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새로운 가능성(1)
“뺙! 공명님, 간만에 너무 즐거웠어요.”
“좋았다니까 다행이네. 잘했어.”
“공명님의 칭찬, 좋아요! 뺙!”
삐닉스에게 공치사를 한 후.
“······.”
“······.”
공명과 박아연은 아무 말 없이 성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환호성이 울려 퍼져야 했을 성도 조용했다.
그나마 산전수전 가장 많이 겪어본 레온이 나서지 않았다면 서로 어색할 뻔했다.
“어, 음, 큼! 그······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자신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았던 몬스터들이 죽었다.
그것도 불길 단 한 방에.
싸그리.
허탈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두근거림이었다.
기사라면, 혹은 마법사라면 누구나 꿈꾸던 경천동지할 실력.
그걸 실제로 목격했는데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 과했죠?”
“아니오! 절대 아니오!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대단해서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아 그렇소. 이게 지금 현실인지 믿기지도 않을 정도이니···, 허허.”
레온이 말문을 트자 쑥덕거림이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꿈 아니지?”
“나 볼 좀 꼬집어줘 봐.”
“지금··· 저 몬스터들 다 죽은 거 맞지? 내가 본 게 맞는 거지?”
“하, 하하. 아까 봤어? 그 장엄한 불 마법?”
“하—, 아직도 온몸에 소름 돋아. 그거 마법이 맞긴 한 건가?”
“소환 마법이라고 들어본 적 있는데. 저 병아리가 여행자님이 소환하신 마법 생명체인가 봐.”
“아, 그런가 보네!”
“뺙! 공명 님은 내가 모시고 있는 엄청난 주인님이시다!”
“역시!”
오해가 조금 있는 모양이지만.
‘뭐,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겠지?’
설명하기도 길거니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마침 조금씩 이어지던 소란이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어쨌든 우리가 이긴 거잖아?”
“맞아! 몬스터가 전멸한 거잖아!”
“우리가··· 이겼다!”
그 말이 기점이었을까.
기사, 병사 할 것 없이 주먹을 번쩍 치켜들며 외쳤다.
“이겼다!”
“이겼다아—!”
“공명 여행자님이 해내셨다!”
“여행자님 만세!”
“만세!”
“공명 경! 만세!”
아니, 성주님까지 그러면 제가 너무 부끄럽잖아요.
공명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누르며 마주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예의 바른 모습에 함성이 더욱 커졌다.
우와아아아아—!
“하여간 대단하다니까.”
박아연도 옆에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둘 사이에는 아직 못 푼 문제가 있었기에 공명이 작게 속삭였다.
“등반 선택 문제는 이따가 조용해지면 얘기하자.”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선택까지 남은 시간도 있으니까요.”
배시시 웃는 그녀를 뒤로한 채 성문으로 다가갔다.
승리는 승리고.
어쨌든 투자한 건 원금 이상으로 회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움직이자 병사들이 깜짝 놀라 뛰어왔다.
“어유! 두십시오! 저희가 닫겠습니다!”
“얼른 가서 쉬십시오. 성문은 저희에게 맡겨 두시고!”
끼이익—.
쾅!
성문이 닫혔다.
동시에.
지이이이잉—.
묘한 진동음과 함께 성벽 전체를 아우르는 방어막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오, 좋아! 쭉쭉 올라라!’
그에 맞춰 캔들도 서서히 높이를 높여갔다.
상승하는 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고점을 보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듯했다.
“이 방어막을 다시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그러고 보니까 어떻게 된 거죠? 이런 게 있었으면 이전 습격에서 썼어도 됐을 텐데.”
“한 달 정도 마나를 모으면 7일 정도 방어막을 작동시킬 수 있소. 작동을 시키기 위한 예열도 몇 시간은 필요하지. 그런데 이전 습격은 그야말로 예측불허였소. 눈 깜빡할 새에 성벽들이 파괴당해 마법진을 활성화할 여유조차 없었다오.”
몬스터가 예측불허의 습격?
그것도 성에서 대응하기도 빠듯한 시간 안에?
“구린내가 나네요.”
“맞소. 평범한 몬스터들이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오. 지금도 그렇소. 오크면 오크. 검은 늑대면 검은 늑대. 저들끼리의 세력 다툼도 있는 법인데 마치 화해라도 한 듯 함께 오지 않았소? 분명 뒤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 추측하오.”
“다녀오신 게 단순히 시간 끌기만은 아니었군요.”
“그렇긴 한데, 아쉽게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오.”
“음.”
레온과 얘기를 나누며 있자니.
“마법진 활성화 완료되었습니다!”
“후—. 다행이로군.”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공명은 처음 했던 것처럼 남쪽 성벽을 순차적으로 돌았다.
성벽의 피스 당 가격이 평균적으로 2배 이상 올라 있었다.
심지어.
<시장가 종료 성공!>
<시장가 종료 성공!>
코인을 계속 빼내는데도 해당 가격이 유지됐다.
“성주님! 이상합니다! 마나 소모가 조금 높은 듯합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마법진 유지 시간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큰 충격이 없다면 지금은 대략 6일 정도입니다.”
“그 정도라면 문제없네. 그 전에 지원군이 도착할 터이니. 아마도 성벽이 온전치 못해 소모되는 마나가 많은 모양이야.”
“그런 것 같습니다.”
이유야 뻔했다.
코인으로 치환되는 마나.
공명은 괜스레 헛기침하고는 코인 회수에 더욱 신중을 기했다.
성주의 눈치를 봐가며.
“성주님! 이제 4일 버틸 수준밖에 안 됩니다!”
“흠. 이거 생각보다 성벽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이군. 이러면 쉽지 않겠는데.”
‘헛! 여기까지만 해야겠네.’
그렇게 회수한 게 대략 25만 코인.
무려 6배에 가까운 코인을 뻥튀기했다.
아직 성벽에 잠긴 코인이 아깝긴 했지만, 그건 잊어버리기로 했다.
잘못했다가는 미션 자체가 틀어지는 수가 있었기에.
‘그래도 이게 어디야!’
지갑 : 258,223 코인
수수료를 제하고도 25만 코인.
그리고 혹시 모르지 않는가.
운이 좋다면 남은 코인을 회수할 기회가 주어질지도 몰랐다.
‘좋아! 일단은 여기까지. 그럼 이제 남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공명이 두 가지를 떠올렸다.
하나는 아까 나타났던 선택 등반.
나머지 하나는 박아연을 대상으로 하는 돌발 퀘스트였다.
그중 선택 등반을 먼저 논의하기로 했다.
“저기···.”
“아연이요, 아! 연!”
“아, ···아연.”
“네, 오라버니~.”
하여간에 상대하기 힘든 친구다.
공명은 애써 당혹감을 감추며 말문을 열었다.
“이제 슬슬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죠? 오빠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음···, 글쎄.”
뭘 알아야 결정을 하지.
오히려 박아연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적어도 자신보다는 탑에 관해 잘 아는 듯했으니까.
“만약에 저한테 물으신다면 무조건 새로운 가능성을 등반하는 거 추천!”
“그래?”
“네! 남들 간 길 따라가서 얼마나 성장하겠어요. 심지어 이런 선택지는 들어본 적도 없다구요. 이건 무조건 고죠!”
“그렇구나.”
“그래서, 오빠 생각은요?”
“사실 비슷하게 생각하긴 했어.”
“역시! 내가 알아봤다니까. 오빠 혹시 이거 노리고 11층에 다시 온 거 아니에요? 고층에서 내려오는 거 만만한 일은 아니잖아요. 단순히 나 때문에 내려온다는 게 말이 안 된다니까.”
응, 그거 아니야.
이걸 이제 와서 설명할 수도 없고, 참.
공명은 혼자 끙끙대며 선택지를 노려보았다.
다시 생각해 봐도 2번이 정답이었다.
“그래! 해보자!”
“오케이! 고고!”
[2번,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등반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11층 미션이 변경됩니다.]
<연계 미션>
흔들리는 숲 (1)
- 몰려오는 몬스터를 몰살하고 레온 번스타인을 구출하라.
[변경된 미션을 완료하였습니다!]
[최대 1시간까지 11층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12층 진입 시 연계 미션 ‘흔들리는 숲 (2)’가 진행됩니다.]
[11층 클리어 보상으로 3,000코인이 지급됩니다.]
[특성 레벨업!]
[특성의 가능성이 확장합니다.]
[등반자 최초로 새로운 가능성에 진입하였습니다.]
[업적 ‘다른 길을 걷는 자’가 주어집니다.]
[업적 보상으로 ‘A급 이상 랜덤 아이템 주사위’가 지급됩니다.]
[업적 보상으로 5만 코인이 지급됩니다.]
‘나이스!’
이제 슬슬 강력한 아이템이 필요하다 싶었는데 마침 타이밍이 좋았다.
게다가 5만 코인!
이건 볼 것도 없이 땡큐였다.
“와! 이게 다 뭐예요?!”
박아연도 보상을 확인하고는 입을 벌렸다.
그녀는 항상 클리어 순간을 꿈꿔왔다.
그런 그녀였기에 다른 이들이 클리어를 통해 받는 보상 정도는 꿰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보상이라니!
입꼬리가 귀에 걸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대박!”
그러다 뭔가 생각났는지 공명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오빠!”
“···?”
“너무 고마워요. 진짜 소원 풀었어요.”
“어, 뭐···.”
“저는 등반만 해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거 전부 오빠 드리려구요.”
그녀가 꺼낸 건 C급 이상 무구 주사위와 8천 코인.
기여도에 따른 차등 지급 시스템이 존재했기에 아마 저건 그녀가 받은 전부일 것이다.
공명이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냐, 아냐! 넣어둬!”
“진심이니까 얼른 가져가세요.”
애들 코 묻은 돈 뺏는 것도 아니고.
저거 받으면 100퍼센트 확률로 저주받을 거다.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저주를.
공명이 급히 거리를 벌렸다.
“싫어. 너 가져. 나 안 받을 거야.”
“가져가시라니까요!”
“안 받아! 안 들려!”
급기야 공명이 도망쳤다.
그 뒤를 박아연이 쫓아갔다.
“가져가세요오—!”
돌연 시끄럽게 구는 둘을 보며 병사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부럽다. 젊음이네.”
* * *
한참이나 지난 후.
“이러면 저 불편해요.”
박아연이 결국 포기했다.
입을 삐죽 내민 채.
‘그래. 네가 불편해지자. 내가 불편한 것보단 낫잖아.’
공명은 속마음을 간신히 감춘 채 어깨를 으쓱였다.
“앞으로도 본인이 받은 건 본인 거. 서로 탐내지도 말고 질투하지도 말자.”
“와, 차가워. 냉기!”
장난 반, 몸을 부르르 떠는 박아연.
그녀의 투덜거림을 대충 흘린 공명이 다음으로 할 일을 떠올렸다.
마침 코인도 꽤 모였겠다.
‘진입해 봐도 되겠는데?’
박아연 특성 차트로의 진입.
사실 미루고 미뤘다.
김홍구 때의 충격이 가시질 않아서.
‘후우—,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잖아? 일단 시도라도 해보자.’
이 이상 미루기는 힘들었다.
여기서 나가면 좁디좁은 박아연의 원룸이지 않은가.
차트 만질 정신도 없을 게 뻔했다.
‘그래! 가자!’
조심스레 박아연의 차트를 열었다.
이전과는 다른 설명이 그를 반겼다.
종목명 : 박아연
섹터 : 공명결사대 파티원
종목설명 : 지연 특성을 사용한다. 동의한 등반자에게만, 등반자의 특성이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특성일 때만 적용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특성의 한계로 지원했던 모든 길드에게 거절당했다. 현재 오랜 도전 끝에 11층을 클리어했다.
파티를 결성했으니 섹터가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공명결사대?
이제 보니 파티 명칭이 공명결사대였다.
‘하여간에 못 말린다, 진짜.’
통합 차트는 조금씩 상향하는 흐름.
특성 차트는 이전과 별다를 바 없이 바닥에서 기고 있었다.
박아연은 특성을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특성 사용에 성공했다면 꽤 많은 경험치가 올라가야 정상이다.
마치 1레벨 때 필요한 경험치가 적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차트 흐름에 변화가 전혀 없단 말이지.’
이로써 명확해졌다.
박아연의 특성 차트에는 인위적인 무언가가 개입하고 있었다.
물론 삐닉스 때와는 꽤 다른 상황이겠지만.
‘뭐가 됐든, 일단 진입해 보면 답이 보이겠지.’
현물과 선물.
둘 중에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박아연의 특성 소유권을 뺏어올 의도가 아닌 이상에야 레버리지가 있는 선물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으니까.
<x1 롱 시장가 체결 성공!>
단 1코인.
슬쩍 담가본 공명이 눈을 번쩍 떴다.
박아연과 연결된 감각.
거기서 느껴지는.
‘향기?!’
설마 했더니!
박아연에게서 흘러나오는 건 향기였다.
꽃향기, 혹은 샴푸 향기처럼 기분 좋은 냄새.
마치 향기 테라피 받는 기분이었다.
‘역시 사람마다 다른 거였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더는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곧장 5만 코인을 준비했다.
“응? 오빠 뭘 갑자기 그렇게 킁킁대면서 맡아요?”
아냐.
착각일 거야.
나 그런 적 없어.
약간의 부작용 정도는 대충 무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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