 자신도 모르게 대상을 후려갈겼다.
쿠앙—!
“뺙——!!!”
“응? 뺙?”
오크도 즉사할 일격.
하지만 쳐박혔던 녀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일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날듯이 뛰어올랐다.
작고 하찮은 날개를 퍼덕이며.
당연히 오래 날지 못했다.
“뭐야, 저거?”
생긴 건 병아리 같았다.
크기도 비슷했고.
겉을 감싸는 불꽃만 없었다면 진짜 병아리인 줄 알았을 것이다.
“쟤였구나. 유황 냄새 풍기는 게.”
탑은 상식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작고 하찮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공명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공격에 대비하며 차트를 펼쳤다.
다행히 타겟 제한에 걸리지 않았다.
종목명 : 화염 병아리
섹터 : ?????
종목설명 : 알 수 없는 존재의 힘이 개입하고 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그 이상으로 작고 나약하다.
“화······염 병아리?”
“뺘악—!”
무엇에 빡친 걸까.
병아리가 돌진했다.
뻐엉—!
그리고는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바닥에 처박혔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재공격에 공명이 급히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병아리도 학습 능력은 있는지 재차 돌진하지는 않았다.
“삐—약—!”
온갖 성질을 있는 대로 내고 있을 뿐.
“이 녀석 봐라?”
그 와중에 공명은 신기한 변화를 포착했다.
바로 녀석의 차트에서.
‘아니, 정확히는 변화가 없다고 해야겠네.’
그가 본 그대로.
병아리의 현재 캔들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금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전부일 뿐.
가만히 보니 몇 년간 이어진 캔들의 움직임과 동일했다.
마치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조작하듯이.
‘그런데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다면서 몇십 년도 더 거뜬히 산 거 같은데?’
차트를 앞으로 넘기고 넘겨도 시작 지점이 보이질 않았다.
‘몬스터는 나이 측정을 다른 식으로 하나 보지 뭐.’
공명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충 넘겼다.
대신 다른 데에 집중했다.
바로 인위적인 차트의 흐름에.
“100퍼센트네. 세력의 개입.”
결코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흐름.
차트 추가 정보에서 말하는 알 수 없는 존재의 개입이 바로 저걸 말하는 모양이었다.
절로 경각심이 들었다.
‘나 말고도 차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가 있어.’
물론 방식은 다를 것이다.
자신이 차트로 개입하듯이 그 누군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개입하겠지.
‘그럼 어디 한 번.’
공명이 테스트하듯 코인을 슬쩍 집어넣어 봤다.
“······.”
“뺙—!”
변화는 없었다.
‘그럼 조금만 더.’
2코인.
3코인.
5배 레버리지를 전부 활용하여 계속 진입했다.
그러다 보니 전혀 나타나지 않을 것 같던 변화가 어느 순간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라?”
공명의 진입으로 약간 빨라진 상승세.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느지막이 그걸 찍어 누르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일명 매도세의 출현.
하지만 대응이 너무 늦다.
“재밌네.”
공명의 입가로 미소가 맺혔다.
따지고 보면 전체적으로 그리 큰 금액이 움직이는 건 아니다.
진입한 코인의 양이 적음에도 캔들이 영향을 받은 이유가 그것이었고.
‘그렇다면 내가 코인을 한 방에 들이부으면 분명 큰 변화가 발생할 거란 얘긴데.’
공명이 위험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안일한 정체불명의 존재.
놈에게 개입당하는 작고 하찮은 병아리.
그 판을 뒤흔들 만큼 불어난 대량의 코인.
과연 이 판을 뒤흔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공명의 승부사 기질이 자꾸만 고개를 치켜들었다.
만약 놈이 병아리의 마력 혹은 생명력 등을 빼앗아 가는 거라면?
그 결과가 차트로 드러나는 거라면?
‘쓰읍. 총 24만 코인······, 20만 코인만 넣어봐?’
5배 레버리지 포함하면 100만 코인.
잃으면 솔직히 속 좀 쓰릴 것 같다.
그럼에도 자꾸만 마음이 도전 쪽으로 기울었다.
노인은 말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일을 마치라고.
마침 해가 지는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여기서 10층 클리어를 선언하고 나가도 되긴 하지만.”
10층이 다른 층과 다른 유일한 점.
그건 스스로 클리어 선언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명은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클리어를 선언하는 순간 명예 포인트는 물 건너간다는 걸.
‘10층에서 명예 포인트를 얻은 등반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게다가 정말 위험할 경우에는 클리어 선언이라는 치트키가 있지 않은가.
20만 코인?
다시 벌면 그만이다!
결국 공명이 결정을 내렸다.
“가랏! 3만 코인!”
마치 노란 번개 몬스터를 출전시키듯이.
앞으로 손을 쭉 뻗으며.
<x5 시장가 체결 진행중!>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알림이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수요의 증가.
그에 따른 가격의 폭등.
캔들이 미친 듯이 치솟았다.
피스 당 가격이 순식간에 1.2배, 1.5배 마구 뛰어올랐다.
그러면서도 3만 코인이라는 물량을 전부 소화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화륵—!
“뺙?!”
그건 곧장 병아리의 변화로 나타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약했던 불꽃이 주변을 태울 듯 넘실거렸다.
범인인 공명마저 화들짝 놀라 뒤로 몸을 날렸다.
“이크!”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명이 뒤이어 3만 코인을 추가 투입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직전의 3만 코인조차 모두 체결되지 않은 상황.
거기에 같은 양의 수요가 추가되니 차트의 변화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정체불명의 세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매도세도 강력하게 나타났다.
“타이밍 좋고!”
넣기로 한 것 중 아직 14만 코인이 남은 상황.
공명은 기회를 엿봤다.
6만 코인의 물량이 거의 체결, 캔들이 안정화될 때쯤 5만 코인을 때려 넣었다.
간신히 내려갈 듯 폼 잡던 캔들이 다시 치솟았다.
조금 전보다도 더 강력한 무빙!
이건 공명조차 놀랄 만한 변화였다.
“아니, 세력 주제에 너무 약한 거 아냐?”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 감히! 감히 어떤 놈의 자식이—! 끄으으으······.
그건 귀로 들리는 게 아니었다.
심령에 퍼져나가는 음성.
하지만 무슨 일인지 중간에 말을 멈췄다.
심지어 무언가 참는 신음이 들려왔다.
공명은 거기서 놈의 과부하를 눈치챘다.
“에헤이. 이러면 너무 싱거운데?”
상대의 약점이 드러났다는 건 곧 공격 타이밍이라는 것.
공명은 가차 없이 응했다.
“올인!”
남은 9만 코인이 추가로 얹어졌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 끄아아아악——!! 네놈! 네놈 반드시!
이번에도 중간에 말이 끊겼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무언가를 참는 신음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것.
결과는 시스템이 알려주었다.
[화염 병아리와 연결되어 있던 외부의 끈이 끊어졌습니다.]
[강제 봉인 당했던 ‘숲의 지배자’ 칭호가 화염 병아리에게 돌아옵니다.]
[특수한 경우로 판단되어 화염 병아리의 시세를 강제 안정화합니다.]
[특수한 경우로 판단되어 등반자가 투입한 모든 코인이 강제 체결됩니다.]
무려 20만 코인.
<x5 시장가 체결 성공!>
밀려있던 모든 수요가 체결되며 매입한 물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드러났다.
<종목 화염 병아리의 물량 중 51% 이상 소지중>
<종목 화염 병아리의 최대 주주로 등록!>
[화염 병아리가 등반자에게 귀속됩니다.]
[강제 귀속으로 인해 락업 기간이 1년으로 설정됩니다.]
“귀속? 라, 락업?!”
이제 더 큰 코인이 돌아오겠지?
상상만으로도 싱글벙글하던 공명의 표정이 굳었다.
백번 양보해서 계획에도 없던 귀속은 그렇다 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락업이라니!
공명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션 클리어!]
[놀라운 방향으로 10층을 클리어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등록됩니다.]
비공개 (10층) 명예 +10
[특성 경험치가 기준치를 넘어섰습니다.]
[특성 레벨업!]
* * *
락업 기간.
특정 주주가 주식을 팔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기간.
방으로 돌아온 공명은 멍한 표정으로 바닥을 응시했다.
그 끝에는 작은 불길을 두른 병아리가 삐약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방이 타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까처럼 유황 냄새가 나지도 않았다.
“하—, 세상에. 맙소사. 내 20만 코인이······.”
병아리 한 마리에 20만 코인이라니.
숲의 지배자든 뭐든 그저 불길 두른 병아리일 뿐인데.
공명이 푸념할 때 병아리의 불길이 조금 커졌다.
그러더니 척!
작고 하찮은 날개를 허리춤에 올리듯 접었다.
“20만 코인 정도는 금방 복구해 줄 수 있어요!”
“엥?”
설마 병아리가?
에이 그럴 리가.
공명이 다른 데를 쳐다보자 병아리가 그의 무릎 위로 날아올랐다.
아니, 뛰어올랐다.
“나예요! 뺙!”
부리가 공명의 다리를 슬쩍 쪼았다.
공명의 눈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병아리가······ 말을······.”
탑 생명체다.
말하는 게 크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문제는 녀석이 병아리 모습이라는 것.
인지부조화가 진하게 밀려들었다.
“삐약! 못 써요. 고정관념.”
“허허 거 참.”
절로 할아버지 웃음이 나왔다.
그와 별개로 병아리는 진지했다.
“등반할 때 나도 데려가 줘요. 이제 그 숲은 지긋지긋해요. 뺙뺙!”
진심이 담긴 눈망울.
공명은 병아리와 잠시 눈을 맞췄다.
그래도 무려 숲의 지배자이지 않은가.
어딘가 쓸모가 있겠지.
쓰린 마음을 겨우 달랜 공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되돌릴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 일단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얘기라도 들어보자.’
“아, 젠장! 내 20만 코인!”
“뺙! 벌어준다니까요!”
속마음과 말이 반대로 나온 건 작은 해프닝이었다.
같은 시각.
등반자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 설마설마했는데······.
- 10층? 10츠응?? 10층에서 명예 포인트를 얻었다고?!
- 쩐다 진짜. 얼굴 함 보고 싶네. 누구냐 도대체? 이 글도 보고 있지?? 정체 좀 밝혀봐라. 나한테 발가락이라도 핥을 기회를 줘!
-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너 같으면 밝히겠냐? 귀찮을 거 뻔한데. 특히 대형 길드라는 놈들이 얼마나 귀찮게 굴지 안 봐도 선하다.
- 쟤가 대형 길드 소속일 가능성은 생각 안 함?
- 크크크 그런 놈이 비공개로 돌린다고? 아니지. 엄청 자랑해댔겠지. 내가 세계 최초 10층 명예 등반자입니다!! 안 봐도 뻔하다.
- 윗댓에 극공!
놀람과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색다른 시각의 댓글을 작성했다.
- 10층 이상인 등반자들은 아마도 기억할 건데. 10층 클리어하고 나오면 메인 미션이 정해지잖아. 저 사람은 어떤 미션을 받았을까?
- 어라? 그러게. 도대체 무슨 미션이 튀어나올려나?
- 어······, 오우쒯! 생각만 해도 토나온다.
- 아. 상상해버렸어.
- 삼가.
- 명복을······.
- 명복을······.
- 살아있는 사람 왜 죽여 이것들아! ㅋㅋㅋ
- ㅋㅋㅋ 잘 나가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구나.
[첫 번째 메인 미션이 지정되었습니다.]
메인미션(1)
- 지배자 4종을 수집하라.
공명의 시선이 미션창과 병아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맞아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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